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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반야심경(무무명역무무명진내지무노사역무노사진무고집멸도무지역무득의무소득고보리살타의반야바라밀다고심무가애무가애고무유공포원리일체전도몽상구경열반-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3.10.30|조회수71 목록 댓글 1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일체 전도몽상 구경열반

 

 ( 주; 여기에서의 내용은,

     영혼의 세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영혼의 세계는 빛으로 가득 찬 광명의 세계, 곧 보살의 세계와

    어둠으로 뒤덮인 암흑의 세계, 곧 아수라의 세계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공해는 , 실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상념에 의해 생긴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올바른 삶의 방법에 의해 , 그것을 소멸시킬 수 있다.

 

지금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 장소는,

 넓고 풍요로운 마음을 만들기 위한 “학습의 환경”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자신에 의해, 선택된 “장소"인 것이다.

 

 

무무명

이라는 것은,

부정의 부정으로서 미혹이 없는 세계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밝은 광명의 세계라는 것이다.

실재계 “공”의 세계는 광명으로 채워져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역무무명진

 

이란.

광명이 다함이 없다는 말로 무한한 광명이 넘칠 정도로 충만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지구 상의 하늘은 ,

 지구의 물이 태양열이랑 지열에 의해, 증발해서, 구름을 만들고,

 태양의 열이랑 빛을 가립니다만,

구름 위에는 푸른 하늘로서, 태양의 빛은 그 구름 위에서 내리쬐고 있습니다.

 

지상계에서는 , 

최근 스모그라고 하는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공해가 문제 되고 있지만,

 이 공해는 인간의 의지와 , 행동에 의해 소멸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공(空)”의 세계는

 그 장소에 사는 영혼들의 마음의 영위기(靈圍氣)가 조화되어 정묘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신의 빛을 차단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광명이 넘칠 정도로 가득 차고,

 광명이 다하는 것 없는 무한한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공”의 세계. 실재의 세계는, 늙거나 죽거나 하는 것이 없는 세계입니다.

 

늙는다든지, 죽는다고 하는 현상은 ,

 지구 상의 육체주의 유한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며,

 공(空)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고체적인 환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정묘의 세계(주; 사념의 세계.)이기 때문에 불변이며,

 영원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언젠가는 그곳에 있는 광자체는,

 이 지구나 다른 천체의 환경에 적응한 육체주를 타고, 또 가는 것입니다.

 

 혼의 수행과, 그 환경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의 조화에 의한 유토피아 건설 때문입니다.

 

그리고, 육체주는 다시

 그 물질계의 대자연 속으로 환원되고 맙니다.

 형태를 바꾸고 마는 것입니다.

 

“공”의 세계는(주; 영혼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 사념의 세계)

 이와 같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생로병사'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고집멸도

 

물질적 육체주에 타고 있지 않고,

 의식의 단계가 정묘 하게 되어 있으므로,

괴로움의 원인을 모아서 멸하는 도(道)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이 현상계에 있어서 여러분은, 

육체주의 선조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그 태어난 환경이랑, 교육, 사상, 습관 등에 의해, 세상사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그리고 , 오관을 통해서, 모든 현상을 감지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흐림을 만들고, 맹목의 인생을 걸어,

올바른 마음의 척도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마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 부조화로부터, 마음의 흐림을 없애는,

 고집멸도의 신리를 깨달아 실천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공” 즉 실재의 세계에서는,

마치 태양이 현상계의 만생만물에게,

평등한 자애의 열, 빛의 에너지를 쬐게 하면서,

우리들에게 광열비를 청구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즉아’라고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소득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소득을 얻기 위한 지혜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내재되어 있는 신의 마음, 자비, 사랑의 위대한 지혜의 보고가 열려 있기 때문에,

현상계“색”의 세계에서처럼, 

고락 속에서,

새로운 학습에 의해, 지혜를 풍부하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실재계에 돌아와 있는 천사랑,, 빛의 천사들은,

 모두 마음의 넓이에 의해, 광대무변한 대자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형제이고, 대우주는 모두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의 세계에서는

 상호 이해와 신뢰가 당연한 일로서 자각되고,

 실현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조화를 이룬 유토피아의 세계입니다.

