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殺佛殺祖를 말 하는가!
어느 봄 날 지리산에 있는 찻집에서
차(茶) 시음회가 있다기에 스승님과 함께
찻집에 도착하니 벌써 여러 스님들이 와 있었다.
스승님과 나는 여러 스님들과 동석하여
녹차를 마시며 그 향기에 취해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부처님을 자주 만난다는 보살님을 스님이
만났다고 들었는데, 정말 만났습니까?”
눈을 떠보니, 눈이 유난히 맑아 보이는
젊은 수좌가 옆에 앉은 도반으로 보이는
수좌에게 물었다. 젊은 수좌는 여러 스님들
앞에서 정말 육안으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의도가 있어 보였다.
“예, 사실입니다. 내가 그 보살을 만나 보았는데
참으로 얼굴이 맑고 밝아 관세음보살님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젊은 스님의 도반으로 보이는 스님이 얼굴에
홍조를 띠며 그때를 회상을 하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자.
“부처라니, 스님들은 살불살조(殺佛殺祖)도 모릅니까?”
중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님이 비아냥 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또 한 스님이 단오하게 끼어들었다.
“스님, 부처는 형상이 없습니다.”
두 젊은 수좌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단숨에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스승님의 표정을 살폈다. 나의 스승님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미소를 짓지만 법에
대해서 잘못 말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였다.
“수좌들! 이 늙은이가 하나 묻겠소? 꿈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한 적이 있는 수좌는 손을 한번
들어보시오?”
아무도 손을 드는 스님이 없자
“아니, 꿈속에서 부처님 한번 친견하지
못했단 말이요? 그래도, 꿈속에서라도 부처님을
친견한 후에 살불살조 란 말을 쓰거나 부처는
형상이 없다는 말을 써야지요!”
스승님이 수좌들을 제압하는 말투를 쓰자.
수좌들은 어리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스승님은 스승님만의 특유한 방법으로
법석(法席)을 펴셨다.
“잘 들어보시오! 요즘 수좌들은 입만 열면
살불살조를 말하는데 정작 부처님이 나타나면
무엇으로 칠 것이요? 만약 부처님이 나타나서
무엇으로 쳤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도 선승기질이 살아 있었는지 중물이 들어
보이는 수좌가 반항적인 말투로 일갈했다.
“스님이라면, 부처를 친 다음에는 어떡하시겠습니까?”
스승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살불살조 란 말을 입에 담아본 적이 없소!
본래 살불살조란 임제 선사님과 어떤 수좌와의 법 거랑
일 뿐이요. 잘 들어 보시오. 어느 날 임제 선사님께,
어떤 수좌가 찾아와 묻기를 <정에 들었을 때 부처와
조사가 나타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으니
<목을 쳐라!>하고 임제 선사님께서 일갈을 했을 뿐이요. 이 두 선사의 법거랑의 뜻을 참으로 이해했다면 살불살조란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스님, 그렇다면 금강경에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했는데
부처를 보았다는 그 자체가 마구니에게 놀아난 것이 아닙니까?"
형상을 운운하던 스님이 물었다.
“금강경 어느 구절에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나와 있던가요?”
“금강경에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다. 하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수좌는 결코 질수 없다는 표정으로 금강경에
나오는 형상을 계속 운운하자. 스승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수좌! 형상이 허망한 것은 사실이나 부처님께서
인연따라 나투신 것은 형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수준이 낮은 귀신도 그 형상을 들어내는데 하물며
부처님이 그 어떤 모습으로든 나투지 못하겠습니까?
이 노승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처님을 만날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했는데.......”
한 스님이 스스로 자위하며 말꼬리를 흐리자,
얼굴을 붉혔던 젊은 스님이 물었다.
“저는 어느 큰 스님이 법문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살불살조는 자신의 진불(眞佛)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살불살조를 진짜 부처님의
목을 치라는 말이 아니라 공부 중에 마구니가 장난을
치면 그 마구니를 치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수행하는 사람들이 살불살조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쓰니까 큰 스님들이 방편으로 그런 법을 쓴
것입니다. 참구하십시오. 임제 선사님과 그 수좌와
법거랑 하는 그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돌아오는 길에 스승님께 여쭈었다.
“스승님, 오늘 차(茶)맛이 어땠습니까?”
“오늘 차(茶)맛?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맛이었네. 하하하......”
스승님께서는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으셨다.
