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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남회근 선생의 설법 (243) : 남회근 선생의 깨달음과 원력 발원을 보현보살이 증명하다

작성자자적헌|작성시간23.08.23|조회수90 목록 댓글 1

 

우리들의 현존의 생명은 바로 한 번의 숨[一口氣]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이 한 번의 숨은 표면이고 호흡할 수 있는 후면은 무엇일까요? 아리송한데, 그것은 안나반나입니다. 당신은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합니까? 기억해 두십시오, 욕계의 모든 중생의 생명은, 심지어 식물 광물을 포함하여 모두 한 번의 숨입니다. 이 한 번 숨인 기(氣)는 무엇일까요? 불학은 풍대(風大)를 말하는데, 한 번 내쉬고 한 번 들이쉼은 모두 생멸법입니다. 생멸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됩니다. 그래서 이 생명이 살아있는 것은,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현상인 가상(假象입니다. 실제로는 그것은 수시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 한 호흡이 들어왔다 나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사망입니다. 나갔다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도 사망입니다. 생명은 그렇게 짧으며, 당신의 이 신체가 아닙니다! 신체가 이 기에 의존하고 있음은 어떤 기기(機器)가 전기에 의지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전기가 찰나에 멈추자마자 이 기기는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됩니다. 이 도리를 이해해야 비로소 안나반나를 이해합니다 ……중략……

 

그날 저는 원(袁) 선생님과 함께 하산했습니다. 아마 지금 계절이었을 겁니다. 갑자기 하늘이 변했습니다. 저는 군관학교에 마지못해 두 달 간의 휴가를 요청하고 얼른 돌아가 학생들에게 수업하고자 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전선에서 돌아온 군관들이었습니다. 하늘이 갑자기 비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천(四川)의 지진은 많이 일어나서 수시로 이 산이 무너져 내리면 우리는 끝장납니다. 특히 천서(川西) 지역에서 가까운 서강(西康)에서 청해(靑海)까지 이 일대는 수시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의 색깔이 칠흑이 되고 뇌성이 치면서 비가 쏟아졌는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뇌성과 빗소리였습니다. 그런 다음 하늘에서 한 덩이가 흩어졌습니다. 마치 상자 하나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기서 멍하게 서있었습니다. 몸은 온통 물이었습니다. 정말로 천인(天人)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믿지 않는데, 저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정말로 이런 일이 있습니다.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표시하는 것일까? 제일 좋기로는 우리가 일본인들과의 전쟁에서 승전하고 일본인들이 패전할 것이라고 상징하는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함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레 너의 사상학문도 사라져버렸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미미하다고 느끼면서, 단지 공경합장만 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미 원 선생님의 인증을 받았고 심성을 알게되었습니다. 뒷날 저는 불법의 수행을 위해서 또 참학(參學)하러 갔습니다. 일반인들이 말하듯이 깨달았고 심신으로 몸소 깨달음에 모두 도달했다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생사는 바로 이렇게 마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옛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를 깨달으면 천 가지를 깨달아서 모조리 꿰뚫어버린다고 했으니, 깨달은 뒤로는 무슨 학문이든 책이든 읽을 필요 없이 응당 다 알게 되어버렸겠지요? 일반적으로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도를 깨닫고 난 뒤에는 영어든 러시아어든 모든 언어를 다 말할 줄 알게 되고, 적어도 불법의 3명6통(三明六通)도 다 할줄 알아야겠지요? 하지만 저도 확실히 안통이 일어난 적이 있었지만 곧바로 원 선생님께 한바탕 꾸지람을 당하고는 다시는 그길로 향하여 걸어가지 않았습니다. 신통을 구하면 당신은 빠져 들어가 버립니다. 천인을 보고 길을 걸어가는 것도 바로 안통(眼通)인데, 이것은 자연히 일어난 겁니다. 뒤에 성도(成都)에 도착하여 자신이 불법의 증거를 찾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의문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미산에 올라가서 3년간 폐관(閉關)한 채 팔만대장경을 연구하며 읽기로 결심했습니다……중략……

 