 

지상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은 ,

거의 90%가 잠재하여. 과거세에서 체험한 모든 지혜가 내재되어,

불과 10%의 표면 의식으로, 보다 새로운 학습을 체험하고,

풍부한 마음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인생체험의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이 되기 쉽습니다.

 

육체적 오관육근에 의해,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진 모든 사실과 현상에 미혹되어 버려,

 거기에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계에서는 현상계와 달리

 그 표면 의식은 90%로, 

 과거세의 모든 인생체험의 지혜의 보고가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지혜와 달리,

 잔재주도 부리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도) 다른 천사나, 빛의 천사의 마음속은,

 서로 알고 있어서,

 자기 보존이나, 자아아욕의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현상계와 같이, 나의 나라다, 나의 땅이다.라고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천체에서 보면, 조그마한 지구라는 덩어리 안에서,

 서로 싸우고, 골육을 없애고 있다는 것은 ,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공”의 세계로 돌아갈 때에는 (비물질의 영혼의 세계),

 “색”의 세계에서(물질의 육체의 세계)

, 이것은 나의 나라다, 나의 땅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

 일체의 재산을 가지고 ,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색”의 세계인 지구에 존재하는 일체의 물건은 본래,

 ‘ 절대로, 나의 물건이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 자기 자신의 물건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것뿐으로,

 빌린 물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소중하게 하고 있던 자신의 육체라고 생각하고 있던 몸조차.

 인생 항로의 배로써, 버리고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색”의 세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집착심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진짜의 자신을 잊고,

 물건에 사로잡혀 있는 그 집착이,

 일체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재계의 천사들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득을 얻는 일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는커녕, 보다 풍요롭고, 넓은 마음의 진화를 만들어 내고,

현상계의 세계를, 조화된 환경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협력을,

 항상 아낌없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비랑 사랑을,

 눈먼 인류는 마음의 창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

(주; 라디오의 사이클이 맞지 않으면,, 수신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방송은 항상 하고 있는데도..... 그리고 항상 수신하고 있어도,

    그 사람의 생각이 욕심이 많은 생각이면,

    욕심이 없는 천사와의 사이클이 맞지 않고,

    욕심이 많은 영혼(지옥령, 동물령 등)과 사이클이 맞아 버리는데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천사라고 착각합니다.)

----------------

인류가 행복해지도록 협력을 하고 있는 빛의 천사들은,

결코 보수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 저 태양처럼 말입니다.

 

“공”의 세계. 실재의 세계의 빛의 천사들은,

대우주 생명 속에 동화되어 있는 생명입니다만,

그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자의 생명을 자각하고,

각자가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큰 바다에 모여있는 물처럼, 하나로 모인 물은 ,

실은 물 입자 하나하나의 개성처럼, 입니다.

 

현상계에서, 양친의 연(緣)에 의해, 받은 인생 항로의 육체주의 선장. 즉

보편적인 우리들의 혼도, 대우주 생명 속에서 ,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영원한 전생 윤회의 과정에 있어서, “색(色)”의 세계에서,

지금, 그 혼(魂)은 인생 수행의 도중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불안정한, 조악한 고정적, 물질계 “색(色)”인 현상계의 육체주를 타버리면,

태어난 환경이랑, 습관이랑, 교육이랑, 사상에 의해,

 사람은 장님의 인생을 보내고,

살려 주고 있는 환경에 마음을 쓰는 것도 없고,

대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마음도 없이. 양친조차도 소홀히 하고,

자아의 길을 마구 달려갑니다.

 

감사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보은의 행위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는 신의 자식으로서, 형제이며, 그 시대의 동기생이라는 것을 알고,

 손을 마주 잡고, 서로 신뢰의 바탕 위에 서 있으면,

 현대사회의 인심에 혼란은 없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부인, 교사와 생도, 노사간 등, 잘못된 자아의 사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어지럽게 하고 있다는 것은,

 정도를 잊어버린 사람들의 방자 함이며,

 모든 것에 족함을 잊어버린 인간의 말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도를 구하려면, 집착심을 버리고, 욕망의 노예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할 것,

그것이 선결문제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의 위대함에 눈을 떠서 ,

신의 아들로서의 본래의 품성을 깨달으면,

광명의 길은 스스로 거기에 열릴 것입니다.

