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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아미타경과 18원 요해

작성자ohry|작성시간10.02.27|조회수470 목록 댓글 1

佛說阿彌陀經

姚秦三藏法師 鳩摩羅什 奉詔譯

요진삼장법사 구마라습 봉조역


法會衆證分 第一

법회중증분 제일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

與大比丘僧千二百五十人俱 皆是大阿羅漢 衆所知識

여대비구승천이백오십인구 개시대아라한 중소지식

長老 舍利弗 摩訶目犍連 摩訶迦葉 摩訶迦旃延 摩訶俱絺羅

장노 사리불 마하목건련 마하가습 마하가전연 마하구치라

離婆多 周利槃陀伽 難陀 阿羅陀 羅睺羅 憍梵波提 賓頭盧頗羅墮

이바다 주리반다가 난타 아난타 라후라 교범바제 빈두로파라타

迦留陀夷 摩訶劫賓那 薄拘羅 阿樓樓馱如是等 諸大弟子 竝諸菩薩摩訶薩

가류타이 마하겁빈나 박구라 아누루타여시등 제대제자 병제보살마하살

文殊師利法王子 阿逸多菩薩 乾陀訶提菩薩 常精進菩薩

문수사리법왕자 아일다보살 건타하제보살 상정진보살

與如是等諸大菩薩 及釋提桓因等 無量諸天大衆俱

여여시등제대보살 급석제환인등 무량제천대중구


사리불:부처님10대제자 가운데 지혜제일(사리자),목련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

목건련:10대제자 신통제일

가섭:10대제자 두타제일(頭陀第一) 삼처전심의 주인공

가전연:10대제자 논의제일(論議第一)

구치라:문답제일(問答第一),사리불의 외삼촌 변재가 뛰어남

리바다:일찍이 큰비를 만나 神祠(신사)에 피신중 귀신들이 서로 송장을 제것이라고

 다투는 것을 보고 사람의 몸이 가짜로 화합된 것임을 깨닫고 부처님께 출가함.

주리반타가:형(반타가)이 먼저 출가후 늦게 부처님 제자가 됨

 가장 우둔 하였으나 부처님 가피와 노력으로 아라한이 됨

난타:부처님의 이복동생,아내(손타라)의 미모에 끌려 출가를 꺼려하자 부처님이 방편을 써

 출가시킴

아난타:부처님의 사촌동생(아난다),다문제일(多聞第一)

라후라:10대제자,부처님의 아들(장애라는뜻),밀행제일(密行第一),사미의 시초

교범바제:해율제일(解律第一)

빈두로파라타:16나한의 한사람,빈두로는 이름이고 파라타는 성으로 흰머리와 길다란

 눈썹을 가진 나한, 부처님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 중생을 제도하여

 대복전(大福田)이 되었으므로 주세(住世)아라한이라 한다.

가류타이:흑요(黑曜),흑광(黑光)이라번역,살갗이 검고 빛나므로 이같이 이름.

 나쁜짓이 많은 비구였는데 부처님께서는 그 나쁜짓에 따라 여러 가지 계율을

 마련하였음.

겁빈나:지성수제일(知星宿第一),천문 역수에 능통하다.

박구라:장수제일(長壽第一) 어릴때 계모의 손에 5번 죽을 고비를 넘겨 160세를 살다.

 한번도 병을 앓은 적 없으며 얼굴과 몸매가 단정하였다.

 항상 사람을 피하며 한적한 곳에서 정진하였다.

아누루타:10대제자 천안제일,누(小兎:합성자)

문수사리법왕자:바른손에는 지혜의칼,왼손에는 청련화를 쥐고 있으며 사자를 타고 있는 것은

 위엄과 용맹을 나타냄.법왕자(보살) 법왕(붓다).

아일다보살:무능성(無能勝) 미륵보살의字 가장 승하다.

건타하제보살:건타하주보살 향상(香象)보살이라 번역함, 현겁16존의 한분,밀호(密號)대력금강,호계금강.

상정진보살:항상 정진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

석제환인:제석천을 말하며 능천주(能天主)라 함


佛土依正分 第二

불토의정분 제이


爾時 佛告長老舍利弗 從是西方過十萬億佛土 有世界

이시 불고장노사리불 종시서방과십만억불토 유세계

名曰極樂 其土有佛 號阿彌陀 今現在說法

명왈극락 기토유불 호아미타 금현재설법


붓다의 본성:누군가가 붓다를 갈구할 때 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모든 중생들을 도우려는 붓다의 무한한 자비심 때문이다.

붓다의18不共法(부처님에게만 있다):대비심,十力(여실히 모든 것을 아는 힘),四無畏(사무외,모든것에 두려움이 없다)

 三念住(삼염주,중생들의 마음이나 행위에 흔들림 없이 항상 바른마음과 바른지혜에 안주함)

원심장엄(願心莊嚴):이마음이 근본이 되어 선근 공덕을 쌓아 붓다나 보살이 되며 원심에 의해 청정하게 장엄된

 정토라고 하는 세계가 나온다.

천친(세친):천친은 “저세계의 모습을 관찰하니 삼계의 도를 초월하도다”라하여 극락세계의 수승함을 강조했다.

 이본질은 청정한 것이며 삼계와 같이 생사를 되풀이하는 윤회의 세계가 아니고 한량없는 수명과

 한량없는 지혜광명을 누리는 세계이다.

墮願十方往生經(타원시방왕생경):시방정토는 모두 우열의 차이가 없고 원에 따라 각각의 정토에 왕생할수 있지만

 그중에 특히 서방 아미타불의 정토는 마음이 산란한 無志(무지)의 사람을 위해 설하고 있다 한다.

悲華經(비화경)에서는:석가불은 정진의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의 彼土(타방정토)성불에 대해 釋尊(석존)의 穢土(예토)에서의 성불을 숭앙하고 있다.

 정토로 가서 성불하든지 이사바세계에서 성불할 것인지는 자신의 문제이지 부처님은 모든 길을


 열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자타력이나 易行,難行이든 서로의 우열은 없다 왜냐하면 보임이적으면 가림이 큰 것이다. 큰불법의 대의에서는 그 深底(심저)의 본의를 측량하기 어렵다.


寶樹池蓮分 第三

보수지연분 제삼


舍利弗 彼土何故 名爲極樂 其國衆生 無有衆苦

사리불 피토하고 명위극락 기국중생 무유중고

但受諸樂 故名極樂

단수제락 고명극락

又舍利佛 極樂國土 七衆欄楯 七衆羅網 七衆行樹

우사리불 극락국토 칠중난순 칠중라망 칠중행수

皆是四寶 周匝圍繞 是故彼國 名爲極樂

개시사보 주잡위요 시고피국 명위극락

又舍利佛 極樂國土 有七寶池 八功德水 充滿其中

우사리불 극락국토 유칠보지 팔공덕수 충만기중

地底 純以金沙 布地 四邊階道 金銀 琉璃 玻瓈 合成

지저 순이금사 포지 사변계도 금은 유리 파려 합성

上有 樓閣 亦以金銀 琉璃 玻瓈 자거 赤珠 瑪瑙 而嚴飾之

상유 누각 역이금은 유리 파려 자거 적주 마노 이엄식지

池中蓮華 大如車輪 靑色靑光 黃色黃光 赤色赤光 白色白光 微妙香潔

지중연화 대여거륜 청색청광 황색황광 적색적광 백색백광 미묘향결

舍利弗 極樂國土 成就如是功德莊嚴

사리불 극락국토 성취여시공덕장엄


曇鸞(담란)대사는:무량수경 서문에서 법장보살이 세자제왕불 처소에 있을때 이때의 지위를 聖種性(성종성)이라 한다.

성종성위에 있는 등각,묘각은 10지보살 위에 있는 것으로 성종성이 10지보살의 지위임을 알 수있다 한다.

정토를 이룩 한 것은 법장보살이 성종성 지위에 있으면서 48원을 세워 수없이 오랜 세월동안 수행하여 완성하고 성불하였다.

본원(48원)중에 정토왕생인 누구나 아비발치(불퇴전)를 얻으므로 이는 초지,8지에 버금간다.

 法性生身은 이미 진여를 증득 삼계에서 생사윤회하는 몸을 버리고 태어남도 죽지도 않는 몸을 가지고 수없이 변화할 수 있는몸 즉 不思議變身(부사의변신)을 얻은 초지 이상의 보살을 말한다.

여기서 성종성의 자리는 진여를 증득한 佛智에 이른 위로서 無垢(무구)청정하다.

이와같이 법장비구는 無爲의 방편으로 정토를 장엄엄식 하였으므로 그 국토는 생사를 초월한 자리다.

팔공덕수:맑고 시원하여 마시거나 목욕하면 모든 번뇌와 피로함이 사라지고 원기 왕성해진다. 연못 한가운데 여의주에서 흘러 나오는 팔공덕수는 14갈래로 나눠 갈래마다 칠보빛을 띄고 황금의 개천을 이룬다. 개천바닥에는 눈부신 금강석이 깔리고 못가운데는 육십억의 칠보 연꽃이 있으며 연꽃마다 둥근데 그 크기가 12유순이나 된다.

흐르는 물소리가 苦 空 無常 無我을 말하며 여의주에서는 금빛광채가 나오고 그 광채는 100가지 보석의 빛깔을 가진 새로 변한다

새우는 소리는 너무 아름다워 항상 불 법 승을 생각게 한다.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생을 이어 가면서 극락국토를 염원하거나 선업을 닦아 정토왕생을 회향할 때 정토 연못에 자라는 자기 연꽃은 무럭 무럭 자라 임종명종시 아미타부처님과 여러 성중의 영접속에 금연화대를 타자 곧 연꽃속에 화생하여 극락국의 주민이 되어 불퇴전의 위를 얻을 수 있다.

無有衆苦(무유중고)但受諸樂(단수제락): 정토에서 예토에의 고통이나 험난한 일은 있을수 없다. 다만 싫증나지 않는 즐거움을 누린다 제6욕천(타화자제천)기쁨 보다 수승하다.

타화천인 들은 욕망의 즐거움의 최절정에 있으며 아래 천들의 즐거움을 자기 것으로 한다.

정토의 즐거움은 집착과 욕망을 떠난 진리 속에서의 기쁨이라고 한다.


天人供養分 第四

천인공양분 제사


又舍利弗 彼佛國土 常作天樂 黃金爲地

우사리불 피불국토 상작천락 황금위지

晝夜六時雨天曼陀羅華

주야육시우천만다라화

其土衆生 常以淸旦

기토중생 상이청단

各以衣극 盛衆妙華 供養他方 十萬億佛

각이의극 성중묘화 공양타방 십만억불

卽以食時 還到本國 飯食經行

즉이식시 환도본국 반사경행

舍利弗 極樂國土

사리불 극락국토

成就如是功德莊嚴

성취여시공덕장엄


대승불교를 대성한 인도의 세친도 그의저술 “정토론”에서 첫머리에 “세존이시여 나는 一心으로 盡十方 무애광여래께 귀의하여 안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하여 놀랍게도 초지 보살의 경지까지 올랐다고 하는 세친도 이미 2천년 전에 극락왕생을 원하였던 것이다.


彼佛國土 常作天樂(피불국토 상작천락):극락세계의 보리수(도량수)는 그높이가 4백만리이고 밑둘래는 오십유순이며 온갖 보석으로 이루어 졌다.

바람에 따라 아름다운 음성이 흘러 나와 심오한 묘법을 연설하고 그소리가 모든 불국토에 퍼지게 된다.

그아름다운 소리를 듣거나 나무의 빛을 보거나 향기를 맡거나 맛을 보거나 그 광명이 몸에 비치거나 마음으로 그런일을 생각하는 중생들은 모두 불퇴전의 지위에 오른다.

이와같이 소리와 향기를 듣거나 맡는 사람은 번뇌가 저절로 사라지고 심신이 상쾌해진다.

그것은 마치 수행자가 생각을 쉬어버리고 滅盡定(멸진정)에 들었을 때와 같다.


供養他方 十萬億佛(공양타방 십만억불):관무량수경에는 “염불하는 이는 모든 사람가운데 향기로운 연꽃(分陀利華:백련화)이니라”하셨다.

이와같이 부처님을 념하는 데도 그 공덕이 무량한데 하물며 직접 뵙고 예배,공양,찬탄하므로 부처님의 가피로 성불이 빠르다 할 것이다.


還到本國 飯食經行(환도본국 반사경행):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온갖 음식들이 저절로 차려지고 다만 그 빛깔을 향기를 맡음으로써 먹고 싶은 생각이 다스려지고 심신이 함께 부드러워져 맛에 대한 집착이 없다.

이러한 식사가 끝나면 그릇과 음식이 저절로 치워진다.

이 불국토는 이와같이 청정안온하고 말할 수 없이 즐거운 곳이다.

단순한 형상을 초월하여 상주불변한 열반의 경지이다.


禽樹演法分 第五

금수연법분 제오


復次 舍利弗

부차 사리불

彼國 常有種種奇妙 雜色之鳥

피국 상유종종기묘 잡색지조

白鶴 孔雀 鸚鵡 舍利 迦陵頻伽 共命之鳥 是諸衆鳥

백학 공작 앵무 사리 가릉빈가 공명지조 시제중조

晝夜六時 出和雅音 其音演暢

주야육시 출화아음 기음연창

五根 五力 七菩提分 八聖道分 如是等法

오근 오력 칠보리분 팔성도분 여시등법

其土衆生 聞是音以 皆悉 念佛 念法 念僧

기토중새 문시음이 개실 염불 염법 염승

舍利弗 汝勿謂此鳥 實是罪報所生 所以者何

사리불 여물위차조 실시죄보소생 소이자하

彼佛國土 無三惡道 其佛國土 尙無惡道之名 何況有實

피불국토 무삼악도 기불국토 상무악도지명 하황유실

是諸衆鳥 皆是阿彌陀佛 欲令法音宣流 變化所作

시제중조 개시아미타불 욕령법음선류 변화소작

舍利弗 彼佛國土 微風吹動 諸寶行樹 及寶羅網 出微妙音

사리불 피불국토 미풍취동 제보행수 급보라망 출미묘음

譬如百千種樂 同時俱作

비여백천종락 동시구작

聞是音者 自然皆生 念佛 念法 念僧

문시음자 자연개생 염불 염법 염승

舍利弗 其佛國土 成就如是功德莊嚴

사리불 기불국토 성취여시공덕장엄


아미타불의 키(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

60만억 x 천억(나유타) x 갠지스강의 모래수(항하사) x 40리(16키로.유순)

彼佛國土 淸淨安穩 微妙快樂 次於無爲 泥恒之道

피불국토 청정안온 미묘쾌락 차어무위 니항지도

(그들은 모두 생멸이 없는 법신과 그지없는 즐거운 몸을 가지게 됐다)

이와같이 무량수경에서 왕생자의 몸을 말하고 있다.

아미타 부처님은 報身(보신)으로서 무명에 의해 지어진 육신일 수 없다.

법신의 상징으로 오랜 수행과 원력으로 방편적으로 10류에게 보여지는 공적한 신체로 상정할수 있다.


오근:번뇌를 누르고 聖道(성도)로 이끄는 다섯가지의 근원.(信根,進根,念根,定根,慧根)


오력:불도 수행에 필요한 기초적인 다섯가지 힘.(信力,進力,念力,定力,慧力)


칠보리분(칠각지,칠각분):불교 수행에 있어 眞假(진가)와 선악을 가리는 7가지 지혜(택법각분,정진각분,喜각분,除각분,捨각분,定각분,念각분)


팔성도분(팔정도):正見 正思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열반의 이상향에 이르기 위하여 닦는 37종의 道行.(四念處 四正勤 四如意足 五根 五力 七覺分 八正道)


皆是阿彌陀佛 欲令法音宣流 變化所作(개시아미타불 욕령법음선류 변화소작):

극락정토에서 누리는 행복감은 정토 보살 모두를 성불시키기 위한 원력과 자비심의 발로이다.

사실은 모두가 끝없이 배우고 익히고 수행,정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佛德無量分 諸六

불덕무량분 제육


舍利弗 於汝意云何 彼佛 何故 號阿彌陀

사리불 어여의운하 피불 하고 호아미타

舍利弗 彼佛光名 無量 照十方國

사리불 피불광명 무량 조시방국

無所障碍 是故 號爲 阿彌陀

무소장애 시고 호위 아미타

又舍利弗 彼佛壽命 及其人民 無量無邊

우사리불 피불수명 급기인민 무량무변

阿僧祗劫 故名阿彌陀 舍利弗

아승지겁 고명아미타 사리불

阿彌陀佛 成佛以來 於今十劫

아미타불 성불이래 어금십급

又舍利弗 彼佛有無量無邊聲聞弟子 皆阿羅漢 非是算數 之所能知

우사리불 피국유무량무변성문제자 개아라한 비시산수 지소능지

諸菩薩衆 亦復如是 舍利弗

제보살중 역부여시 사리불

彼佛國土 成就如是功德莊嚴

피불국토 성취여시공덕장엄


彼佛光明 無所障碍 號爲 阿彌陀

피불광명 무소장애 호위 아미타

彼佛壽命 無量無邊 故名阿彌陀

피불수명 무량무변 고명아미타 : 부처님의 광명이 시방세계를 장애없이 비추어 모두를 제도할 수 있으며 그 수명이 끝이 없어 상적의 진여이고, 국토의 보살,성문등 거주자의 수명과 수량을 계산할 수 없음으로 그 국토의 장엄이 측량과 한계를 초월한 무위의 진리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아미타불이라고 명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미타불 명호와 극락정토가 하나로 일치 통합 수렴됨을 짐작할 수 있다.

법장비구의 대자비의 원력이 어떻게 발현되느냐는 두 보살의 사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무량수경에서 정토보살로 관음,세지 두보살은 가장 뛰어나 그 광명은 삼천대천세계를 비춘다고 하였으며 이 두보살은 일찍이 이 사바세계에서 보살행을 닦다가 목숨이 다하자 몸을 바꾸어 저 불국토(극락)에 태어난 것이다.(是二菩薩 於此國土 修菩薩行 命終轉化 生彼國土)

관음,세지 두 보살은 이 사바세계에서 정토에 왕생한 최초의 인간이라 한다.

여기서 관세음 보살은 耳根圓通(이근원통)으로 득도 성불하여 관세음이라고 명호만 부러면 어디라도 달려가 중생들을 구해주고 보살펴 주시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아미타불께서 본원으로써 성취와 완성의 의미 가운데 명호가 주류이며 최종적이라 할 수 있다.

제17원 시방의 제불이 아미타불의 이름을 모두 칭찬,찬양함이 끝이 없다.(제불칭찬원)

명호가 찬양 될 때에는 아미타불은 이미 명호라는 구체적인 말의 형태로서 중생에게 인식되어 구제 작용이 일어난다.

