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중생이 (생사의) 병이 났으므로 나도 병이 났습니다. 以一切眾生病,是故我病。 당신은 내게 어떻게 병이 났느냐고 묻는데, 대보살이 병이 난 것은 중생을 위해서 병이 난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온갖 중생이 저마다 병 가운데 있기에 내가 병이 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온갖 중생이 어느 날엔가 병이 없고 고통이 없게 된다면, 즉 생사를 마쳐버리게 된다면 나[我]도 병이 없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바로 ‘나’가 있기 때문에 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가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이 있고 번뇌가 있으며 병이 나는 일이 있습니다. 온갖 중생이 저마다 무아(無我)가 되어 본래의 청정원명(淸淨圓明)으로 돌아갔다면 당연히 병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살면서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자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병이 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으며 태어나지 않고 죽지 않기를 바란다면, 오직 당신이 열반을 증득하고 성불해야 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온갖 중생이 제도를 얻으면 병통이 없게 됩니다. 유마거사는 우리들에게 ‘점제(點題)’하였습니다. ‘점제’는 문장의 요점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는 것인데, 그 요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온갖 중생이 병이 나지 않을 수 있다면, 나의 병은 사라집니다. 若一切眾生得不病者,則我病滅。 문수보살 당신이 내게 묻기를 병이 어느 때에 낫느냐고 하는데 나의 이 병은 영원히 좋아질 수 없습니다. 6도만행(六度萬行)은 모두 보살의 병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도 모두 보살의 병입니다. 자비는 바로 어리석음[癡]이요 희사는 바로 애(愛)입니다. 보살이란 보리살타인데, 비록 깨달았지만 여전히 정(情)이 있음을 면치 못합니다. 보살은 가장 다정한 사람입니다. 대중의 애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병이 나지 않기를 바라면 오직 정애(情愛)가 다 소멸해야한다고 합니다. 중생이 병이 있으면 보살은 반드시 병이 납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대비심에서) 중생을 (교화 제도하기) 위해 생사(生死)윤회에 들어가며, 생사윤회가 있다면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생이 (생사윤회의 큰) 병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보살도 다시는 병이 나는 일이 없습니다. 所以者何?菩薩為眾生故,入生死,有生死,則有病。若眾生得離病者,則菩薩無復病。 모든 대승보살들은 생사를 뛰어넘지 않습니다. 다시 엄중하게 말하면, 모든 불보살들은 다 생사를 뛰어넘지 않으며 모두 환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능가경 일 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열반한 부처도 없고 부처가 열반함도 없다[無有涅槃佛, 無有佛涅槃].’ 부처님은 결코 떠나가시지 않았습니다. 역시 다시 오십니다. 불보살은 모두 환생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간에 있습니다. 보살의 원력은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생사에 들어가고 윤회에 들어갑니다. 뛰어넘을 재간이 있으면서도 뛰어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대자비하기 때문에 열반에 들지 않고, 대지혜를 갖추었기에 3유(三有)에 머물지 않습니다[悲不入涅槃, 智不住三有].’, 그는 이미 반야지혜를 얻어 3계 밖으로 뛰어넘었습니다. 3유(三有)는 바로 3계입니다. 하지만 자비로써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자신은 열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대지혜와 대자비를 함께 운용하는[智悲雙運] 경계입니다. 그는 여전히 6도 윤회 속에서 구릅니다. 하지만 꼭 사람으로만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로 변하고 말이나 또는 벌레로 변하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러한 재간이 있으며 이러한 짐을 걸머질 수 있습니다. 개미로 변하여 우리들이 물을 끓일 때 뜨거워서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개미로 변했기 때문에 뜨거워서 죽는 겁니다. 하지만 왜 개미로 변하고자 할까요? 개미를 제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반드시 개미로 변해야 개미의 언어를 말할 수 있습니다. 보살이 생사윤회에 들어간 바에야 병이 있기 마련입니다. 병이 없고자 한다면 오직 당신이 생사를 끝마쳐야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답안은 이미 있었습니다. 당신이 생사를 마치기 이전에는 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마거사는 의미를 넓혀 말하기를, 만약 중생이 모두 생사를 끝마친다면 보살도 병이 없게 되며 이 세계에 올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의 병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을까요? 미안합니다만 역시 치정(癡情)으로부터 왔습니다. 대자비가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이러한 도리는 문수사리보살도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는 유마거사와 둘이서 짜고 연극을 하느라 한 사람은 부르고 한 사람은 답하여 모두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마경 강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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