산에서의 폐관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불문(佛門) 내면은 번거러웠고 시비가 많았습니다. 저 혼자 군복을 입고 산에 올라갔는데, 전쟁 중이라 입을 옷이 없으니 이 한 벌 군복만 있었고 옷을 살 돈도 없었습니다. 온 나라가 백성은 빈궁하고 재물은 바닥이 났으니 군복만을 입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물론 저는 앞 당겨 안배를 해놓았습니다. 사천의 성장(省長)에게 편지를 써서 안부를 물었습니다. 당시에 아미산 아래에는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 안의 모든 문물(文物)을 숨겨놓고 1개 연대병력이 거기서 지키고 있었는데, 모두들 강소성이나 절강성 고향사람들이었으며 저의 호법(護法)이라고 말할 수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의 오랜 규범은 젊어서 출가하여 수십 년을 소임을 맡아 일하면서[執事] 서서히, 손님을 접대하는 지객(知客) 직책으로부터 사원을 감찰하는 감원(監院) 직책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를 수고해서 큰 스님의 자격에 이르고, 그러고도 선정(禪定) 공부가 있어야 비로소 폐관할 수 있고 비로소 대장경을 열람해도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장경(藏經)은 여러분이 오늘날 복이 좋아 거금을 들여 한 질을 사서 화장실과 이어진 곳에 옮겨 놓아도 되는 것처럼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폐관하러 와서, 스님 노릇을 하루도 한 적이 없고 산에 군복을 입고 올라와 승복으로 갈아입고 머리 빡빡 깎고 말하기를 폐관하겠다고 말하니 폐관하는데, 당신이 뭘 근거로 하고 무슨 배경이 있습니까? 하며 스님들은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절의 수십 명의 스님들이 늙은 분이나 젊은 분이나 모두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감히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군인을 두려워하며, 이 녀석이 절강 사람이고 아마 관직이 높은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치에 통달한 서생이라도 무력 앞에서는 이치고 도리고 따질 형편이 못되는 격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모두 승낙하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저의 관방(關房)은 곧바로 목수를 오라고 해서 수리해서 문을 좀 고쳐주십시오. 관방에 들어간 이후 스님이 경을 읽어 주고 나서 관방을 봉쇄하되, 세 개의 자물쇠를 잠그고 세 장의 봉쇄 메모를 봉쇄해서, 1년이 되면 메모지 하나씩 뜯어내고 자물쇠 하나씩 열어주십시오. 문의 아래에는 구멍을 하나 두어 변기통을 출입시키고 한 분의 호관(護關) 스님이 청소를 담당해주십시오. 위에 구멍을 하나 두어 음식을 들여보내게 합니다. 이건 바로 자기가 감옥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방전수(關房專修)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불가에서는 자기가 도를 깨닫고 난 이후에 다시 전문적으로 수행을 합니다. 도가는 ‘백일 동안 기초를 쌓고. 열 달 동안 태아를 임신하며, 삼년 동안 젖 먹여 기른[百日築基, 十月懷胎, 三年哺育]’ 정도의 경지가 있어야 비로소 폐관해도 됩니다. 도가에서는 이것을 입관판도(入關辦道)라고 하는데, 즉 폐관입니다. 폐관이라는 두 글자는 『역경』의 ‘선왕이지일폐관(先王以至日閉關)’이라는 말에 나옵니다. 무엇이 ‘지일’일까요? 동지나 혹은 하지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당신의 수행 공부가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지일에 폐관을 해도 됩니다.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폐관은 전문적인 수행입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이 전문적인 수행을 한다는 말이 들리는데, 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전문적인 수행을 합니까? 초선(初禪)에도 도달하지 못했으면서 무슨 관을 폐합니까?

 

