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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석
무설정사 혜경스님
“경전이야말로 부처님께 바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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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상 모든 것이 법을 설하고 있는데 내가 또 무엇을 보태겠습니까.
꽃과 나무, 시냇물, 그리고 저
봉우리도
다 저마다 설법을 하는데
다만 듣지 못할 뿐이지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속고 살고 있어요.
자신이 이생에 온 목적도 잃고
중생인 채로 살아가고 있지요.
우리가 늘 사홍서원을 외웁니다만
이 세상에 온 것은 우리가 그렇게 원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스스로 선택해서 한 일이기에 기쁨으로 해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중생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아요.
원생(願生)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지요.
우리는 다 원(願)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수 유리 화계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무설정사(無設精舍).
혜경(惠耕, 68세) 스님께서 정사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또 말하는 바 없이 설해지는 그 무언의 설법을 굳이 말로 하자니 설명이 길어진다고.
스님께서는 비교적 늦게 출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님의 출가인연담을 듣고 싶습니다. 출가인연담이라,
글쎄요. 뒤돌아보면 다 인연소치인 것 같아요.
대학시절 굳이 이공계나 의대를 선택하지 않고
인문대학을 선택해 역사학을 전공한 일이나 실존주의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지금 제가 해야할 일을 위한 전주곡이 아니었던가 싶어요.
어느날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법화경이 제 인생을 확 바꾸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실존에 목말라
하던 차에 법화경은 그 모든 해답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 이후 불교에 관심을 갖고 또 경전을 공부해가면서 마침내 출가를
결심했어요.
경전공부를 좀더 전문적으로 해보겠다는 욕심에서였지요. 주위의 그 누구도 내가 출가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서른네 살 출가에 대한 저의 선택은 매우 이성적인 것이었습니다.
출가하시고도 주로 경전을 공부하셨습니까.
출가생활이라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요.
새벽 예불을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기까지 온종일
앉을 틈도 없었던 것이 절집생활이고 보니 경전을 공부하고 번역 일을 한다는 것은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하루에 2~3시간을 자며 코피를 동이로 쏟는 일이 허다했지요.
그런데 1979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법화경 서품을 번역하던 중 “부처님 이마에서 광풍이 나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고…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했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그야말로 천지가 진동하는 인식의 대변혁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느낌으로 확 와 닿았습니다. 이제까지 무생물로 보였던 것이 생명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나 또는 무생물까지도 다 함께
우주의 대생명에 의해 살려지고 있기 때문에 존재가치는
근본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삼라만상이 다 불성을 가진 생명체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때 이후 세상만사가 다 달라져 보였습니다. 무기질도 생명체요, 모든 현상계가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그를 이름하여
부처라 한다…. 그 환희와 감동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붙들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른 새벽 샛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는데 그것은 곧 샛별이 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주가
곧 나라는 것을 깨달음이지요. 경전에 비로소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입니다. 그 이후로 어떤 경전을 보더라도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흔히 불교경전이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래요. 그러나 본뜻을 제대로 알고 보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경전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지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만 아는 것만큼 보는 것이기에 자신의 이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고,
경전이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똑같은 말을 해도
사람들은 각기 제 근기에 따라 받아들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관세음보살을 염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어야지 하며 염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어서 염을 합니다.
경전은 탐구하고 이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머리로만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읽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진리 체험을 전달할 때 언어는 제 구실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무슨 언어든간에 일반적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만 전기라든지 에너지를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3차원 속의 도구인 언어로 4차원의 세계를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언어 이전의 세계를 바로 볼 수 있어야해요.
우리들은 흔히 부처님을 믿고 불교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믿는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참다운 믿음입니다.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믿거나
자신에게 현상적인 이익이 있으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 말씀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부처님의 마음과 일치되는 통로이며 광장입니다. 팔만대장경이 다 해탈문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수행보다 경전공부를 강조하시고 계신데요.
깨달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평생 경전을 벗하면서 경전이야말로 부처님에게로 가까이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전을 보면서 어떤 경은 이해가 되고 어떤 경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 글자에 매어있기 때문입니다.
경전은 깨달음을 목적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 문자로 되는 것이 아니듯이 경전도 문자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선입견을 다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요.
특히 법화경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설하여 가르친 경전입니다.
대개 중생들은 스스로를 범부중생이라고 규정하고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단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천만에 그렇지 않다.
인간성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空性), 마음대로 능히 바꿀 수 있다’고 희망을 줍니다.
뉴턴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듯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면(見性)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동국역경원에서 경전번역에 참여하시었고,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작업을 누구보다도 강조하고 계십니다만.
한문경전을 번역할 때 옥편이나 사전식으로 하는 번역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사상 수준에 있지 않으면 오역할 수 있습니다.
자칫 잘못 번역하면 아니함만 못하게 되지요.
예를 들자면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을 번역하는 데 있어
글자 그대로 함이 있다. 함이 없다라고 번역하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요.
유위법은 현상계, 무위법은 현상계 이전의 세계라고 번역해야 하는 것이지요.
