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심안을 열다 제1장 반야에의 길-반야바라밀다의 길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3.05.20|조회수64 목록 댓글 1

 

 

반야바라밀다에의 길.

 

 

나는 10세경부터 영적인 체험이 일어나서,

그 후 32년 동안 마음과 물질에 대해서 추구(追究)해 왔습니다.

그 결과 겨우 문제의 핵심에 맞닥뜨려서 인간의 혼이 전생윤회의 과정을 밟아,

영원히 계속 살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의 창이 열린 동지는

도꾜뿐만 아니라 간사이 방면에서도 같은 결과로 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것이, 왜 열리는가.

전생윤회의 자각은 오늘의 주제인 반야바라밀다에의 길에 있습니다.

반야바라밀다는

본래 지금부터 2,500여년 전 인도의 말로 파냐파라미타가 그 어원입니다.

중국에 건너가 한문을 빌려 '반야바라밀다'라고 된 것입니다.

문자상으로 이것을 해석하려고 해도 바른 해석은 불가능합니다.

10인 10색의 해설이 생겨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입니다.

 

반야는 위대한 지혜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

파라는 간다는 뜻이고 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밀다는 내재된 지혜의 보고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를 얻는 데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보통은 이해를 잘못합니다.

그것은 불교의 오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학문, 철학이라고 하는 지(知)와 의(意)에 의해,

그 해석이 뒤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은 학문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야심경은 마음가짐과 행동태도,

공(空)의 실재의 세계와 색(色)의 현상세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먼저 자기 자신이 실천하고,

올바른 마음의 척도를 통해서 생활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혜는, 그러한 마음과 행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고,

반야바라밀다의 경지는,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야심경 속에는, 반야바라밀다에의 길이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지한 바대로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라는 말이 첫머리에 나오는데

이것을 (토를 달지 않고)음으로 내리 읽어서,

관자재보살이 깊이 반야바라밀다를 실행한 때라고 하는 것이 되면,

그 의미가 완전히 모르는 것이 되어갑니다.

 

인생의 목적은, 반야바라밀다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것이 아니면 안됩니다.

나에게 있어서, 불교, 기독교는 전혀 관계가 없고 배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팔정도라고 하는 대자연을 척도로 한 마음의 기준을 통해서,

매일매일의 생활을 해 왔을 때에,

스스로 마음의 창이 열려, 녹음된 자신의 전생윤회의 과정이, 비밀이 풀리어 간 것이었습니다.

 

나는 처음, 왜 나의 가정이나 주위에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의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이러한 현상의 고리가 넓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혼의 영원불멸을 증명하는 전생윤회와,

그 신리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위대한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창이 열려서, 과거세를 생각해내는 것에 의해,

과거세에서 배운 그 지혜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의 창은 팔정도에 기초한 실천에 의해 열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그룹 중에는 기독교, 불교를 배워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지식과 마음의 창을 연 사람들의 전생윤회의 사실이 완전히 증거로 되어있는 것은,

혼의 영원성을 증명하는 좋은 자료로 되고 있습니다.

 

영도현상은 성서 속에 사도행전 2장과 화엄경십지품에 기록되어 있어,

그 기록이 완전히 사실이고 현실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 태어나,

형제가 몇 명이고, 거기서 정법을 배웠다.

그 당시의 동지, 선배, 친구가 현재 여기에 있다.

누구와 누가 그 사람들이다.』

 

라고 확실히 실증됩니다.

그래서 그 실증을 뒷받침하는 몇 개인가의 참고가 되는 현실적 사실도 지적됩니다.

영도현상은 혼의 영원성을 증명하는 현증의 하나입니다.

팔정도를 배움으로써 반야바라밀다,

즉 내재된 위대한 지혜의 비밀이 풀리어 갑니다.

 

우리들이 이 지상계에 태어나기 전은, 어디에 있었는가.

차원을 초월한, 흔히 말하는 저 세상이라고 불리는 실재계,

공의 세계로부터 부모를 인연으로 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태어날 때는 태어날 환경, 자신의 장래를 고려해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경제, 지위, 명예라고 하는 것은,

저 세상에서는 관계가 없고,

자신의 혼의 진화에 있어서 어느 환경이 제일 적합한 지를 생각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 세상에서는,

사람의 마음이 표면에 나와있기 때문에 서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전부 조화되어 있고

상대방의 사고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알고 맙니다.

그러나 지상계에 나오면,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을 잃고,

환경에 휘둘려, 동물이하가 되어 타락하고 맙니다.

인류의 긴 역사는, 이러한 것이 원인으로 되어 지옥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즉 지옥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 저 세상에 돌아가, 지옥계를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지상계는, 그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세계가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수행한다고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의 바늘은,

360도의 무한의 방향으로 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유로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유로운 마음이 원한, 질투, 비난, 분노처럼

자기보존, 자아아욕, 자기만 좋으면 좋다고 하는 상념에 휘둘리면,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불안정한 지옥계에 통해버린다.

동시에 자유로운 마음이 자유롭지 않게 된다.

지상계의 혼란은 이러한 것이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은 인간의 생활의 지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 생활의 지혜에 자기 자신이 속박되어,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라.

인간은 태어날 때에 돈뭉치를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에 돌아갈 때는,

인생에 있어서 체험한 상념과 행위밖에 갖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육체라고 하는 배에 타면,

불과 10%의 표면의식으로 인생을 체험하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혼을 닦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지상계는 학습의 장(場)입니다.

저 세상에서 배운 것을 자신이 자신을 테스트하는 귀중한 장소가 이 세상입니다.

신의 자식이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 대해서,

어디까지 휘둘리지 않고 끝낼 수가 있는가,

그것을 테스트하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태반의 사람은 번뇌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여러분은 이 회장에 오기까지,

어떤 사람은 신간선을 타고, 어떤 사람은 전차에, 자동차에 타고 오셨습니다.

탈 것인 전차, 자동차는 변해도 여러분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여러분의 혼과 육체주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즉 어떤 때는 중국에 태어나고, 또는 인도에, 이집트에 태어나고,

그리고 현재, 일본에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자신의 마음을 만들기 위해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분이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신의 자식으로서의 자각도, 자연히 솟아난다고 생각합니다.

대자연계를 바라보면, 만생만물은, 각각 상호 부조하여 안정된 모습를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호관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을 자신이 조르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문명에 농락당하면,

마음 속에 스모그가 생겨서,

차원을 초월한 빛의 세계로부터의 빛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즉 자아아욕의 좁은 마음은, 빛의 길이 막히게 됩니다.

병이나 사고, 불행의 원인은, 이러한 자기보존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야바라밀다에의 길은,

자아아욕의 좁은 마음을,

신의 자식의 넓은 마음으로,

방향전환하는 것에 있습니다.

육체상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기를 확립하고,

자연의 조리에 근거한 팔정도를,

생활행위 속에 살리는 것에 의해 열려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32년의 세월을 지나, 비로소 안 것입니다.

 

(이 원고는 지난 1974년 1월 4일 東商홀에서의 강연 요지)

 

 

 

심안을 열다 --- 다카하시 신지 ---

 

* 공(空)의 실재의 세계 ; 비물질의 세계. 저 세상. 혼의 에너지의 세계.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3.05.2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