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정업- 심행의 언혼에서 - 다카하시 신지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4.06.17|조회수40 목록 댓글 1

 

올바르게 일하기


지상계의 모든 생물은  일을 하도록 짜여져 있다.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광물까지도,

이 지상의 살아가는 것에게 , 그 몸을 제공하고 있다.(주;살신공양이다.)

인간의 경우도,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유아는 젖을 먹고 자는 것이 일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해 이윽고 성인이 되어 다음세대를 이어간다.

유능한 일군이 되는 것이다.

학생은 학교에서 학문을 배우고, 사회인은 사회를 위해 일한다.

주부는 가정에서 아이를 지키고, 남편의 일이 원활하도록 편안한 집을 만들어준다.

편안함의 안(安)자는 집,'가(家)'자의 갓머리에 여자의...'여(女)'...자가 들어간다.

즉 집안에 여자가 들어 앉아 있으면 편안하다는 뜻이다.

남자의 '남(男)'자는 밭'전(田)'자와 힘'력(力)'자가 합해져서 '남(男)'자가 된다.

남자는 밖에 나가 논밭에서 힘을 다해 일을 한다.

여자는 가정에서 편안한 집을 제공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은 편안함의 상징이며,

여성이 남성에게 원하는 힘은 믿음직함의 상징이기때문이다.

남녀가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것에 의해, 인간사회는 원활하게 돌아간다.


일을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이다.


동시에 직업을 얻어 일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업이 없는 사람. 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생활은 모든것이 그 분야를 나누어, 

서로가 그 생활을 서로 보완하고, 서로 돕고 있는 것이다.

즉 분업화에 의해 모든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생활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의 행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랑은 남을 살리는 것이며, 서로 돕는 것이다.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남을 살리는 것이므로 사랑의 행위인것이다.

일을 하고 직업을 갖는 것이, 사랑의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이렇게 혼란한 것은,

일을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해서,

남은 어떻게 되든 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많은 사람들은 올바르게 일을 한다고는 할 수 없겠다.


정업의 올바른 자세는,

이 지상계의 조화에 유용하게 쓰는 것이며, 그 기초는 사랑이며, 봉사의 마음이다.

전후의 기업은 노사의 대립이 심해져서, 항상 투쟁과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일부 지도자나 선동자는 '

문명의 발달과 사회의 진보는 이러한 투쟁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인간은 문명이나 과학기술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을 위한 문명, 사회의 진보이며,

진보를 위해서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투쟁은 뭐라고 해도 투쟁이며,  평화는 오지 않는다.

평화가 없는 문명이라면 그런 문명은 필요 없다.

노사의 대립이 심한 기업일수록 부조화가 되어, 결국은 도산의 지경까지 가고만다.

기업이 도산하면, 노사가 모두 생활이 곤란하고 가족은 길거리에서 헤메게 될것이다.

노사의 대립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그것은 조합도 사용자도 서로가 자기주장을 해서 양보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보존속으로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되도록이면 임금을 적게 주려고 하고, 노동자는 보다 더 임금을 받으려고 한다.

이래서는 양자의 다툼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노사가 모두 벗어 던지고,

항상 대화의 자세를 가진다면,이러한 투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사회가 아무리 합리화되었다 해도, 서로가 땀 흘려 일하지 않으면,

생활에 필요한 물건, 즉 의. 식. 주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경제의 합리화란, 분배의 공평인데.

분배의 공평은 우선 인간존중의 대화부터이며.

대화의 전제는 자기 보존에 의한 자기 주장을 먼저 버리고,

인간본래의 목적과 사명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것은 대립을 통해서는, 결코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선,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경제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혼을 닦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가지가지의 직업,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그때 그때의 자신의 혼을 닦는 재료, 환경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미 지금까지 기술해 온 것과 같이,

인간의 혼은 전생(轉生)을 윤회해서,

어떤 때는 왕으로서, 어떤때는 일개 농부로서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을 하고,

어떤 때는 의사로서 사람들을 구해왔다.

그리고 금생에서는 일개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경영자의 입장에 서 있기도 하고,

그러한 입장은 자기의 혼을 보다 넓게, 풍부하게 길러가기 위한 것이지,

대립이나 투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두 형제이며 친구이다.

형제, 친구이면, 하나의 물건을 두고 서로 싸우는 어리석음이 이해되고,

서로에게 사랑을 가지고, 서로 돕고, 남을 살리는 것의 의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서 정업이란,

다음의 3개의 목적으로 성립되어 있다.


1.. 혼의 수행.

1..지상계의 조화

1..봉사


즉 인간의 혼(마음)은 전생(轉生)을 윤회(輪廻)하여 가는 것이므로

현재의 환경. 입장은 자신의 혼을 닦아가는 수행의 장(場)이다.

지상계의 조화란,

거기에 사는 사람들,모두가 직업을 갖고 일하고,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 하는 것이다.

즉 일한다고 하는 것은,

지상의 조화에 유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라고 하는 것은, 각자가 사람들에게 봉사한다고 하는 사랑의 마음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조화는 사랑의 마음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다.


심행의 언혼 - 다카하시 신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06.19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