특히 반야부 경전에 보면 ‘무(無)’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 것은 그냥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산스크리트어본에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구어체로 된 경전을 문어체로 바꾸면서 오역이 많아졌고,
또 언어는 시대에 달리 쓰이기도 하고 변화해갑니다.
약간’이라는 말도 지금은 ‘조금’이라는 뜻으로 쓰는데
그 당시에는 ‘많다’라는 뜻으로 쓰였지요.
또 불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空)’은
산스크리트어로 ‘수냐(sunya)’ 라고 합니다.
이 원어는 ‘팽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타(ta)’를 붙이면 ‘팽창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띠게 됩니다.
팽창되는 것이 어찌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은 무에서 나온다’는 도교철학화된 중국불교를 잘못 받아들이면
공과 공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흔히 ‘번뇌를 끊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중국식 해석이며 잘못된 표현입니다.
‘번뇌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불교가 바르게 전달되고 좀더 저변확대가 되려면 제대로 된 언어사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불자들의 인식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자주 표현하고 계신데 이 기회에 한 말씀
들려주시지요.
일반적으로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 해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전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여 깨달음을 얻은
뒤에 비로소 중생교화에 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화중생을 하고 있노라면 자연 상구보리가 되는 것입니다. 하화중생 그 자체가 상구보리라는 말입니다. 중생과 부딪침
속에 깨달음이 있는 것입니다.
연꽃의 덕을 비유하는 말 가운데 화과동실(花果同實)이라는 말도 그 뜻이지요, 깨달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깨달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 달리 찾아서 구해야 할 것이 아니지요. 우리의 모든 행위의 표현이 바로 진리로 통하고 ‘부처가 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한낱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아니고 부처님이 될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 불자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은 이미 틀림없는 부처님의 아들인데도 등을 돌리고 멀어지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법화경 ‘장자 궁자의
비유’에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부처님께서는 ‘자기는 미혹한 인간이다. 죄 많은 몸이다.
따위의 비굴한 생각일랑 깨끗이 버리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진실에 눈을 떠라.’ 즉 ‘자기 본질의 거룩함을 발견하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영원불멸한 대생명이시며,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을 존재케 하고 살도록 하며 활동케 하는 근원적인 대생명이시기에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부처님의 화현이며, 두두물물(頭頭物物) 화화초초(花花草草)가 모두 부처님이십니다.
중국의 소동파가 ‘저 높은 산봉우리는 석모니부처님의 얼굴이요, 졸졸 흐르는 시냇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 소릴세’라고 했듯이 이
세상의 만물 만상은 모두가 부처님, 즉 우주의 대생명의 나타남입니다.
자신이 우주의 대생명이신 부처님에 의해 살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그 법칙을 설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간다면 자유자재를
얻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오늘도 부처님 경전 말씀을 쟁기삼아
열심히 지혜의 밭을 갈고 계신
혜경(惠耕) 스님은 최근에는 금강경과 유마경, 승만경을
한문 원문과 구역, 산스크리트역, 그리고 주와 해설을 붙이고 마지막으로 현대역 작업을 해서 마쳤다.
그리고 다음 작업으로는
법화경 전 8권을 해설하는
원을 가지고 계시다.
“…바라옵나니 이 공덕이 널리 미치어 나와 함께 모든 중생이 성불케 하여지이다.”
때로는 부처님 말씀을 말과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되돌아오지 않는 먼 골짜기의 메아리처럼도 느껴지지만
그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이생에 오신 것처럼 그것을 당신의 원행(願行)으로 삼고 있으시다. 기자가 본 혜경 스님
 혜경 스님은 1933년 전남 여수에서
출생했다.
스님은 56년에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불가에 귀의했다.
법명은 혜경(惠耕) 당호는 회옹(晦翁).
재단법인 법화종 유지재단 이사장과 법화불교대학 학장을 지냈다.
스님은 85년부터 현재까지 무설정사에 주석하며,
경전번역에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법화경 번역의 권위자로서
경전공부모임을 이끌며 출·재가자들에게
그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스님이 번역·저술한 불경만도
<법화경 이야기>(범우사), 법구경 입문(범우사),
<법화삼부경>(문학예술사),
<우리말 법화경>(도서출판 삼양), <법화경 총설>(도서출판
삼양),
<관무량수경>(집문당) 등 다수.
정교한 논리로 부처님의 교리를 쉽게 설명해주는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스님은 신도들을 대상으로 경전을 가르칠 때도
항상 믿음의 차원에서 시작하여 보살행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한다.
스님은 요즘 법화경과 관련한 홈페이지 개설을 서두르고 있다.
이제까지 해온 저술과 번역작업이
후학들이 좀더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한 일인 만큼
미래세대가 이에 바탕하여 한층 넓게 이해하고 실생활에 도움되는
방편을 개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의 생활은 ‘무욕’ 그 자체이다.
평생 어느 것도 소유해본 적이 없다.
사찰의 주지를 맡아 본적도 없다.
사찰을 지어 곧바로 불교재단에 상좌 명의로 등록한 뒤
작은 방 한 칸만 얻어 살고 있다.
사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준 유산도
모두 불교재단 명의로 상속했다.
스님의 삶은 한마디로 보살도의 삶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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