어느 봄 날 지리산에 있는 찻집에서
차(茶) 시음회가 있다기에 스승님과 함께
찻집에 도착하니 벌써 여러 스님들이 와 있었다.
스승님과 나는 여러 스님들과 동석하여
녹차를 마시며 그 향기에 취해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부처님을 자주 만난다는 보살님을 스님이
만났다고 들었는데, 정말 만났습니까?”
눈을 떠보니, 눈이 유난히 맑아 보이는
젊은 수좌가 옆에 앉은 도반으로 보이는
수좌에게 물었다. 젊은 수좌는 여러 스님들
앞에서 정말 육안으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의도가 있어 보였다.
“예, 사실입니다. 내가 그 보살을 만나 보았는데
참으로 얼굴이 맑고 밝아 관세음보살님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젊은 스님의 도반으로 보이는 스님이 얼굴에
홍조를 띠며 그때를 회상을 하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자.
“부처라니, 스님들은 살불살조(殺佛殺祖)도 모릅니까?”
중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님이 비아냥 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또 한 스님이 단오하게 끼어들었다.
“스님, 부처는 형상이 없습니다.”
두 젊은 수좌는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차를
단숨에 마시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스승님의 표정을 살폈다. 나의 스승님은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미소를 짓지만 법에
대해서 잘못 말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미였다.
“수좌들! 이 늙은이가 하나 묻겠소? 꿈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한 적이 있는 수좌는 손을 한번
들어보시오?”
아무도 손을 드는 스님이 없자
“아니, 꿈속에서 부처님 한번 친견하지
못했단 말이요? 그래도, 꿈속에서라도 부처님을
친견한 후에 살불살조 란 말을 쓰거나 부처는
형상이 없다는 말을 써야지요!”
스승님이 수좌들을 제압하는 말투를 쓰자.
수좌들은 어리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스승님은 스승님만의 특유한 방법으로
법석(法席)을 펴셨다.
“잘 들어보시오! 요즘 수좌들은 입만 열면
살불살조를 말하는데 정작 부처님이 나타나면
무엇으로 칠 것이요? 만약 부처님이 나타나서
무엇으로 쳤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그래도 선승기질이 살아 있었는지 중물이 들어
보이는 수좌가 반항적인 말투로 일갈했다.
“스님이라면, 부처를 친 다음에는 어떡하시겠습니까?”
스승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살불살조 란 말을 입에 담아본 적이 없소!
본래 살불살조란 임제 선사님과 어떤 수좌와의 법 거랑
일 뿐이요. 잘 들어 보시오. 어느 날 임제 선사님께,
어떤 수좌가 찾아와 묻기를 <정에 들었을 때 부처와
조사가 나타나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으니
<목을 쳐라!>하고 임제 선사님께서 일갈을 했을 뿐이요. 이 두 선사의 법거랑의 뜻을 참으로 이해했다면 살불살조란 말을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스님, 그렇다면 금강경에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했는데
부처를 보았다는 그 자체가 마구니에게 놀아난 것이 아닙니까?"
형상을 운운하던 스님이 물었다.
“금강경 어느 구절에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나와 있던가요?”
“금강경에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다. 하고
나와 있지 않습니까?”
수좌는 결코 질수 없다는 표정으로 금강경에
나오는 형상을 계속 운운하자. 스승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수좌! 형상이 허망한 것은 사실이나 부처님께서
인연따라 나투신 것은 형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라고 말을 합니다.
수준이 낮은 귀신도 그 형상을 들어내는데 하물며
부처님이 그 어떤 모습으로든 나투지 못하겠습니까?
이 노승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부처님을 만날 자격을 갖추고 있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부처는 형상이 없다고 했는데.......”
한 스님이 스스로 자위하며 말꼬리를 흐리자,
얼굴을 붉혔던 젊은 스님이 물었다.
“저는 어느 큰 스님이 법문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살불살조는 자신의 진불(眞佛)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살불살조를 진짜 부처님의
목을 치라는 말이 아니라 공부 중에 마구니가 장난을
치면 그 마구니를 치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수행하는 사람들이 살불살조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쓰니까 큰 스님들이 방편으로 그런 법을 쓴
것입니다. 참구하십시오. 임제 선사님과 그 수좌와
법거랑 하는 그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돌아오는 길에 스승님께 여쭈었다.
“스승님, 오늘 차(茶)맛이 어땠습니까?”
“오늘 차(茶)맛? 살불살조(殺佛殺祖)의 맛이었네. 하하하......”
스승님께서는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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