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기, 줄어드는 관계와 넓어지는 마음
나이가 일흔에 이르면 사람들은 흔히 활동
반경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부지런히 사람을 만나고 모임에
참석하며 인간관계를 넓히기 위해 애쓴다.
직장도 다녀야 하고 자식도 키워야 하며 사회적 역할도
하기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면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귀찮아진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지고,
겉치레 인사나 형식적인 모임은 점차 발길이 멀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마음 편한 사람만 만나고 싶다."
어쩌면 이것은 노년이 주는 가장 큰 특권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 싫은 사람도 만나야 했고, 손해를 보더라도
웃어야 했으며,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시간만 선택할 자유가 생긴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늘 양면이 있다.
내가 사람들을 선택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나를 선택한다.
내가 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 모임에서도 나를 찾지 않는다
. 내가 연락을 줄이면 상대도 연락을 줄인다.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해서 관계는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고, 돌보지 않으면 서서히 사라진다.
그래서 노년의 외로움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관계를 정리하고,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는 횟수를 줄이고,
조금씩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치
겨울 들판에 눈이 쌓이듯 조용히 쌓여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흔이 넘으면 대외 활동을 극소화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사람을 줄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세상과의 연결까지 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노년에도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퇴 후에는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자식들도 독립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사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급격히 고립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많은 노인들이 건강보다 먼저 잃는 것이 역할이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기다려주는 일이 사라질 때
사람은 늙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노년에는 관계의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
백 명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세 명의 진심 어린 친구가 낫고,
수십 개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보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반갑게 만날 수 있는 벗이 더 소중하다.
노년의 지혜란 사람을 모두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인생 후반기의 여가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여가를 시간 때우기로 생각한다.
텔레비전을 보고, 잠을 자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여가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풍요로운 여가란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리는 일이다.
젊은 시절 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고향의 산과 들을 천천히 걷는 일.
사진을 정리하며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일.
손주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일.
봉사활동을 하는 일.
새로운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
그것들은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아 준다.
인생은 생산성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은 미래를 위해 살았다면
노년은 현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보다 오늘 하루를 얼마나
충실히 살았는가가 중요해진다.
철학자들은 행복을 소유에서 찾지 않았다.
의미에서 찾았다.
일흔의 삶도 마찬가지다.
재산이 조금 부족해도 의미가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진심 어린 대화가 있으면 외롭지 않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오늘 걸을 수 있다면 감사할 수 있다.
노년은 인생의 끝자락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과 욕망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시기다
.
젊은 시절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계절이었다면
노년은 자신을 향해 걸어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현명한 노년이란 세상을 완전히 떠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건강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음미하는 것이다.
마치 석양이 질 무렵의 들판처럼 말이다.
한낮의 태양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더욱 깊고
부드러운 빛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시간.
노년의 풍요로움은 더 많이 갖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품고 갈 것인지를 아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지혜를 깨닫는 순간, 인생의 후반기는
쇠퇴의 시간이 아니라 완성의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