저는 절 안의 스님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들도 감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대체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중앙에서 온 군관으로 출가 폐관한 척 하려할 뿐만 아니라 대장경 전부를 관방 안으로 옮기고자 하다니 미워 죽을 지경이다.’ 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 노스님들은 7,8십세가 되는 분들로서 출가한지 일생이 되도록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다리 아래 사람, 즉 절강 출신이라는 것을 한번 들었습니다. 장개석도 절강 사람입니다. 훗날 제가 어떤 기회를 만났는데, 딱 알맞기도 했습니다. 아미산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산에는 여우가 수천 년 동안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여우 신선[狐仙]이 하나 있는데, 그 스님들은 저더러 여우 신선을 항복시키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그래도 가장 위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지간에 가장 큰 마구니는 무엇일까요? 인사마(人事魔)입니다. 당신은 주의하십시오, 관료가 되던지 아니면 사람 노릇을 하던지 간에 인사의 마장은 마귀보다 훨씬 두렵습니다. 그때는 때마침 가을이었기에 폐관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절에서 어느 날 전체 대중이 외로운 영혼들을 위한 몽산천도(蒙山薦度)가 있었습니다. 저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소리 내어 외울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분들을 따라 거기서 그냥 나무…… 나무……하며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을 외웠습니다. 그분들이 법사(法事)를 마치자 저녁 7,8시가 되어서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대평사(大坪寺)는 연꽃턱잎[蓮花苞]과 비슷합니다. 주위가 모두 높은 산들이고 한 송이 연꽃의 중심 같습니다. 오직 두 가닥의 길로 오르내리는데, 한 쪽 길은 후자파(猴子坡)로 통합니다. 즉, 원숭이라도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른 한 쪽 길은 홍춘평(洪椿坪)으로 통하는데, 뱀도 뒤로 물러난다는 뜻의 사도퇴(蛇倒退)라고 불렀습니다. 당시의 국가 주석 임삼(林森)이 아래의 홍춘평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에 임 주석과도 의사소통이 있었습니다. 이 길은 뱀이 올라가면서 뒤로 물러난다는 길입니다. 현재는 황폐한 산이지만 당시에는 검은 호랑이를 하나 모신 산왕묘(山王廟)가 하나 있었는데, 저와는 깊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이렇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사부님들이 고혼야혼(孤魂野魂) 몽산천도제를 올리면 될까요? 일부 노스님들은 입을 삐쭉이며 가버렸습니다. ‘너 이 젊은 녀석, 싸대기를 때릴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는 듯이 말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대로 서 있으면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오?” 제가 말했습니다, “증험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천도하여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겠습니다.” 통영(通永) 사형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97세인데 여전히 아미산에 계십니다. 훗날 제가 폐관할 때 내내 그가 짊어지고 온 쌀을 먹었고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메모지로 건네주면 모두 그가 사왔습니다. 보세요, 이렇게 한 가닥 길을 그는 아주 수고롭게 쌀을 짊어지고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감사하며 영원히 그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지금 통영 법사님은 아미산의 보배입니다.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담력이 있는 분 누가 계시면 저와 시식하러 가시지요.” 여러 명의 노스님들이 따라서 갔습니다. 통영 법사는 젊은이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밖에도 벙어리 사형이 있었습니다. 모두 십여 사람이 저를 따랐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산왕묘에가서 시식(施食: 죽은 영혼을 천도薦度하기 위하여 법식法食을 주면서 법문法門을 말해 주고 경전을 독송하며 염불하는 따위의 의식을 행함. 또는 그 법식./역주)하겠습니다.” 그러자 다들 그것은 엄중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평사로부터 산왕묘까지는 한 구간의 길이 있고 밤에는 황량하기에 다들 저 산왕인 검은 호랑이가 나올까 두려웠고, 산에는 독사가 한 마리가 있는데 모두 절의 호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그분들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가니 따라가겠소.” 다들 시식할 쌀과 술잔을 가지고 산왕묘에 도착해서 앉았습니다. 저는 곧 시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명료하게 행하고 쌀은 한번 뿌렸습니다. 당시에 온 산과 하늘이 칠흑 같았습니다. 저는 순간적인 충동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시식함에는 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면 끝장입니다. 여러분의 몽산천도와 마찬가지여서 증험을 보지 못하면 안 됩니다.” 저는 딱 한 가운데 앉아있고 그 선배님들은 두 줄로 양쪽에 앉아있었습니다. 제가 손으로 땅 바닥을 한 번 쳤습니다. 그건 정말로 한 번의 충동이었습니다. 제가 말하기를, “제가 아미산에 와서 폐관하고자 합니다. 아미산은 보현(普賢)보살의 도량입니다. 보현보살님께 청합니다. 제가 여기서 삼년 동안 폐관 수행하겠습니다. 제불(諸佛) 산신 용천(龍天) 호법께도 접촉합니다. 만약 제가 증오한 불법이 진짜라면 당신들은 증명을 하나 주십시오. 만약 가짜여서 저에게 증명을 주시지 않으면 내일 저는 하산하겠습니다. 불법이 영험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제가 폐관을 마치고 나면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출가하든 재가하든 정법을 홍양(弘揚)하는 동시에 한 손으로 유가(儒家)를 부축하고 한 손으로는 도가(道家)를 부축하면서 인류 문화를 홍양하겠습니다. 저는 세세생생 모두 이 바람입니다. 만약 해내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지겠습니다. 저에게 증명을 하나 주실 수 있는지요?” 그러고는 이 손바닥으로 한 번 내려쳤습니다. 그러자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조명탄을 본적이 있습니까? ……중략…… 그때 제가 이렇게 한번 손바닥으로 탁하고 치자 모두들 공중에서 찌~익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스님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모두들 합장했습니다. 마치 조명탄 하나가 동시에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미산에는 일본 비행기가 오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비단을 찢는 소리[聲如裂帛] 같았습니다. 정말로 큰 천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며 산 전체가 온통 광명에 덮였습니다. 오래 오래 그러했는데 20여분 동안이나 온 아미산이 모두 환히 밝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보셨지요! 불법은 진짜입니다.” 그 노스님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광명에 절한 것이 아니라 돌아서 저를 향하여 절하며 가벼운 소리로 말하기를 “육신보살님께 정례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저도 얼른 무릎 꿇고 노스님들을 향해 정례했습니다. 자, 이러자 저도 감사의 합장을 했습니다. 저에게 이런 일이 있음을 증명해주었으니 여기서 폐관해도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당시에 말했습니다, “자리에 계신 십여 분이 만약 내일 한 마디라도 누설하면, 이 일을 말한 사람은 누구든 당장에 죽습니다. 누설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지금 통영법사는 저를 보고도 공경할 뿐입니다. 저는 그를 이끌고 정좌수행하고 있으며 그는 곧 1백세가 되는데도 감히 말하지 않습니다. ……중략……이렇게 하고나서야 폐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3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몇 개월이 부족할 때, 산 아래서 사람이 와서 저에게 경고했습니다, “빨리 하산해서 장소를 바꾸십시오. 그 스님들은 신뢰할 수 없고 당신을 질투할지 모릅니다. 우리도 아래서 병사를 파견해서 당신의 관방 밖을 지킬 수 없습니다.” 이런 인사는 성가십니다. 그래서 저는 하산하여 다시 오통교(五通橋)에 가서 계속 폐관했습니다. 준제법(准提法)은 바로 오통교에서 얻은 것입니다.