나무아미타불이라 부르면 부처님에게 절대적으로 귀의한다는 신심을 표명한다는 뜻이 되므로 왕생의 원이 이루어진다(제불의 증명)


제18원 十念往生願(십념왕생원)

設我得佛 十方衆生 欲生我國 乃至十念

설아득불 시방중생 욕생아국 내지십념

若不生者 不取正覺 唯除五逆 誹謗正法

약불생자 불취정각 유제오역 비방정법

: 본원중 十八원으로 원력이 성취되고 둥굴고 원만한 정토의 면모가 이룩되었다 볼 수 있다.

이러한 장엄에는 佛장엄 菩薩장엄 國土장엄으로 부처님의 한량 무변한 불가사의 능력과 주민들의 받는 이득과 보살도의 수행과 성취의 필연성, 국토의 불가변과 영원함, 진리에 근원한 유연성의 방편적 구조와 사물이 서로 유기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로 구성되고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이러한 모든 것들은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울부짖는(많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래 번민과 고뇌와 걱정,불안 속에서 삶을 유지하다가 돌발적 사고나 회복 불능의 병환, 죽음의 방문에 혼비백산하여 한탄하거나 절규하며 또는 비장한 절망속에 빠진다) 불쌍한 중생들을 저 안락의 안양국으로 건져올려 구제 함으로 인하여 성립되어 지며 의미가 부여돤다.

그러므로 이 十八원은 죄악 중생인 보통의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목숨줄이나 다름 없다.

글자 그대로 본다면 열 번 나무아미타불 하고 부르거나 외치거나 생각하면 저 국토에 왕생할 수 있는데 이 원이 애초부터 없다고 한다면 千에 한명 萬에 한명도 정토에 이를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욕생아국 내지십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무량수경에서 석가세존께서 간절한 당부의 말씀을 하셨음을 잊을 수는 없다.

佛告 彌勒菩薩 諸天人等 ‘’‘又其國土 微妙安樂 淸淨若此

불고 미륵보살 제천인천 ‘’‘우기국토 미묘안락 청정약차

何不力爲善 念度之自然 着於無上下‘’‘易往而無人 其國 不逆違

불가력위선 염도지자연 착어무상하‘’‘이왕이무인 기국 불역위

自然之所牽 何不棄世事 勤行求道德 可獲極樂生 壽樂無有極

자연지소견 하불기세사 근행구도덕 가획극락생 수락무유극


부처님은 미륵보살과 하늘사람과 여러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극락국토가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하여 청정하다는 것은 말한 바와 같으니 왜 사람들은 착한 업을 닦아

안양국에 태어나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도리를 믿지 않는가?“”

그리고 부처님의 자비가 높고 낮은 귀천의 구별없이 두루 펼쳐 짐을 모르는 것일까“”“

참으로 극락국토에 태어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는 사람이 없다.

그극락 국토는 어김없이 신심있는 이를 맞아드리고 그들은 부처님의 원력으로 왕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째서 세상의 허망한 일을 버리고 깨달음의 길에 이르려고 하지 않는가?“”

극락국토에 태어나면 한량없는 생명을 얻어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될터인데“”“


이제 乃至十念(내지십념)은 포괄적의미로 모든 중생이나 天,聖賢(성현),보살들에게 넓게 적용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사바세계에 한정 할때,(上 中 下로 나눌 수 있다)

乃至는 形壽(형수)를 다하여 한결같이 부처님을 전념하면서 한편 무상 보리심을 발하며 수행 공덕에 일생을

바쳐 정토왕생을 발원한다.(上의 사람) ; 무량수경

其有至心 願生彼國“”“發菩提心 一向專心 無量壽佛

기유지심 원생피국“”“발보리심 일향전심 무량수불

修諸功德 願生彼國 此等衆生 臨壽終時 無量壽佛 與諸大衆

수제공덕 원생피국 차등중생 임수종시 무량수불 여제대중

現其人前 卽隨彼佛 往生其國

현기인전 즉수피불 왕생기국

; 상배왕생은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정토왕생의 마음을 일으커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고 또한

많은 공덕이 있는 선근을 쌓아 이것을 회향해서 정토에 왕생하고저 하는 이들이다.

이 사람의 임종시 아미타 부처님은 정토의 많은 성중들과 함께 그사람을 맞이 하러 오신다.

; 마찬가지로 관무량수경의 상품상생은 중생이 저국토에 태어나고저 원하면 세가지 마음을 일으켜서 곧

왕생하는 것이니라.

첫째는 지성심 둘째는 심심 셋째는 회향발원심이다.

이 세가지 마음을 구족한 사람은 반드시 저 국토에 태어나게 되느니라

(上品上生者“”“發三種心 卽便往生 何等爲三 一者至誠心 二者深心 三者廻向發願心

 具三心者 必生彼國)

; 또 세종류의 중생이 있어 상품상생 할수 있는데 첫째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고 모든 계를 지키는

 것이고 둘째는 대승방등경전을 독송하는 것이며 셋째는 육념(佛 法 僧 戒 捨 天을 생각하는 것)을 수행해서 이것을

 회향 발원하여 저 국토에 태어 나고자 원하는 것이다.

 이 공덕을 갖추어 하루 내지 7일동안 하면 왕생한다.

(復有三種衆生 當得往生 何等爲三 一者慈悲不殺 二者讀誦大乘方等經典 三者修行六念 廻向發願願生彼國

 具此功德 一日乃至七日 卽得往生)

여기서 무량수경의 上輩왕생과 관무량수경의 상품왕생은 평생을 통하여 오랜시간 동안 念佛과 수행 공덕을 회향하여

성취됨을 알 수 있다.(여기서의 乃至는 평생 수행의 의미가 있다)


往生發願分 第七

왕생발원분 제칠


又舍利弗 極樂國土

우사리불 극락국토

衆生生者 皆是阿鞞跋致

중생생자 개시아비발치

其中 多有一生補處 其數甚多

기중 다유일생보처 기수심다

非是算數 所能知之

비시산수 소능지지

但可以無量無邊阿僧祗劫說

단가이무량무변아승지겁설

舍利弗 衆生聞者 應當發願 願生彼國

사리불 중생문자 응당발원 원생피국

得與如是諸上善人 俱會一處

득여여시제상선인 구회일처


아미타경8분의 약유선남자선여인 문설아미타불 집지명호 若一日 若二日 若三日‘’‘若七日

일심불란‘’‘즉득왕생에서...

하루에서 일주일을 어림 잡고 일심으로 산란하지 않으면 바야흐로 왕생한다( 中의 사람 )

며칠동안 염불이 끓김없이 지속 될 수 있는 사람은 일생을 살아 가면서 경전공부나 수행 정진이나

지계에 노력을 많이 했으나 평생을 흐트러짐이 없이 오로지 용맹 정진한 상근기의 높은 수행자에는 비록

미치지는 못하나 틈만 있으면 야욕과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할짓 못할 짓 다해온 죄악 범부에 비하면

훌륭하고 높은 중근기의 사람에 해당된다 할수 있다.(여기서 乃至는 중근기의 수행을 말한다)

中의 사람에는 무량수경 중배와 관무량수경의 중품하생을 열람할 필요가 있다.

無量壽經 中輩者

佛告阿難 其中輩者 十方世界 諸天人民 其有至心 願生彼國

불고아난 기중배자 시방세계 제천인민 기유지심 원생피국

雖不能行作沙門大修功德 當發無上 菩提之心 一向專念 無量壽佛

수불능행작사문대수공덕 당발무상 보리지심 일향전념 무량수불

多少修善 奉持齊戒 起立塔像“”“以此廻向 願生彼國 其人臨終

다소수선 봉지제계 기립탑상“”“이차회향 원생피국 기인임종

無量壽佛 化現其身“”“現其人前 卽隨化佛 往生其國 住不退轉

무량수불 화현기신“”“현기인전 즉수화불 왕생기국 주불퇴전

아난아 중배자란 시방세계 모든 사람들과 천인들이 일념으로 저 극락국토에 태어나고저 원을 세우고 비록 출가하여 큰 공덕을

닦지 못하더라도 위없는 보리심을 내어 오로지 일심으로 무량수불을 염해야 한다.

다소 선을 닦고 계율을 받들어 지니며 탑을 세우고“”“

이렇게 회향해서 저 국토에 태어나려고 원하면 임종시에 화신 무량수불이 모든 대중과 함께 나타나 부처님을 따라

그 국토에 왕생해 불퇴전의 자리에 머물게 되나니“”“

관무량수경 중품하생

中品下生者 若有善男子善女人 孝養父母 行世仁慈

중품하생자 약유선남자선여인 효양부모 행세인자

此人 命欲終時 遇善知識 爲其廣說 阿彌陀佛 國土樂事

차인 임욕종시 우선지식 위기광설 아미타불 국토낙사

亦說法藏比丘 四十八願 聞此事已 尋卽命終 譬如壯士

역설법장비구 사십팔원 문차사이 심즉명종 비여장사

屈伸臂頃 卽生西方 極樂世界

굴신비경 즉생서방 극락세계

중품하생자란 선남자 선여인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세상의 어진것과 자비를 행하는 것이니라,

이사람이 목숨을 마치려 할때 선지식이 그를 위해 널리 아미타불 국토의 즐거운 일을 설하고

또 법장비구의 48원에 대한 설법을 듣고 나서 목숨을 마치면 힘센 장사가 팔을 한번 굽혔다

펴는 사이에 서방극락에 태어 나게 되느니라“”“


여기서 무량수경 중배자는 정토의 원을 세우고 보리심을 발하여 일심으로 염불에 전념하거나

다소 선과 공덕을 닦아 이렇게 회향하여 왕생의 원을 세우게 되면 임종시에 화신 부처님이

여러 대중과 마중 나오시어 바로 저국토에 태어 나게 돤다.

관무량수경 중품하생은 비불자로서 세상의 훌륭한 선행을 하여 이사람이 임종시 아미타불과

부처님의 본원을 듣고 그 국토를 갈망하게 되면 세상에서 행한 上善의 공덕으로 왕생하게 된다.

이를 보면 처음부터 무량수불 염불에 전력하거나 또는 사바세계에서 큰 선행을 쌓거나 수행을

열심히 하여 정토를 원할 때 태어 날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는 공덕이 뛰어 남을 알수 있다.

제17원의 제불 칭찬원과 제18원 십념 왕생원은 부처님의 중생들을 위한 대자대비의 비원 임을

염불 행자들은 명심할 것을 역대 정토 사조들은 강조 하셨다.


무량수경에서는 왕생할 수 있는 방법을 두가지로 나누고 있다.

염불 수행과 三輩(삼배)에 따르는 수행을 통하여 왕생할 수 있다.

(諸有衆生 聞其名號 信心歡喜 乃至一念 至心回向 願生彼國 卽得往生)

(제유중생 문기명호 신심환희 내지일념 지심회향 원생피국 즉득왕생)

: 모든 중생이 무량수불의 이름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신심을 내어 한 생각이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저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무량수불의 원력으로 곧 바로 왕생한다.

이와같이 염불을 오로지 할 것을 강조한다( 正定行) 염불 수행은 왕생업의 본원인 것이다.

독송 관찰 예배 찬탄등의 수행은 助業(조업),잡행이라 하여

잡행을 닦는 사람은 그 공덕을 정토 왕생을 위하여 회향하지 않으면 왕생행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잡행은

회향을 필요로 한다.

이처럼 선도대사는 칭명정행을 가지고 佛願(불원)에 따르는 행으로 正業이라 이름하고 관찰행은 助業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慈愍 慧日(자민 혜일,AD680-748)대사의

인도 여행중 健馱羅國(건타라국)에서 일어난 일이 기록으로 전해진다.

王城(왕성)의 동쪽에 하나의 큰산이 있고,산에는 관음보살상이 있었으나 뜻을 정성껏하여 기도하면 많은 몸을

나타냄을 얻는다.

혜일이 드디어 칠일간 머리를 조아려 정성스럽게 하였으며 또 단식하고 신명을 다할 것을 기약하였다.

7일이 지난밤 밤이 아직 절반이 지나지 않았을때 관음보살이 공중에서 자금색의 모습을 나타내시었는데

높이가 一丈餘(일장여)의 寶蓮華(보연화)에 앉아 오른손으로 혜일의 이마를 만지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법을 전해 자리이타를 바란다면 서방정토 극락세계을 권하노니,염불하고 송경하여 정토에 회향하라

저 국토에 이러고 나서 부처님과 나를 보면 큰이익을 얻을 것이다.

너 스스로 마땅히 알아서 하라“”“

정토 법문은 모든 수행 가운데 가장 수승한 것이다.“ 고 설하고 사라지셨다

자민의 [약제경론 염불법문 왕생정토집]에서

염불하기 위해서 위로는 일생을 다하고 아래로는 십념을 다하여 서라도 모두 다 왕생할 수 있다.

(上盡 一形 下至十聲一聲)

이 보리와 열반을 증득하는 수행중에서 염불에 대한 자민대사의 견해를 보면 [정토오회 염불 송경광행의]에서

“보살의 묘행이 비록 무량하지만 마땅히 알라, 염불이 가장 우선이 된다.

이 인연을 입어 정토에 태어나면 곧 세존앞에 이른다“고 하였다.


다시 南嶽 承遠(남악 승원,AD723-802)의 사례에서

승원대사의 저서는 한가지도 전해지지 얺고 있다.

승원은 자민스님을 만나 정토법을 배운후로부터 갑자기 모든 인연을 끓고 오로지 정토에 귀의하였고

天寶元年(천보원년AD742) 衡山(형산)에 돌아와 산의 서남쪽에 정사를 세워 그것을 미타대(彌陀臺)라고 부르고

조촐하게 경전과 불상을 안치하고 맛없는 음식과 거친옷을 입고 고통을 참아 가면서 수도에만 전념하여 마침내

삼매를 얻고 항상 성인의 경계를 감득하였다고 한다.

그때 法照(법조)대사는 廬山(여산)에 머물면서 수행하든 도중 어느하루 定에 들어가 극락세계에 가서 더러운 옷을

입은 승려가 부처님을 모시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묻자 부처님이 南岳(남악)의 승원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바로 형산에 가서 승원을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모치쯔끼 신코박사가 인용한 예로

眞福寺本 戒珠傳卷中에서는 相州(하남성 임장현)의 日光寺 道鏡(도경)에 대한 전기가 열거 되기를

도경은 띠로 지붕을 이어서 암자로 삼고, 꽃을 따서 몸을 따뜻하게 하였으며, 오로지 염불삼매를 수행하였고,

더욱이 십만억 아미타 불상을 그리려고 하였으나 일생동안 원하는 바를 채우지 못할까 우려하여 이에 판화를 만들어

향을 사르고 이를 인쇄하는데 주야를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하였다.

이미 일만억이나 되는 불상을 인쇄하였을 때는 향연기 가운데서 환상과 같은 化佛(화불)을 보았고 오만억에 이르러서는

거의 비슷한 부처님의 色相을 보았고, 6만억이 지나서는 몸의 모습을 분명하게 보았고, 8만억에 지나서는 化佛(화불)이

미소지으며 말씀하셨으며, 10만억에 도달하였을 때는 화불께서 너는 왕생업을 이미 성취하였으니 너는 오래지 않아

나의 정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알리신 것을 감득하였다.

이어서 도경은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여도 왕생할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부처님은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그는 그후 6년이 지나 입적하였다.“” 라고 되어있다.


담연은

열반사상을 宗으로 하였으며 북주시대 國統(국통)으로 임명되었었다.

그는 평생 서방왕생을 원하였고 말을 안할때는 항상 생각을 정토에 몰입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당시에 대단히 명성이 있었다.


병주 흥국사의 한 왕래도량의 壽洪(수홍)

수홍은 평생동안 마음을 몰입하여 부처님을 친견하려고 하는 업을 지어 아미타불을 뵙기를

기약하였다.

그러나 임종시에 도솔천 남녀가 와서 가사를 잡고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그는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이를 거부하였다.

그때에 곁에 대중들이 아미타부처님을 염하자 홀연히 서방으로부터 화신 불보살이 내영한

것임을 그는 대중에게 알리고 임종했다고 전한다.


[속고승전]제16에 道珍(도진)은

양나라초 여산에 살면서 항상 정토의 업을 닦았다,

꿈에 아미타불국으로 향해 출발하려는 배를 보고 승선을 구했지만 아미타경을 독송하지

않고 목욕재계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당했다.

그후 그는 아미타경을 독송하여 드디어 상스러운 감화를 받고 왕생을 이루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아미타경 부사의 신력전] 및 돈황에서 출토된 당나라 개원 16년에 서사한

아미타경후기 에도 기재되어 있다.


靜靄(정애)는

榮陽(영양,하남성 영양현) 사람으로 景法師(경법사)에게 대지도론을 듣고 오로지 四論을

宗으로 하였다.

건덕3년(ad574) 파불의 단행을 겪게 되는 太一山에 숨어 살면서 세상에 사는 것도

이로움이 없다고 하였다.

그는 이어서 [삼보집] 20권을 찬술하였고 북주 선정 원년

건덕3년(ad578) 7월 유서의 게송을 석벽에 새기고 마침내 45세로 자결하였다.

[속고승전] 제23에 그유서의 게송을 수록하고 있는데그 가운데에 “이 더러운 형상을

버리고 서방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일념의 연꽃이 피는 아미타불 처소에서 속히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과 현성들을 뵙고

오랜 세월동안 받아온 3악도를 버리며 正道가 결정되어 5신통을 얻어 자유자재로 비행하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법을 듣고 무생법인을 증득하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이있다.

이것에 의하면 그도 역시 열심히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태 지의대사

양나라 대동4년(ad538생)

ad560년 혜사를 뵙고 보현 도량에 들어가 법화 삼매를 깨달았다.

지덕3년(ad585) 왕의 명령을 받고 금릉으로 다시와 대지도론과 인왕반야경등을 강의하였다. 개황 7년(ad597) 11월에 산동 石城山(석성산)에서 60세로 입적하였다. (18세출가)

지의대사는 깊이 아미타불을 믿고 반주상행삼매법을 수행하였다.

[지자대사 별전]에 의하면

지의는 임종때에 서방을 향하여 누워서 오로지 아미타불,반야바라밀,관세음보살등의 명호를

부르고, 그리고 나서 최후의 聞修行(문수행)과 思修行(사수행)을 하기 위하여 법화경, 무량수경등 두경의 제목을 부르게 하여 무량수불을 듣고 나서‘’‘’‘

“48원으로 정토를 장엄한 보배연못, 보배나무가 있는 곳에 왕생하기는 쉬우나

간 사람이 없다.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들을 싣기 위해 옥졸들이 불타는 수레를 끌어와

다투어 나타나니 능히 참회하는 자는 왕생할 수 있다.

하물며 계정혜 삼학을 닦은 사람이야“”“”

도를 수행하는 힘은 실로 헛된 것이 아니고 범음의 소리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고 찬탄하였다.

또 많은 성중들은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모두 와서 맞이 하신다“ 고 말하였다 고 전하고 있다. 이것에 의하면 그는 정토를 믿고 서방에 왕생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得與如是諸上善人 俱會一處(득여여시제상선인 구회일처) ;

서방 정토에 왕생자는 최상의 사람과 성인 보살들과 함께 모여 안락하게 차별없이 평등한

삶을 누려 갈수 있다.

