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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엄마의 유배시절 그리고 너희의 귀양살이

작성자한빛나그네|작성시간17.11.05|조회수175 목록 댓글 1




 


 

 

엄마의 유배시절 그리고너희의 귀양살이

 









침착하게 돌아보면

너희를 키우는 일은

너희가 엄마를 힘들게 한 게 아니라

너희를 키워주는 이들이

엄마를 옥죄게 했고

정작 너희가 엄마를 보고 싶어 운 일보다

엄마가 너희에게 미안해 운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엄마의 유배시절 그리고 너희의 귀양살이

 

 

아이가 자라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줄 몰랐다.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 다 나처럼 엄마처럼 크는 줄 알았다.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터는

용돈을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았고

 

서투르게나마 병을 팔아 친구들과 돈 없이 놀러 다녔기에

자식을 키우는데 솔직히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줄 몰랐다.

정말 몰랐다.

엄마는 엄마처럼 다 그렇게 크는 줄 알았다.

내 친구들도

 

그런데 아니었다.

아니 몰랐다.

느릿느릿 가는 시간

그리고 멈춘 강물 같은 세월

오늘이 어제고 어제가 오늘 같고

 

한때 제발 나이 들기를 기도하던 때도 있었다.

믿지 않겠지만 엄마 소원이 내가 늙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편 없이 독박육아에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려 했던

일벌레 엄마는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 수레처럼

닥치는 대로 살아내던 어느 날

 

엄마 안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서러움에

내 삶에 전쟁을 선포했다.

식구수대로 종으로 살 수 없으며

식구수대로 노예로 살지 말자고

식구수대로 무식하지 말자고

그리고 미친 듯이 미친년이 되었다.

 

승현이 네가 일곱 살

수현이가 세 살

꼭 두 돌이 넘어서였다.

어짜피 이렇게 살다 죽을 바에

광기라도 부려보고 싶었다.

 

10 10

그렇게 아빠는 엄마를 몰락시켰고

가진 것을 잃어 본 엄마는

이혼보다 더 급했던 게 있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아빠를 이해한 게 아니다.

망하려고 작정하지는 않았겠지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내 일을 시작하기까지

애 우유 값이 모자랄 때

대학교 1학년에 입학 할 때

나도 내가 정신이 혼미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판단하지 못했다.

우환을 달고 살만큼 슬펐다.

그리고 살겠다고 당장의 밥벌이 보다

미래의 기술을 얻겠다며

엄마는 자식을 떼 놓을 만큼 그렇게 비정했다.

 

그러나 같이 살다간

다 같이 죽는 것 보다 나을 것 같은 생각에

우린 그렇게 서로의 숙제를 해 내었다.

 

그렇게 손살 같이 시간이 지나왔고

 10년을 서둘러 살았구나.

늘 헛공부 할 거면 공부하지마라고

공부를 너무 잘 할까봐 걱정 안했으면

거짓말이었다.

 

망한 너의 아버지 그리고 빚

엄마에게 그 어깨의 짐이 암 덩어리를 안고 사는 듯

매일 매일이 무섭고 두려웠다.

 

이렇게 내가 죽게 되면

누가 너희들 공부시켜줄까 란 생각에

공부를 잘 하는 것이

똑똑하다는 것이

더 두렵기까지 했으니

엄마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공부=지식보다, 아는 것 보다

할 줄 아는 것이 더 많아야 된다는 생각에

슬기를 강요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교육열을 아는지

너희들은

내 삶에 유일한 낙이었고

엄마는 그 세상의 전부를

만나지 못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구나.

지금도

그래 엄마 유리하게 끼워 맞추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함께 살아 식구수대로 다 가난하기보다

식구수대로 뿔뿔이 흩어져도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초록이 동색이듯

어쩜 엄마는 엄마편이다.

그런데 용케도 세상의 이치를 쉬이 터득하듯

우린 그렇게 자기 자리에서

합리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침착하게 돌아보면

너희를 키우는 일은

너희가 엄마를 힘들게 한 게 아니라

너희를 키워주는 이들이

엄마를 옥죄게 했고

정작 너희가 엄마를 보고 싶어 운 일보다

엄마가 너희에게 미안해 운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 너희가 이렇게 잘 커주었구나

놀 궁리 하지 않고 공부해주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문제 일으키지 않고

헛공부 안하고 지식을 늘이고

 

싸가지 없는 도그베이비가 판치는 세상에

인성도 겸해주고

엄마도리 못한 것에 비하면

생각에 엔진까지 달았으니

어찌 어미가 되어 자랑스럽지 않을까

 

그땐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거꾸로 마음 깊숙이

뭉클한 죄책감은 늘 그대로구나

 

일 년에 단 두 번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양보다 질이라며

, 추석엔 늘 함께

일 년에 단 두 번

24시간 7일은 꼭 같이 있었던 10년이 지났구나.

이젠 서로 서로의 시간을 보내는 이 평화가 감사하다.

 

불붙은 너희의 공부열의에 감사하고

보고 싶음을 잘 참아낸 우리에게 감사하고

부끄럽지 않을 내일을 준비하는 서로에게 감사하고

 

젊은 날

자식이 무엇인지 모르고 둘이나 낳았던 엄마는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자식을 키워보니

너희에겐 하나만 놓아라고 하고 싶은 엄마는

엄마란 자리는 예사롭지 않게

힘들었던 역할이었다.

 

지금도 어미젖을 먹는 새끼들은

뭐든지 다 예쁜 건

부모의 내리사랑이겠지

그래 치사랑은 원치 않는다.

 

엄마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절이 엄마의 유배시절 같아서

유난히 잔 근심이 많은 엄마는

 

견우가 직녀를 만나던

칠석날 밤처럼

은하수에 걸린 오작교처럼

 

만나지 못하는 이 시간마저도 감사함은

무언가 이루기 위해서는 귀양살이도 해내라는

신의 은총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지난 10년 엄마의 유배시절은

너희에겐 귀양살이 였으리란 걸 안다.

또 한편 생각해보니

이 또한 신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맨 밑바닥에서 추락한 그 돌덩이를

겨누어 이겨내 왔고

온 가족의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에

우린 이미 천복을 받았고

 

신 새벽 삶을 예찬하며 이 글을 쓸 수 있는 엄마는

이미 천운을 얻은 게 아닌가 싶다.

 

승현아, 수현아

가끔은 삶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가도

훗날 와서 보니 곁눈질 않고

살게 되는 열정은

운이 나쁘게 태어나더라도

꼭 그리 살게 되지는 아니한 것 같다.

 

엄마의 10년 유배지에서 같이 귀양살이한

너희의 10

그 삼십년이 모여 오늘을 이루었다 .

 

엄마의 유배생활은 그 어느 시절보다 값졌고

너희의 귀양살이는 그 어떤 이의 시간보다 훌륭했다.

 

그래

누군가의 삶에도 저마다의 유배시절이

있을 테고

귀양살이도 있겠지

 

단 누군가는 그것을 안 하고 사는 이도 주변엔 너무 많으니

결코 옳았느니 말할 순 없지만

보거라

이 나라에 충신이 유배한번 안 간 위인이 있고

귀양살이 안 해본 의인이 있더냐?

 

우린 너무 괜찮은 삶을 선택한 게 아니라

우린 꼭 해내고 싶고

가야할 길을 경험했을 뿐이지

단 우리의 운명을 바꾼

유배지의 귀양살이를

쉬이 잊지 말고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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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경제시대 | 작성시간 17.11.05 대구 왕비께서 여기까지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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