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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제3부 마음과 생활 / 62 예술가와 환경

작성자오로지팔정도|작성시간24.12.01|조회수44 목록 댓글 1

 

62. 예술가와 환경

 

 

() 정법은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 보편적 가르침이기에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는데,

학문예술을 지향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아에 대한 남다른 집착심과 마음의 불안이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낸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청중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아름다운 곡을 많이 작곡한 포스터는,

 알코올 중독과 빈곤에 시달렸으며, 그런 환경에서 죽었습니다.

 모딜리아니라는 화가도 알코올 중독으로 쓰러졌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옥과 같은 고통이 없으면,

천국을 찾는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도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십시오.

  

 

질문을 나누어서 설명합시다.

우선 환경에 관한 것인데, 인간은 환경에 좌우되는 존재입니다.

 풍요로운 환경이면, 아무리해도 자신을 응석받이로 추락시킵니다.

 이것은 당신이 지적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옥과 같은 고통이 계속되면,

 자신을 뒤돌아보는 여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점점 마음을 협소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가령 위경련을 일으켜, 고통을 이기지 못할 경우,

도대체 이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 자신의 어디가 나빴던 것일까

라고 반성할 수 있을까요아마 못할 것입니다.

한시 바삐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럴 때도 냉정하게 자신을 살펴보고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위경련이란 질병에는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 세상의 지옥계는, 반성하거나, 생각할 틈이 없는 혹독한 세계입니다.

 

뛰어난 학문과 예술은, 지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 나온다는 견해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 경우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과연 그런지 의심스럽습니다.

 

선악에 관계없이, 어떤 일이 성취되고 안 되는 것은,

당사자의 일념력(一念力)인 것입니다.

염력이란 에너지이고,

에너지는, 사물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학문 예술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종교에서도정치에서도경제에 대해서도 같은 것입니다.

구하는 마음목적의식이 염력으로 되어 작용하고,

다음으로 행동으로 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예술에 대한 추구심(追究心)이 강할 때는,

생활이나 가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마음의 대부분이 예술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빈곤 따위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이 예술가가 생활이나 가정에 대해서,

예술에 쏟는 마음의 몇 퍼센트인가를 할애한다면

생활의 빈곤은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객관적으로 지옥과 같은 빈곤은,

그에게 있어서는 부차적(副次的)인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빈곤이 예술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추구심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뛰어난 예술, 학문은

반드시 빈곤한 환경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과 평화>의 톨스토이,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많은 명곡을 남긴 차이코프스키

그런가 하면 시인, 문학가, 정치가, 자연과학자로서,

또는 미술 연구가로서 천재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괴테 등,

모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의 취지는 알겠지만 

당신의 의문점이나 견해에는 혼동이 보입니다.

,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과환경이라는 것을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육체가 불리일체(不利一體)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일을 성취한다, 못한다는 것의 가장 큰 요소는 마음이며,

 생각하는 것, 염원하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학자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마음을 집중시키는 염력이 강하여

그 작용은 직선적(直線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왼쪽을 본다거나, 오른쪽을 본다거나 하고 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목적을 향하여 일념(一念)으로 달립니다.

주위환경은 그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생기는 것입니다.

 

올바른 정법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말하는데,

만일 이 사회가 개인의 싫고 좋음을 동기로 해서 움직이고 있고

그런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는 벌써 망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능력의 차이. 잘하고 못함이 있습니다만,

전생(轉生)의 과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마음을 보다 풍부하게 기르기 위해서,

 경험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각자의 일을 통해서 인생의 목적과 의의(意義) 발견하고,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 직업이라는 것은,

자신의 혼을 더 크고 풍부하게 기르기 위한 매체입니다.

직업 그 자체, 일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지상의 갈채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신의 의사(意思)와 이 세상에서의 갈채는 반드시 일치(一致)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갈채에는 좋고 싫음의 감정이 개입되어 있고 군중심리도 작용합니다.

풍속과 습관, 그때그때의 사상 등온갖 요인이 뒤섞여서,

지상의 갈채는 생겨나는 것입니다.

즉 지상의 갈채에는 불순한 것이 대단히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의 의사(意思) 그러한 불순한 허식(虛飾)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신의 의사는, 그 사람이 순수한지,

사람들에게 신의 의사(意思)에 맞는 사랑을 베푸는지,

 자비의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대해왔는가에 있습니다.

그것도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이 정밀하고 농후하면 그 싹은 이윽고,

전세계에 전파하여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이스라엘의 극히 일부분의 사람과 좁은 지역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수세기에 걸쳐서 전 세계로 전해져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았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라고 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거나가치를 매기는 것은 해서 안 되는 것입니다.

가치를 주는 것은 불순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뿐이며,

 그것은 신의 수중(手中)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오.”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결코 빈곤한 생활, 지옥과 같은 괴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곤란합니다.

마음은 풍부해야 합니다.

 

예수가 말한 가난이란,‘욕심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하면 세상은 혼란해지고 지옥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마음이 풍부하고 조화되면, 그것은 그대로 천국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서나 불전에는 그 표현이 어렵고,

석가의 괴로운 점이 대단히 많지만,

성서나 불전을 읽을 때는

자기자신의 마음에 묻고 이해하도록 해 주세요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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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12.02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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