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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정사(正思) - 마음의 지침에서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4.06.12|조회수41 목록 댓글 1

생각한다는 것은,(思)

고려한다는 것이다.(考)

보다.  듣다.  말하다.  의 행위속에는,

올바른 중도의 신리(神理)를 기준으로 한 고려가 없으면 안된다.

자기 본위의 사고방식은, 몸을 망친다.

전부 서로에게 작용하여, 순환의 법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 보존의 상념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오는 것이다.

생각한다, 사고한다는 것은, 행위로 이어지기때문에,

부조화한 생각은, 상념의 필림에 저항을 일으키고,

그 저항은, 자기 자신의 의식이랑, 뇌세포까지도 미치게 하고 맙니다.

우리들은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신에게만 좋은 생각을 하려하고,

낙(樂)을 즐기려고 생각하여, 타인의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는데,

이것은 자기 보존의 아욕에 빠지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주장도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가는 것이다.

경쟁상대를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은,

산의 메아리와 같아서,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가는 것이다.

"바보"라고 말하면, 메아리도 또한,

"바보"라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되돌아 오는 것이다.

생각한다, 사고한다, 는 것은, 창조행위이기도 하며,

자신의 운명을 좋게 하고자 생각한다면,

우선, 올바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조화한 생각을 가지면, 검은 상념의 저항을 스스로 만들어, 괴로움을 많이 만들뿐이다.

상대를 불행에 빠뜨리려고 생각하는 마음은, 자기 자신이 빠질 함정을 파는 것과 같은 것.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지다." 라는 것과 같으며,

"사람(남)을 저주하면, 구멍(무덤)이 두개" 인 것이다.

또 정욕의 연상(連想)은, 마음속에서 행위로 이어진다.

꿈이라든가.  저승의 생활에서는,

생각하는 것, 사고하는 것, 의 결과가 즉시 나타납니다.

현상계에 있어서도, 마음속에 생각한 것은,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행위의 전제인데,

실은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날부터 고부간의 다툼을 듣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는것을 들으면, 계속되는 잔소리에,

마음으로부터 보기 싫은 시어머니다.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러한 마음의 검은 상념은 현상화되어, 표정은 시어머니에게 맞추고,

입으로는 잘하신다고 말하여도, 며느리의 마음에 울리는 것은,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되어, 이윽고 폭발하여, 다툼이 되고 맙니다.

내 자식이 아니다. 내 부모가 아니다. 라고 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그러한 감정이, 고부간의 관계를 더 한층 복잡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쌍방의 가슴속에서,

서로,  잘 생각하고 싶다.

생각한대로 집안을 이끌어 가고싶다고 하는

자기 보존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것입니다.

 

정사(正思)의 중요한 점은, 정견(正見)과 똑 같이.

제 삼자의 입장에 서서, 고려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입장.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여,

조화를 목적으로 한 생각이 중요합니다.

오해랑, 지나친 행동은, 고치면 된다. 고 서로 이야기 하고,

이해하는 것이 조화의 대 전제입니다.

서로 합의하여 더 이상 장벽을 만들지 않도록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어떻게 해도) 인정되지 않을 때는,

상대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정도(正道)의 목적은,

"마음의 안정"이며,

마음속이, 생각이, 항상 불안으로, 음울하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됩니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상대를 포용해주는 것입니다.

또하나 중요한것은,

아만(我慢)-참는 일..

인욕(忍辱)-욕됨을 참고 견디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일. 입니다.

이 양자는 비슷하지만  크게 다릅니다.

아만(我慢)-,이란 괴로움, 슬픔을 가슴속에 품는 것입니다.

오직 나만 참으면, 집안이 원만하게 수습된다고 해서,

아만(我慢)에 아만(我慢)을 쌓아 버립니다.

아만(我慢)은 병(病)을 만듭니다.

인욕(忍辱)이란, 참는 것입니다만,

괴로운 것을 가슴속에 품지 않고, 말을 하여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마음의 안심을, 조화를, 빌어 주는, 넓은, 높은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인욕(忍辱)을 배우고, 아만(我慢)을 버리는 것입니다.

정사(正思)를 기르는 데는 또한 반성입니다.

오늘 하루의 사고,생각이

바른 것이었나, 그릇된 것이었나를 반성하여

과실이 있으면 수정하여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결국은

중도에 맞는 정사(正思)를,

마음속에 확립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마음의 지침-다카하시 신지-

 

(주;

메아리와 같은 자기 생각이란,

메아리와 같은 자기 행동이란,

어떤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우선, 생각이 없는 말과 행동은 없다는 전제하에,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올바른 기준은, 감사하는 마음이고,

감사함의 반대되는 그릇된 기준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음이지요,

왜 감사함과 당연함이 반대인가를 알기 쉽게 하려면

우리 주변의 사례에, 이 두가지 기준을 대입하여, 생각하여 보면, 알기 쉽습니다.

부모님이 날 낳아 주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인가.

당연하게 생각할 것인가.

선택권은 나 자신에게 있지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2 중의 하나를 ~~

흔히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하는 행동은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감사함의 퍼센트와 그 나머지 퍼센트의 당연함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감사;10%--당연;90% / 감사;30%--당연;70% / 감사;90%--당연;10%)

내가 외출할때, 차비가 필요하여도,

부모에게 감사함이 90%인 사람은,,

"다녀 오겠습니다.."  씩씩하게 인사하겠지요.

하지만,  당연함이 90%인 사람은,,

"차비가 필요하다고 조르겠지요"

감사한 마음은 기쁨과 직결되지만,

당연한 마음은 충족되지 못하는 요구에 따른 불만이 직결되지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생각이 없는 말과 행동은 없는 법.

내가 생각하는대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고,

내가 해버린 말과 행동은 곧, 내가 만든 나의 여건,

무슨말인가 하면, 행동을 한 결과가 나의 주변에 쌓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해 놓은 것의 결과가,,,,,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의 결과가,

나의 가치를,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알게 해주는 것으로서, 결과가 쌓인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한 만큼의 결과가,,,

당연하게 생각한 만큼의 결과가...

이렇게 내가 만들어 놓은 결과는,

또한, 내가 어쩔수 없이 놓여져있는 나의 여건과 같이,

합하여져서, 종합적인 나의 여건이 되는 것이지요....

인간승리라고 하는 실례는,

어쩔수 없이 주어져 있는 여건을 이겨내는,

내가 노력하여 만들어 내는 후천적인 여건이....

힘이 더 세다?는 말이지요...

이 모든 것은,

올바른 기준에 의한, 올바른 생각,

정사(正思)의 힘이지요....

그릇된 기준에 의한,

그릇된 생각도 아울러서,,,

메아리같이 되돌아 오는....

 

우리의 앞에 놓이는 2 개의 길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길

확실히 부처님의 가르침은 최고이지 않습니까?

올바른 길과 그릇된 길중에서 선택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가르침.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준다는 다른 모든 종교와 다른 유일한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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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06.1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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