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종합불교의 장

불교의 우주론 어떠한가?

작성자묘덕행|작성시간03.12.02|조회수217 목록 댓글 2
불교의 우주론은 어떠한가?

우리는 때로 우주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갖고 스스로 반문해 본다,
도대체 이 우주의 시작이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아마도 특별히 사유가 깊은 일부 고대인들도 이와 같은 의문으로
우주의 근원을 구명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관찰적으로 유추해서 알 수 있는 상식은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또한 자식을 낳아 손을
이어가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이해를 근거로한
우주론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논리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불교의 성립 이전에 외도들이 가진 일반적인 우주론은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 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구약성서 제 1장 창세기 첫머리에
"태초에 하나님(하느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나니라"는 말이 나온다.
우주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동양 민족의
생활 윤리를 지배해온 유교도 아주 간결한 해답을 해주고 있다.
유교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근사록(近思錄)』 첫머리에
"태초에 극(極)이 없는 태허공이 있어 곧 태극(太極)을 이룸이라.
태극이 움직여 양(陽)을 낳고 양이 動(동)하여 극에 이르러서는
피로하니 다시 고요해진다. 고요해짐은 음(陰)을 낳고 고요해짐이(淨정)
극에 이르러 다시 움직인다."

그리하여 음양이 결합하여 사상 팔괘를 생하고, 이로 말미암아 수.화.목.금.토의
오행(五行)을 발생하고 음양 오행이 결합하여 천지 만물을 발생시켜 무궁한
변화를 계속시킨다는 것이다. 여타 종교들이 우주의 근원을 신(神)으로 보고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유교는 그것을 역(易)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같은 우주에 대해서 기독교와 유교는 그 견해를 이렇게 달리하고 있다.
그러면 붓다는 이 우주법계를 어떻게 보았는가.? 놀랍게도 부처님은 우주의
기원이나 본질에 관해 서는 십이연기법으로 설명하고 오직 연기생이요 幻華(환화)의
허상임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교의 태극이 십이연기설과 비슷하게
설명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유교학자들이 간혹 있지만 전혀 같지 않은 것은 유교에서는
우주의 시초인 태극을 暝帝(명제)로 삼지만 불교에서는 그것을 無明(무명)인 망상으로
기인한바로 眞帝(진제)로 삼지 않는다는 것에서 전혀 같이할 수 없는 논리가
성립된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논쟁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어에 의한 해설을 좀처럼
베풀려고 하시지 않았던 것 같다.

부처님 당시에 만동자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해명해 주시니 않은 것에 대해서 매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세계는 유한한가 무상한가. 영원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영원하지도 않고
무상하지도 않는 가.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는가....."

그런데 부처님은 독화살의 비유로 만동자의 이러한 질문이 "깨달음과 지혜와
해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나니, 네가 성급하게 알고 행해야 할 바는
너의 현 존재가 괴로움이라는 사실과 나아가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중아함 전유경(箭喩經)』에 나오 는 유명한
이야기다.

부처님은 이렇게 우주의 기원이나 본질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 초기
경전에서는 언어에 의한 답변을 피하고 계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처님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아예 관심이 없으셨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대승료의경전인 능엄경에서는 세계와 중생이 생기는 이유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住(주)와 所住(소주)의 모습이 료연히 근본이 없어서
이 머뭄바 없는(無住(무주)) 것을 근본으로 하여 세계와 중생들이 생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망의 근본을 진리로 들어 말하더라도 둘다 망인데 혹 진리라고 말한
것이 곧 진실일 것이다, 하고 그기에 집착할 것을 항상 염려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외도들의 일반적인 우주론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범주 속에 포섭되는 것이 있었다고 봅니다.

첫째는
존우화작인설(存祐化作因說)로 우주의 창조는 물론,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 인이 신[尊祐]에게 있다는 견해로서, 정통 바라문의 우주론이
여기에 포섭될 것이다.
둘째는
숙작인 설(宿作因說)은 그러한 원인은 과거에 지은 바에 있다고 보는
견해로써 숙명론(운명론)이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로 모든 현상은 아무런 원인 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연론으로서 사문들을 이곳에 포함시 킬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 가지 우주론에 대한 진리성을 다음과 같이 검토하고
계신다. "만일 모든 것이 신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 때문에 짓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의욕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또 노력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일 모든 것이 과거에 지은 바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 때문에 짓는다고 해야 할 것이고 의욕도 노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만일 모든 것이 아무 런 원인 없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리들이 나쁜 업을 짓는 것도 그렇게 일어난다고 해야 할 것이이
고 의욕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중아함(中阿含) 권3 도경(度經)』"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우주론은 현실 세계의 인간의 죄악과 의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진리성이 부정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진리탐구에 있어서는 '인간에게 의지가 있다'는 것을 엄연한
사실로 확정하고 이로부터 그 배후의 원리를 탐구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인간의 의지적 작용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업에 대해서 그 대상이 나타내는 필연적인 반응을 '보(報)'라고 한다.
우리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원칙적으로 이 런 업.보의 인과율에
의함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뿐만 아니라 업.보가 삼세에 걸쳐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계신다. "만일 고의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그 보를 받 나니 현세에 받기도 하고 내세에 받기도
하나니라. 그러나 고의로 짓는 업이 없으면 보를 받지 않나니라
『중아함 권3 思經』." 이것이 불교에서 설하는 업설의 원리적인 내용이다.

