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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제2장 마음의 원점 (그2;불지(佛智)의 재발견 ) - 6. 깨달음의 피안으로의 길.-다카하시 신지-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3.09.09|조회수94 목록 댓글 2


제 2 장 마음의 원점

  


6. 깨달음의 피안으로의 길


  

중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것은 부처님이 설법하신 중도의 목적에 맞는 팔정도 밖에 없다.

 

바르게 본다.

바르게 생각한다.

바르게 말한다.

 

라는 세가지의 정신작용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생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기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는 속담에,

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라는 삼원(三猿)의 속담을 통하여, 번뇌 이탈의 기초 조건으로 삼는 말이 있다.


번뇌라고 하는 미망이 생기는 것은,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하는데서 일어나는 수가 많다.


그러므로 번뇌를 소멸시키기 위해서, 눈. 귀. 입을 닫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닫아 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정신 작용을 통해서, 현실사회 속에서,

 '그것을 올바르게 행하라'고 하는 뜻이다.

삼원(三遠)의 예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피가 되기 때문이다.


중도를 마음의 척도(尺度)로 하여, 선악을 판단하는 생활,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그러나 세마리의 원숭이의 예는, 

 번뇌가 생기는 가장 위험한 정신 작용에 대한 경고를 뜻하며,

인간의 약점을 꼬집은 속담이다.


팔정도의 첫머리에 있는

‘바르게 본다.’(正見)

라는 것은 '선한 중도의 마음의 눈으로 보라'.

(주;선한 중도의 마음의 눈= 자비. 사랑. 감사. 보은. 관용)

‘바르게 생각한다.’(正思)

라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선한 중도의 마음으로 생각하라.'

‘바르게 말한다.’(正語)

는 것은 '선한 중도의 마음으로 생각한 바를 말하도록 하라'는 뜻이다

 

마음이란, 의식의 중심이며, 

의식의 중심은,

자타의 차별관이 없는 선한 마음이다.

 

다음으로

‘바르게 일한다.’(정업)

 

라는 것은 주어진 그 직무에 대해서,

충실하게 의무와 책임을 완수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의 일이란,

 단순히 표면적으로, 양적으로 남보다 많이 한다는 것보다도

사람들의 행복을 빌고, 일하는 환경과 그 제공자에게 감사하며, 

그 감사의 마음을, 행위에 의해서 보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가, 보다 나은 생활의 안정과, 마음의 조화를 꾀하고, 

 서로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비록 봉사하는 일의 양은 적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봉사의 행위를 신(神)은 훨씬 더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혼의 수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므로

일, 그 자체는, 혼 수행의 재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질(質)과 양(量)이 상부하면, 그 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그러나 신불의 눈은, 어디까지나 그 질(質)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된다. 

옛날부터, 부자의 만등(萬燈)보다,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서 우러난 행위, 그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본주의도 마르크스주의도, 

 물질과 경제가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은 없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과연 경제만일까.

경제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화폐경제라고 하는 것이, 

온갖 불안정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로부터, 

 참된 행복이란 과연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富)만이 인생이 아니다.


신이 만들어 낸 법칙은, 

 절대로 변하는 것이 없는 영원불멸의 것이며,

마음을 잃은, 인간의 지혜(智慧)만으로, 

 이 법칙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의 자식인 인류는, 이 불변의 신리를 스스로 깊이있게 구하여,

그 신리에 맞는 생활을 하고, 보다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조화된 사회를 이룩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바르게 생활한다는 것은 (정명)

 

일상생활의 마음과 행동에 있어서,

 가정생활의 본연의 자세,

이웃과의 사귐,

직장인으로서의 마음가짐.

사용자로서의 본연의 자세등을,

  올바르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상생활에 있어서, 자칫 사소한 일에 마음이 빼앗겨

육근(六根)에 좌우되기 쉬우며, 마음의 왜곡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더욱이 눈으로 보는 여러 현상. 귀로 듣는 여러 문제, 그리고 내뱉는 말,

이런 것에 의해서 우리는 마음의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또한 남까지 현혹시켜 큰 죄를 짓고 만다.


