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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아름다운 인연(어느 토굴의 수행자 이야기)..

작성자수선화바람에|작성시간24.01.25|조회수187 목록 댓글 8

        우리는 마음속에 온갖 씨앗이 들어있어

     은혜로운 단비를 만나면 모두 싹이 튼다.

     깨달음이라는 꽃에 본래 모습이 없으니

     어찌 만들고 또 부수고 하리요  -남악 회양선사-

 

 "하얀 꽃 핀것은 보나마나 하얀 감자, 자주 꽃 핀 것은 보나마나 자주 감자" 옛 동요의 한 구절이다. 여러 해 경험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땅 속의 열매지만 꽃의 색깔과 똑같은 빛깔이라는 자연적인 사실을 말한 것이리라. 참 곱고 슬기로운 노래라 생각하였다.,

 

 큰 비가 오면 수박에 물이 많이 찬다. 그런데 이것은 알고 보면 질퍽한 흙탕물이 수박물을 만드는 것이다.

 

수박은 맹울을 수박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어디 수박 뿐인가. 작은 씨앗들이 각자 다른 맛을 내고, 다른 모양을 내며 다른 쓰임을 내는 것을 보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씨앗 속에 각자 고유한 자신의 본성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본성은 존재의 참 성품이며 이것이 발현될 때 비로소 존재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깨달음의 훈련이 잘 익어서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처럼, 안에서 병아리가 쪼는 시간과 밖에서 어미 닭이 쪼아주는 시간이 묘하게 맞아 떨어질 때, 한 생명이 비로소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미망에서 참 성품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사람이라는 인연이 가장 중요하다.

절친한 도반이 산 속 작은 토굴에서 공부할 때의 이야기다.

 

 스님은 깊은 산에 토굴을 짓고 마음 찾는 일에만 정진하였다. 한달 내내 찾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가끔씩 들러 보살펴 주는 노보살심 한 분 뿐이었다.

 

보살은 김치가 떨어질 때 쯤이면 쌀과 보리를 머리에 이고 잘 담궈진 김치와 함께 토굴을 찾아왔다. 산 속에서는 오직 낮과 밤이라는 시간, 산짐승들, 산새들, 벌레들, 밤하늘의 별이 전부였다.

 

 많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스님은 멍하게 누워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어느 날부터인가는 낮에도 괜시리 뜰을 거닐었다. 그 시간도 점점 잦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스님은 마을까지 가서 소주를 사와 한 잔 두 잔씩 마시게 되었다. 나중에는 한 병 두 병씩 늘어났다. 그 모습을 보게 된 노보살이 어느 날은 양주 한 병을 방에 슬쩍 두고 가는 것이었다.

"스님, 속 베리니 인자부터 소주 마시지 말고 좋은 술로 드이소"

 

"....."

그러다가 담배도 한 개비 두 개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노보살이 토굴에 들렀다가 그것을 보게 되었다. 

"인자부터 담배도 좋은 것으로 피우시소. 그라고 하루에 다섯 개피 이상 피우지 마소. 몸베립니더."

 

"....."

그 후로 보살님은 토굴에 올 때마다 제일 좋은 담배를 사다가 방에 놓아두고 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이제는 마을에도 간간히 출입하면서 한 잔씩 술을 마시고 토굴로 돌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날 들렀던 노보살이 출타하려는 스님을 붙잡았다.

"스님, 마을 가서 술 드실라면 안주도 좋은 것 드셔야 할텐데... 용돈 좀 더 넣었습니더."

"....."

 

이 젊은 스님은 이제는 자기도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 되었다. 몇 번 마을집에 드나들다가 노보살에게 말했다.

"보살님!  나 이제 스님 그만하렵니다...."

"....."

'....."

"스님, 돈도 없으실 텐디, 제가 나가서 방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게 돈을 좀 드리겠습니더. 며칠만 기다리소."

 

그렇게 말하는 노보살의 얼굴은 평안하고 담담해 보였다. 스님은 그 길로 바로 짐을 싸 토굴을 나와 산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토굴을 떠나려니 부처님의 가르침도, 도반 스님들의 이목도, 마을 사람들의 이목도 걸리는 것이 없었는데 다만 노보살의 얼굴만이 아른거리는 것어었다.

 

좋은 술 먹으라고 비싼 술과 담배, 그리고 용돈까지 집어주고 방 얻을 돈까지 준다던 노보살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나를 삼년이나 정성껏 시봉한 것이 헛되다 싶어 거세게 분심이라도 낼 터인데...'

 

스님은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내려가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말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노보살이 평소에 하던 말이 기억 속에서 맴돌았다.

 

'스님 지는 참말로 스님이 큰스님 되는 것을 보고 죽는게 소원입니다. 큰스님 되셔서 생전에 죄 많이 지은 이늙은 이도 구제해 주시고, 우리 식구들도 구제해 주시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 주시는 것을 보고 죽는 것입니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소원이 없습니더.'

 

걸으면서도 도저히 더는 발걸음이 안 떨어져 토굴로 다시 돌아가 주저앉는데 노보살이 있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것이엇다. 산란했던 스님의 마음도 그제서야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러냐고 따져 묻지 않고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에 설 수 있게 그것을 따사로운 시선으로 지켜주는 인연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보시행인 것이다.

 

알 속에 든 병아리가 한 세계를 깨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밖에서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아주는 절묘한 시간처럼 우리는 어울려 살면서 서로에게 아주 긴요하고 소중한 인연이 되는 것이다.

 

 후에 그 도반 스님은 일심으로 불도에 매진하였으며 지금은 후학을 가르치는 훌륭한 스승이 되었다.

 

그러한 번민에서 올곧게 자리를 잡은 스님이 어떻게 후학들을 가르칠 것인가는 보지 않아도 환하다. 흔들리지 않고 넉넉한 시선으로 시봉해 주던 노보살처럼 후학의 방황과 번민을 깊고 넓은 눈으로 바라보아 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키우고 서로에게 시절인연이 되어 그 길을 빛내 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길을 찾고 또 길을 묻는 것이다.  -젊은 스님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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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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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수선화바람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25 감사합니다_()_()_()_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01.26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 답댓글 작성자수선화바람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1.29 r감사합니다_()_()_()_
  • 작성자고향집 | 작성시간 24.02.20 '사람이 사람을 키우고 서로에게 시절인연이 되어 그 길을 빛내 주는 것이다'
    법문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_()_
  • 답댓글 작성자수선화바람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2.21 감사합니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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