또한 5신통을 얻어 타화자재천왕보다 수승하며 보살의 큰힘을 얻게 된다.

이곳 정토를 원효대사(ad617-)의 유심안락도에 의하면

아미타불의 정토는 일승과 삼승에서 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설한 바의 지위 격이 다르다고

하였다.

만일 일승의 뜻에 의해 논하면 저 정토는 화장세계해(연화장세계)에 포섭되고 十佛의 국토로서 원융하여 가히 설할 수 없다고 하였다.(연화장세계는 노사나불이신 보신불의 지혜의 세계이므로 화엄법계가 펼쳐지므로 원효대사는 미칠수 없다고 하셨다)

만일 삼승의 뜻에 의해 논하면 법성토,실보토,수용토(자수용토,타수용토),변화토 네가지 국토로 나눈다.

법성토는 오직 二空의 無分別智(무분별지)를 인연으로 하여 법성의 진리를 증득.

화생한 중생에 대해서 말하면 법성토는 十地보살이 무분별지를 인연으로 하여 이를 나누어 증득하는 것을 生이라 이름한다.

그렇지만 아직 원만한 법성토를 증득할 수 없다.

이로서 미루어 보면 본각의 견지에서 불성을 말한다고 한다면 법성토는 순수하면서도 이념적이라 정토구성의 본질성이라 말할 수 있다.

자수용토는 오직 부처님의 경계이므로 십지보살도 태어 날 수가 없다.

이는 무상정등각자의 지혜와 능력을 말하고 나타내는 근원을 국토화 하고 정토화 했다고 볼수 있다.

타수용토는 십지보살이 후득지를 正因緣(정인연), 무분별지와 加行智(가행지)등을 助因으로 하여 태어 나므로 이는 법성의 본질적인 면에서는 벗어나거나 이탈하지 않고 동일성을 견지하고 있는 상태이나 타를 갖고 있으므로 그성질상 지혜와 방편,원력을 쓰고 있다고 볼수 있다.

실보토는 법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증득했으므로 생사윤회를 벗어나 무생법인이라 한다면

8地보살로서 부동지라면 불퇴전의 견고한 위치이나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 대자비심을 발해야 상향할 수 있다.

변화토는 초지이전의 범부는 가행지, 성문과 연각은 후득지를 正因緣으로 하여 태어난다.

이러한 변화토는 법의 성품이 변화되어 나타 났으며 가는 길에서 조금 벗어나 주막이나 여인숙 요즘 같으면 여관이나 호텔로서 쉬어 가는 국토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여러 국토를 정토로 하면 극락정토와 그대로는 일치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또 천태종에서 말한 4가지 국토를 보면 (범성동거토,방편유여토,실보무장애토,상적광토)

凡聖同居土(범성동거토)란 人天의 범부와 성문 연각등 성자가 함께 동거하는 국토

이곳은 범부세계와 천상인 들이 살므로 정토라 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정토란 비록 범부라

할지라도 왕생하면 정토인이 되므로 人天을 벗어 나게 된다.

方便有餘土(방편유여토)란 見惑(견혹),思惑(사혹)을 끓고 三界의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머무는 곳.

實報無障碍土(실보무장애토)란 중도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머무는 곳.

常寂光土(상적광토)란 진리를 체득하여 일체 번뇌를 끓는 등 참된 진리를 깨달은 사람,

즉 모든 여래가 머무르는 곳을 말한다.


唯心淨土(유심정토); 연수대사처럼 정토도 유심으로 나타났다 할때, 이때의 정토는 무위의

마음으로 생겼다하면 지금까지 열거한 거의 대부분의 국토가 유심정토에 적용될 수 있다.

그 범위가 포괄적이라 제대로 摘示(적시)되지 않는다.


극락정토는 정토경전에 의거하고 이 경들은 석가세존께서 친히 설하신 것이다.

또한 설하신 바의 내용을 굳게 신뢰한다는 전제하에서 미타신행과 정토왕생이 성립될 수

있다. 법계성품이 일체유심조이므로 믿지 않는 데에는 아미타불과 정토가 顯現(현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붓다는 법계자체이자 연화장세계이기 때문에 대자비심 외에는 마음을 거슬러 표출하지 않는다.


의상대사는

당나라 지엄에게 화엄의 敎旨(교지)를 받고 함행2년(ad671)에 귀국하여 부석사를 창건

ad703년에 入寂(입적)

해동 화엄의 시조로 불리어 짐

[조선 금석 총람]상권에 실린 부석사 원융국사 비에서 像殿(상전)안에 아미타불상만을 조성하여 모시고 좌우에 補處(보처)를 모시지 않았으며, 또 影塔(영탑)을 세우지 않았다.

제자가 그것을 물으니 의상대사가 말하기를 나의 스승인 지엄이 말씀하시기를 일승이신 아미타불은 열반에 드시지 않고 서방 정토로 체를 삼아 생멸하는 모습이 없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설하셨다.

혹 아미타불께서 관음보살에게 灌頂授記(관정수기)함을 본다면 모든 법계에 보처를 보궐하는 일이 가득할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하지 않아 빌때가 없기 때문에 보처를 세우지 않고 영탑도 세우지 않았다.

지엄선사가 이것을 의상에게 전하니 의상이 이법을 이어 國師(국사)에게 미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에 의하면 그는 지엄의 설을 계승하여 아미타불의 정토는 일승과 삼승에 의하여 지위의 격을 달리했다고 인정되며 華嚴別敎(화엄별교) 일승인 아미타 부처님은 생멸이 없기에 열반에 드시지 않고 시방정토를 그 체로 삼는다고 하였다.

이 취에 의해 보면 화엄사상을 선포한 도량인 부석사 큰법당안에는 오직 아미타 부처님 한분만을 안치해서 本尊(본존)으로 하고 관세음과 대세지등 보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미타불은 노사나불과 같은 체로 하고 극락정토를 화장세계 해에 포함시킨 것이다.

의상조사 법성게에서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법계의 성품이 붓다의 깨달음의 바다이다, 하나가 바로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로 뭉쳐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의 최소단위(일미)에 우주 전체가 포섭되고, 끝없이 펼쳐지는 방대한 사물과 존재와 허공이 하나의 적은 티끌속에 빨려들어 갈수 있고 또한 티끌하나의 양과 질과 성분에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 무상정등정각자의 해인삼매중 연화장세계는 쏟아지는 여의 자재는 불가사의하다).


修持正行分 第八

수지정행분 제팔


舍利弗 不可以少善根福德因緣 得生彼國

사리불 불가이소선근복덕인연 득생피국

舍利弗 若有善男子善女人 聞說阿彌陀佛 執持名號

사리불 약유선남자선여인 문설아미타불 집지명호

若一日 若二日 若三日 若四日 若五日 若六日 若七日

약일일 약이일 약삼일 약사일 약오일 약육일 약칠일

一心不亂 其人 臨命終時 阿彌陀佛 與諸聖衆 現在其前

일심불란 기인 임명종시 아미타불 여제성중 현재기전

是人終是 心不顚倒 卽得往生 阿彌陀佛 極樂國土

시인종시 심부전도 즉득왕생 아미타불 극락국토

舍利弗 我見是利 故說此言

사리불 아견시리 고설차언

若有衆生 聞是說者 應當發願 生彼國土

약유중생 문시설자 응당발원 생피국토


불가이소선근복덕인연 득생피국 ; 아미타경의 염불 특색은 평생동안 혹은 一日부터 七日동안 염불 수행하여 쌓은 공덕을 임종시에는 정토왕생에 회향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염불없이 제법 복덕을 쌓고 선행을 지었다하여도 정토왕생은 어림없다 할 수 있다.

사람이 생존시 지은 악업은 따지면 헤아려 짐작할 수 없다.

身口意(신구의)으로 나누어 분류해보면 선업과 선행은 악업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몸은 고사하고 지옥 아귀 축생 어디에 배당될지 짐작할 수 없다.

이처럼 염불로 정토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은 염불의 공덕이 지중함을 알 수 있다.


元照(원조)는 절강성 향헌사람(남산 율종 제16조)

南山一宗頓漸의 律儀를 연구

서방의 정토업을 수행함

그중 고려의 의천도 역시 멀리서와 보살계를 받았다. (大智律師 정화6년(ad1116) 9월 69세로 입적)

그는 처음에 처겸의 문하에서 배울때 큰원을 세워 항상 사바세계의 오탁악세에 태어나서 부처님 진리에 통달하여 대도사가 되어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에 들어가게 하려고 서원하였으나, 또 고승전(속전제7) 가운데 慧布(헤포)가

“정토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다, 12겁 동안 연꽃 중에 있으면서 즐거움을 받는 것보다 차라리 三途(삼도)의 고통스런 곳에 있으먼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을 읽고 크게 공조하였다.

그리하여 그 자신은 정토를 믿을 뜻이 없고 도리어 서방을 수행하는 사람을 경시하여 비방하였다,

그런후에 중병에 걸려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고 수척하여 정신과 견식이 미혹해서 죽은후 향할 곳을 알지 못하여 크게 번민하였다.

이어서 병이 차도가 있게 되니 이전의 잘못을 후회하고 의지하는 바는 크더라도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십의론에서 “초발심은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하였지만 모름지기 항상 부처님을 여의지 않기를 원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에 감화를 받아 이로부터 진력하여 평생동안 배운 것을 버리고 오로지 정토의 교만을 탐구하였으며 매번 사람들에게 태어나서는 계율을 지키고 죽어서 극락에 돌아가면 능히 일을 마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는 몸을 마칠 때까지 율과 염불등 두가지 문에 전념하였다고 전한다.


우리가 어떤 수행을 하던 진리에 대한 어느정도 확고한 신념과 지식, 뿐만아니라 지금까지 형성해온 이성의 판별력으로 우리가 향하고 있는 길을 반조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사바세계를 떠나 어떤 초월의 세상에 산다고 가정할 때 그곳이 망념과 상념이 초월된 곳이라면 우리의 알음 알이를 수정할 수 없게 된다.

이 사바세계가 바로 수행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개인의 의사와 결의가 효력이 발휘된다고 볼수 있다.

이와 같은 취지로 초월계를 바라 본다면 자기가 본 진리의 세계를 수정하거나 보완하려 할때는 현재의 위치에서는 불가능 할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간계가 유위의 세계든 무위의 세계든 혹은 판별할수 없는 초월의 세계이든 중대한 진로의 갈림길이 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관점이 정말이라면 초월된 존재라도 보충이나 수정이 필요시는 직접 본신이 사바세계로 현신 몸을 갖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직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어디를 가나 수많은 진리가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걱정없이 어떤 진리를 수행하더라도 결국에는 최고의 무상의 진리에 도달하고 만다는 것일까? ‘’‘’‘

그렇치 않으면 사바세계로 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현재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고 형성해온 것들은 우리 자신의 책임하에 우리의 주체적으로 달려왔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가 판별하는 망념도 이법의 삼매의 사유속에서는 진리의 빛이 지혜로 전환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다른면에서 이런 쓸데없는 면으로 물러나서

明,淸 대에 善男,善女들의 못배운 무지와 무식을 이용해 악행으로 몰아넣어 결국은 白蓮敎匪의 도당으로 전락된 전례가 있다.

즉 금강경의 一合相을 왜곡되게 부부의 일합상으로 하였고 福慧雙修설을 남여의 음행으로 해석하여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와같은 문제는 바른 앎과 지식과 지혜가 있다면 터무니없는 망설에 현혹되지는 앓을 것이며 자신을 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子元(자원)은

대체로 천태가의 설에 의한 것으로 따로 삿된 설이라고 크게 비난해야 할점은 없는 것 같으나 그런데 그는 생전에 이미 이단자로서 유배에 쳐해졌고 그후 사후 약70년 즉ad1237에 편찬된 종감의 [석문정통]가운데서 그 宗을 斥僞志(척위지)로 편집하였고 또 지반이 ad1269에편찬한 [불조통기]제54에서는 末尾火요 및 白雲宗(백운종)과 함께 이것을 事魔邪党(사마사당)부에 속한다고 하였다.

저 댁의 첩이 마녀가 되어 유혹하여 그무리에 들어가 修懺(수참)과 염불이란 이름으로 실로 간통등 더러움에 통하기 때문에 식견이 있는 사대부는 마땅히 금지하였다 고 하였다.

그리고 어리섞은 남자와 여자들이 미친 듯이 유혹하여 한마을에 모여서 그 거짓됨을 좋아하였다 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원(子元)의 행동에 어떤 불순한 것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죽은후 오래지 않아 그남은 당들 사이에 음란하고 더러운 해악이 심심잖게 일어났다.

그들 중에는 眞種妙義經(진종묘의경)이라는 위경을 지어 도교에서 말한 精氣神(정기신)을 가지고 불법승의 삼보에 배당하고 또 六門見性說(육문견성설)을 주창하여 즉 사람의 육신을 가지고 불체라고 하여 이몸에 三十六關(36관)과 七十二信이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 육신이 움직이면 어떤 사람이 오고, 어느 곳에 통증이 있으면 어떤 사건이 일어 나는줄 알수 있듯이 길흉화복을 모두다 먼저 알 수 있다고 하였다.

혹 향연기 속에서 길흉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하여 여러 가지 미신을 고취하였다.

또 불법 가운데 있는 萬法皆空說(만법개공설)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도 보리심을 방해하지 않으며 도둑질하고 음행을 행하는 것도 반야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금강반야경]의 一合相설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이것을 부부의 일합상이라고 하였으며 복혜쌍수설을 망녕되게 해석해서 남녀가 음행하는 것이 라고 하였다.

[반야심경]의 불생불멸이라는 말은 후손을 생산하지 않음을 不生이라 하며, 욕심을 끓지 않는 것을 不滅(불멸)의 뜻이라고 하였다.

ad1328,5월 백련종을 금단하는 詔書(조서)에서는 백련도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세를 한 사람들로 대개 사찰에 붙어있고 많은 남자와 부인이 모이는데 밤에만 모였고 낮에는 흩어졌으며 착한 일을 닦는다고 속여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유혹하였다.

無漏(무루)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하여 눈꼽과 콧물을 전부 먹는 것이 무루를 수행하는 것이라 하였다.

다시 秘精(비정)을 무루라 하고 넓게 음행의 더러운 짓을 행하며 심하게는 소변을 마시는 것을 趙州(조주)의 끽다라고 부르는 무리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후에 이무리를 선동하여 난동일으키는 자가 속출하였기 때문에 누차 금지되었다.

ad1281.3월 도창현의 賊社萬一(적사만일)등은 백련회라고 하여 난을 만들었다.

이에 칙명으로 금지하였으며 道藏經(도장경)을 소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白蓮敎匪(배련교비)의 시초이고 또 연종을 금지하여 막는 최초의 일이다.

다음은 무종 지대원년 5월에 백련종을 금하였으며, 그사당을 헐고 그무리들을 民籍(민적)에서 종으로 돌리게 하였다.

한산동의 아들 翰林兒를 옹립하여 황제라고 하여 그 세력이 일시에 창궐하여 극에 달했다.

후에 하남의 조경융 소주의 왕삼, 소홍유등이 모두 난을 일으컸고 청나라 인종때에 와서야 비로서 그 자취가 끓어지게 되었다.

그 무리는 모두 빨간 수건을 썼기 때뭉에 紅軍(홍군)또는 紅巾賊(홍건적)이라고 불렀다.

백련교비가 미륵하생을 부르짖으며 향을 사르고(香軍) 미륵에게 예배한 것은 저 종의 지도자의 우두머리가 스스로가 미륵으로 임했던 것에 유래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蓮社念佛(련사염불)의 유풍이 놀라웁게 미신에 감염되어 여러 가지 폐단을 일으켰고, 후에 또 바꿔어 백련교비가 되어 국가에 누를 끼친 것을 불교사상에 드물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위의 백련교비 사건에서 잠시 살피면

무조건 당시 교도와 민초들에게 무지와 어리섞음으로 그 책임을 전가할 수 만은 없다.

현대와 같이 교육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 진것도 아니고 그들에게는 의무와 책임만 주어 졌을뿐이다. 또한 백성들의 목숨은 위정자와 관료들 앞에서는 파리나 날파리 목숨과 다름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니네 없이 피차 평등하게 하늘의 불가침적 권위스러움으로 민초들에게 닥아올때에 모두 그럴 듯 함에 현혹될 수 밖에 없다.

뿐만아니라 지금 세상의 모두에게 자유를 주고 이것저것 다배우고 다아는 현실에서도 살아가는 방향이 여러종류로 다양하기 짝이 없다.

한번 믿고 내맏기면 그걸로 영원히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타인의 선택이 잘못되고 어리섞고 불쌍한 것이며 측은지심이 생기며 나의 선택은 틀림없고 정당하며 하늘의 뜻과 같이 하는 것이다.

이런 어지러운 현실은 욕망에 눈이먼 교활한자에게는 절호의 찬스가 되는 것이다.

무지한 민초들을 마음껏 농락하고 즐기고 한바탕 놀고는 저 나락의 골짜기에서 뼈에서 기름짜듯이 정신이 오롯이 날 때 쯤 여기오면 훌륭한 성인이 돠어 세상에 빛이 돨 것이다.


다시 현실을 둘러보면 人身難得(인신난득)이 빈말은 아닌 것 같다.

四海(사해)에서 올만한 곳은 그래도 정법이 건재한 남섬부주 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대승이 꽃핀 곳은 몇나라 없으며 또한 환경이 열악한 경우에는 법을 만날 보장이 없게 되어 삼악도에 떨어 질 경우 벗어날 날이 아득하여 비천하고 열등하게 고통과 신음, 괴로움 속에서 육도를 배회하게 된다.

가사 운이 좋와 천상몸을 받아 天人(천인)으로 한생을 보낼 수 있다해도 하늘은 복을 받아 행복을 누리고 즐기는 곳이라 수행은 하기 어렵다.

사바세계의 사람몸은 서로 받기로 대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늘에서 떨어져 오는 사람, 지옥 아귀 축생계에서 업의 과보를 끝마친 경우 곧 사람으로 환생되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사람의 질과 성향은 불문하고 그 업이 소진된 경우는 타에 우선적으로 배치돤다.

가령 형무소 수인들이 받은 형량이 끋났는데 그냥 묶어 둘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천인들의 천복을 다 누리고 남은 복이 없을 경우 하늘에 잠시라도 방치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바세계 여건도 순조롭지 못하다. 인간들의 삶의 질을 중요시 하여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어 한명 혹은 아예 자손을 생산하지 않은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듯이 마땅히 갈곳도 없고 사람몸 받을 복을 갖추었다해도 얼또당또 않는 곳에 태어나 사면초가에 고립돠어 삼천포로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척박한 사바세계는 人天道가 득세하여 여타의 세력을 포섭하여 합류하기를 기를 쓰며 용이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

그들은 육도를 거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그 勢(세)가 불어나면 불어났지 감소되지는 않는다고 봐야한다.

그러므로 大道를 수행하는 사람은 타인을 위해 자리도 비워줄 겸해서 빨리 육도를 벗어나야한다.