 

우리들은, “공(空)”의 세계. 실재의 세계에서 온 혼(魂)입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육체주를 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 자기가, 그 환경을,

 원해서 선택하여 현상계에 나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컨대 태어난 환경이나, 지위나 명예나 재산이나,

빈부의 차나 학력의 차 등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표시하는 바로미터가 아닙니다.

 

지금 생활하고 있는 이 자리는,

 풍요롭고, 넓은 마음을 만들기 위한 학습의 환경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희망에 의해, 그 연(緣)에 의하여 우리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환경 속에서, 서로 관계를 잘 이해하여, 신뢰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에게 거짓 마음과 행위를 버리고,

 평등한 입장에서, 각기 맡은 생활 부분의 일을 충실히 수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다 자애가 넘치는 사람들과, 마음의 교류를 꾀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주는 풍요로운 마음과 행위가

요컨대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합니다.

 

둥글고 풍부한 마음의 넓이가,

참 인격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적인 지위가 있고, 학식이 많고, 경제력이 풍부하더라도,

자기의 욕망에 족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빈천한 마음의 소유자이며,

형식에 사로잡혀 있는 가련한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잃고, 남을 깔보고, 뽐내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머지않아 자기 자신을 괴로움 속으로 몰락시켜 가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에 스모그를 만들어, 마음을 어둡게 에워싸서,

감정과 이성을 비뚤어지게 만들고, 위대한 신의 빛을 가려 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지옥으로 통하고, 스스로의 평온함을 포기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가령 재산이 없더라도, 지위가 없더라도,

생활에 족함을 알고, 친구들이 신뢰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타인을 잘 돌보고, 가정에도 상호 신뢰를 쌓은 사람은 평화롭고,

생활에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에 원한, 질투, 분노, 자기 보존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스모그가 없으므로, 광명에 감싸여 있습니다.

 

평온함의 경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마음은 빛의 천사들 세계로 통해 있기 때문에,

자애에 넘치고, 꾸밈이 없습니다.

소득의 고저에 의하여 마음의 빈부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은 건강하고, 조화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지혜를 짜며, 희망에 넘치고,

낮에는 자기의 일에 정진하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저녁은 일가 단란하게 , 즐겁게 저녁을 먹고,

밤에는 하루의 반성과 , 휴식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왜 불만의 마음을 가지는 것일까요.

 

욕망에의 집착심을 버리고,

악심(惡心)에 사로잡히지 않는 도(道)에 의해,

족함을 깨닫고,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올바른 치우치지 않는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지도하고,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 그 마음과 행위를 바르게 했을 때,

인간으로부터 불만의 마음은 사라져 가지요.

 

불만은, 그러나 항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림자같이 따라붙어 있는 것입니다.

정법(正法), 정도(正道)의, 광명의 길을 갈 때,

 그 그림자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사라져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에 의해, 보리살타가 된 것은,

 

이러한 실재계의 광명에 의한 것이며,

 

그 의미는

“ 항상 바르게 보고,

  항상 바르게 생각하고,

  항상 바르게 말하고,

  항상 바르게 일하고,

  항상 바르게 생활하고,

  항상 바르게 도에 정진하고,

  항상 바르게 염원하고,

  항상 바르게 선정에 드는 팔정도의 생활을 하고,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기준으로 마음과 행위를 반성하고,

 그 흐림을 제거하는 것에 의해, 신불의 광명으로 가득 채워지면,

 실재계의 빛의 천사들이, 바른 인생의 길을 가르쳐 인도하게 되고,

 마음의 창이 열리면,

 확실하게 ‘공(空)’- 

실재계의 빛의 천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어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가르치고,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서, 무상(無償)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또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과거세의 체험,

 위대한 지혜가 되살아나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 깨닫게 된 분은”

 

이라고 하는 것이 되겠지요.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마음에는 걸림이 없다.

