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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제4장 하늘과 땅의 가교(불지(佛智)의 재발견) -1. 육체와 마음의 영역의 비밀.-다카하시신지-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2.04.14|조회수62 목록 댓글 3

제 4 장 하늘과 땅을 잇는 가교(架橋)

 

1. 육체와 마음의 영역의 비밀

 

우리들이, 실재계.

즉 4 차원 이상의 천상계로부터 태어날 때에는,

누구나 둥글고 넉넉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감정도 지성도 본능도 이성도, 그리고 스스로의 의지도,

일체의 모든 현상도,

사물을 만들어 내는 상념의 영역도,

모두 조화되어,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에 눈뜨고 있었다.

 

태어나기 전에는 이 현상계.

지구상에 나오기 위한 수양소같은 곳에 있다.

육체주(肉體舟)를 제공받기 위한 약속은,

이미 부모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져 있다.

그러기 때문에, 정자(精子)와 난자(卵子)가 조화되는 기일이 예정되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날 장소, 환경, 육체적 조건 등,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으며 이 지상계의 사상, 습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누구든지 잘 알고 있다.

 

실재계에서는, 누구나 성인(成人)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전세(前世)의 지상계에서 부조화한 일생을 보냈기 때문에

엄한 지옥계에서 수행하고, 그곳에서 깨달아,

천상계에 환생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지상계로 나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기간.

출생 예정자들의 눈에는,

지상계의 사람들의 상태. 양친이 될 사람의 생활환경등이 똑똑하게 보인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지상계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의 마음인,

“법”

이 멀어져, 잘못된 생활을 하고있기 때문에,

출생하고 나서, 신의 자식으로서, 자각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먼저 육체주를 지니고 생활을 하고 있는 빛의 천사들도,

스스로 만든 종교적 환경 속에서,

교조라든가 살아 있는 신이 되어, 우쭐거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생활을 보고 있기 때문에,

역시 지상계는, 험난하고, 고체적(固體的)이며 불안정한 곳이라고, 잘 알게 된다.

 

천상계의 사람들은 또한, 자기들보다 앞서 지상계에 태어난 자들이,

실재계(천상계)에 있을 때에 약속하고 간 것을 잊고,

욕망의 생활에 젖어 있는 것을,

영화의 스크린을 보는 것처럼, 보며 슬퍼하고 있다.

 

그것은 그 무리의 마음이 흐려있기 때문에, 통신이 불가능하여,

불쌍한 그 사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나 같은 사람은, 특히 험악한 생활환경 속에 태어나 있었으므로

실재계의 사람들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실재계의 수양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어지러이 고생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보자.

지상계에 나가면,

이런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며, 이런 방법으로 깨달아 보자.

서로의 친구들과 약속도 하고, 태어난 후까지 계획하고 나오는 것이다.

 

실재계의 대지도령이나 빛의 천사들도, 이 지상계에 태어날 때에는,

인생에 의문을 가지고, 깨닫기 쉬운 환경을 골라서 태어나는 자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면, 자기의 응석대로 되고 말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래도 타락하기 쉬우며,

반대로 너무 가난하면, 마음까지도 가난하게 되어,

스스로를 상실하고, 세상을 저주하며, 남을 원망하게 되어

인생의 실패자가 될 염려가 많다.

 

프로의 종교가(宗敎家)에서 태어나면, 

구래(舊來)의 잘못을 답습할 경우가 많으므로,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을 피한다.

 

나의 지도령은,

예수가 이스라엘에 태어났을 때,

토목공인 요셉과 마리아를 부모로 선택한 것은

“인생에 의문을 많이 가지기 위함이었다.”

라고 말한다.

“왜,  인간은 병들어 괴로워하는가.”

“왜,  같은 인간이면서, 권력자와 백성의 차별이 있는가.” 등의

‘왜’

라고 하는 의문이 많이 생길 수 있는 환경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

는 것은, 실재계에서 보면,

‘일시적인 죽음’ 이 되는 것이다.

 

 

실재계에서는, 광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이 지구상의 현상계는, 원자체에 의해서 육체주가 구성된다.

원자체의 모체에, 정자와 난자가 조화되어,

새로운 육체주의 세포 분열이 시작되고. 오체(五體)가 형성되어 간다.

 

이때의 마음의 상태는,

신의 자식으로서, 풍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3개월쯤 되면, 약 7센티에서 10센티 정도로 성장하여, 오체(五體)의 모양이 갖추어진다.

이 때에, 아이의 의식이 지배하기 시작.

모친의 의식과 조화되지 않는 경우,

‘입덧’

이라고 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입덧은 모친의 의식과, 아이의 의식이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또한 애기의 의식 속에는, 과거세의 현상계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물 등에 의해, 

어머니와는 다른 기호(嗜好)가 있으므로, 

어머니의 입맛까지도 달라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체라고 하는 육체주를, 두 사람의 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에,

감정의 혼란이 일어나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체를 지배하고 있는 어머니의 의식은,

이미 이 현상계의 인생 체험을 하고 있으므로,

매사에 선악의 상념을 가지고 있는데,

태아의 의식은,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가진,

둥글고 넉넉하고 넓은 마음을 계속 갖고 있다.

그러므로, 상극이 일어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마음의 문이 열려 있는, 차원을 초월하여 보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은,

태아의 의식과 그 수호령도 똑똑하게,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또한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어머니와 태아의 의식이 조화되면,

‘입덧’

현상도 사라지고, 배꼽의 탯줄을 통하여 영양을 취하면서

태아는 순조로운 성장을 계속해 간다.

그러나 그 태아도, 실재계의 수양소에 있을 때는,

훌륭한 한 사람의 어른이었던 것이다.