그래서 이 사바세계에 올때는 성인이나 보살로서 오는게 제대로 된 절차라고 볼 수 있다.

그때는 지헤와 복덕을 겸비하고 있어 비교적 運身(운신)이 자유로와 소기의 성과와 그뜻을 펼치는데 어려움이 없게 된다.


同讚勸信分 第九

동찬권신분 제구


舍利弗 如我今者 讚歎阿彌陀佛 不可思議功德之利

사리불 여아금자 찬탄아미타불 불가사의공덕지리

東方 亦有阿촉鞞佛 須彌相佛 大須彌佛 須彌光佛 妙音佛

동방 역유아촉비불 수미상불 대수미불 수미광불 묘음불

如是等恒河沙數諸佛

여시등항하사수제불

各於其國 出廣張舌相 변부三千大天世界 說誠實言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변부삼천대천세계 설성실언

汝等衆生 當信是稱讚不可思議功德

여등중생 당신시칭찬불가사의공덕

一切諸佛 所護念經

일체제불 소호념경

舍利弗

사리불

南方世界 有日月燈佛 名聞光佛 大燄肩佛 須彌燈佛

남방세계 유일월등불 명문광불 대염견불 수미등불

無量精進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

무량정진불 여시등항하사수제불

各於其國 出廣張說相 변부三千大天世界 說誠實言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변부삼천대천세계 설성실언

汝等衆生 當信是稱讚不可思議功德

여등중생 당신시칭찬불가사의공덕

一切諸佛 所護念經

일체제불 소호념경

舍利弗

사리불

西方世界 有無量壽佛 無量相佛 無量幢佛

서방세계 유무량수줄 무량상불 무량당불

大光佛 大明佛 寶相佛 淨光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

대광불 대명불 보상불 정광불 여시등항하사수제불

各於其國 出廣張舌相 변부三千大天世界 說誠實言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변부삼천대천세계 설성실언

汝等衆生 當信是稱讚不可思議功德

여등중생 당신시칭찬불가사의공덕

一切諸佛 所護念經

일체제불 소호념경

舍利弗

사리불

北方世界 有燄肩佛 最勝音佛 日難沮佛

북방세계 유염견불 최승음불 일난저불

日生佛 網明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

일생불 망명불 여시등항하사수제불

各於其國 出廣張舌相 변부三千大天世界 說誠實言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변부삼천대천세계 설성실언

汝等衆生 當信是稱讚不可思議功德

여등중생 당신시칭찬불가사의공덕

一切諸佛 所護念經

일체제불 소호념경

舍利弗

사리불

下方世界 有獅子佛 名聞佛 名光佛 達摩佛 法幢佛

하방세계 유사자불 명문불 명광불 달마불 법당불

持法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

지법불 여시등항하사수제불

各於其國 出廣張舌相 변부三千大天世界 說誠實言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변부삼천대천세계 설성실언

汝等衆生 當信是稱讚不可思議功德

여등중생 당신시칭찬불가사의공덕

一切諸佛 所護念經

일체제불 소호념경

舍利弗

사리불

上方世界 有梵音佛 宿王佛 香上佛 香光佛 大燄肩佛

상방세계 유범음불 숙왕불 향상불 향광불 대염견불

雜色寶華嚴身佛 娑羅樹王佛 寶華德佛 見一切義佛

잡색보화엄신불 사라수왕불 보화덕불 견일체의불

如須彌山佛 如是等恒河沙數諸佛

여수미산불 여시등항하사수제불

各於其國 出廣張舌相 변부三千大天世界 舌誠實言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변부삼천대천세계 설성실언

汝等衆生 當信是稱讚不可思議功德

여등중생 당신시칭찬불가사의공덕

一切諸佛 所護念經

일체제불 소호념경


일체제불 소호념경; 이 경전을 지니고 읽으며 믿고 수행하는 이를 모든 부처님께서 보호하여 주신다고 하신 것(현세호념,내세왕생의 이익).


각어기국 출광장설상; 부처님 32상 가운데 하나로 ,큰 혀를 말함.

부처님의 혀는 크고 적음을 자유로이 하시기 때문에 그 얼굴을 덛기도 또는 삼천대천세계를 덛기도 하신다.

삼천대천세계를 1불의 감화 구역으로 하면 그 전역에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화신불로서의 경계라 볼 수 있고 진신의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경계가 없다 할 수 있다.

(혀가 코를 덮으면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 하는 고대인도 사람의 사고 방식)


중국 정토교는 그 초기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이 주요 경전이었지만, 이후 점차로 선도대사(아미타불의 화신이라 칭함)에 의하여 아미타경이 중요시 되게 되고 명나라 때에 들어가서는 이 경이 앞의 두경을 초월해 정토교의 주요 경전이 되게 되었다.

法然(법연)의 아미타경석에 삼경에 7가지 선택을 들은 가운데 아미타경 가운데 하나의 선택이 있는데 다른경 가운데 많은 왕생의 수행이 설해져 있지만, 육방의 모든 부처님은 이들 다른 수행의 왕생을 증명하지 않고, 다만이 아미타경의 염불왕생만을 증명하셨다.

이 아미타경의 염불증명은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에는 없는 것이다.


이제 下輩觀(하배관),下品三生(하품삼생)에 들어가기 전에

제18원의 내지10념에서 상품삼생은 범부로서 상근기의 수행(대승의 도)을 평생을 통하여 행한 공덕을 왕생에 회향함으로 안양국(상품)에 태어나게 된다.(여기서 내지는 전 생애의 수행을 의미).

중품삼생은 범부로서 중근기의 수행(소승의 도나 세상의 훌륭한 일)을 평생을 통하여 행하거나 상당 기간동안의 공덕을 회향하여 왕생하거나 혹은 일일에서 칠일동안 이미타불 명호를 집지하여 일심불란하면 임종시에 중품에 태어 날 수 있다.

여기서 세존께서 관무량수경(정선13관, 산선3배모두16관)을 설하신 배경은 왕사성의 빔비사라왕 후비인 위제휘부인의 간청에 따라서 설하신 것이다.

제바달다의 꼬임에 빠진 태자 아사세는 이성을 잃게 되었다.

제바달다는 석가세존에게 연로한 관계로 종단의 모든 권한을 자신에게 넘겨주고 일선에서 물러나기를 요구했으나 제바달다는 핀찬만 받고 거절당했다.

그당시 여러 비구스님들은 사리불 존자에게서 신통술을 배웠었다.

이에 데바닷다도 비구스님에게 신통법의 가르침을 요청했으나 데바닷다의 마음이 간교함을 간파힌 스님은 이를 허락지 않았다.

다시 아난존자에게 가르침을 제의하자 제바달다의 내심을 알아채지 못한 아난존자는 신통술을 가르쳐 주게 되었다.

이에 큰 힘을 얻어 태자 아사세 면전에서 공중으로 솟아 불을 뿜고, 큰 동물 적은 동물로 몸을 변신하여 태자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또한 아사세 손가락마디가 부러진 것을 가지고, 부왕이 태자를 죽이려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그렇게 된 결과라고 하여 부왕에 대하여 원한심을 품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자식은 아비를 죽이려고 7겹의 감옥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고, 한편 왕후는 왕을 살리려 음식을 숨겨 왕에게 드렸다.

아사세가 이사실을 알고 자기 어머니마져 살해하려 했으나 신하들이 극구 만려해 왕후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자신이 낳은 자식에 의해 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그 비참함은 말로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세상살이에 덧없음과 허망함을 절실이 느끼고 뼈속깊이 세기어 부처님 뵙기를 원하여 무릎꿇고 머리를 땅바닥에 대고 울면서 부처님이 와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때 기사굴산에 계시던 부처님은 위제휘 부인의 마음을 아시고 여러 제자들과 날아서 곧바로 부인의 면전 공중에 머물러 찬란한 광명을 발하면서 부인을 위로하였다.

그래서 부인은 이런 사바세계의 고통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을 영원히 떠난 부처님들의 안락한 정토를 보여 주실 것을 간절히 희망하였다.

부처님은 범부들은 볼 수 없는 정토를 붓다들 만의 방편으로 수많은 정토를 위제휘 부인과 여러 대중들에게 나타내어 관람시컸다.

그래서 위제휘부인과 여러 대중들에게 아미타불의 정토가 있음을 알려지게 되었다.

위제휘부인의 극락세계를 관하여 태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定善(정선)13관법을 설명하시었다. (日想觀,水想觀,地想觀 “”“”)

위의 13가지 관법은 삼매를 통한 관으로서 일반의 범부로서는 하기 어려운 수행이다.

중국 정토수행의 고승이었던 분도 7,8번째 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다.

경에서는 3번째(지상관)까지만 완전히 정토를 볼 수 있으면 80억겁의 생사의 죄를 소멸하고 왕생할 수 있다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무도 묻지 않아도 나머지 세가지 삼배관(상배,중배,하배 총3품9생)을 대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위하여 설하여 남기시었다. (散善顯現緣;산선현현연)

이것을 일러 아미타경에서 시방의 제불께서 석가모니불이 사바세계에서 그 어려운 수행을 통하여 아녹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중생들을 위하여 믿고 받아드리기 어려운 난행의 일을 하셨다. 하고 칭찬하신 것이다.

이처럼 상품,중품,하품은 범부들이 산란한 마음으로 지성껏 수행하면 극락국토에 태어날 수 있다. 관무량수경의 16관법 중 나머지 3가지 3품9생은 염불을 통하여 꼭 삼매에 들지 않고서도 저 국토에 날수있으므로 염불수행 즉 칭명염불은 취하여 가지고 위의 정선13관이나 여타의 수행법은 취하여 버린다 하였다.


하배삼생과 무량수경의 하배관을 통하여 우리는 사바세계의 질서와 나아가 전우주의 움직임의 방향을 짐작하고 방향설정에 대한 기초적인 대안을 대충 기획할 수 있게 된다.

하배에 배당되는 사람들은 우리 범부들 모두에 해당된다고 봐야한다.

말하자면 그냥 그대로 사후의 몸을 생각하면 삼악도를 벗어나서 다시 인간으로 환생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자신은 선행을 많이 지어 복덕이 산처럼 싸였다고 상상할지 모르지만 복잡미묘하고 실타래처럼 물고 물리는 세상사는 곧이 곧대로, 법대로 살다가는 입에 밥풀넣기가 쉽지 않을 뿐아니라 주택마련하고 자식 교육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대개 부를 축척해 내노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의롭지 못한 재화를 유통시킨다.

돈의 특성이 강한 쪽으로 빨려 들게 된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보면 늙어서 힘못 쓰는자 , 그리고 부모나 보호자 없이 보호시설 수용자 , 무일푼으로 그냥 저냥 살아가는 사람들의 돈이나 별로 사회에 대항할 수 없는 사람들 이들의 노력이나 땀을 갈취하여 ,“”“

결국에는 피묻은 돈을 갖고 배를 채우고 여행하고 살기좋은 세상이다 하면서 잘 사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자기 주장하고 내세우고 내몫 찾아 먹고 챙기는 사람은 약자가 아니고 강자인 것이다. 약자는 자기 이익을 주장하다가는 먹든 밥숟갈도 바로 빼앗기게 된다.


이런 문제를 떠나서도 장사를 하든 봉급쟁이든 내보다 약자의 돈을 빼앗거나 그렇치 않으면 서로가 협잡을 해서 부당한 돈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헐뜯어 물고 떳어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범부들은 사실상 죄악이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세생생 유전을 통하여 쌓인 죄업이 수십억겁이 된다는 것이다.

관무량수경 하품상생은 가벼운 죄의 범부 왕생을 설하며 여기서 가벼운 죄는 10악의 온갖 나쁜 죄를 범하면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음을 말한다.

하품중생은 계를 파한 범부 왕생을 설하며 승가를 훼손함은 청청함을 해치게 된다.

청청성은 삼보로서 누구도 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하품하생은 오역죄의 범부 왕생을 설하며 붓다의 몸에 피를, 살아라한, 살부, 살모, 교단파괴, 교법비방, 이러한 죄는 근본이법에 대한 파괴와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로 삼악도의 고통이 무궁하여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범부와 직접적이 관련이 있어 꼼꼼이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무량수불의 본원중 제18원 십념왕생원중 내지 십념의 진정한 내용을 살피고 있다.

제18원

設我得佛 十方衆生 欲生我國 乃至十念

若不生者 不取正覺 唯除五逆 誹謗正法


하품상생(가벼운 죄의 범부 왕생)

佛告阿難 及韋提希 下品上生者

惑有衆生 作衆惡業 雖不誹謗 方等經典

如此愚人 多造衆惡 無有慚愧 命欲終 遇善知識“”“”

合掌叉手 稱南無阿彌陀佛 稱佛名故 除五十億劫 生死之罪

爾時 彼佛 卽遣化佛 化觀世音 化大勢至

至行者前 讚言 汝稱佛名故 諸罪消滅 我來迎汝

作是語已 行者卽見 化佛光明 徧滿其室

見已歡喜 則更命終 乘寶蓮華 隨化佛後 生寶池中“”“”“

수불비방 방등경전 ; 제18원에서 정법을 비방하면 제외 된다했다.

여기서는 대승법인 방등경전을 비방하지 않은 까닭으로 최악의 죄보를 벗어나 황급함은 면해 합장하여 지성으로 나무아미타불 염창하면 50억겁의 생사의 죄를 면하게 된다.

이때 무량수불께서는 즉시 화불,화보살님을 보내시어 염불행자의 면전에 나투시어 그 광명이 방안에 가득차게 된다

임종자는 염불함을 칭찬받고 환희로움으로 편안하게 연화대에 올라 극락의 연못에 왕생하게 된다. 임종자의 방안에서는 상서로운 향기가 가득하게 남아 그 가족들을 기쁘게 한다.

여기서 내지 10념은 일념 혹은 십념으로 10념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

죄악 범부이므로 임종시 나쁜 경계가 나타나 임종자의 마음을 극도로 불안케 하므로 이런 상황에서 10념을 구족하지 않아도 됨은 千載一遇(천재일우)의 좋은 여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상황이라 하더라도 상품상생에서 말하는 至誠心(지성심) 深心(심심) 回向發願心(회향발원심)을 갖추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 삼심은 진정으로 갖추게 되면 安心(안심)하는데 극히 중요하므로 그 하나도 빼면 안된다. 안심하면 아무런 의혹없이 왕생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드리게 된다.

1, 지성심 ; 원왕생의 起行(기행)을 꾸미지 않는 마음,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마음.

 즉 부처님전에 발원하여 왕생을 원할 때 법의 섭리나 가르침에 비추어볼 때 께름직한 것이 있거나 양심에 가책받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2深心(심심) ; 자신과 부처님 힘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

 하나는 자신은 죄와 악, 생과 사의 범부로서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죽고 항상 윤회하여 벗어날 인연이 없다는 것을 깊이 밑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힘으로는 생사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아는 것이다.

 둘은 아미타불이 48원을 성취하시어 이러한 중생을 구제하심을 깊이 믿어 의심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며 그부처님의 원력을 이용하여 왕생함을 확신하는 것이다.

 아미타불께서 5겁동안 사유하시어 대자비심으로 염려하시어 세우신 48원의 본뜻은 중 생이 자력으로 생사를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신 것이다.

 중생이 이원력에 의해 정토에 태어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음을 심심이라 한다.

(이 두가지 심심의 모습은 옛날부터 도를 닦는 수행자에게 제일 중요한 뜻으로 되어 있다)

3회향발원심 ; 왕생을 원하는 당체는 회향발원심이다.

 회향발원심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 닦은 모든 선근을 모두다 진실한 마음으로 회향하여 저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한다. 이것을 세가지를 갖춘 一心이라 했고 아미타경의 산란하 지 않는 것을 一心이라 했다.


위에서 말한 거짓마음, 의심, 회향하지 않는 마음을 각기 따로 퇴치하는 것이 竪(수)의 삼심이다. 이를 나누어 보면

삼심 하나 하나를 이해하여 마음속에 갖추는 것을 지혜의 삼심이라 하고, 一心으로 칭명 염불하는 가운데 자연히 삼심이 구족되는 것을 수행의 삼심이라 하며, 선지식의 전함에 의해서 부처님을 바로 깊이 믿는 것을 신앙의 삼심이라 이름한다.


회향발원심 가운데

有願無行(유원무행)이란 원력만 있고 행을 동반하지 않는 자로 즉 말따로 행동따로는 왕생불가라 했고, 無願有行(무원유행)이란 원은 없고 행만 있는 자로 정토의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有願有行(유원유행)이란 원과 수행을 구족한 사람으로 정토의 뜻과 일치하는 사람이다.


진서는 염불삼심요집(淨全 10권)에서 의심에 안심의 의심과 起行의 의심을 밝혔다.

安心의 의심이란 염불하면 마침내 왕생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를 의심하기 때문에 이는 왕생하지 못한다.

염불은 왕생이 결정된 업이라고 믿어야 하는데 여기에 자기와 같은 사람이 닦는 염불의 행으로 왕생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한 것이다.

起行(기행)의 의심이란 (기행이란 왕생하려고 발원하면서 닦는 행을 말한다)

이는 왕생하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는 다고 한다.

즉 기행에 대해서 의심이 있지만 그 염불의 행을 없애지 않았다면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散善九品(산선구품)(삼품구생)의 바른행은 모두 왕생의 수행으로서 회향하면 모두 왕생할 수 있으므로, 정토종의 뜻은 모두 왕생의 수행이라 한다.

그런데 부처님의 본원으로 바라보면, 상6품의 수행은 본원으로 선택하여 버리는 수행이고 하3품의 염불은 선택하여 취하는 수행이다.

그것은 말세 중생은 장애가 무겁고, 도를 생각함이 열등하기 때문에 삼복구품의 수행을 해도 잡된 인연으로 어지럽혀져서 一心이 될 수 없고, 왕생의 업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은 본원에서 염불만을 선택하여 취하고 다른행은 선택하여 버리셨다.

(三福; 世福,戒福,行福으로 10선등 세속의 선행과 계율을 지키는 청정성 유지와 대승의 수행등으로 이것은 산선 수행을 위한 正因(정인)으로 하여, 염불수행을 正行(정행)으로하므로 정인은 전념수행으로 취하지 않는다)


관무량수경 유통분에서 석가세존께서는 아난존자에게 관불삼매를 부촉하지 않고 염불만을 부촉해 미래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유통하게 하셨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경을 설하여 보이신 목적은 첫째로 염불이고 관불삼매는 타의에 따른 방편설이다. 관무량수경 유통분을 보면

(行 此三昧者 現身得見 無量壽佛 及二大士

若善男子 善女人 但聞佛名 二菩薩名 除無量劫 生死之罪

何況憶念 若念佛者 當知此人 是人中 分陀利華

觀世音菩薩 大勢至菩薩 爲其勝友 當坐道場 生諸佛家

佛告阿難 汝好持是語 持是語者 卽是持無量壽佛名)


聞法信願分 第十

문법신원분 제십


舍利弗 於汝意云何

사리불 어여의운하

何故 名爲一切諸佛 所護念經

하고 명위일체제불 소호념경

舍利弗 若有善男子善女人

사리불 약유선남자선여인

聞是經 受持者 及聞諸佛名者

문시경 수지자 급문제불명자

是諸善男子善女人 皆爲一切諸佛所護念

시제선남자선여인 개위일체제불소호념

皆得不退轉於阿뇩多羅三藐三菩提

개득불퇴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是故 舍利弗 汝等 皆當信受持語 及諸佛所說

시고 사리불 여등 개당신수지어 급제불소설

舍利弗 若有人 已發願 今發願 當發願

사리불 약유인 이발원 금발원 당발원

欲生阿彌陀佛國者

욕생아미타불국자

是諸人等 皆得不退轉於阿뇩多羅三藐三菩提

시제인등 개득불퇴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於彼國土 若已生 若今生 若當生

어피국토 약이생 약금생 약당생

是故 舍利弗 諸善男子善女人

시고 사리불 제선남자선여인

若有信者 應當發願 生彼國土

약유신자 응당발원 생피국토


약유신자 응당발원 생피국토 ; 大行(대행)스님의 宗崇(종숭)염불에서 부처님의 名字를 信하여 마음과 입을 여의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이 곧 구제하고 모든 부처님이 곧 보호한다.