업설은 또 우주를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가에 대한 불교의
답변이기도 하다. 불교의 업 설에 의할 때 우주를 움직이고 있는
궁극적인 힘은 바로 중생들 자신의 '업력(業力)'인 것이다. 불교학에서는
우주안에 있는 전 중생들의 이러한 공동적인 업을 '공업(共業)'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세계는 공업의 소성(所成)'이라고 말하고 있다.

업설은 불교의 우주론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장아함 끝 『세기경(世記經)』
이나 또는 그 별행경 이라고 볼 수 있는 『기세경(起世經)』.『기세인본경
(起世因本經)』 등에 좋은 예가 있다. 아함경 의 교리를 체계화한
『구사론(俱舍論)』을 통해 그 요점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모든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허공에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풍륜(風輪)이
생한다. 중생들의 업 력에 의해 다시 풍륜 위에 구름이 일어나 수륜(水輪)을
생하고, 업력에 의해 다시 수륜 위에 바람 이 일어나 수면을 응결시켜
금륜(金輪)을 생한다. 금륜 위에 수미산이 솟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수미산 남쪽의 섬부주(贍部洲)이며, 이 밑에 염마왕국(閻魔王國)이 있고,
그 아래 다시 8대 지옥이 차례로 위치한다. 그리고 해와 달, 별들은 수미산을
싸고 공중에서 돌아간다. 이것이 중생 들이 몸 담게 될 세계가 형성된 다음
이곳에 중생이 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능엄경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되풀이 하는 이러한 세계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속에 무수한 세 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말로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세계는 실로 무량하여 허공의 양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천체물리학에서도 점차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사실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여기에서 우리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바는 세계의
생성을 '중생의 의지적 업력'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며, 변천 소멸
그리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업력에 의한다는 입장이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우주를 신의 창조로 보는 신학적인 우주론이나 또는 성주괴공을
유교의 기계적으로 반복한다고 보는 우주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불교의 교리는 이러한 업보설로 다한 것이 아니다. 우주의 본질을 밝히려는
미묘한 교리가 그 뒤 에 다시 중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연기하는 업설에서
바른 道(도)를 이루기 위한 37조도법과 육바라밀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인간의 궁극 적 물음에 대한 답변 아닌 것이 없다.

우주의 근원적 힘 요소 본질이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해서 현재와 같은
괴로운 생사에 전락케 되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중층적으로
해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우주론 을 거론한다는 것부터가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우리는 흔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듣는다.
이보다도 더 간결한 우주론이 있을까.

『법화경』에는 "우주의 실상은 오직 부처와 부처만이 주고받는다"고 하였다.
우주의 실상은 깨달음을 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불교는 우주의
궁극적 실상에 대해서 이렇게 '깨달음'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독특한
방식 을 제시하고 있다.
『능엄경에서는 중생들은 망상에 합하므로 늘 미혹하고 눈앞에것 박에 못보고
부처는 묘명한 본성에 계합하므로 시방의 삼천대천세계를 손바닥위에 있는
암마라 열매 보듯이 보지 못하는 데가 없다라고 한다,』 인간에게 지워진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은 그것을 쉽게 제시하였다는 데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참답게 제시되었느냐 하는 곳에 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진지하게 궁극적
진리를 구하려는 사람들께 불교는 결코 실망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경전참고)
『부루나야!
이와 같이 세계(世界)·중생(衆生)·업과(業果)의 세 가지 전도(顚倒)가
상속되는 것은 모두 이 각명(覺明)의 밝게 아는 성품을 밝게 알려함으로
인하여 가지가지 상(相)을 발생시키고, 잘못된 견해에서 산하대지 등
가지가지 유위(有爲)의 현상이 차례로 변천하여 흐르며, 이러한 허망으로
인하여 끝났다가는 다시 시작하곤 하는 것이다.

부루나가 말했다.
"만약 이 묘각(妙覺)의 본묘각명(本妙覺明)이 여래의 마음과 같이
부증불감(不增不減)하여 까닭없이 문득 산하대지의 가지가지 유위상(有爲相)이
생겼다면 여래께서는 지금 묘공명각(妙空明覺)을 얻으셨으나 언제 다시
산하대지를 분별하는 유위(有爲)의 번뇌가 생기겠습니까?" 』

~~~~~~~~~~~~~~~화장엄 세계 이미지 자료~~~~~~~~~~~~~~~~~

저 멀리 우주에서부터...원자핵과 그 속에 양자의 세계까지..이미지화 한
그림입니다,.. 과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 화장엄 세계에서부터 극미 세계의
(인허공)이라고 하신것 까지 보여주는 가상의 이미지화 자료 입니다, 이것이 곧 색즉시공
공적시색이며 일즉다 다즉일의 진공묘유의 세계임을 현대 천체물리학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자료인 것입니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시어 확인해 보시고 참선 자료로 삼아보시길 권합니다,

http://micro.magnet.fsu.edu/primer/java/scienceopinsu/powersoft10/index.htm




(정선달 카페에서 퍼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태권브이가방 | 작성시간 03.12.02 우아.. 먼말인지 확실히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아주 의미있는 주제를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논리적으로 분석하였다고 생각되네요. 잘 이해를 못하는 것은 저의 탓이네요. ㅡ.ㅡ 암튼 잘 읽었습니다. 필성불하십시다. -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
  • 작성자금강역사 | 작성시간 03.12.08 결국 우주를 알려면 부처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것 같군요. 잘읽었습니다. 성불하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