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올바른 기준
팔정도의 [ 올바름 ] 에 대해서 가르쳐 주세요.
나는 옳다고 생각하여도,
제 삼자는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종종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각자 과거세의 수행의 정도와 경험과 지식 등에 의해,
그 척도가 아무리해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팔정도의 올바름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당신이 지적한 대로, 경험과 지식, 과거세의 수행, 금생의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올바름]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우선 [올바름]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서 말하면,
팔정도의 목적이 좌우에 기울어지지 않는 중도에 있으므로,
자기의 입장을 떠나서, 항상 제삼자의 입장에서,
세상사를 보고,
듣고,
말한다.
라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바름의 기준은 ‘전체와의 조화’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조화는, 보다 높은 차원의 조화를 척도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기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올바름의 척도가 어떻게 다를까,
팔정도의 척도는, 어떤 면의 척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하는 것입니다.
우선 저승을 크게 나누면,
유계(幽界),
영계(靈界),
신계(神界),
보살계(菩薩戒),
여래계(如來界)의
다섯 단계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다섯 단계에는 각각 저마다의 올바름의 기준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유계(幽界) --
이 세계는,
자기라는 입장이 올바름의 척도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만 좋으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이기심이 자리잡은 에고(ego)의 세계이며,
자기보존이 무엇보다 강조되어,
자기보존을 손상시키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악(惡)으로 통한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현실사회는, 확실히 유계의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계(靈界) ---
이 세계는,
이른바 상부상조하는 세계로서
남에게 준 것만큼 되돌아오며,
베푼 것만큼 되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에 불만을 품는 <올바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에 있어서의 상식의 관념이,
여기에서는 가치의 척도로 되어 있습니다.
신계(神界) ---
어떤 사람으로 인해 손해를 당해도 그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를 비난하기 전에, 우선 그 원인을 살펴보고,
두 번 다시 그런 원인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세계입니다.
<올바름>의 척도를 밖에서 찾기 전에, 자신에게서 찾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항상 긍정적 자세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사회가 신계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팔정도의 척도가 어느 단계에 해당되는지,
대충, 안다고 생각합니다.
유계, 영계에는 없고, 신계에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지금까지 <올바름>의 기준을 영계에서 찾고 있었다고 하면,
참된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일까라고 한다면,
자기 마음에 없는 것은,
자기 주위에 나타낼 수가 (행동으로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신리(神理)를 우선, 곰곰히 생각하여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기쁨도, 슬픔도, 당신의 상념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며,
생각하는 것, 염원하는 것이 모두 당신 자신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은 둘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설, 연극을 보고, 슬픈 장면이 나왔을 때, 당신은 웃습니까?
반대로 우스운 장면이 나왔을 때, 당신은 화를 내거나 울거나 합니까?
거의 하지 않지요.
그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을 알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계의 척도로써 자기의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나가면,
남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어,
남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되고,
남의 기쁨은 나의 기쁨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보살계(菩薩戒) ---
보살계의 사람들은,
자비의 마음, 사랑의 행위가 우선되는 단계입니다.
그것은 유계, 영계의 마음에서는,
자기의 마음의 괴로움이,
말하자면 하늘에 침을 뱉는 행위와 다름없는 것이
(마음의 아픔이)실감으로서 느껴져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로서,
표현되는 세계는 각기 달라도, 사람의 마음이 둘이 아니고,
마음은 신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신성(神性)을 더럽히는 것은,
자기자신을 괴롭히고, 남을 슬프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항상 신의 마음을 척도로 삼고,
자비행(慈悲行), 사랑행(愛行)에 일신을 던지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보살계의 <올바름>의 기준은
현상계의 인간들의 사이에 있다기보다,
사람들의 칭찬과 비난의 소리에 마음을 흔들리는 것없이,
오로지 신의 사랑으로 인간을 살려나가는데 인생의 목적을 찾고 있습니다.
보살계의 가치의 척도는, 신(神)인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래계(如來界) ---
여래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를 말하면,
신의 의식과 표리일체이기 때문에, 중생제도의 마음밖에 없습니다.
가치의 척도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주와 자신의 마음은 불이일체(不二一體)입니다.
우주에 불순한 파동이 일어나면,
그 파동을 정순(正純)한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와서 법(法)을 설명하고,
지상에 빛을 주고 가는 빛입니다.
<올바름>의 기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까?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올바름>을 찾고 있었습니까.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 -
(주;
여기에서 하나 덧붙일 것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
끼리끼리 모인다,
지금 현재의 내마음의 상태가 도달한 수준과
같은 수준의 영혼들과 만난다는 사실.
그래서 깨달았다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면,
어느 단계의 영혼들과 만난 경지인가를 알 수 있겠지요.
그리고 영계에서는
끼리끼리 모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주보고 있는 영혼의 생각과 감정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버립니다.
내 앞의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차 있으면,
내 마음또한 그 영혼의 기쁨과 같은 기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내 앞의 영혼이 슬픔으로 가득차있으면,
내 마음또한 그 영혼의 슬픔과 같은 슬픔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사념의 세계인 영혼의 세계의 너무나도 정확한 법칙입니다.
보살의 경지에 이른 분들만이 같이 모일수 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낮은 수준의 영혼이 높은 수준의 영혼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게 되면,
낮은 수준의 영혼의 괴로움(기쁨70%+괴로움30%)의 정도가,
높은 수준의 영혼의 기쁨(기쁨90%+괴로움10%)이 있는 영혼에게,
낮은 수준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그리고 낮은 수준의 영혼은
높은 수준의 밝기가 괴로운 상태가 되기때문에,
(높은 수준만큼 광명이 더 밝은 곳이어서, 눈이 부셔서 괴로워 하게 되지요.)
참고서적 ; 임마누엘 스웨덴보그의 "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
^_^
참고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