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무상(無常 anicca) 과 고(苦) <잡. 1-9. 염리경>을 보면.. 9. 염리경(厭離經)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我]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我所]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상·행·식 또한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불교는 사회 문제를 다르는 가르침이 아니다. 苦를 겪고 있는 자신을 주제로 다룬다. 색은 무상하다 라고 하는 것 역시 고가 생기는 이유를 고를 멸하는 이유와 연관되어 있기에 첫번 째 일성(一聲)으로 나온다. 색(온)은 안간의 다섯 무더기 결합(5온) 가운데 기본이라고 할만한 몸(身, 색온)을 의미한다. <1. 무상경>에서 '색은 무상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어서 나오는 무상은 곧 苦와 연결된다.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苦.. 라는 게 금방 연결이 아니된다. 4성제에 나오는 고제(苦諦, 苦 진리)를 보면..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줄여서 말하지면 5취온이 모두 괴로움이다. 이라 하고 있다. 4제에서 말하는 생노병사와 애별이고 등을 4苦8苦라 하듯 그것들은 왜 고가 되는 것인가?.. 생노병사가 즐거움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살다보면 보람도 있고 즐거움도 있는 게 아니냐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고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서 함께 있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가?.. 삶 속에는 즐거움이 있지만 그것은 지속되지 않고 변하니 결국은 고가 된다. 무상이 고라는 것은.. 항상하지 못하고 변하니 苦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면 생사가 있으니 고라고 하는 것은 동의하더라도 고라는 것을 잊은 듯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아니한가?.. 그렇다. 생사가 있기에 고는 틀림없이 있다 그러니 불교의 가르침은 진리(法)가 틀림없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와같은 고는 무시하고 살아가니.. 근본 불교는 유독 苦를 의식하고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된다. 아니 고를 의식할 뿐 아니라 고를 벗어나고자 욕구하는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게 바로 근본 불교다. 대승불교는 고(苦)보다 행복을 강조한다. 무엇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설명이 달라진다. 근본불교의 교설은 苦를 강조한다. 색이 무상하다고 하는 이유도 고의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生이나老나 病이나 死, 그 자체가 苦라기 보다.. [나]가 태어나 병들고 늙고 마지막에는 죽는다고 하니 [나]에게 고가 된다. 곧 나는 무상을 바라지 않는데 무상하니 나에게 고가 생기는 것이다. 苦는 생노병사나 외부에 있는 게 아닌 나에게 있다. 이별이나 원하지 않는 자와 만남, 그리고 구하는 게 구해지지 않으니 고가 아니라.. [나]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데 그렇게 되니 [나]가 괴롭다. 그런 즉 어떤 사건 자체가 고일수 도 있지만 결국은 내가 그와같은 사건을 바라지 않는데 일어나니 나에게 고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인 5취온이 바로 苦라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 책상은 무상한데.. 그럼 책상이 고라는 것인가?.. 하고 묻는다. 그런 질문은 위에서 보았듯이 고는 나에게 있는 것인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으리라. 그러면서 [책상이 고]인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본다. 3법인을 설명할 때 일체무상(제법무상), 일체고, 일체무아(제법무아)라고 한다. 범부는 일체는 외부에 존재하고 자신은 그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알지만, <잡. 321경>에서 보아 알고 있듯이 일체는 3사화합촉에 의해 생긴 것을 외부에 투사해 놓고 있는 것임을 안다면.. 일체는 [심연생]인 6입처에 의해 생길 뿐 아니라 욕탐에 의해 생겨 있는 것임을 안다면.. 책상이라고 아는 것은 이미 苦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39. 결경(結經)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결박되는 법과 결박하는 법에 대하여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결박되는 법인가? 안과 색·이와 성·비와 향·설과 미·신과 촉·의와 법이니, 이것을 결박되는 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결박하는 법인가? 욕망과 탐욕을 말하는 것이니 , 이것을 결박하는 법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239경>을 보면 안과 색 2법이 결합은 욕탐이란 마음에 의해 묶인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엇이 접촉되는 데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어났다는 것은 욕탐이 아니냐 말이다. 그때 욕탐이 없더라면 비록 알지 못한다 해도 그냥 지나칠 것이다. 해서 책상이란 인식이 생겨 기억에 있다면.. 인식과 기억은 역시 욕탐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욕탐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스트레스요, 苦를 생기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욕탐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고가 따른다. 따라서 내가 책상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욕탐이 관여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내가 인식하고 있는) 책상은 苦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질문자는 일체는 6입처의 결과가 아닌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서, 외부에 존재하는 책상이 고일 수 있느냐 하면.. 외부에 존재하는 책상이라면 어찌 고일 수 있겠는가?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그가 근본불교를 공부하는 학인이라면 일체는 심연생인 6입처촉에 의해 생긴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기에 나에게 인식된 책상은 고일 수 밖에 없음도 분명히 알아야만 하리라. 다시 정리해 보면.. 9. 염리경(厭離經)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我]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我所]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상·행·식 또한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色無常,無常即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如是觀者 名真實正觀。 如是受、想、行、識無常,無常即苦,苦即非我,非我者亦非我所。 이라 하여.. 무상한 것은 고라고 하신다. 그 말을 보면 다친 몸이면 괴로움이 틀림없지만 다친 몸은 무상하기에 나으니 무상하기에 苦가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곧 변한다는 것은 고일 수 있고, 고가 아닐 수도 있는데.. 어떻게 세존께서는 일체가 고라고 단정하는가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의심은 문장의 주어를 잘못 이해한 것에서 생기는 오해[오류]가 아닐 수 없다. 세존께서는 무상 자체를 괴롭다고 하는 게 아니라..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라고 하신다. <잡. 5. 무지경>을 보면..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5경>을 보면.. 색(수상행식)을 좋아하는 것은 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라 하셨지.. 색의 무상을 좋아하는 것은 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색이 무상한 줄 모르고 색을 좋아하는 것은 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수상행도 그와 같다. 식이 무상한 줄 모르고 식을 좋아하는 것은 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몸에) 감기가 걸리면 괴롭고, 감기가 사라지면 괴로움이 사라지는데.. 그런 몸을 좋아하면 곧 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괴로움의 주체는 무상이 아니라.. 무상한 줄 모르는 5온이 괴로움의 주체다. 10. 해탈경(解脫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상·행·식도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은 곧 나가 아니며, 나가 아니면 또한 내 것도 아니다. 이렇게 관찰하는 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하느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0경>에서도.. '색은 무상하다. 색은 괴로움이다. 색은 내가 아니요 나의 것도 아니다' 라고 하는 것으로.. '무상은 괴로움이요, 무상은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무상이란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다. 무아가 그러하듯이..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법안(法眼) 작성시간 16.07.06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작성자念 佛 작성시간 16.07.16 나무아미타불 6자 명호에는 무한한 공덕의 원력이 있어서 순수한 마음으로 무소유 참된 염불 기도를 우주 삼라만상 모든분께 一念一心 참된 염불 기도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卍
어디서든 염불하는 그순간이 법당이요 부처님입니다.발심염불 일념염불 생활염불
부처님께서 말법시대에는 염불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365일 오직 일념으로 염불 정진하시길 발원합니다()
일심염불 나무아미타불 참회소멸 나무아미타불 업장소멸 나무아미타불 윤회소멸 나무아미타불 참된인연 나무아미타불 소원성취 나무아미타불 무량광명 나무아미타불 극락왕생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