마음으로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항상 명호를 부르며,몸으로는 항상 공경하는 것은 비로서 깊은 믿음이다.

삼업의 행위를 수행한 사람은 부처님께서 알고 계신 이유는 부처님의 타심통,천이통,천안통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공덕지혜를 의심하거나 도중에 후회하여 몸소 과오를 범하거나 해서 그 때문에 극락국토의 변두리에 있는 칠보궁전에 태어나 500년 동안 여러 가지 불이익을 입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信願 ; 믿음과 원왕생을 성취하기 위한 행의 염불로

尋常行儀(심상행의)는 평생을 통한 염불이 신심이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나아가 끝내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염불행이 된다. 이것이 부처님이 받아 들임이 기뻐하고 환희로운 법의 즐거운 경지에 있는 一念인 동시에 왕생의 경지다.

(3가지 행의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참된 의미의 염불이다)

別時行儀(별시행의)는 날을 정하여 도량에 들어가 오로지 염불만 계속함을 말한다.

臨終行儀(임종행의)는 목숨을 마칠때 부처님께서 나를 맞으로 오시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왕생한다는 것을 생각하고,서쪽을 향해 본존을 공경하며, 숨이 끊어 질때 까지 염불을 계속함을 말한다.


약유인 이발원 금발원 당발원

 약이생 약금생 약당생 ; 저 국토에 태어나기 위한 발원함과 왕생하는 행도는 끝없이 지속됨이며 발원하여 어쩌다 실기한다 해도 다음 생에서도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이를 잊지 않고 섭수하신다는 뜻이 있다.


시제인등 개득불퇴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왕생자는 불퇴전을 얻는 이익을 갖게 되므로 이는 본래 진면목의 자리인 실상이 아니면 퇴보하여 물러서게 된다 할수 있으므로 서방정토의 기본 자리가 8지의 부동지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8지이상의 경계를 유지하므로 현생에서 왕생을 얻는다면 범부의 입장에서는 백번 만번 죽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넘볼 수 없는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수행과 부처님의 가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돤다.

5,6지를 지나 7지로 멀리 벗어나면 2승의 지위를 초월하게 되므로 어떻게 보면 8지에서부터 붓다의 기본틀을 갖추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떤 깨달음에서 붓다로 볼 수 도 있고 한편 공능면에서 비추어 보면 모자란다고 할 수 있다.


하품중생 (계를 파한 범부의 왕생)

佛告阿難 及韋提希 下品中生者 惑有衆生

毁犯五戒八戒 及具足戒 如此愚人

偸盜祗物 盜現前僧物 不淨說法 無有慙愧

以諸惡業 而諸莊嚴

如此罪人 以惡業故 應墮地獄 命慾終時 地獄重火 一時俱至

遇善知識 以大慈悲 爲說阿彌陀佛 十力威德

廣讚彼佛 光明神力

亦讚戒定慧 解脫解脫知見 差人聞已 除八十億劫 生死之罪

地獄猛火 化爲淸凉風 吹諸天華 華上 皆有 化佛菩薩

迎接此人 如一念頃 卽得往生 七寶池中 蓮華之內“”“”“”

하품중생자는 모든 삶의 기본이자 근본바탕인 절대적인 청정함을 해하여 諸神(제신)들의 분노함을 받게 된다.

임종에 이르러 지옥의 맹열한 불꽃이 죄인을 향하여 덮쳐오게 되므로, 혼은 하늘로 흩어지고 백은 땅에 흩어지는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순간이다.

이러한 죽음의 순간에 평소에 불도 수행을 게을리 했거나 도력높은 선지식이나 덕망있는 선지식을 접할 수 있는 인연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업과를 받아 지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의 적은 이익이나 조그마한 욕망충족 때문에 저 무서운 지옥의 괴로움을 견디어 내어야만 한다, 또한 그 고통 벗어날 기약이 너무 멀리 있어, 이렇게 보면 차라리 한평생의 쾌락을 반납하는게 일신이 오히려 편하고 즐거운 편이다.

임종자는 많은 악한 불선의 행위를 저지른 와중에서도 가끔 佛緣(불연)을 맺은 선근이 있어 임종의 경각지간에 선지식을 뵙게 되어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힘과 능력, 광명과 정토에 대한 찬탄의 설함을 듣고 깊은 신심을 가지게 된다.

이때 진정으로 극락정토를 원하고 갈망함을 알고 화신 불보살님이 영접하러 오시게 된다. 지옥의 맹화는 곧 서늘한 청풍으로 변하여 하늘꽃을 뿌리어 휘날린다.

임종자는 곧 연화대를 타고 왕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하품중생에서는 특히 선지식은 무량수부처님의 위덕을 찬탄하여 설하게 되는데 그중 무량수불의 광명신력을 믿어 의심하지 않아야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광찬피불 광명신력)

관무량수경 제9 眞身觀(진신관)에서

무량수불에게는 팔만사천상호가 있고 낱낱상호에는 각각 팔만사천가지 수형호가 있으며 그 낱낱 수형호에는 또 팔만사천광명이 있는데 그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염불하는 중생들을 섭수하여 버리지 않는다.

(“”無量壽佛 有八萬四千相 一一相 各有八萬四千 隨形好

 一一相好 復有八萬四千光明 一一光明 徧照 十方世界

 念佛衆生 攝取不捨“”)


이 광명에 대해서 법연의 (한어등록)7권(淨全9권P398)에서

모든 부처님의 광명에는 常光(상광)과 신통광의 두종류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상광이란 항상 끊임없는 광명이란 뜻이고 신통광이란 때에 임해 발하는 광명이다.

이 미타의 상광에 대해 色光(색광)과 心光(심광)의 두 종류가 있다.

부처님의 광명은 모든유정 비유정 산하대지등 모든 것을 평등하게 비추신다(색광).

心光(심광)이란 아미타불께서 특히 중생구제를 위해서 대자비심에서 발하시는 광명이고, 염불하는 중생을 구제하시는 광명이다.

光明徧照(광명변조)는 본원의 뜻이 있고 親緣(친연), 近緣(근연), 增上緣(증상연)의 뜻이 있다.

대비심에서 생기는 심광은 염불하는 사람만을 비추고 다른 수행하는 사람은 비추지 않는다.

(본원의 의미)

염불은 아미타불께서 과거 보살로서 수행하시든 때에 이백일십억 국토 가운데서 선택해 취하신 묘행이고 다른 수행은 선택해 버리신 행이므로, 그 공덕은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처님의 광명(심광)은 다만 선택하신 본원의 염불을 닦는 사람만을 비추시는 것이다.


親緣(친연) ; 중생이 행을 일으켜서 입으로 항상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은 곧 이를 들으신다. 몸으로 항상 부처님께 예배하면, 부처님은 곧 이를 보신다.

마음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면 부처님은 곧 이를 아신다. 중생이 부처님을 생각하면 부처님도 중생을 생각하신다.

이 3가지 업을 서로 여의어 버리지 않기 때문에 친연이라 이름 한다.

이 수행자가 닦는 행업은 부처님과 친숙한 인연이 있는 수행이므로 부처님은 이것을 들으시고 아신다.

염불은 부처님의 본원에 있어서 서원하신 행업이기 때문에 이것을 닦는 사람은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나누게 된다. 이것을 친연이라 한다.


近緣(근연) ; 염불하는 수행자가 부처님 뵙기를 원하여 염불 행을 닦으면 부처님은 수행자의 생각에 따라 눈앞에 출현하신다.

아미타불께서는 십 만억 불국토 밖에 정토를 이루고 계시지만 염불을 닦으면 부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시어, 부처님과 친근한 인연을 맺을 수 있다. 이것이 근연이다


增上緣(증상연) ; 이 증상연이란 죄를 없애고 재앙을 제거하는 공덕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평생 그 공덕에 의해서 다겁 동안 쌓은 악한 업인 죄의 장애를 제거할 수 있고, 임종 때에는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함을 받아 정토에 왕생 하는데, 이때에 우려한 삿된 업에로 장애를 받지 않고, 부처님의 원력에 의해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이 정토 세계의 장애를 제거하고 왕생을 돕는 인연이 되는 것을 증상연이라 한다.


부처님의 자비는 無緣(무연)의 자비로 세계에서 방황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정토로 인도하여 해탈하게 하려는 부처님의 대자비를 말한다.

그래서 이 자비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신 것이 부처님의 본원이다.


蓮社初祖(연사초조) 여산 혜원

ad402년 7월 同志(동지)와 함께 반야정사에 아미타상 앞에서 壇(단)을 차리어 서원을 세우고, 淨業(정업)을 정진수행하며 서방에 왕생하기를 기약한 結社(결사)염불이다.

혜원은 思專想寂(사전상적)을 염불삼매라 했다.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시켜 잡념이 없이 적정한 상태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 想이 가라 않으면 기는 허로 되고 정신은 맑아져 온다 )

혜원의 專心(전심)은 아미타불에 대하여 마음을 집중한 것으로, 즉 무량수불상 앞에 모여 단을 차리고 향화로 공경의 예를 표하며 또 西境(서경)에 마음을 기울이는 등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했다.

혜원의 見佛(견불)

師(사)가 산에 거주한지 30년 자취는 세속에 들어 간지 없고 오직 정토에 대한 염을 부지런히 했다.

처음 11년은 마음을 맑히는 생각을 이어가니 3번이나 聖相(성상)을 보았으나 침착하고 진득하게 말하지 않았다.

꼭 19년 7월 그믐날 저녁 반야대 東龕(동감)에서 바야흐로 定(정)에서 일어나니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찼고, 圓光(원광)가운데 모든 화불이 계시고 관음과 세지 등 두보살이 좌우에서 모시는 것을 보았다.

또 물의 흐르는 광명을 보니 14가지로 나누어 지고 상하로 흘러 들어가면서 고,공,무상,무아란 소리를 연설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일러

“ 나의 본원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너를 위하여 安慰(안위)한다.

너는 7일후에 마땅히 나의 국토에 태어 날 것이다“ 라 하셨다.


혜원의 염불은 반야의 공에 근본을 둔 理觀(이관)염불과 반주삼매에 근본을 둔 事觀(사관)염불을 쌍수한 이사겸수 염불이라 할 수 있다.

이 염불삼매를 얻기 위해서 그는 반야대에서 매일 하루 六時에 염불하면서 서방정토를 향하여 예배하였다고 함은 혜원사조께서 얼마나 열심히 염불을 수행했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道綽(도작)

담란 멸후 20년(ad562)

그는 48세 때 石壁(석벽) 玄中寺(현중사)에 세워져 있는 담란법사의 石碑(석비)를 보고 감동을 받고 느낀 바가 있어 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정토업을 수행했다.

그는 매일 자리를 서쪽을 향하여 행동하고, 또 서방을 향해서 침,콧물 대소변을 하지 않았으며, 하루 六시(6번)에 예배하고 공경하는 수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르지 않았고, 여가가 있으면 입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을 일과로 하여 하루에 7만번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小豆(소두)로 숫자를 헤아려 가면서 염불하게 하였다. (수량염불의 시초)


도작은 칭명에 의한 멸죄에 대해서

만약 사람이 다만 능히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능히 모든 장애를 제거한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마땅히 암흑을 파힐 수 있겠는가?“”“

대답하기를 모든 법은 여러 가지 차별이 있어 한가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名과 法이 같은 것이 있고 명과 법이 다른 것이 있다.

명과 법이 같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명호, 진언, 다라니 등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도작은 염보다 칭을 중요시 하였고 18원을

十念相續 稱我名字 (십념상속 칭아명자) 라 하여 칭명으로 단정하여 해석하였다.

이렇게 口稱(구칭)염불을 중요시 하여 관념염불에서 칭명염불로 발전시켰다.

억념과 칭명의 10념은 다른 염이 반연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아미타불을 염하든가 명호를 부르든 간에 마음속에 다른 잡념이 없이 상속되는 것을 말한다.

능히 염할 수 없는 사람이 칭명하는 이유는 칭명의 방법에 의해 억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조금도 의심없이 믿고하는 염불이다.

즉 조금도 의심없는 신심이 근본바탕이 된 염불이어야만 十念(십념)을 성취할 수 있다.


의혹에 대한 문답 (信佛因緣)

경에 말씀하시기를 업의 도는 저울과 같아 무거운 것을 먼저 이끈다.

어찌하여 일생동안 혹은 백년 혹은 일개월동안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는데 , 단 10념 상속하는 것으로 곧 왕생하여 正定聚(정정취)에 들어가 , 필경에 물러나지 않고 三途(삼도)의 모든 고통을 영원히 막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5가지 不思議(부사의)가운데 불법이 가장 불가사의하다.

의심하면 100년 동안의 악이 무거운 것이 되고, 의혹한 10념 염불은 가벼운 것이 되어 안락에 왕생하여 정정취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하여 의심하지 않는 10념 염불을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의혹이 없는 10념 염불은 공덕이 무거워 백년동안 어떠한 악을 짓더라도 이 업에 이끌리지 않고 왕생할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의 원력을 확고부동하게 믿는 信(신)에 근본을 둔 10념상속이라 할 수 있다.


회옥

송고승전 제24등에서 丹丘(단구; 절강성 영해현) 사람

회옥은 계를 엄격히 지키면서 하루 한끼만 먹고 장좌하면서 하루에 부처님 명호를 5만번 부르는 것을 일과로 하였고 , 계속하여 아미타경 독송하기를 30만번에 이르렀다.

그는 천보원년(ad742) 6월 염불하는 중에 서방의 성중들이 와서 부처님 광명이 방에 가득한 것을 감득하고 곧 게송을 설하여 왕생하였다.


승감

관경 및 아미타경을 독송하는 것을 업으로 하여 정진하다가 후에 꿈에서 자신이 양날개가 생기는데 왼쪽날개는 관경 , 오른쪽날개는 아미타경인 것을 느끼고 난후 천일동안 매일 48권을 독송하고 상품에 태어났다.


혜경

진복사본계승전 상권에서는 치주사람 혜경이 오진사에 살면서 석가, 아미타등 두 부처님 상을 만들고 67세때 꿈에 석가상을 따라서 서방에 이르러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그후 13년이 지나 드디어 정토에 왕생하였다고 한다.


연수대사의 行道念佛(행도염불)과 坐念佛(좌염불)

좌염불은 비유하면 물위에서 반대방향으로 돛을 펼친 것 같이 나아가기는 가지만 빠르지는 않다.

그러나 행도염불은 물을 따라 돛을 펼친 것 같이 나아가는 것이 지극히 빠르다.

좌염불이라도 한번 소리를 내어 염불하면 오히려 80억겁의 죄를 소멸할 수 있는데 , 더군나 오체투지하고 깊이 공경을 표하여 염불한다고 하면 그 공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연수대사는 몸을 버리는 焚身(분신)의 열렬한 행을 권하였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멸이 있으며, 만일 삼보 가운데서 지성으로 귀의하여 몸을 버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 곧 무상의 몸을 가지고 금강의 몸을 얻고 , 견고하지 않는 몸을 가지고 견고한 몸으로 바꾼다.

또 쓸데없이 身命(신명)을 아껴서 세상의 헛된 삶과 쓸데없는 죽음에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또한 불법에서 귀한 것은 수행을 행동하는 것이요 , 입으로 변론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정토 왕생을 믿어 하루일과 10만성 염불을 전념한 것과 같이 그가 부지런히 수행 정진한 것은 실로 놀랍다.

그는 理事쌍수(송경,萬善)하여 이것을 회향하여 정토에 태어 나기를 원했다.


그 당시 수명이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 염라국에 다녀와서는

염라대왕이 판결을 나가기전 반드시 연수대사의 영전에 절을 올리고서는 정청으로 나갔다고 한다.

이는 연수대사는 생전에 뭇생명을 살리는등 萬善(만선)행을 닦아 이를 모두 정토에 회향한 것이다.


互讚感發分 第十一

호찬감발분 제십일


舍利弗 如我今者

사리불 여아금자

稱讚諸佛不可思議功德

칭찬제불불가사의공덕

彼諸佛等 亦 稱讚我不可思議功德

피제불등 역 칭찬아불가사의공덕

而作是言 釋迦牟尼佛 能爲甚難希有之事

이작시언 석가모니불 능위심난희유지사

能於娑婆國土 五濁惡世

능어사바국토 오탁악세

劫濁 見濁 煩惱濁 衆生濁 命濁中

겁탁 견탁 번뇌탁 중생탁 명탁중

得阿뇩多羅三藐三菩提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爲諸衆生 說是一切世間難信之法

위제중생 설시일체세간난신지법

舍利弗

사리불

我於五濁惡世

아어오탁악세

行此難事 得阿뇩多羅三藐三菩提

행차난사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爲一切世間 說此難信之法

위일체세간 설차난신지법

是爲甚難

시위심난


아어오탁악세 위일체세간 설차난신지법

시위심난 ; 사리불아 내가 오탁악세인 힘든 사바세계에서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통하여 무상의 정등각을 얻어,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믿기 어려운 법인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 법인, 정토법문을 설할 수 있다는 것은 심히 희유한 일이고 너희들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절호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정토인 극락세계는 적은 지혜나 선정으로는 인지할 수나 이르기 어렵다. 가령 누가 정토의 존재를 미리 알고 가려고 애를 쓰는 것과 그것을 인지할 수 없거나, 막연한 상태에서 그러한 정토의 세상을 상정하여 그리고 도달 할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설령 정토를 어느정도 볼 수 있다해도 죽어서 혼자정도나 알고 갈 수 있을 뿐이다.


실지로 붓다의 능력과 지헤가 아니면 저 정토의 세계를 몇 백억의 정토를 중생들에게 펼쳐보일 수 없을뿐더러 세밀하고 자상하게 설할 수 없는 것이다.

붓다께서 이세상에 출현하심은 수 겁을 통한 일대사 인연이 도래해야만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시게 된다.