 

시식에서 이 말을 한지 며칠 뒤에 아미산 대평사의 부 주지도 하산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평사는 밖으로 미산(眉山)에 이르기까지 세(稅)를 준 농토가 많았습니다. 미산은 소동파(蘇東坡)의 고향입니다. 부 주지는 매년 가을이면 언제나 하산하여 미산으로 가 세를 거두어서 돌아와 절의 비용에 충당했습니다. 그 사람은 대단히 성실했고, 저의 시식하는 일에도 참여해서 당시에 이 경계를 보았으며, 무릎 꿇고 정성스럽게 절을 했었습니다. 그는 하산하여 세를 거두러 갔었는데 1주일 뒤에 산 아래 소작농이 몹시 두려워하며 산에 올라와서 말하기를 부주지가 그 집에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대평사 전체가 놀랐고 의아했습니다. 60여세의 사람이 평소에 신체도 튼튼하고 정신도 좋았는데 왜 죽었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는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우리들과 얘기를 했는데 의자에 앉아서 기대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틀림없이 가서 이 일을 얘기했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제가 당시에 말했듯이 이 소식을 누설하면 누구든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이런 일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 일을 말해 밝혔고 깨뜨려버린 것이기도 합니다. 불법은 공(空)을 말하면 일체가 다 공하고, 유(有)를 말하면 일체가 다 유입니다. 여러분은 잘 수행하고 노력해서 공부하십시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미신이든 불법이든 간에 저는 지금 90여세로서 자신의 세 가지 원력을 완성하지 못해서 두렵습니다. 지금까지도 한 사람은 커녕 반쪽 계승자도 찾지 못해서 돌아가신 스승의 예언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원 선생님이 예전에 말씀하시기를 “회근아! 나는 떠나가도 될 수 있겠다.” 하시기에 제가 왜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있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니 너는 장래 일생동안 너 같은 사람을 반쪽도 찾지 못할 것이니 너는 참담하겠구나.” 당시는 보통의 대화였는데 지금 저는 정말로 넘겨주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생과 사 그 비밀을 말한다(제4판) 저자 소개 중에서

 

출처 홍남서원  https://cafe.daum.net/youma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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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3.08.2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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