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필 강의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 파울로 코엘료

작성자안윤희|작성시간24.09.25|조회수13 목록 댓글 1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  파울로 코엘료

 

 나는 지금 초록색의 괴상한 의상을 걸치고 있다. 여기저기 지퍼가 달린 두꺼운 천으로 지은 옷이다. 손을 베이지 않도록 장갑도 든든히 끼고, 내 키만한 창처럼 생긴 농기구도 들고 있다. 한 끝에는 갈퀴 세 개가, 다른 한 끝에는 뾰족한 날이 서 있는 쇠붙이다.

 

 이제 내가 공격하려는 대상은 내 앞에 펼쳐진 정원이다.

 나는 창 끝으로 잔디를 뚫고 올라오는 잡초를 뽑아대기 시작한다. 그렇게 뽑아낸 식물들이 이틀 안에 죽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한참 동안 작업에 골몰한다.

 그러다 불현 듯이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과연 정당한가?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은 몇백만 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자연 속에 살아남은 식물들이다. 무수한 곤충들을 통해 가루받이를 하고, 그로써 씨앗을 맺고, 이렇게 생긴 씨앗이 바람을 타고 먼 들판까지 날아가 퍼진 존재들인 것이다. 한곳에서만 자라는 식물은 동물에게 먹히거나 홍수, 화재, 가뭄으로 사라지기 십상이지만, 여러 곳에 뿌리를 내린 씨앗은 이듬해 봄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땅속에서 무자비하게 뽑아내려는 창끝 앞에서는 어떤 생존의 몸부림도 부질없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걸까?

 누군가 이 정원을 만들었다.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이 집을 샀을 때 정원은 주변의 산과 나무와 조화를 이룬 채 이곳에 꾸며져 있었다. 정원 주인은 분명 매사에 심사숙고하고 무엇 하나를 심는대도 세심한 계획을 세우며(일례로 그는 땔감을 보관하는 움막이 보이지 않도록 그 둘레에 나무를 심고 조그만 오솔길을 만들어 두었다.) 해를 거듭하는 동안 이 정원을 정성스레 가꿔왔을 것이다. 내가 일 년 중 몇 달을 지낼 요량으로 이 방앗간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잔디밭은 흠잡을 데 없이 정갈했다. 

 이 일이 내 몫이 된 지금도, 철학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나는 정원을 만든 사람의 공로를 존중해야 할까? 아니면 자연이 ‘잡초’라 불리는 저 식물에 부여한 생존본능을 인정해주어야 할까.

 

 그러면서도 나는 불청객 같은 식물들을 뽑아, 나중에 태우려고 모아둔 짚풀더미로 내던지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는 신성하며, 반드시 그에 따르는 결과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져간다.

 생각해보면, 이 야생동물은 곳곳에 번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 익덧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잔디가 그 사이에 끼여 죽어버릴 것이다. 예수는 신약에서 밀알과 가리지를 골라, 가라지는 불에 태워야 한다고했다.

 

 성경을 내 행위의 근거로 삼든 말든 간에, 지금 내가 직면한, 인류가 늘 마주하게 마련인 구체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과연 자연에 얼마나 깊이 관여할 수 있을까? 그런 간섭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일까. 아니면 때로 긍정적이기도 한 걸까?

 

 나는 (제초기라는 이름의) 무기를 곁에 내려 놓는다. 내 동작 하나하나에, 한 생명의 종말, 즉 내버려두면 내년 봄에 꽃을 피울 야생화의 죽음이 걸려 있다. 그것은 주위 환경을 멋대로 주무려는 인간의 오만이기도 하다.

 이것 좀더 생각해볼 문제다. 이 순간, 내가 다루고 있는 것은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다. 잔디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살려주세요. 잡초가 날 죽이려 해요.”

 야생초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의 정원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오래 여행했는지 아세용? 왜 우릴 죽이려는 거조?”

고민하는 내 머릿속에 ‘바그바드 기타’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결전을 앞둔 아르주나는 사기가 꺾여 무기를 바다에 내던지며 크리슈나에게 대들었다. 그는 형제를 죽여야 하는 전투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크리슈나가 대답했다. ‘네가 정말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너의 손이 나의 손이라, 네가 하는 모든 것이 이미 기록되어 있다. 죽이는 자도, 죽는 자도 없느니.’

 갑작스레 떠오른 이 대목에서 나는 용기를 얻어 다시 ‘창’을 집어 들고 정원에 자라난 불청객들을 향해 돌진했다.

오늘 아침, 한 가지 깨달음이 내게 남았다. 내 영혼 안에 원치 않은 무언가가 자라나면 나는 신께 간구할 것이다.아무 연민없이 그것을 제거할 용기를 내게 허락해 달라고.

 

-파울로 코엘료-

1947년에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출생하여 음악 작곡가로 브라질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저널리스트, 록스터,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들 다양한 경력을 가졌다. 1986년에 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순례를 갔다.(중세부터 유명한 순례지) 이때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이 경험을 ‘순례자’로 발표했다. 이듬해에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유엔평화대사를 하다가 2006년에 다시 순례를 하고 2010년에 ‘알레프’를 발표했다.

 코엘료의 책은 168개국 73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3천5백만 부가 팔린, 우리 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영숙 | 작성시간 24.09.29 코엘료에 빠져 정신없이 책을 사 읽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연금술사는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지요.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 그 꿈을 이루어지게 해 준다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잘 읽었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