작금의 중생과 미래의 중생중 부처님과 맺어진 인연이 심중함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인연의 깊은 관계로 , 좋은 호기이므로 경에서 석가세존께서는 정토에 태어 나기를 원하고 ,발원하고 ,믿고,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임을 알고 노력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저 정토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간다해도 좁지도 않고 , 사람이 많아서 서로 부딫치지도 않는다.

그러니 많이 태어나는 것이 부처님을 기뻐게 함이 돤다.

제불보살의 모든 행이 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올려서 안락하게하고 해탈케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품하생에 들어가기 전에 여타의 하늘이나 천인 혹은 제신들과 정토와 무량수불의 관계, 차이점 혹의 정의면에서 생각해보고 넘어 가야만 후인들의 개념정리에 참조가 될 수 있다.

사실 장경속의 가르침의 근간을 요지하여 공의 바다에서 반야용선에 승선하여 저쪽 피안에 건너가서는 반야용선의 선장이나 항해사가 되어 차안으로 돌아와 배를 못타 해매는 사람을 계속 실어 나르면 될뿐인 것이다.

그러나 공 자체조차도 인정하지도 수용되지도 않을뿐더러 또는 이해하지도 할려고도 않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인류의 절반이상이라는 놀라운 점이고 어떻게 보면 경이로운 점이다.

따라서 불필요한 소모적인, 머리아픈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극락세계나 아미타부처님이나 존재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세상이나 저세상이나 있다라고하거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정답이 아니고 오답이 되어 진정한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티켓을 얻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어떻게 명상을 해서 도를 통하여 진리의 세계로 바로 진입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러 정황을 비추어 볼때, 어떤 체계적이고 계통적인 절차속에서 수행을 통하여 바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차라리 있는 것이라면 개념정리나 여러 사항의 교통정리가 신속하겠지만 공의 세계에서의 , 보이지 않는 세계라 그중에서 엄중한 체계와 질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단계에서 비장의 자격을 요구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때, 진리를 대충 파악한 후에 진리와 자신을 비추어 보고 그후에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밀교 계통의 만다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중심 진리에서 외곽으로 퍼져나 올수록 많은 방을 갖고 있다.

어느 수행자가 차례로 방문하여 그 방의 성자를 만나고 또한 진리를 얻으려고 할때 그 성자의 뜻과 성격을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여러 단계의 방에 따라, 각기 다른 풍습과 습성 다른 전통을 통하여 얻은 진리이기에 자칫 잘못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럴바에야 바로 최절정의 방에 방문해 바로 단판하여 최후의 진리를 단시일 내에 얻어서 모든 할일을 끝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논의를 바꾸어 이러한 공의 상황에서 무언가 “”“”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서 존재라든가 실존하는 것이 있다면 , 이것은 무생물이라면 우리 인간에게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

의도성이 있는 생명체로서 인간보다도 지능면에서 월등할 경우라면, 공을 활용하여 공속의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공속의 생명은 어디까지나 幻空(환공)속에서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가령 존재가 있다고 하면 이는 불멸의 상태로 어느 누구의 지배와 영향을 받지 않게되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 된다.


이와같이 보면 생명체로서 지능을 계속 향상해 간다면 , 우리 인간이 로봇을 활용해 생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음과 같이 , 실체로서의 존재도 공속의 인간을 꺼집어 내어 부릴 수 있게 된다.

겉모양은 비슷하거나 같다 해도 차원적으로 접근할 수 없게 되어, 많은 고통이 있다해도 벗어날 수 없게된다.

어째든 불평등한 상황이 이세상이나 저세상에서 있게 된다는 모순성을 노출하게 되고 만다.

이렇게 혹은 저렇게 가정한다 해도 상하 관계를 벗어 날 수 없다.

우리 인간과 동식물의 관계를 볼 것 같으면 , 종속적으로 보이지만 실지로는 그 성품은 평등하여 똑같은 것으로 바로 자신이나 다름없다.

존재의 성향여하에 따라서 어디 까자나 따라다니면서 옆에 있게 되면 , 지살을 해도 소용없게 된다 .

그는 물론 저승까지도 따라올 수 있게 된다.

사람은 죽으면 저승법을 따라야 하지만 , 그는 죽지 않고 몸만 변신하여 따라오면 된다.

그러나 공속의 만유 즉 하늘 , 천 , 여러신들 , 사람 , 동식물 , 지수화풍, 극락, 아미타불 및 제불보살의 모든 존재들은 한울타리 속에 있는 본질적으로는 평등한 똑같다고 봐야한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엄청난 차이와 차별이 있음도 또한 인정해야 한다.


하품하생 ( 오역죄의 범부 왕생 )


佛告阿難 及韋提希 下品下生者 或有衆生

作不善法 五逆十惡 具諸不善 如此愚人

以惡業故 應墮惡道 經歷多劫 受苦無窮

如此愚人 臨命終時 遇善知識 種種安慰 爲說妙法

敎令念佛


此人苦逼 不遑念佛

善友告言 汝若不能念者 應稱無量壽佛

如是至心 令聲不絶 具足十念 稱南無阿彌陀佛

稱佛名故 於念念中 除八十億劫 生死之罪

命終之時 見金蓮華 猶如日輪 任其人前

如一念頃 卽得往生 極樂世界“”“”“


하품하생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다 가장 못된 짓을 한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다.

보통의 평범한 가운데 비록 선행은 적더라도 또한 크게 악독한 짓도 행하지 않은 자들도 임종시에 선지식을 만나 하품에 태어 날수 있다.

여기서는 무량수불의 본원에 의하면 세상에서 어떤 못된 나쁜 짓을 한 사람도 구원되지 못함이 없는 , 무량수불의 원력과 자비광명이 불가사의함을 나타내는 장인 것이다.


오역죄와 10악업을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그 과보로 지옥에 떨어져 오랜 겁을 두고 고통받을 사람을 말한다.

이와 같이 어리섞은 사람은 임종시에 선지식이 나타나 “”“

그대가 염불할 수 없거든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불러서 이렇게 해서 지성으로 10번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이 공덕으로 황금연꽃이 그의 앞에 나타나 순식간에 극락세계에 태어난다. 고 하여 지옥에 떨어질 중생에게도 왕생의 기회가 열려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림은 크게 악독한 짓을 저지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악이란 행동만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말이나 생각으로도 얼마든지. 행위와 똑같이 선행이나 악행의 업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살아가면서 선업보다 악업을 더 많이 짓는 것이 우리 일반 중생이다.

그래서 불법에서는 수행하지 않는 일반범부는 죄악중생이라 한다.

죄악중생이라 불리는 이상 우리는 하배에 속하지 않을 수 없으며 , 그중에서도 하품하생은 임종때 죽음의 고통이 극심하고, 죽어 갈곳이 나타나기 때문에 공포와 두려움으로 염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가 어렵게 된다.


대부분의 하품하생은 임종때 죽음의 고통이 심해서 부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영성부절 구족10념 칭나무아미타불 ; 오역,10악을 지은 중죄인이라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10번 부르는 것을 성취하면 80억겁의 생사지죄가 소멸하고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

여기서 왕생의 業事成辨(업사성변), 十念相續(십념상속)을 먼저 살펴야 한다.

<업사성변>

1.제18원 10념왕생원에서 내지십념을 해서도 만약 왕생하지 않으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습니다. 하였고

2.관무량수경 하품하생에서 나무아미타불 10념을 구족하면 왕생한다고 하였다. 이 둘에 근본을 두고 십념상속함을 가지고 정토왕생의 因(인)으로 하였다.

[왕생론 주]에서

저 여래의 명호와 저 국토의 명호는 능히 일체의 악을 그치게 한다고 하였고,

무량생사죄업의 탁한 마음이 있지만 아미타여래의 지극하고 무생인 청정보주의 명호를 듣고 그것을 탁한 마음에 던지면 생각생각 가운데 죄업이 멸하여 마음이 깨끗해 져서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무량광여래의 명호에는 무명의 암흑을 파괴하는 用이 있다고 하였다.


<십념상속>

 광야에서 원수로부터 쫓길 때, 강을 건널 경우 오로지 강을 건널 일념만 있고 다른 잡념이 없는 것과 같이, 지금 수행자도 일심으로 아미타불을 생각하는데, 다른 생각이 사이에 섞이지 않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이어져 십념에 이르는 것을 십념상속이라 부른다 하였다.

단 이와같이 일심으로 상속하여 오로지 주입해서, 부처님 상호를 반연할 때도 스스로 그 염이 몇 번인가를 알지 못 한다.

담란대사는 이것에 의해 십념을 구족한다는 것은 왕생의 업사성변을 의미하는 것으로,

반드시 수행자 자신은 염의 회수를 알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들 범부는 알 수 없지만 , 신통이 있는 사람이 보면 그 성패는 분명하기 때문에 일심불란하게 염을 쌓아 상속하면 된다는 것이다.


懷感(회감)의 왕생과 염불사상

그는 처음 염불하여 왕생한다는 법을 믿지 않았으나 선도대사를 찾아뵙고 그 의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도량에 들어가 염불하기를 21일에 이러렀으나 아직 신령스러운 상서를 볼 수 없었다.

그로인해 그는 드디어 죄의 장애가 깊음을 느끼고 , 밥을 먹지 않고 목숨을 끊으려고 하였다.

그때 선도대사가 이것을 허락하지 않자 , 마침내 정진허여 염불하기를 3년 , 홀련히 신령스러운 상서를 느끼고 금색의 玉臺(옥대)를 친견하여 염불삼매를 증득할 수가 있었다.

그는 임종때에 내영하시는 부처님을 뵙고 합장하며 서쪽으로 향하여 갔다.


그는 석군의론에서 여러 가지 행을 섞어서 수행하는 사람은 하려고 하는 마음이 굳지 않기 때문에 모두 해만국에 태어나며 , 만사람 가운데 한사람도 극락에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

이에 반하여 오로지 한가지 만을 닦는 사람은 하려고 하는 마음이 견고하기 때문에 결정코 극락에 왕생하는데 천사람 가운데 한사람도 결여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회감대사는 專修一行(전수일핼)을 왕생의 요체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산란한 염불은 염불 수의 많고 적음, 염불하는 시간의 길고 짧고를 묻지 않고 , 오직 능히 이를 수행하는 사람은 모두 왕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闕一不生說 (궐일불생설)

또 그는 오역죄와 정법을 비방하는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10념을 구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만일 일성 내지 구성에 그치고 , 十을 채우지 않는 사람은 왕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관경에서는 오역죄를 취하기 때문에 구족십념이라 하였고, 무량수경(18원)에서는 오역죄를 제외시키기 때문에 내지10념이라 설한 것이다. 하여 즉 오역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염의 다소를 논하지 않고 일성, 十성 다 왕생하지만 , 만일 오직 오역죄인은 반드시 十聲(십성)을 채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18원의 내지10념은 원래 오역죄인은 제외 된다고 했으나, 法理(법리)를 훼손하고 거역한 오역인은 마땅히 지옥중에서 제일 무거운 무간지옥에 떨어져 헤어나기 어려운 세월동안 끝없는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 붓다의 자비는 한중생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다 반드시 구제하신다는 대원력에 의지한 , 중생들이 상상할 수 없는 대자대비에 기인하고,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인고의 세월동안 자비와 방편을 닦고, 수행하여 백천 만억의 삼매를 얻어, 대신통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오역죄인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드리워, 하품하생에서 오역인의 구족10념을 설하시어 붓다의 자비광명이 불가사의함을 나타내신 것이다. 따라서 18원의 내지10념은 오역죄인을 포함될시는 당연히 구족10념이 되어 오역인의 왕생은 임종시 十聲을 채워야한다.)


法理(법리)에 대하여


위에서 오역죄와 정법비방은 법리적 맥락에서 볼때 둘 모두 다르지 않다 할 수 있다.

정법은 법리의 견해와 해석을 서술하거나 표출하여 전달가능케 된 것이라면 , 오역죄는 가장 중요한 법리의 흐름이 형상화 되어 세상에 노출된 것을 , 이것을 해치거나 말살시켜 법리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외면하여 법의 가치성을 비하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수 있다.


이제 法(법)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리의 삶의 지체가 법망으로 얽혀져 있고 , 우주와 현실의 세상이 또한 법의 그물망인 것이다.

모든 것이 법이라 해서 모든 법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도움을 준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나쁜 법도 깊은 뜻으로 봐서는 , 우리의 성장에서는 버릴 수 없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한때 우매 할때의 경과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법리라 칭할 때는 우리를 힘들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여, 절망하게 하거나 비탄에 빠져, 살아나가는 것이 죽음 보다 못하게 하는 그러한 법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무명의 어둠으로부터 무엇인가로 태동할 때부터 발전 진화하여 , 많은 無情(무정)과 有情(유정)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그래도 인간정도에 와서야 법에 대한 인식과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가운데 우리는 인간이 되는 법의 길을 따라서 꾸준히 왔어며,

앞으로는 인생이 힘들고 괴로움이 너무 많고 , 비록 즐거움과 행복이 때때로 있어도 그것도 무상하여 영구성이 없어 , 기대하지 않으며 버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괴로움을 벗어나고 행복을 향유하면서 그것을 영구히 지켜갈 수 있고 , 하면서 궁리하고 연구하고 하여 자연히 우리는 진리에 접근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을 통하여 우리 앞에 전개되는 세상외에도 많은 세상과 , 알 수는 없지만 여러 존재들이 광활하게 변만되어 ,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상향의 삶을 추구하는 존재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렇게 가고 또 가서 궁극의 목표인 최정점인 절대의 위치인 붓다의 세계에로 나아감을 말한다.


이런 진리에로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설정이나 지표를 인식하거나 대용할 수 있는 것을 法理(법리)라 명명한다.

이와같은 법리는 보이거나 드러내 말할 수 없으며 , 없으면서도 분명히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진리의 개요를 파악한 후에 의식의 동일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일성이란 6,7 식을 가령 칠십 프로이상 되어야 그 인격성이 인정받을 수 있고 , 안,밖이 다르지 않다하여 배척되지 않으며 , 물론 수행에서도 목표를 얻을 수 있고 , 더 나아가서도 아무런 문제점이 없어 궁극에 이를 수 있다 할 수 있다.


진리에서도 대략 3단계로 한다면 소,중,대진리로 나누어 보면 , 어떤 면에서도 먼저 그 진리의 전반적인 개요의 현로와 맥락에 대한 인식과 순응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리의 총체성을 비추어 보면서 수행자가 진행해 가는 모든 인생행로에서 , 다방면에서 만나고 부딪치는 인연들을 진리의 총체성에 대한 방향을 잃지 않고 , 그 기류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야 한다는 반연을 가지면서 , 접하는 인연들에 적응하고 대응하여 간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진리의 개요, 총체성 , 방향성의 지표 , 그 기류를 놓고 보면 이쪽 사바세계와 저쪽 眞界(진계)와 보이지 않는 통로가 은근히 있는 것 같다.

진과 속을 놓고 비교한다면 수행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이 몸과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며 , 죽는다고 하더라로 죽어 받는 몸과 마음으로 , 또한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위의 세계든 무위의 세계든지 어떤 곳이라도 이 몸과 마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바로 그것으로 닦아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6,7식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하여 존속한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기능면에서 여러 진리의 측면에서 변화무쌍하여 범부의 지혜로서 사량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시 법리의 문제로 가서

무위계의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은 경전에서도 나타나져있는 현실이다.

그전에 짚고 넘어 갈 문제는 여러 경지나 단계에서는 모두 나이가는 길이 있으며 그길의 근원이 근본이 바로 法理(법리)인 것이다.

법리가 그냥 법리인 것이 아니고 , 그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힘과 , 능력 ,가피가 그 속에서 항상 작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가는 길, 마산가는 길, 연화도가는 길 이들 모두는 길이지만 전부 다른 길인 것이므로 도달점도 다 다른 것이다.

하물며 법리의 길에서는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과 다른 길을 가는 이와는 현저한 차이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결과라 말할 수 있다.


당장 드러난 것으로 2승(성문, 연각)과 보살, 그리고 여타의 성자로 추앙받는 異流(이류) 이런 모든 분들은 유위의 세간을 초월한 무위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같이 무위속에서도 , 유위와 같이 모두 동일하거나 동등하지 않고 , 각자의 길인 법리가 열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하는 것은 , 그냥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서 가버리면 편하고 번거럽지 않을 것인데, “”“”

우주의 진리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뿐더러 , 아무에게나 진리를 나타내지 않으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정글 속에서 헤맬 때는 원주민의 도움 없이는 헤쳐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가령 도움의 손길이 불가능하다면 자기 능력으로 정글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한 후에 길을 찾아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기서 길을 못찾으면 최후를 맞이하여 죽는 것과 같이 , 어느 길을 가기 전에 먼저 법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그런대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만약 잘못된다면 혹은 미흡할 때는 저쪽의 어느 세상에 있다하더라도 , 모든 진리가 열려있는 이 사바세계에서 인간의 몸으로서 진로를 변경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차안은 인간몸 받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 정법 만나기도 쉽지 않다.

또한 도처에서 사술과 유혹이 도사리고 있어 , 언제 어느 때 악의 마수에 걸려들어 삼악도에서 무슨 고초를 겪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범부지만 , 정법 안에서 마음 편하게 살면서 아미타불의 정토법문을 들은 최고로 복받고 , 운수 대통한 사람은 이 한생에서 열심히 선행과 복덕을 쌓으면서 또한 전법과 염불수행을 열심히 하여서 , 임종과 동시에 많은 성인들이 거주하고 계시는 극락에 태어나서 , 다시는 윤회하지 않으면서 고통과 괴로움, 근심,걱정없이 시방의 제불에게 예불하고, 그리고 설법도 듣고 하여, 대보살의 지위를 얻어서 먼저 인연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 나아가, 무연중생들도 모조리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훨신 낳은 편이다.


자력과 타력은 그 개념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력이나 타력 양자는 서로 의지하면서 성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성격상 홀로는 성립될 수 없으며 , 만약 그것이 홀로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 진리에 벗어난다고 단언 할 수 있다.


그래도 경향성으로 따진다면

자력이란 수행자가 원하거나 구하고자하는 진리의 법리에 대한 감을 잡고 , 구도의 길에 들어섰을 때 이 사람을 자력 수행자라 할 수 있다.

또 염불 수행자가 부처님에 대한 이해와 정토에의 바른 견해를 통하여, 어떻게 수행하면 저 피안에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법리를 대략 파악한 연후에 수행의 길에 들어 섰을 때는 이사람 또한 자력 수행자라 한다.


타력이란 수행자가 원하거나 구하고자하는 진리의 법리에 대한 이해나 파악함이 없이 , 구도의 길에 들어섰을 때 타력수행자라 이를 수 있다.

왜냐하면 목표나 지표에 대한 불분명성이 있으며, 성취했을 때 전체성에 대한 안목을 갖추지 못하므로 , 이는 타를 의지한 수행이라 밖에 할 수 없다. (주체성의 결여)

또 염불 수행자가 전체적인 법리에 대한 이해나 파악이 없이 , 다만 염불을 열심히 하면 정토에 필히 이를 수 있음을 굳게 믿고 , 수행을 통하여 극락에 태어났다면 타력수행자라 할 수 있다.

