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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연재(56)마음의 원점(잃어버린 불지의 재발견)P172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4.10.01|조회수32 목록 댓글 0

오른 뺨을 맞으면, 왼쪽도 대어주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현대인에게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모세의 대기적(大奇蹟),

오늘에는 하나의 신화로 전달되어

학자에 따라서는 한낱 가공의 인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듯하다.

또한 붓다의 깨달음에 대해서도,

전래되어 오는 창작처럼 보는 사람도 있으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모두 버리고 마는 듯 하다.

 

오늘날, 남겨져 있는 문헌의 대부분은,

허구와 진실이 뒤섞여, 진위의 판단이 어렵게 되어 있는데,

3차원적 이해를 넘어선 덕행, 기적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3차원 이상의 고차원의 작용인 것을,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차원인 현세의 육체주를 타고 있을 때는,

우리의 의식은, 보통 10% 정도밖에 표면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한 치 앞을 모르는, 장님의 인생을 살면서 고락을 체험하고 있다.

하지만 육체주에서 내려 있을 때

(잠 잘 때나, 마음이 조화되어 선장인 혼이 육체로부터 벗어나 있을 때)에는,

차원이 다른 세계로 가 있기 때문에,

육체주의 부속품, , , , , 몸의 오관(五官)의 작용은,

사람 각자에 따라 다르지만, 외부로부터의 진동에는 전혀 무반응이다.

따라서 기억력조차도 그 작용을 멈추고 만다.

 

기억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일체의 기억은,

결코 우리의 뇌 세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육체주의 선장인 의식. 즉 혼()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있더라도,

잠들어 버리면, 그 때는 잊고 있다.

 

이것은 3차원의 육체주를 떠나 4차원 이상으로 혼()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의식의 90%가 표면에 나오고, 10%가 잠재하여,

확실하게 현상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면은, 육체와 의식,

즉 육체주(肉體舟)의 생명이 인생항로의 수행을 견디어 내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수면은 빛의 선(),

즉 영자선(靈子線)같은 것으로서,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의 세계에 접속되어,

이 빛의 선()을 통해서,

혼이 저 세상인 실재계(사차원 이후), 돌아가는 것이다.

 

죽음은 육체주(肉體舟),

인생항로에 견디기 어렵게 되었을 때이며,

육체주와 의식을 연결하고 있는 영자선(靈子線), 완전히 절단되어 버린다.

두 번 다시 육체주를 지배하여, 3차원의 공간에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공을 잃은 육체는 차츰 썩어, 대자연으로 환원하여 간다.

 

한편 육체(원자체)를 떠난 혼은,

4차원의 배인 광자체(光子體=)라고 하는, 정묘한 육체를 지니게 된다.

 

생전에 있어서 우리의 원자 육체(原子肉體),

이 광자체(光子體)와 겹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죽음은 이 양자(原子體光子體)의 결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4차원 이상의 다차원의 세계에도 통하고 있으며,

반대로, 같은 4차원에서도, 몹시 어두운 세계로도 통해 버린다.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대하고 있는 혼은,

빛으로 넘치는, 다차원의 세계로 통하고,

자기보존, 자아아욕(自我我慾)이 강한 사람들은,

마음이 어두운 구름에 덮여, 신의 빛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후광도 어둡고, 괴로움과 슬픔 속에서 신음하며, 지옥계로 통하고 있다.

저 세상의 지옥계는,

아귀, 아수라, 축생, 연옥, 무간지옥이라고 하는, 무서운 세계이다.

 

아름다운 마음의 상태에 의하여,

비물질적인 정묘한 영위기(靈圍氣), 만들어 내고 있는 천상계는,

이 세상의 3차원의 불안정한 고체적 천체인 지구를 감싸고 있다.

 

지상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위가 중도의 조화된 생활이면,

지구는, 한층 더 광명화되어,

유토피아 완성의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다.

지상계의 인류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혼란한 투쟁과 파괴의 업()을 만들어 왔는데,

그 동안 매우 다면적이었던 사상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극으로 나누어져,

겨우 조화에의 광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의 혼란된 사회는,

인류가 체험해야 할 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경제력, 권력, 무력에 의해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일시적인 지배는 가능하여도,

인간 본래의 신성(神性), 불성(佛性)인 마음의 자유를,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생활환경의 경제적 룰이 변해도,

마침내는 자유평등의,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하는,

자애의 마음이, 평화로운 세계국가를 완성해 갈 것이다.

인류는 그것을 위한, 엄격한 학습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마음을 잃은 사상은,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려, 인심을 어지럽혀 불행할 뿐이다.

마음까지 썩어버린 사상가와 그 추종자는,

가장 혹독한 연옥, 지옥에서, 그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수행한다.

그 수행을 남에게 전가(轉嫁)시킬 수는 없다.

 

이 현상계는, ()에서 유()를 낳게 하기는 불가능하다.

()에서 연()에 의해, ()가 생겨나는 것은,

무너뜨릴 수 없는 현상이며 법칙이다.

 

우리의 오관(五官)으로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없다고 하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인간의 생활의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 물질문명은,

공해라고 하는 부산물을 수없이 낳고 있다.

대기 중에, 질소화물이나 유화물, 그 외의 광화학 스모그라고 하는

생물의 생존에 위험한 독물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우리의 육체주(肉體舟), 양친의 연에 의해,

또 그 선장님도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을 맺어,

그 연생(緣生)에 의해, ()에서 유()가 생긴 것이다.

 

에너지 불멸의 법칙도, 질량 불변의 법칙도,

오로지 유()에서 유()가 생겨나는 것이며,

그 유(), 모양을 바꾸어 현상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괴로움, 슬픔, 기쁨의 원인은,

모두 오관(五官)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에서 유()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상념은,

현상(現象)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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