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수태 조절
(문) 우리 부부 사이에 두 명의 자식이 있는데,
이대로 가면 아이가 더 생겨, 경제적 부담도 가중되고,
태어난 아이에게 있어서도,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부생활을 계속하기에는,
수태조절이나 불임수술이나 임신 중절 등과 같은 방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출생할 아이들의 생명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가면 좋겠습니까?
출생하는 생명의 책임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습니다.
저 세상에서 한 약속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출생할 아이를 책임질 힘이 없을 것 같으면,
아이를 낳는 일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정 형편상 더 이상 아이를 낳는 일은 불행하다,
고 하는 평가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지금 두 아이가 있는데, 가장의 수입정도와 주택문제 등을 고려할 때,
아이 세 명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조건에서도 조금도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이의 교육문제나, 부모의 생활이 희생된다든가,
여러가지 판단의 기준이 있어서,
이것에 대해서의 최대 공약수를 산출해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2차 대전 이전의 생활은 전후(戰後)의 생활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국민들끼리의 연대의식이 강했고, 부국강병의 사상도 있어서,
비좁은 가정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자랐습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에 대해서 신경질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부모도 아이들도, 늠름하게 생활해왔습니다.
전후에 자란 사람들은, 어느 쪽인가 하면 자의식과잉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많고,
부부생활, 가정생활의 인식도, 이유는 여러 가지 있는 듯하지만,
자기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이는 둘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의 밑바닥에는, 대부분의 경우,
아이의 희생이 되고 싶지 않다,
부모에게는 부모의 생활이 있다고 하는 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의식이 눈 떠서인지,
의무의 관념이 후퇴한 것인지,
결국 전쟁 전(前)과 전쟁 후(後)는,
생활에 대한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는 몇 명까지가 한도인가에 대해서는,
객관적, 주관적으로 생각해야 하겠지요.
객관적이란, 국가가 처해 있는 생활조건이고,
주관적이란, 부부문제와 가정환경이라는 것이 되겠지요.
아이의 문제는, 전체의 인구문제에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주관적인 입장은, 객관적인 사정에 의해서, 확실히 후퇴할 수밖에 없겠지요.
당신의 질문의 요지는,
아무래도 부부생활 쪽에 많은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부부생활을 계속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고민하는 것 같은데,
결론을 말하면, 당신의 문제는 부부가 함께 협력하면 해결 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해서 불임수술을 한다거나, 중절수술을 하는 일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불임수술은 모체에 위험이 있는 특수한 사정일 때만 불가피합니다.
그 외의 이유일 때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또 낙태수술은 악영향을 미치고,
깃든 생명을 곧바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약속위반이 됩니다.
이러한 상태를 초래하지 않도록 부부가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부부생활은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수태조절에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으나,
수태조절도 상호 이해로써 해결 될 수 있습니다.
또 탄생해야 할 생명은, 탄생할 시점에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탄생할 생명을 불행이라고 보고,
현실을 변호하는 생활태도는 찬성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더 이상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나 가정을 위해서나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남은 문제는, 부부의 협력과 이해에 의해 부부생활을 지속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