이와 같이 눈. 귀. 입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서,

이것들에 휘둘리게 되면, 

 번뇌의 노예가 되어, 자기 자신을 잃고 만다.


그래서 전생윤회(轉生輪廻)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카르마(業)가

마음속에서 배어 나와서,

 악순환 (악(惡)의 운명)에 몸을 빠뜨리는 결과가 되고 만다.


바라지 않는데도, 병에 걸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남한테 속기도 하여, 남을 믿지 못하게 되기도 하며, 마음은 점점 작아진다.

작은 틀 속에 갇힌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어, 

 괴로운 인생을 보내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카르마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현재의 환경, 입장. 살게 해주는 그 자체에 감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물건 하나에도, 많은 사람들의 노고에 의해 만들어져, 도움받고, 

또 태양이나 물등, 자연의 은혜가 있어서, 우리의 존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갚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결점을 알고,

고쳐나가서,  인류의 사회를 위하여 남은 시간을 봉사해야 한다.

 

"바르게 사는 데는",

 

육근(六根)에 좌우되지 않는 자기를 발견할 것, 

   그것이 먼저 해결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결점과 장점을 똑똑히 바라보고,

결점은 고치고, 장점은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병이건 사고이건, 또한 남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은,

오관(五官)에 휘둘려진 상념과 행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결점,단점은, 아무래도 오관에 근거하는 상념에 제일먼저 결부되기 쉽다.

그러기에 결점을 고치는 데는 결단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르게 생활한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깨달은 나날의 생활 행위에 있는 것으로서,

항상 평안한 경지에서, 일체의 거리낌이나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족함을 아는 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족함을 알게 되면,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생각이다.


정도를 깨닫고, 후회없는 일을 하루하루 거듭해가면,

누구든지 피안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일일 일생(一日一生).

미련을 남기는 것이 없는, 생활을 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반성해도, 좋은 면밖에 나오지 않는,

그러한 하루를 체험해 보는 것이다.

 

"바르게 도(道)에 정진한다는 것은,(정진)"

 

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의 말이다.

부부, 양친과자식, 형제, 친구 등은, 

 저마다의 인연, 또는 약속 아래, 맺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아욕에서 나오는 자기주장을 하지 말고, 

조화를 목표로, 감사와 보은의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그 중에는, 자기는 조화를 바라지마는 아내가, 남편이 또는 친구가

좀체로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

헤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는,

 한 쪽이 양보할 마음을 가지고 태도를 바꾸면, 상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무엇인가 원인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부조화의 뿌리를 깊게 찾아내어, 잘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래도, 조화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상대의 폭력이나 독설이,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도에서 일탈(逸脫)한 상대의 모습을 느껴도,

 다투어서는 안 된다.

다투지 말고,

‘이 가엾은 사람에게, 부디 신이여, 평안함을 주소서’하고

진심으로 기원할 만한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인욕(忍辱)이란,

‘두고 보자.’

‘나중에 복수 하겠다.’

등의 생각을 마음속에 품고 있어서는,

  인욕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고.

그런 상념은 어두운 구름으로 덮여 있고,

스스로의 영위기(靈圍氣)를 부조화로 혼란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로부터 받은 욕된 일을 잘 견뎌 마음에 왜곡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결론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부조화하게 되거나, 남의 신뢰도 잃고

점점 더 괴로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고 만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돌고 돈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과 ,꼭 같은 결과가 된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을, 둥글고 넓고 넉넉한 것으로 만들어, 

여러 가지 부조화한 환경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대조화(大調和를 목적으로 한 인간관계를 이룩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진의 제일의 목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다음으로,

" 바르게 염(念)한다는 것이다.(정념=正念)"

 

‘염(念)’에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훌륭하게 되고 싶다든가. 좋은 집에 살고 싶다든가, 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든가.

저 사람은 밉다고 하는 것 등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일 터이다.


그러나 염(念)의 올바른 자세는, 

 중도에 맞는 목적을, 최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염(念)속에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 뿌리를 둔 것이 많은데,

이 욕망은 멈추는 것 없이, 발전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윽고, 사람과 사람과의 조화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에게는, 전생윤회(轉生輪廻)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스스로의 기량(器量),

이 현상계에 나와서부터의 기량(器量)이 있다.