또 명상수행자가 법리에 대한 이해함이 없이 수행하여 어떤 경지를 얻었을 경우 , 이 또한 타력수행자라 밖에 이를 수 없다. (막연히 무언가를 의지 했다)


자력이든 타력이든 마찬가지이나 타력인 경우에는 , 수행자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어 오해된 채로 오랜 세월을 경과하여 , 전체를 보기 어렵게 된다.


유위법의 세계가 끊없이 펼쳐져 전개되어 육도의 각 세계를 범부 중생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 무위법도 마찬가지로 알 수 없지만 , 복잡하게 전개되어 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진리가 우후죽순처럼 처처에서 포진하여 인류에게 삶의 안식을 제공하면서도 , 한편으로는 서로의 배치되는 견해로 인하여 모순과 갈등으로 , 생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쳐 차마 두려움으로 인하여 타부시 되어 , 외면되어 지거나 그것이 한몸의 존립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어 인간성의 상실로, 또는 인면수심화로 불신으로 흘러가면서 인류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진리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 개념정립이 되어서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진리와 진실에 대한 , 철리와 법리에 대해서 자유로운 논의와 주장이 활발히 , 시시때때로 아무 곳에서도 말해도 , 밥 먹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정도를 알 수 있어 , 누가 이렇쿵 저렇쿵 할필요도 없고 , 사회가 서서로의 갈길을 조용히 저절로 갈 수 있게 된다.

현금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나 남의 나라 할 것 없이 , 자기가 따르고 신봉하는 법리에 조금만 어긋나면 , 배덕자나 徹天之怨讎(철천지원수)가 되어 , 걷으로는 무심한 듯 보면서 어느때에 가서는 본심을 드러내 , 발톱을 더러낸다.


이런 현상으로 뻔한 , 다 드러난 문제점을 가지고, 다른 이유로서 대치해버리니 전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논의의 자유와 독립성이 인정될 때 , 머지않아서 지금보다는 더욱 높은 수준의 문화가 나타날 수 있다.

사실은 이런 문제는 현행법으로도 보장되어 있으나 , 사실은 전혀 용납되지 않으며 또한 용서되지 않는다.


현실인 유위법에서 문제점이 있는 정신문제는 무위법에서도 당연히 걸림의 요소가 되므로 , 우리는 먼저 6,7식을 하나로, 일단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해놓고 , 진리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현상계에서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면 , 내면인 진리으l 세계에서는 순조롭게 여행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먼저 中(중)의 진리는 모든 사물과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 존재의 실재를 접할 수 있을 때를 말한다고 설정하고 ,

小(소)의 진리는 생사를 초월했으나 중의 진리에는 미치지 못할 때를 설정하고.

大(대)의 진리는 유정과 무정, 등 모든 것에 대한 총체적으로 섭렵 및 섭수하여 종합적으로 한방향으로 수렴할 뿐 아니라 , 동시에 펼칠수 있는 경지에 나아 갈 수 있는 진리를 일컫어 大(대)의 진리라 설정한다.


사실은 지금까지의 노력과 시도는 궁구의 극점인 붓다를 이루기 위한 , 너와나 , 접하는 삼라만상, 여기서 전개되는 , 만나게 되는 것들을 , 붓다를 만나서 해결점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가르침으로부터 불법을 접하는 인연의 고마움과 감사함에 항상 삶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잘난 사람 , 못난 사람, 행복한 사람, 고통스로운 사람, 부자도 있고 빈궁한 사람도 있다.

이러한 많은 차별이 있어도 , 우리는 어느정도 불법의 섭리를 배워서 , 무지몽매한 반항심이나 무조건적인 현실 부정을 해서는 안되며 , 또 할 수도 없는 입장임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불만을 가지면 가질수록 , 우리는 점점 더 수렁속으로 함몰되어 붓다의 빛으로부터 멀어짐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빛 중에서 가장 자비심이 강력한 빛이 부처님이시다는 것을 , 대승의 가르침인 것으로 대승의 경전에 나타나 있다.

모든 진리가 이에 응집되어지며 , 또한 만유와 존재의 원천이 되어 삶의 활기와 생명력의 요소로서 , 자비와 지혜를 끝없이 방출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와같이 대승불교는 진리 자체인 부처님을 이해 해야하며, 고로 우주와 모든 법리를 짐작하고 , 우리의 나아갈 바를 알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며,  모든 개개인이 우선은 삶의 지침을 대략 정비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하여 세상과 우주,  붓다와 나 그리고 타인, 그리고 접하는 유정 무정,  모든 것들의 관계성을 통하여 여하한 진로와 행동반경이 설정되어져 ,  유한의 막힘에서 끝없는 무한으로 뻗어 갈 수 있다. 

왜냐하면 붓다는 무시무종 , 막힘과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법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엄연한 전제조건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드시 무아라든지  혹은 空(공)을 기초로 하고 ,  모든 법리가 성립 되어 진다는 것이다.   대승의 진리가 여기서 발아되고 생육되어  맛있은 열매를 따먹게 되어 ,  진정한 행복을 謳歌(구가)하게 된다. 


그 예를 보면  천태지자대사는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법화경과 마하반야경  아미타경을 독경하게 하여 스스로  이 3가지 경전의 법리를 잊지 않고 ,  죽음을 맞이하려 하였든 것이다. 

대략으로  법화경은 우주를 관통하는 법리를 가졌고 ,  마하반야경은 모든 것들은 무아와 공을 전제로 성립한다는 법리를 나타내고 ,  아미타경은 이러한 것들을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이라는 명칭과 세계에 비밀한 뜻을 접어두시고,  우선은 고통속의 중생을 먼저 건져 올려  해방시키려는 것이다. 


고승 대덕이신 천태대사는 이 모두 대승의 경전을 의지하여 ,  이 세계와 우주를 바라보았으며  종국에는 임종의 때에 이것에 의지하여 ,  연화장 세계인 극락으로 들어가려 한 것이다.  연화장 세계가 붓다의 거주처이며 ,  붓다 바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법리를 살펴 짐작하지 않아도  , 정토경전에서 설하시는 조건을 충족하려면 연화장 세계 외에는 ,  다른 국토로는 대체할 수 없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붓다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할 수있다. 

모든 대승경전에서 중생과 붓다는 본래 차별이 없어 평등하다고 하였으나 현실적으로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중생들은 어떻하든지 수행을 통하여 , 붓다의 경지를 얻으려 기를 쓰는 것이다.   

중생들의 입장에서는 붓다는 진리이자 법신이 되며,  붓다의 입장에서는 중생과 만유는 도로 법신이 되어 스스로화 되어 버린다고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붓다는 중생들에 구경의 진리이므로 완전한 법신이며,  중생과 만유는 붓다의 법신이 되어 이 또한 완전무결한 진리로서 ,  결국에는 서로 다름이 없다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가 성립되므로 ,  중생으로서 구경을 성취한 붓다는  자신이 성취한 법리를 통하여 ,  중생으로 하여금 방편으로 자신의 정토에 섭수하여 ,  고통을 떠나고 영원한 안락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중생들은 잠시라도 붓다의 법리에서 벗어날 수 없어며 ,  큰 능력이신 붓다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므로 성불의 성취가 보장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붓다를 떠나서는 성립되지 않으며,  또한 붓다를 이루기 위한 그 길인 법리를 망각해서도 안되며,  잘못하면 장병들이 총없이 싸움터에 가는 격이되어,  도무지 허망한 꼴이 되고 만다. 


이러한 것을 갖추고 구도의 길에 들어선 수행자를 ,  우리는 보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렴풋이 이를 이해하고 ,  붓다나 보살의 가르침이나 인도를 받아 구도의 길을 간다고 본다.  


말하자면 붓다가 왕이라면 이 길을 가는 보살은 왕자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진리의 왕자가 되어 ,  최상인 무상의 진리의 길에 들어선 법왕자의 지위를 얻게 된다. 


정토에 왕생한 사람은 모두가 붓다가 될 수 있으므로 보살인 셈이다. 


진리에 대한 금강계만다라에서는 5부로 나누고 있다.   

1,갈마부로서  전5식이 변환되어 나타나는 성소작지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행위의 장으로 중생에 필요의 성취로 볼 수 도 있다. 

2,연화부로서  6식이 변환되어 나타나는 묘관찰지는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는 지혜의 장으로  잡다한 중생계의 의식과 경계가 ,  기묘한 지혜의 세계로서의 정토인 , 연화세계로 나타난다. (口密(구밀)) 

3,寶(보)부로서  7식이 변환되어 나타나는 평등성지는 너와나 , 다양하게 분리되어 엇갈림이 평등하게 일치가 되어 구분과 차별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진리세계의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든 보물과 보화들을 ,  모두 두루하게 지니게 되어 평등성지는 보부가 된다.    

4,금강부로서  8식이 변환되어 나타나는 대원경지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나타나는 차별의 장으로 ,  적정 적멸을 이루지 못한 의식이 만유가 된다. 

따라서 대원경지는 지혜와 조화를 이루어 금강의 세계가 된다.  (意密(의밀)) 

5,佛部(불부)로서  위의 4부가 종합되어 나타나는 법계체성지는 우주 법계 모든 것의 성품을 알고 ,  그기에 자유자재하게 된다.  (身密(신밀))  


여기서 우리는 붓다의 지헤와 성품, 능력과 정토의 의미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다음에 인과법과 법리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하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 

현실 사회법은 유위의 인과율을 기본으로 인간들이 명문으로 ,  제정해놓은 반면에 유위의 인과법은 유정들의 마음의 의도와 행위에 의해서 ,  주관과 객관이 서로 주고받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과가 나타나면 인연생기의 과보로서 측량되어 질 수 있다. 


그러나 구도의 길에서는 수행자는 인과법을 적용할 수 없으며 ,  특히 유위의 인과율에는 특히 메일 수 없는 것이다. 

수행을 통하여 도를 얻을 경우 ,  함이없는 행으로서 무위로 볼때 이때는 우리는 인과라 말하지 않고 ,  득도의 과정을 법리라 이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무위의 인과법에서도 법리가 존재하고 성립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인과와 법리가 공존하고 있으나,  받은 만큼 돌려주고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  뿐만아니라 인과의 계산에 의한 공덕과 복덕,  선행을 추구한다면 도와는 거리가 있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법리는 인과법의 상위법으로서 유위의 세계를 뛰어 넘는 법으로 상정할 수 있다. 


어째뜬  우리의 삶의 방식에는 보이지 않는 법리가 현존하고 있으며,  이를 따르는 삶이 인과율에 순종하는 삶 보다는 ,  수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에 대한 평가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어렵다고 할 수 밖에 없다. 


下輩往生(무량수경 하배왕생)


佛告阿難  其下輩者  十方世界  諸天人民 

其有至心  欲生彼國  假使不能  作諸功德  


當發無上  菩提之心  一向專意  乃至十念 

念無量壽佛  願生彼國  若聞深法  歡喜信樂 


不生疑惑  乃至十念  念於彼佛  以至誠心  願生其國  

此人臨終  夢見彼佛  亦得往生  功德智慧  

次如  中輩者也  

일반 보통의 사람을 위한 하품왕생을 설하신 것이다. 

큰 공덕과 지혜,  수행력을 갖추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여러 가지 공덕을 짓지는 못하지만   

보살의 보리심을 발하고 의심없이 십념전속하여서, 

그 국토에 태어나기를 원하면 임종시에 꿈결에 부처님을 뵙고 

왕생한다. 


지금까지 무량수경 제18원 내지10념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  이는 길게는 평생을 통하여 염불수행을 하게 되며 , 짧게는 임종시에 지성껏 10념에 의해서도 극락국에 왕생할 수 있음을 경에서 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왕생 사례를 통하여 ,  여러 사람이 동시에 왕생할 수 있는 반야용선이 이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징스님의 만일염불회)   


신라 경덕왕(758), 원성왕(787)시대의 일이다. 

서기 758년 고성현 원각사(현 건봉사)의 주지 발징(發徵)화상이 큰 서원을 발하였다. 

두타승 정신 랑순등 31인을 청하여 미타만일회를 시설하여 향도(香徒) 1820인을 맺었다.

1700인은 죽과 밥을 담당하는 시주자이고  120인은 의복을 담당하는 시주자가 되어 해마다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  백미 1말 , 기름 1되 , 오종포 1단씩을 오랜 기간 동안 함께 마련하였다. 


29년 만인 787년 7월 17일 한밤중에 큰비가 쏟아져 도량 밖에 넘치더니 ,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두보살이 자금연대를 타고 문 앞에 이르러 금색의 팔을 펴고 , 염불하는 대중을 맞이 하였다. 

부처님은 대중을 거느리고 반야선에 올라 , 48원을 부르면서 연화세계로 가서 상품상생을 명하였다. 

이에 발징화상은 두루 다니다가 금성에 도착하여 낭무아간의 집에 자고 있는데 , 큰 빛이 그 방에 비치어 놀라 일어났다. 


관음보살이 발징화상에게 고하였다.  

“그대 도량의 스님들은 부처님의 인도로 서방정토의 상상품으로 왕생하였으니 빨리 가 보아라.” 

발징화상이 즉시 가려고 하자 낭무는 말하였다.  

“스님은 처음 발원하실 때 우리 어리섞은 중생을 먼저 제도한 뒤에 세상을 떠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적은 힘이나마 최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거늘 ,  오늘 우리들을 버리고 어찌 홀로 가실 수 있습니까.”   


그는 온 몸으로 땅을 치면서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발징화상은 이에 낭무등을 거느리고 31명의 스님을 가서 본 적 육신등화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도량을 향하여 1300여번 절을 한 뒤에 그들의 다비식을 하였다. 

그리고는 향도들의 집을 두루 다니니 , 913인은 도량의 스님과 같은 시간에 단정히 앉아 왕생하였고 ,  나머지 907인만 돌아온지 7일이 되었을 때,  또 아미타불을 보았는데 부처님 배(반야용선)을 잡고서 같이 타자고 하였다. 


“우리 향도 가운데 아직 제도하지 못한 자가 있아온데 ,  홀로 먼저 가는 것은 저의 본원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다시 고하였다.    

“18인은 상품중생으로 왕생이 될 것이나 그 나머지는 되돌려 보내어 업이 성숙한 뒤에 와서 제도하겠다.”  

향도가 이 말을 듣고 슬피울고 후회하며   

“우리들이 무슨 죄업을 지었길래 유독 왕생을 못하는가.” 하고는  더욱 정근하여 밤낮을 쉬지 않았다.  

또 7일째 되는 한밤중에 아미타불이 다시 배를 타고 와서 말하였다.  

“내가 본래 세운 원력 때문에 너를 맞이하여 같이 가야겠다.”  

발징화상은 울먹이며 다음과 같이 사양하였다. 

“만약 신도들 중에 무거운 죄 때문에 왕생할 처지가 못되는 사람이 있다면 ,  저는 맹세코 지옥에 들어가 그 고통을 대신 받으며 영원히 그 죄를 멸하여 ,  사람마다 모두 왕생케 한 연후에야 왕생하려 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만 두어라  31인의 상품하생과 그 나머지는 그대가 먼저 왕생하여 ,  부처님의 수기를 얻고 무생인을 깨달아 신통한 지혜로 다시 , 인간 세상에 와서 다 구제할 수 있다.” 

발징화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발에 절한후 , 배를 타고 서방정토에 왕생하였다.                          <삼국  유사>


여기서 우리는 발징화상의 무리한 원력으로  향도 모두를 서방정토로 같이 한꺼번에 데려 가려고 하였으나 ,  개개인의 정토업과 근기와 자질이 모두 천차만별이라 ,  정토의 주인인 부처님만이 이를 선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본원력에 의한 수행을 하면서 , 한편으로는 왕생을 위한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  점검하고 맞추어 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달음이나 , 도를 얻지 못한 상태이므로 마음가짐 만이라도 부처님의 뜻을 따를 필요가 있다.  


오역의 죄인도 왕생할 수 있으므로   결국은 마음가짐에 의해 서방정토를 얻을 수 있고 혹은 정토로부터 배제되기도 한다.   


일찍이 일본국에서는 정토종이 번성하였고,  일본 중세의 왕생사례를 보고 우리의 사표로 본보기로 한다. 


<조중이 단 한번의 염불로 왕생하다>    

영구(永久; 1113-1118)의 무렵, 전에 궁중의 잡무를 처리하는 부서에 소속되어 경비를 맡았던 무사로 조중이라는 인물이있었는데,  근강국(近江國) 포생군(蒲生郡)의 사람이다. 

그는 도둑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그 화살이 등에 꽂히는 순간 “나무 아미타불”이라고 오로지 한마디 외치고 죽었다.   


그 목소리가 낭랑해서 옆 마을까지 들렸다.  

사람이 와서 그를 보자 서쪽을 향해서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적인(寂因)스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조중과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지만  집이 가깝지 않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몰랐다.  


그날 밤 꿈에 광야를 가는데 길옆에 죽은 사람이 있었다.  

스님이 많이 모여서 말하길 “여기에 왕생한 사람이 있다. 당신도 이것을 보시오.” 라고 한다.   가보니 조중이었다. 

이런 내용을 꿈속에서 보고나서 꿈을 깨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다음 날 아침 조중이 심부름 시키는 아이가 왔다. 


아이로부터 조중이 죽은 내용을 들으면서 조중이 왕생 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어느 승려가 근강국에서 수행하면서 걸어갔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지금 왕생하는 사람이 있다.  가서 불도의 인연을 맺는 것이 좋다.” 라고 했다.  

그 장소는 조중의 집이었다.  시간도 같았다고 한다.   


<귤 장관이 발원해서 왕생하다>  

상반(常磐 ; 경도시 우경구) 지방에 귤수조(橘守助)라는 장관이 있었다.  

나이는 팔십여 세가 되었지만 불법을 몰라서 재일(齋日)이어도 정진하지 않았다.  

법사를 보고도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다. 

만약 불법을 알고 권하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그를 조롱했다.  

모두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수조가 이여국(伊予國)에 있는 영지에 갔다.   

때는 영장(永長 ; 1096-1097)년 가을 ,  그는 특별한 병도 없이 임종을 맞아 올바른 마음을 갖고 왕생했다.  

수마(須磨 ; 지금의 神戶市) 쪽에서 자색 구름이 흩어져서 좋은 향기가 넘치고 상서로운 징표가 있는 것이 확연했다.  

이것을 보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서 그의 처에게 “어떠한 근행을 했는가.”라고 물었다. 


처가 “주인은 원래부터 마음이 비뚤어져 있어서 공덕을 쌓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 재작년 6월부터 매일 저녁 몸을 깨끗이 하지도 않고 의복을 단정히 하지도 않은 채 서쪽을 향해서 종이 한 장에 쓴 문장을 읽고   손을 모아서 참배해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을 찾아내서 읽어 보니 서원을 세운 문서였다.  

