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법인 무상, 고, 무아는 <잡아함경. 1-1>에 나온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이렇게 관하는 게 바른 관[正觀]이다.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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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잡아함경>에는 무상, 고 외에 공(空)이 보이고, 무아(無我) 대신에 비아(非我)가 보인다.
하여 어떤 자는 무아라고 하고는 그 뜻이 "나[我]도 아니요, 내 것[我所]도 아니다" 라고 하여, "나는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한다.
<니까야. SN 22.59 >를 보아도
무아경 (SN 22.59 Anattalkkhana sutta)
1. 오온이 ‘나(我)’가 아닌 것(Anatta, 無我)을 보여주다
(1) 몸이 나가 아니다(Rupa anatta)
“빅 쿠들이여! 몸(Rupa)이 ‘나’가 아니다. 몸이 만약 ‘나’라고 할 것 같으면 이 몸이 나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의 몸이여, 이렇게 좋게 되어지이다. 나의 몸이여, 이렇게 나쁘게 되지 말아지이다.’하고 몸에게 계획하고 준비시키고 명령 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빅쿠들이여! 사실 바르고 정확한 것은 이 몸이 (이렇게 몸 안의 몸과 바깥의 몸이) ‘나’가 아니다. 그렇게 ‘나’가 아니기 때문에 이 몸이 나를 괴롭힌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의 몸이여, 이렇게 좋은 것만 되어지이다. 나의 몸이여, 이렇게 나쁜 것은 되어지지 말아지이다.’라고 계획하고 준비시키고 명령할 수도 없다.“
위 경에서도 설명은 '내가 아니다(非我)'라고 하면서 무아(無我, Anatta)라고 말한다.
왜 남방불교 학인들은 비아로 설명하면서 무아를 고집하는 것인가?.
세존이 가리키는 곳은 걀국 무아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도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 무엇이 남는가?.. 없다. 무아(無我)
[비아는 결국 무아를 향하는 것]이라고 알면서 니까야의 <무아경>을 다시보자.
색(수상행식)이 무아인 이유는 만일 색이 나라면 계획하고 준비시키고 명령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럴 수 없기에 나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 말을 역으로 하면 색 등이 나 또는 나의 것이라면 내가 하고픈 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이치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5온을 나라고 여긴 인도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잇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범부들이 나 또는 나의 것이라는 색온에 대해 그들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기에 나라고 하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서 태어나 생노병사하는 자를 나라고 하면서.. 곧 나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게 나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 색이 나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거나, 그러기에 내가 맘대로 할 수 없기에 내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자아 개념과는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세존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게 된다.
세존은 수행자가 되어 정신을 닦는 선정수행을 했지만 자신(자아)을 콘트롤할 수 없었고,
몸 수행(고행)을 통해 몸을 항복을 받을 지언정 완전히 정복할 수 없음을 보았다.
하여 어떤 수행을 하도라도 몸과 마음에 대한 완전한 콘트롤은 불가능인데.. 불가능인 이유는 바로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임을 깨쳤다.
그런데 범부들은 자아가 불안전함을 알면서도 자아가 있고, 그것이 (자기) 5온의 주인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부처님과 말이 통할 리가 없다.
암튼 불교 공부는 이렇게 내가 없음을 깨치는 것인데.. 그 과정은 내가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라는 부정을, 또 부정을 통해... ... 깨치게 되는 것이며.. 비아의 마지막은 비아(非我)가 아닌 무아(無我)가 된다.
한편 경을 보면..
"이 몸이 (이렇게 몸 안의 몸과 바깥의 몸이) ‘나’가 아니다. 그렇게 ‘나’가 아니기 때문에 이 몸이 나를 괴롭힌다. "
라고 한다.
이 몸(色)은 '나'가 아니라고 했는데, '나'가 아닌 몸이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나'는 누구인가?..
비슷한 내용의 <잡. 33. 비아경>을 보면..
33. 비아경(非我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나[我]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응당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무상한 색(수상행식)을 보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하여 색(수상행식)을 비아라고 하는 이유를 이해하기가 훨씬 낫다.
불교는 3법인이라 하는데 3법인을 정리해 보면..
제행무상.. 5온은 머물지 않으면서 흐르고 있다. 생노병사하는 과정 속에 어느 한 순간에라도 머물지 않는다.
일체개고.. 그런데 5온은 집기(集起)해 있는 것. 집기해 있다는 것은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그것은 무상과 어긋나니 그 차이만큼 스트레스가 생긴다.
제법무아.. 5온이 집기하면 그것을 자아라고 알던지 또는 그것의 주인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주인인 없으며,
그런 주인에 속할 실재하는 5온도 없다.
무상과 무아는 속제 진제 가리지 않고 무엇에든 관통하는 진리이며,
고는 주체에게 있는 것으로 고가 생기는 이유는 무상과 무아를 모르고 탐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법안(法眼) 작성시간 16.07.06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작성자念 佛 작성시간 16.07.16 나무아미타불 6자 명호에는 무한한 공덕의 원력이 있어서 순수한 마음으로 무소유 참된 염불 기도를 우주 삼라만상 모든분께 一念一心 참된 염불 기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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