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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앞에서

작성자이규철|작성시간26.06.13|조회수21 목록 댓글 0

마지막 문 앞에서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자연의 순리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의 말이다.

아직 건강이 남아 있고, 내일의 계획이 있고, 다음 달에 만날 사람이 있으며, 가을에 거둘 곡식과 겨울에 볼 손주가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죽음이 철학이 될 때와 현실이 될 때는 다르다.

멀리 있는 산불을 바라보며 "불은 원래 뜨거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내 집 문턱까지 불길이 다가온 순간 느끼는 공포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인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죽음을 연구했다.

철학자는 죽음을 사유했고, 과학자는 죽음을 분석했으며, 종교인은 죽음 이후를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아무리 높은 경지에 오른 성인이라도 자기 차례가 가까워질 때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라고 말했지만, 그 또한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계속 생각하며 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무상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만남은 헤어짐을 품고 있으며, 모든 생명은 소멸을 향해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이유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종교란 죽음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죽음을 견딜 힘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죽음 자체보다도 헤어짐을 두려워한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다시는 아내를 보지 못하고, 다시는 자식을 보지 못하고, 다시는 형제와 친구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슬픈 것이다.

 

 

평생 살던 집.

매일 바라보던 산.

새벽마다 들리던 새소리.

손때 묻은 농기구.

사진 속 젊은 날의 자신.

그 모든 것과 영원히 작별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인간의 가슴을 저미는 것이다.

 

 

그래서 96세까지 사신 어머님께서도 마지막에 "더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 말은 단순히 목숨을 연장하고 싶다는 뜻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금 더 햇빛을 보고 싶고, 조금 더 자식 얼굴을 보고 싶고, 조금 더 세상 냄새를 맡고 싶다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순수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젊을 때는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중년에는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노년이 되어 비로소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는 오히려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길가의 꽃도 예쁘고, 비 오는 날도 정겹고, 손주 웃음소리도 귀하고, 평범한 밥 한 끼도 감사하다.

 

 

그래서 오래 산 사람일수록 더 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삶이 지겨워서가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죽음은 인간 존재의 가장 큰 역설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이 끝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이 소중하다.

청춘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답다.

 

 

만남이 끝나기 때문에 사랑은 값지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동의하지 않는다.

이성이 "자연의 순리"라고 말할 때, 본능은 "조금만 더"라고 외친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이 두 목소리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공포를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나이도 많이 드셨는데 호상이지."

"그 정도 사셨으면 됐지."

살아 있는 사람은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어가는 당사자에게는 96세도 처음 죽는 것이고, 99세도 처음 죽는 것이다.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길을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 슬픔도 이해받아야 한다.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죽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 사랑하고,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면서 친구를 사귀고,

언젠가 떠날 것을 알면서 집을 짓고 나무를 심는다.

 

 

그것이 인간이다.

죽음은 패배가 아니다.

삶의 반대말도 아니다.

오히려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의 떨림과 두려움까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것 또한 인간이기에 느끼는 가장 깊고 진실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죽음 앞에서 끝내 놓지 못하는 말은 거창한 철학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살고 싶다."

그 한마디 속에는

사랑했던 사람들, 걸어온 세월, 웃고 울었던 기억,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그 말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이 삶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고백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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