그 말씀에 “제자인 내가 엎드려서 비오니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세지보살, 모든 부처님께 고합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은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다만 불법에 대해서 내 마음은 원래부터 우둔한데다 더욱이 수행한다고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까닭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허무하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미타여래는 우리들 인간과 관련이 깊으시기 때문에  더러워진 말세의 사람들을 구하려고 커다란 서원을 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그 취지는  

“예를 들어 사중(四重), 오역(五逆)의 대죄를 범한 사람이어도 목숨이 끝날 때 , 이 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기원하며 ,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열 번 말한다면 내가 반드시 마중하러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을 세우려고 , 오늘 이후 매일 저녁마다  서쪽을 향해서 열심히 아미타불을 읊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만약 오늘 자고 있는 중에 수명이 다한다면 , 

이것을 끝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염불하는 것이 되니 ,  약속한데로 마중 나오시어 극락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예를 들어 아직 수명이 있어서 오늘 밤이 지난 다고해도 임종할 때 염불할 수 없다고하면 , 매일 염불이 끝날 때 열 번 아미타불을 읊고 싶습니다.  

나는 죄가 많다고 해도 ,  아직 오역의 죄는 짓지 않았습니다.  

공덕은 조금밖에 쌓지 않았지만  , 극락에 태어나기를 깊이 원하고 있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에 거역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습니다.  

반드시 나를 정토로 이끌어 주십시오.“  라고 되어 있다.  

이것을 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를 존경했다.  


그 이후 이 문장으로써 아미타부처님의 서원을 믿고 ,  극락왕생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어느 스님은 이처럼 발원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것이 최후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여러 번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읊었는데 ,  이렇게만 해서 왕생을 이루었다고 한다.  


아미타부처님을 읊는 것이 적을 지라도 언제나 무상을 깨닫고 ,  왕생을 마음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잊지 않고 언제나 마음으로 극락을 생각하면 , 목숨이 끊어질 때 반드시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면 식물이 구부러져 있는 방향으로 쓰러지는 것과 같다.“ 라는 말이 있다.   


<찬기국의 원장관이 갑자기 발심해서 왕생하다>  

찬기국(讚岐國;지금의 향천현)의 어느 군인가 원(源) 대부(大夫)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불법이라는 말조차 모른다.  

그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살생을 하고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어느 날 원 장관이 사냥을 하고 돌아가는 도중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는 사람의 집앞을 지나는데 ,  설법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이를 보고 “무엇을 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것인가?” 라고 물었다. 


종자가 “새로 만든 불상, 불화 등을 법당에 안치할 때 행하는 의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장관은 “그것이 정말인가.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러한 것은 아직 본 적이 없다.”라고 하면서 말에서 내려 사냥할 때의 모습대로 사람을 불러모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엎드려 있는 많은 사람들의 어깨를 넘어 스님이 설법하고 있는 쪽에 가까이 와 앉아서 불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스님은 두려웠지만 설법을 일시 중지하고 나서 ,

아미타부처님이 사람들을 구하려는 서원과 ,  극락은 즐거운 곳이고,  이세상은 괴롭고 무상한 곳이라는 점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원 장관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군요.  만약 내가 법사가 되어서 그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쪽에 가려고 열심히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면 대답해 주실까요?”라고 물었다. 

스님은 “정말로 깊게 믿고 발심하신다면 반드시 대답해 주시겠지요.”라고 대답했다.  

원 장관은 “그렇다면 지금 곧 나를 법사로 해 주시오.”라고 했다.  

스님은 생각한 바 있으나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때 종자가 다가가서 “오늘 당장 출가하는 것은 매우 성겁하다고 봅니다.   집으로 돌아가신 연후에 준비를 해서 출가하신다면 한층 더 좋겠지요.”라고 했다.  

장관은 벌컥 화를 내고 “너와 같은 어리석은 소견으로 어떻게 해서 내가 생각한 것을 방해하려는가.”라고 하며 눈을 부릅뜨고  큰 칼을 휘둘렀기 때문에 ,   종자는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 버렸다.  

아예 그 곳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새파랗게 질렸다. 


원 장관이 가까이에 다가와서 “지금 곧 머리를 삭발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끊임없이 채근했기 때문에 스님은 할 수 없이 그를 법사로 만들었다.  

원 장관은 승복 가사를 받아 입고 그 자리에서부터 서쪽을 향해서 목소리가 나는 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걸어갔다.   

원 장관의 염불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다.  


이렇게 해서 며칠동안 서쪽으로 멀리 걸어가고 있는데 그 끝에 산사가 있었다.  

그 산사에 있는 스님이 원 장관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원 장관이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자,   스님이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  “그래도 배가 고프셨지요.”라며 주먹밥을 싸서 건네자,   장관은 “전혀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이 대답을 해 주신다면 산림, 바다, 강이든 목숨이 있는한 가려고 하는 마음만이 강하고 ,  그 외의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며  서쪽을 향해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앞장서서 걸었다.  


그 절에 또 다른 스님이 있어 원 장관의 뒤를 따라갔다.  

원 장관은 아득히 먼 서쪽 해안에 돌출되어 있는 산 쪽의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원 장관이 “여기에서 아미타부처님이 대답해 주시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서 목소리를 크게 하여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니 정말로 바다 서쪽에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들으셨습니까?  이제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칠 일이 지나면 한번 더 오셔서   내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 모습을 보아주십시오.“라고 하는 바람에 스님은 울면서 돌아갔다.  

그 후 칠 일이 지난 뒤 그 스님이 산사의 승려를 많이 불러서 함께 가보니  원 장관이 원래의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손을 모은 채 서쪽을 향해 자는 듯이 앉아 있었다.  

원 장관의 혀 끝에 푸른 연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부처님인 양 참배한 후 연꽃을 따서 태수에게 드렸다.   

태수는 수도로 올라가서 이것을 우치전(등원뢰통)에게 드렸다.   


공덕은 쌓는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나마 이렇게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깊으면 왕생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삼매 주지의 제자가 법화경의 영험을 얻다>

근래에 의예(義叡)라고 해서 여기저기 수행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태야(態野)에서 대봉산(大峰山)으로 들어가서 금봉산(金峰山)으로 나오는 도중 길을 잘못 들어 십일 남짓 동안 생각지도 않은 험악한 계곡과 봉우리를 헤매고 다녔다. 

몸은 피곤하고 힘이 빠져 기력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  진심을 다해서 부처님께 빌며 가피를 구했다.  


그 정성스런 기도 덕분인지 길을 찾아 평지로 나갈 수 있었다.  

그 곳에는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안에 움막이 한 채 있었다. 

걸어가서 움막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말할 수 없이 훌륭한 집이다.  

집의 도구랑 장식은 모두 옥으로 되어 있었고 , 정원의 모래도 백설처럼 아름다웠다. 

정원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많은 열매가 열렸는데  의예가 이것을 보니 한없이 즐거웠다.  


마당에서 잠시 쉬면서 이 움막 속을 들여다보자 스님이 한 분 계셨다.  

나이는 약 이십 세 정도로 보였는데  가사를 단정히 입고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히 거룩해 보였다.  

그 목소리 또한 뭐라고 말할 것도 없이 청아했다.  

법화경 일 권을 끝까지 읽고 경전을 책상위에 놓으면   그 경전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연히 말려 올라가서 원래대로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일 권에서 팔 권에 이를 때까지 원래대로 돌아가서 전과 같이 되었다.  

그렇게 법화경 한 부를 다 읽고 나서 공경하여 참배했다.  

그리고나서 그 스님은 밖에 나왔는데  의예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여기에는 옛날부터 사람이 온 적이 없습니다.  산중에서도 특히 깊은 산골짜기이기 때문에 까마귀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의예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스님은 의예를 애처롭게 여겨 움막 안으로 불러 들였다.  


잠시 있다가 아름다운 동자가 진수성찬을 들고 와서 먹었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 인간이 만든 음식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의예가 이 모든 것을 의아하게 여겨 스님에게 “여기에 산 지 몇 년 정도 되셨습니까. 어떤 연유이신지,  모두 뜻대로 이루어진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제가 여기에 살기 시작한 지 팔십 여 년 됩니다.  

나는 원래 비예산 동탑의 삼매주지의 제자였습니다만,  사소한 일로 스승께 매우 꾸지람을 들었지요.  

그때 어리섞은 소견으로 절에서 나와 여기저기 헤메다가 정착할 곳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은 뒤에 이 산에 움막을 짓고 지금 이 곳에서 죽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라고 했다. 


의예는 점점 괴이하게 생각되어 거듭해서 물었다.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만 멋있는 동자가 많이 있습나다.  

아무래도 저를 속이고 계신 듯합니다.“라고 하자  

스님은 “하늘의 여러 동자가 음식물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 겠지요.”라고 한다   

의예는 또한 똑같이 “나이가 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스님의 모습을 보면 젊고 건강합니다.  이것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스님은 “법화경을 들은 자는 병도 곧 치유되어 불로 불사의 뭄이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잠시 이야기를 하든 중 스님은 의예에게 “빨리 돌아가세요.”라고 권했다. 

의예는 탄식하며 말하길, “여러날 방황하면서 걸었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기력도 빠져서 돌아갈 기력이 없습니다. 

날도 기울어서 밤이 되려고 하는데 스님은 나를 쫓으시렵니까? 제가 싫습니까?“라고 했다.


스님은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멀리 인간의 기척을 피해서 오랫동안 지내왔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돌아가도록 권할 뿐입니다. 만약 오늘 밥 이 움막에서 머무시려면 몸을 움직이지 말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일러 두었다.  


의예는 스님이 일러준 데로 숨죽인 체 앉아 있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스산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자 여러 가지 모양을 한 귀신이랑 괴상한 짐승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여들었다.

말의 가면을 쓴 것도 있고, 소를 닮은 것도 있고, 또 새의 머리를 한 것도 있고, 사슴의 모습을 한 것도 있다. 


각각 부처님께 바치는 향과 꽃처럼, 과일과 밥을 소나무 정원에 높은 식탁을 만들어 그 위에 놓고,  손을 합장하여 참배하고는 엎드렸다.  


이 중 어떤 것이“이상한 일이다.  다른 때와 달리 사람의 기척이 있다.”라고 했다. 

또 어떤 것은 “누가 여기에 온 것인가?”라고 했다. 

그 후 스님이 발원문을 읽고 법화경을 독송했다. 

새벽이 되어서 회향할 때 모여든 이들은 절하고 돌아갔다.

의예는 “이 여러 가지 모습을 한 것이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어떤 종류이고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듣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독경할 때에는 부처님께서 수호신을 파견해서 그것을 들려 줍니다.”라고 했다.  

의예는 여러 가지 이상한 일을 보고 ,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그 스님이 더욱 존경스럽고 믿음직스러웠다. 


날이 밝았기 때문에 이제는 빨리 돌아가려고 하였지만  또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어서 한탄을 했다. 

그러자 스님이 “길 안내를 붙여서 전송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물항아리를 들어 앞에 놓았다. 

그 물항아리가 춤을 추면서 점점 앞으로 갔다.  그 항아리의 뒤에 붙어서 가니 네 시간 정도 지나서 산꼭대기에 당도했다. 

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기슭에 마을이 있었다. 

그 물항아리는 하늘로 올라가 스님이 원래 있는 곳으로 날아서 돌아갔다. 


이 사람이 마을로 와서 이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송실 동자가 성불하다>

나랑의 송실(松室)이라는 곳에 스님이 있었다.  

그는 관직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덕이 있어서 세상에 유용한 사람이었다. 

승방에 그가 특히 소중히 여겼던 아이가 있었는데 ,  이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스님은 “어릴 때는 학문을 하는 것이 좋다.  불경을 읽는 것은 네게 적합하지 않다.”라며 법화경 독송을 만류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처음엔 그 말에 따르는 듯 했지만 몰래 법화경을 독송했다.  


스님은 아이의 뜻이 깊다고 보고 나중에는 아무도 그만두게 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열네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 홀연히 지취를 감춰 버렸다. 

스님은 매우 놀라서 아이가 갈만한 곳을 샅샅이 찾았지만 모습이 전연 보이지 않았다. 

스님은 “악령에 홀린 듯하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사후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기원하고는 아이를 찾는 것은 체념해 버렸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나서 승방의 법사 한 사람이 장작을 주우려고 산 속 깊은 곳에 갔는데, 나무 위에서 불경을 읽는 소리가 들렸다. 

법사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쳐다 보니 자취를 감춘 동자였다. 

놀라서 “어째서 이곳에 있느냐, 스승님 께서 얼마나 걱정하고 계신지 알고 있느냐?”라고 하자,   아이는 “제가 떠난 일을  말씀드리려고 스님을 만날 생각을 했습니다만 , 형편이 좋지 못해서 모두가 계신 곳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법사님을 만나서 기쁨니다. 돌아가시면 은사 스님께 이곳에 반드시 오시라고 전해주십시요“라고 했다. 

이 법사는 돌아가서 이 사실을 전했다. 


은사 스님은 이말을 듣고 놀라워하며 곧 아이를 찾아 오셨다. 

아이는 “저는 법화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신선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신선이 된 뒤에는 연락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사람 사는 데는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은사 스님이 걱정이 되면서도 뵈러 갈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스승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승이 돌아가시려고 할 때 아이가 “삼월 십팔일에 죽생도(竹生嶋)라는 곳에서 신선이 모여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비파를 연주할 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비파를 좀처럼 구할 수 없습니다. 빌려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스님이 “그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디로 가지고 가면 되겠느냐”라고 하자  

아이는 “이 곳에서 받겠습니다”라고 하며 서로 헤어 졌다. 

그 후 은사 스님이 사람을 시켜 비파를 보냈지만 그 곳에 아무도 없어 나무 밑에 두고서 돌아왔다. 


막상 이 스님이 삼월 십칠일에 죽생도에 가서 십팔일 이른 아침 눈을 떠보니 멀리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구름에 울러 퍼지고 바람을 타고 온 이 음악소리는 보통의 음악과는 다른 것처럼 생각되고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스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듣고 있었다. 


점점 가까이 가니 음악이 그쳤다. 

잠시 지난 후 둿마루에 물건을 놓는 소리가 들렸기에   밤을 샌 후 이것을 보니 전에 제자에게 빌려준 비파였다. 


은사 스님은 비파를 경외시 하며 ,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 죽생도의 신에게 바쳤다.  

비파엔 좋은 향기가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며칠이 지나서도 그 향기가 없어지지 않았다. 

이 비파가 지금도 죽생도에 있다. 

이 이야기는 진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  


流通普度分  第十三  

유통보도분  제십삼 


佛說此經已  舍利弗  及諸比丘 

불설차경이  사리불  급제비구 

一切世間  天人  阿修羅等 

일체세간  천인  아수라등 

聞佛所說  歡喜信受  作禮而去

문불소설  환희신수  작례이거 


註 

문불소설  환희신수 ; 석가세존의 극락정토 법문이 끝나자 그 법회 참가자 모든 人天들이 환호작약(歡呼雀躍)하며 신수(信受)봉행(奉行)하였다. 


파드마삼바바의 티베트 사자의 서(書)는   

                임종시 마음 자세와 업의 관계를  말한다.   


이제 죽어감의 바르도가 내게 닥아 옴에 따라 온갖 집착, 갈망 , 그리고 애착을 버리겠노라 


조금도 흩어짐 없이 명료하게 가르침을 알아 차리고  不生하는 阿彌陀佛의 淨土의 영역으로 내의식을 분출하리니    


살과 파의 복합체 , 이 육신을 떠나게 되니까  

그것이 덧없는 환상인줄 알겠노라 


죽는 순간 우리가 마음을 진정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우리의 카르마도 바꿀 수 있다.


왜냐하면 죽는 순간에 카르마를 정화하기 위한 예외적으로 강력한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죽기 직전 지닌 마지막 생각과 감정은 곧바로 이어지는 미래에 극단적으로 강력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로 잡힌 마지막 생각이나 감정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확대될 수 있고 자신의 지각 전체에 스며들게 된다.


죽음의 순간에 집착이든 혐오든 모든 생각을 내려 놓아라.


여기서 잠간 짚고 넘어 갈 점이 있다.

티벳 고승의 가르침에서 인간에서는 인간이하인 축생으로 떨어지지 않고 다만 비유적으로 그 같은 고통을 받는 것으로 , 상징적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이는 모든 수행의 과정에서 그에 상응하는 지혜가 현료됨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 설산과 심산유곡의 절애의 환경에서 독각적인 면의 수행이 빼어나 성불을 이루었다는 점도 인정된다.

어째든 사람이 천수를 다해 저승으로 가서는 중음의 바로도에서 오랫동안은 머물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다시 어떤 몸이든 받아 윤회의 수례를 돌려야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떤 것은 되기 어렵다.

또한 엿장수 마음대로 이것이나 저것이나 골라 선택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끝으로 선도대사의 염불수행의 요의를 말하자면(염불경에서) 


1. 마음에는 오직 信이 있어야 하고 

2. 입에는 오직 念이 있어야 하며 

   오직 입으로 부처님을 염하여 소리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을 염성취라 한다. 

3. 몸에는 오직 恭敬이 있어야 한다. 

4. 다만 능히 결정된 깊은 신심과 지성에서 물러나지 않는 사람이 염염이 끊어지지 않고 ,     聲聲으로 부처님을 부르면 道俗 貴賤 貧富 好醜 男女의 죄의 경중을 묻지 않고 오직 信     心成就를 취한다.

5. 때문에 알라 염불하는 사람이 聲聲이 끊어지지 않으면 병을 낫지 못할 것이 없고 , 죄를     멸하지 못할 것이 없으며 , 반드시 두려움이 없고 , 또한 退轉하지 않는다. 

6. 오직 염불만을 생각하고 다른 일은 하지 말며 마음을 깨끗이 하여 , 반드시 西方을 원하     면 임종시에 여래 스스로가 오신 것을 친견한다. 

7. 염불할 때 辛苦가 많다고 하여 버리지 말라, 

   長劫동안 생사에 윤회한 것을 생각하라 , 

   다시 어떤 사람을 향하여 出路를 구하겠는가,  

8. 염불할 때 항상 상속하여 하라, 

   가령 순수하고 凡常한 생각으로 염하지 않으면 , 

   어느 때 生死의 地獄을 벗어 날 수 있겠는가,  

9. 염불은 항상 모름지기 마음과 입으로 절박하게 하라,  

   業海의 苦輪이 깊음을 생각하니 生死가 忙忙(조급하고 아득함)하여 뉘우쳐도 미치기 어     렵다.  

10.아미타불을 염하여 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하면 곧 이것은 八地이상의 보살이다. 

   빠르면 一念十念이고,  늦으면 一日七日간 ,  

   아미타불을 칭념하면 ,  곧 정토에 태어난다.  



法然上人전기 제7권 下의 高聲念佛事의 段에서 


같은 11日 辰時에 上人이 일어나 서쪽을 향하여 고성으로 염불하셨다. 

듣는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제자 등에게 말하기를 “고성으로 염불하라, 이 명호를 부르는 사람 한사람도 헛되지 않고 왕생할 수 있다” 고 하여  

高聲염불을 권하고 염불 공덕을 여러 가지로 찬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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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무아지 | 작성시간 10.02.27 나무아미타불~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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