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칠십을 넘기고 보니 세상에는 뜻대로 되는 일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걱정이었고, 중년에는 자식들 뒷바라지와 부모님 봉양이 걱정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어느새 머리는 희어지고 얼굴에는 주름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의외로 거창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불어난 몸이다.
거울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배다. 언제부터인지 허리띠는 한 칸 두 칸 늘어나더니 이제는 바지를 입을 때마다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힘든 농사일도 하고, 일터를 뛰어다니며 몸을 움직였으니 살찔 겨를이 없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몸은 예전만큼 움직이지 않는데 입맛은 여전하다. 하루 세 끼 꼬박 챙겨 먹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한 숟갈이라도 더 먹게 된다. 운동을 한다고 수영장도 다니고 산책도 하지만 몸무게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창고에 쌓인 짐처럼 살은 몸 곳곳에 눌러앉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가끔 옷장을 열어본다.
양복 몇 벌이 걸려 있다. 자식 결혼식 때 입었던 양복, 친구 모임에 나갈 때 입었던 양복, 특별한 날을 위해 마련했던 양복들이다.
그런데 어느 하나도 멋지게 입어본 기억이 없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배가 들어가고 어깨가 반듯해서 양복이 몸에 착 감긴다. 그러나 나는 단추를 채우면 배가 먼저 앞으로 나와 버린다.
거울을 보면 양복을 입은 것이 아니라 양복이 억지로 나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
"젊었을 때 조금만 더 관리할 걸."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뒤늦은 후회가 따라온다.
먹고살기 바빠서 내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몸은 이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 나이에 무슨 멋을 부리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살을 빼고 싶은 이유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건강하게 걷고 싶고, 숨이 차지 않게 계단을 오르고 싶고, 남은 인생을 조금 더 가볍게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이 무겁지 않고, 신발 끈을 묶을 때 배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여행을 가서도 다리가 아프지 않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다.
생각해 보면 젊은 날에는 가족을 위해 살았다.
부모님을 위해 일했고, 아내를 위해 일했고, 자식을 위해 일했다. 내 몸은 늘 뒤로 미뤄 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남은 세월만큼은 내 몸을 위해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하루에 만 보를 걷지 못해도 좋다. 밥 한 공기를 반 공기로 줄이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나아지는 것이다.
한 달에 1kg만 줄어도 성공이다. 일 년이면 12kg이다. 젊은이들처럼 단기간에 살을 빼겠다는 욕심은 버려도 된다. 칠십의 몸은 칠십의 방식으로 변하면 된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모든 것이 늦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늦은 것이 아니라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일지도 모른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같은 고민을 할 것이고, 80세가 되어서도 "그때 살을 뺄 걸" 하고 후회할지 모른다.
배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러니 그것을 없애는 일 또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조급할 필요도 없고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오늘 저녁 한 숟갈 덜 먹고, 내일 아침 조금 더 걷고, 모레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오르는 것. 그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 몸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
언젠가 다시 양복을 입는 날이 올 것이다.
배가 조금 들어가고 허리가 한 치쯤 가늘어져 단추가 편하게 잠기는 날. 거울 속의 나는 젊은 시절의 미남은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칠십의 다이어트는 젊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남은 인생을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이다.
그리고 그 출발선은 언제나 오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