불교는 흔히 소승불교[남방]에서 대승불교[북방]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소승이란 작은 수레이고, 대승은 큰 수레이듯..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되는 것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 같기에..대승으로 발전되어 왔다는 설명을 우리는 별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20세기 말엽에 우리가 접한 것은
현 남방불교는 소승 불교[상좌 불교]를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오히려
대승불교는 정통 불교가 아닌 방편 불교로 취급한다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나?.. 하는 쇼크와 의심이 생겼다.
그 당시 지금도 더하면 더하다고 하겠는데..
끊임없는 승려들의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권력 암투..
조계종단 분쟁 속에 출가승들의 비리와 비행 소문과 뉴스는 불교에 관심많은 젊은 불자들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그런 젊은 불자들에게 남방불교 비구들의 청정한 삶과
<니까야>로 불리는 초기 불경 내용은
신선 그 자체였다.
[그곳 사찰에는 지금도 음식을 할 수 있는 부엌이 없듯이.. 철저히 재가자들이 준비한 공양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우리는 승려에게 머니를 주는 게 일반화 되어있지만, 남방 불교에서는 사찰에서 필요한 일체 비용은 재가자들이 책임지고 있지만, 재가자들이 출가 비구에게 직접 머니를 주는 일은 드믄 것 같다.
그러니 남방 비구들은 우리 승려보다 청정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되어 있다.
남방 불교[상좌 불교]가 석가세존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승해 오고 있다는 긍정이 커지면서
상좌 불교[테라밧다]를 공부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상좌부 불교는 20여개 파[부파]로 나누어졌다고 하듯 대승불교도 여러 파[종, 부파]로 나뉘어졌는데..
그런 대승의 갈래 가운데 반야부는 대승불교 초기에 생긴 부파다.
그러기에 반야경의 핵심을 요약한 <반야심경(심경)>은 대승불교의 의미를 잘 보여주면서
그 의미를 근본교설로 설명한다.
한편 대승불교 권에서는 <심경>을 근본교설에 의지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 중국 등 대승불교 권은 인도와는 전혀 다른 문화 전통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나 다른 이유는 근본불교를 소승불교로 폄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여기서는 <심경>을 근본불교인 <아함경>의 눈으로 보려한다.
이와같은 시도는 처음이 아닌데.. 반복에 반복을 하는 것은..
마치 변주를 하듯..
불교 공부는 반복을 통해 익어가는 공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