 

태내에서 자라 달이 차면, 마침내 아이는 태어나고.

공기를 접함과 동시에,  그 인생의 첫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계를 떠나, 아이로서 전생(轉生)한 인간의 의식은,

100% 잠재하여, 스스로 자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다.

저 세상에서 본다면, 그것은 죽음인 것이다.

 

그의 앞길에는, 차원이 다른 현세에로의 일보.

험난한 수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잠재하고 있는 의식,

그 중심인 마음속에는, 

이미 본능이 싹터서, 모유를 스스로 자연스럽게 빨게 된다.

 

생후(生後) 1~2 주 정도 지나면, 혼자서 웃기도 한다.

이때는, 애기 곁에, 실재계의 혼의 형제나 친구인 천사들이 와서, 

인생의 첫걸음을 축복해 주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나는 마음의 눈으로 똑똑히 본 적이 있다.

 

젖먹이 애기의 잠자는 모습은 순진하고,

죄(罪)도, 더러움도,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윽고 자아가 싹터서, 욕망을 만들어 내고

교육이나 환경, 습관등에 의해서,

애기의 마음은, 차츰 왜곡을 만들어 간다.

그래서 그것은 괴로움의 원인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잠재되어 있는 의식은, 오관(五官)을 통하여 차츰 표면에 나타나는데,

아직은 어린 아이이다.

10세, 15세, 20세로,  사회의 여러 현상을 통하여,

서서히 지성이 발달되어, 10%쯤까지 표면의식도 눈뜨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구름은, 인생의 올바른 마음가짐을 잊어버리게 한다.

나이가 참에 따라, 이성을 의식하게 되고,

자아가, 욕망이, 마음속에 싹터, 나오는 것이다.

 

오관에 포착된 것이, 대뇌로 보내져, 

뇌파의 진동이, 육체의 선장인 의식(마음)으로 송신되어,

마음속에 여러 가지의 상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손 보존의 본능과 감정이 크게 팽창하고,

지성이나 이성의 영역은 작아져 버린다.

“곰보도 보조개”

로 보이는 사춘기의 번뇌와 기쁨을 체험하고, 올바른 판단을 소홀히 하고 만다.

 

또한 스스로의 생활 행위의 부조화로 말미암아, 몸을 망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의 부조화로 인해, 몸을 망칠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일들도, 실은 반성의 기회로서

신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는 자비인데, 우리는 그만 그것을 잊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의 실패도 괴로움도,

실은 마음을 넉넉하게 키우기 위한 학습인 것이다.

만약 실패나 괴로움이 없다면,

괴로움이나 슬픔의

“쓴맛”

을 속속들이 맛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과 악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선(善)만이 있고, 악(惡)이 없다면,

악(惡)도 알지 못하고, 선(善)의 좋음도 알지 못한다.

선(善)과 악(惡)이 있으므로,

선(善)의 좋음, 악(惡)의 나쁨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상계의 수행의 첫째 목적은,

자기의 업(카르마)을 바로잡는 일이다.

업(業)=카르마)의 수정은,

선(善)과 악(惡)이 혼합된 환경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저 세상에서는,

악의 결과가, 그 자리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업의 수정이 어렵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기의 마음의 풍부함을 만들기 위해,

온갖 경험과 학습을 하여 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이와 같이 괴로움이나 기쁨을 통하여,

어떤 자는 왜곡을 만들고,

어떤 자는 풍부한, 자애에 가득찬 넓은 마음을 만들어 간다.

 

원한이나, 시기, 질투, 노여움 따위를 품으면,

필연적으로, 마음의 부조화나 육체적 부조화를 만들어 내고 마는 것이다.

 

툭하면 감정적이 되는, 성질이 급한 사람의 마음은,

감정의 영역이 크게 부풀고, 이성의 영역은 반대로 작아져 있다.

이것을 “마음의 일그러짐”이라고 말하고 있다.

선장인 마음이 일그러지게 되면,

육체주에도 일그러짐이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생활의 여러 현상을 통하여,

일초 일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은,

지성의 상태에 따라서, 브레이크의 정도도 달라지게 된다.

지성은,

인생의 체험이나 학문에 의해서, 키워갈 수 있지만,

마음을 상실한 사상이나 타력 본원의 종교 등은,

역으로, 이성을, 논브레이크로 만들 위험이 많다.

사상이나 그릇된 종교는,

의식마저도 썩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마음을 잃은,

올바른 중도의 상념과 행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음의 원점-다카하시 신지-

 

 

(주;

육신이 없는 영혼의 세계는,

이성이 10%, 감정이 90%입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거지요.

육신이 있는 물질의 세계는,

이성이 90%, 감정이 10%입니다.

역시 일장일단이 있는 거지요.

아무리 열혈남아라도,

흥분하면, 일을 저지르기 전에,

꼭, 그 이유를,

자기 나름대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자기의 기준을 말합니다.

문제는,

무거운 육신을 움직이기 전에,

벌써 마음속에는,

잘못된 것일 경우나,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있을 경우에,

중지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물질계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기도 하지요.

칼날의 양면처럼,

문제는,

빛과 어둠이 있는 물질계에서,

밝은 이성과, 어두운 이성을 구분하는 지혜를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있는 물질계에서,

가벼운 감정과, 무거운 감정을 구분하는 지혜를.

그리고,

한가지 더,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이 옳다고 느끼는 것은,

전생에서의 경험때문이라고

천사로서의 생활경험이...

바로 다카하시 신지님의 가르침인 듯 하나이다.

인연있는 이여.

참고하소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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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梵心(범심) | 작성시간 22.04.14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작성자顥釋(호석) | 작성시간 22.04.14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2.04.15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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