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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아함불자가 보는.. "집제가 바로 멸제군요!"

작성자주나효진|작성시간18.09.15|조회수154 목록 댓글 2


 

“아함불자가 보는.. ” 것이라 하여 '아함불자'임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반야심경>을 보는 입장은 여럿일 수 있는데, 시중에서 접하는 <심경> 해설은 주로 대승불교 눈이나 선종의 입장이다.. 그 가운데 아함 불교 입장에서 보겠다는 뜻이다.


새로운 시도는 좋다. 

다만 나보다 더 실력이 좋은 해자가 나타나 보다 많은 불자의 호응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함"을 강조한 의도는 요새 젊은 불자들 사이에.. 그새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오로지 남방 상좌부불교만이 부처님의 진설(眞說)을 전하고, <심경>을 포함한 대승경전이나 대승불교는 마치 외도처럼 취급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다

그에 대해 반향으로 남방 상좌부불교는 근본불교 정통을 이은 불교가 아니라는 연구는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주의할 것은 상좌부 불교는 초기 불교시대 불교로 아비달마 시대를 열어 다른 종교와 비교를 할 수 없을만큼 철저한 경 연구를 했고, 불교가 그 당시 인도의 주류 사상과 문화를 형성하는 기틀을 제공했으며, 지금도 불교학의 기본틀이 되고 있는 힘과 공덕을 잊으면 곤란하다.


대승불교는 상좌부에서 주장하듯 결코 외도가 아니다 

대승불자 스스로는 그와같은 일부 상좌부의 태도에 콧방귀도 뀌지않지만, 대승불교가 외도가 아님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작업이 쉽지 않은 것은 현존 하는 초기 경전이 바로 상좌부 경전이기 때문이다.

경전 사업이란 논사(학자)들이 시중에 있는 경을 모아 정리해 놓으면 최고의 고승(상좌)들이 감수하여 인정하고 세상에 내놓는다. 

상좌부 시대 각 부파마다 그들의 경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목적과 방향에 맞는 경전을 중심으로 모아 수집정리해 놓았다는 게 된다.

그러기에 남방에 전하는 <니까야>는 그들의 목적과 방향에 맞는 경을 수집 정리해 놓았을 것이고, 

설일체유부의 <잡아함경>은 유부의 목적과 방향에 맞추어 수집정리해 놓았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초기 경전은 석가부처님 설법[진설]을 모아 놓은 것이므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와같은 상좌부 경전 안에서 대승불교의 정통성을 발견해야하니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어서인지 

대승불교 뿌리는 근본불교라는 연구 발표는 아직 미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분위기 속에 반야부의 공은 바로 <잡. 335. 제일의 공경>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결과는 보는 자에게 맡긴다.




[집제가 곧 멸제]란 이해가 생기려면..

고집의 근본 원인을 갈애라 할 수 없다.


(* '집제가 곧 멸제'라는 말은 뉴욕 스토니부룩 대학 불교학 교수였던 박성배 교수의 "깨침과 깨달음"에 나오는 표현이고으로 나는 처음으로 그 말을 보았다.

성철 스님, 순일선원에서는 '집법즉멸법' 이라고 표현한다.

<잡. 972경>에도 '有集法皆是滅法' 이 나오는데.. 한글 역은 "온갖 존재가 발생하는 법[集法]은 다 사라지는 법[滅法]이다." 라고 하였다. 

순일선원에서는 <초전법륜경>을 설명하는 곳에서 나오는 것처럼 [집제가 곧 멸제]가 된다)



12연기법에서 보면 (갈)애는 3수를 연해 생기는 것으로..

3수를 멸하면 애는 멸하지만.. 4성제 설명에서 갈애를 멸하는 곳에서는

수(受, vedanā)를 멸한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


그 뿐인가 수를 멸하려면 6입을 멸해야 하고, 6입을 멸하려면 명색을 멸해야 하고, 식을, 행을 멸하려면 무명을 멸해야 다시는 행 등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4성제 설명에서 보이듯 갈애를 멸하면 수가 멸하고 갈애가 다시 생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MN 141. 진리의 분석 경> 을 보면..


“katamañcāvuso,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yāyaṃ taṇhā ponobbhavikā nandī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ṃ —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idaṃ vuccatāvuso — ‘dukkhasamudayaṃ ariyasaccaṃ’”.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집성제(苦集聖諦)인가? 

그것은 「다시 존재로 이끌고 즐김과 탐(貪)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자(者)」인 갈애이다. 

즉 소유의 갈애[욕애(慾愛)], 존재의 갈애[유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의 갈애[무유애(無有愛)]이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고집성제(苦集聖諦)라고 불린다. 


“katamañcāvuso,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idaṃ vuccatāvuso — ‘dukkhanirodhaṃ ariyasaccaṃ’”.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멸성제(苦滅聖諦)인가?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의 경향이 없음이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고멸성제(苦滅聖諦)라 한다.



한편 더욱 조심스럽게 관찰해 보아야 하는 것은.. 

저 정도 내용은 세존 당시 우파니샤드나 자이나교 등 외도들도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이 아니냐는 것.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 버림, 놓아버림, 벗어남, 집착의 경향이 없음이다.


그렇다. 나는 저 정도 내용이라면 외도들은 물론 재가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으로 

출세간 불법의 고유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본다.


세존께서 다섯 사문에게 처음으로 법륜을 굴렸을 때.. 4성제를 설하셨는데..

그 내용은 <초전법륜경>에 기록된 것보다 더 깊어 다섯 사문은 잘 이해를 할 수 없었으니..

세존께서는 반복하고 다시 설명하고.. 더 깊고 분명한 가르침을 펼쳤을 것으로 본다.

더 깊고 분명한 내용이란 다름아닌 12연기법이다.


즉 애는 수를 연해 생기고, 수는 촉을 연해 생기고, 촉은 6입을 연해 생기고, 

6입은 명색을 연해 생기고, 명색은 식을 연해 생기고, 식은 행을 연해 생기며, 

행은 무명을 연해 생긴다는 내용을 분명히 설하셨을 것으로 본다. 


하여 (갈)애를 멸하려면 수를 멸해야 하고, 수를 멸하려면 촉을 멸하고, 

촉을 멸하려면 6입을, 명색을, 식을, 행을, 무명을 멸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리라.


그런 내용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에 다섯사문은 금방 이해를 하지 못했고.. 그것을 반복 방편으로 가르치시니..

다섯 사문 가운데 꼰디냐 사문이 처음으로 그 뜻을 알아채고 "집제가 바로 멸제군요![집법즉멸법]" 하고 외친 것이다.


그러면 집제가 곧 멸제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무명이 있으면 6입촉이 생기고 수가 생겨 애가 생기니.. 우비고뇌가 생겨 있다는 것

무명을 멸하면 6입촉이 멸하고 수가 멸해 애가 멸하니.. 우비고뇌가 멸한다는 것이니..


지금 여기서 고뇌가 있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이고,[집제]

지금 여기서 고뇌가 없다는 것은 무명이 멸했다는 것. [멸제]


무명이란 허망한 것이 있으면 우비고뇌가 생기고,

무명이란 하망한 게 사라지면 즉시 우비고뇌가 사라진다.


따라서 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닌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


"집제가 바로 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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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梵心(범심) | 작성시간 18.09.16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18.09.16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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