그것이 총합된 인간의 그릇은,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여도, 대통령은 한 사람밖에 못한다.

그런데 기량은 생각하지 않고, 자리만을 탐하기 때문에, 쟁탈전이 벌어진다.


예전에는, 무력으로 이것을 빼앗았지만, 현대는 어떠한가.


선거라는 것이 있지만, 여기에도 투쟁은 필연인 듯하다.

그리고 관리나, 회사원의 세계에서도, 직책에 대한 집착,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이와 같은 자기의(육신의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여)욕망에 뿌리를 둔

 염(念)의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는 투쟁과 모순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욕망도, 하나하나가, 자기자신의 그릇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아아욕(自我我慾)의 노예가 되어 버려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맞는 업(適業)이,

 무엇인가 하는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이만하면 되었다라고 하는 한계가 없다.

그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마음에 족함을 아는 생활,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염(念)의 바람직한 자세는, 이러한 의미에서,

 족함을 안, 조화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정(正定)이 있는데,

이것은 반성을 가리킨다.

 

앞에서 말한 일곱 가지의 규범에 비추어,

오늘 하루의 자기의 상념과 행위에,

 지나친 점은, 없었던가 어떤가를 되돌아보고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을 고쳐서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반성은 단순히, 나빴다. 좋았다. 로 끝나고 말면,

올바른 반성이라고 말하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반성할 때,

잘못을 범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그 잘못은 왜 일어났는가 하는,

자기 마음속의 원인을 추구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마음을 정화시키는 길이 된다.

그 결과, 정신과 육체가 우선 건전해지고

가정의 조화,

직장의 조화,

사회의 조화로 확대되어 나간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일에 실패했다면, 

그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여, 두 번 다시 같은 실패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하면, 이윽고 그 실패는, 성공으로 연결되어 간다.


반성도 하지 않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는, 성공하기는 어렵다.

사람의 마음과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정정”의 기본은,

반성에 있다는 점을 깊이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명상적 반성은,

마음의 구름을 제거하여 

 스스로의 영위기(靈圍氣)를 높여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반성...!

반성...!

반성하고,

반성만으로 끝나면,

스스로의 마음을 좁고 작게 하고 말 것이니 주의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내향적, 외향적, 낙천적, 비관적 등의 여러 가지 경향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의 성격에 적합한 반성의 방법,

그것을 몸에 터득하여

‘정정’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정도(正道)는,

각자의 생활의 지혜와 실행력을 기울여,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그에 이르는 지름길이며,

자기 자신의 마음의 상념과 생활이 풍부해지는  가장 빠른 길이다.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의 원점-다카하시 신지-

 

 

(주;

부처님의 설법은,

중생들의 생활에 대해서,

생활 전반에 걸쳐서,

올바른 길을 말씀하셨음을 생각합니다.

팔정도.

여덟가지의 올바른 길을 누구에게 설명하였겠습니까.

부처님밑으로 출가한 제자들과,

일반 중생들,

그리고 일자무식인 불쌍한 노예들에게까지,

무려 45년간이나 오랜 세월을....

막상 팔정도의 길을 따르려니,

옛날,

공사판에서,

삽질을 하던 잡역부의 경험이 생각나는군요.

처음 일주일은,

일은 더디고, 근육통은 엄청나고,

ㅎㅎㅎㅎ

힘이 드는군요.

힘이 드는 이유를 아는만큼,

아니할 수도 없고,

공부는 미진하니, 더더욱 더디고,

인연있는 이여,

이것만 하면 저절로 된다는 식의

쉬운 길에 대한 유혹을 뿌리칩시다.

산을 오를 때,

쉬운 길은, 옆으로 돌아가는 길이더군요.

오래 오래,

아주 오래.

돌아가더군요.

더군다나 쉬운 길도 아니고 저절로 가게 된다는 길은 

오히려 내려가는 길이더군요...

문제는 내려가는 길임을 모른다는 점이더군요...

아~~~불쌍한 우리 중생들...

이 인생이 짧은 것을 잊고서...


가장 적극적이고 확실한 방법...

인연있는 이여,

참고하소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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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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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병아리 | 작성시간 23.09.09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3.09.1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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