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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심안을 열다 제1장 반야에의 길- 살생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3.05.27|조회수67 목록 댓글 1

살 생.

 

인간이 이 지상에 생존하는 한, 최소한도의 살생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빵을 먹어서는 안된다. 물고기를 잡으면 안된다고 하면,

인간은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또 옛날도 지금도,

신의 길에 참배하는 사람,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 중에는,

육식은 살생의 으뜸으로서, 이것을 기피하는 풍습이 보입니다.

동물을 죽이고 동물을 먹는 일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할 행위는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첫째 이유인 듯 합니다.

 

그렇다면 식물은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까.

식물이라면 아무리 먹어도 상관없는 것인가 어떤가.

생물이라는 점에서는 식물도 훌륭한 생물인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각각의 정령(精靈)이 살고 있고,

인간이 마음에 들기라도 하면,

식물의 정령은, 인간의 말로, 인간처럼 말도 하고,

희로애락의 감정조차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정신작용은 동물이상이기조차 합니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보는 눈이, 정적인지 동적인지의 차이뿐입니다.

어느 쪽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하는 구별은 본래 아무것도 없습니다.

 

옛날의 출가승은 아내를 가질 수 없었던 것같습니다.

아내를 갖는 것은 번뇌를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인 듯 합니다.

더욱 음식물도 제약했습니다.

영양가가 높은 것, 육식은 일체 먹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것을 먹지 않았느냐면,

이러한 것은 본능을 자극하기 쉽다고 하는 생리적 이유가 있었던 듯 합니다.

아내를 얻지 않는다고 하는 전제를 세우면,

그 전에 음식을 제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육식은 안된다고 하는 사상도, 그 근거를 더듬어 찾으면,

사실은 이런 것에 있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생물계의 살생이라는 것은,

사실은 자연의 섭리인 것입니다.

흙 속에 사는 박테리아. 몇백 몇천의 벌레의 생태를 볼 때에,

거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한 모습이 연출되어 있습니다만,

그 반복은, 자연을 유지하고,

생물간 상호의 생존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육식과 초식동물의 비율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만일 육식동물이 줄고,

초식동물만 늘면 초목의 생존은 잃게 되고,

초식동물의 생존조차도 불안해집니다.

인간은 동물계의 생태를 보고,

인간도 어쩔수 없다고 단정하기 쉬우나,

무익한 살생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제외하고 곤충을 포함한 동물계의 생존경쟁은,

결코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것이외에는 그들은 사냥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필요이상으로 그것을 구하면,

결국에는 자신의 호구를 가로막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들 자신이 아니고,

자연이 이것을 감시하고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신)

 

우리들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그것을 먹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지상에서의 목적도 사명도 다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심안을 열다 - 다카하시 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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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3.05.31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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