  걸림이 없기 때문에,

  공포심도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이 되나, 

걸림이 없다는 것은, 요컨데.

 마음의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

 

마음의 창을 연다는 것은,

아무런 구애도 없고,

풍부하게 둥근 마음을 가지고,

무서워하는 것도 없이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원리일체 전도몽상 구경열반

 

 

“ 일체의, 전도된 꿈같은 사고방식을,

  멀리해서,

  다다른 곳은 최종적인 깨달음으로 들어간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만, 우리들이 오관에서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마음의 세계, 마음의 눈으로 받아들인 ,

모든 집착을 버린 세계이기 때문에, 

이것은 정묘하고, 평화로운 안락한 광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하게. 마음의 흐림이 없기 때문에.

광명이 다하는 것이 없는(충만한) 세계로 되어 있습니다.

 

자주 불상이나, 불화를 보면, 후광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 후광은 연한 금색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행위가 정법에 일치한 사람의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한 빛으로,

그 빛에 둘러싸인 사람은, 평온함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집착심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 원한, 질투, 비난의 마음이랑, 뽐내는 마음. 즉

우쭐대는 사람이 되어 버리면, 마음에 구름이 생겨, 그 빛은 사라지고 맙니다.

 

지구 상에 있어서 부자연한 스모그는, 부조화한 흐림으로 태양의 빛을 가로막으나,

우리들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아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 사람은 ,

살아있는 기쁨을 알고, 감사하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합니다.

거기에는, 자기 보존도 자아아욕도 없고, 부자연한 투쟁도 파괴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평온하고, 항상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락의 원인은 , 오관과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반성하고 있을 때.

외계가 깜깜하게 어두워져도, 우리들은 ,

명상 중에, 눈앞이 연한 금색의 빛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광명이 세계입니다.

 

광명의 세계는 차원을 넘은 세계로 우리들은,

마음을 조화하는 것에 의해,

실재계의 광명 세계와 의식이 동조하여,

 저 세상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도, 그 사람들의 마음의 조화도에 비례한 각각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

(주; 조화도에 비례한 각각의 세계를,

    예를 들자면,,, 바다의 수심을 ,,, 예로 들 수 있겠다...

    수심의 깊이에 적응한 물고기들... 그리고 빛의 밝기의 차이,,,

     깊어질수록,,, 어두워지는 것처럼,,,)

--------------------

다시 말하면, 부조화한 인생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암흑의 지옥계가, 전개된다고 말한 바와 같이,

 실재계에는, 확실한 마음의 단계가 있습니다.

 

현상계를 떠난 우리들은, 신불이 그 조화도에 따라 ,

천상계로 보내거나, 지옥계로 떨어뜨리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가. 

 자기 자신의 상념과 행위의 총결산이,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영위기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

(주; 관성의 법칙...)

------------

이 광명의 세계는

 지금과 같이 경제 노예가 되어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해도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체에 전류를 통하게 할 때.

 그 도체에 저항이 많으면, 전기 에너지는, 열에너지로 변해 버립니다.

 

특히, 니크롬선 같은 도체는, 열에너지로 변하기 쉬운 것입니다.

이것은 하천에서의 물의 흐름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류도 , 동이 나. 금이나. 은의 경우, 저항이 적어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전류가 순수하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마음도, 그와 같이 부조화한 저항을 만들면,

 괴로움이나 슬픔을 만들어 버린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체의 저항이 열에너지로 변하여, 도체가 녹아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녹아버리면, 전등은 꺼지고, 암흑으로 되고 맙니다.

 

인간은, 암흑으로 되어 버리면,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공포심까지 생깁니다.

도체에 전류를 흐르게 해도, 안전하다면,

 가로 걸리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암흑으로 인한 공포에 떨 일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마음의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따라서,

 마음이 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고,

 일체의 공포심도 없기 때문에.

 광명이 있는, 집착이 없는 종국의 깨달음의 세계를 얻고 있다'

 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설 반야심경 - 다카하시 신지 -

 

 

(참고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 -- 임마누엘 스웨덴 보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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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3.10.30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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