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 아래서
이규철
2026.06.21
세상사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배고픈 날 참고 입고 싶은 것 미루며 푼돈이라도 아껴 모으면 언젠가는 남부럽지 않게 좋은 집에서 편히 살며 웃음꽃 피우는 날이 올 줄 알았다
허나 사람 사는 길이란 고개 하나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근심 하나 놓으면 걱정 둘이 따라오니 인생길은 끝없는 산길이었다
이제야 마음이 잔잔한 시냇물처럼 흐르나 싶더니
거울 속에는 꿈 많던 청년은 간데없고 세월의 서리를 머리에 이고 낯선 노인 하나 서 있구나
무엇이 그리 급했던가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낙엽 지는 것을 들녘의 허수아비도 아는데
나는 어찌하여 앞만 보고 바삐 달려 쉬어 가는 법조차 잊고 살았던가
산마을 굴뚝에는 저녁 연기 가늘게 피어오르고 논둑길 풀벌레 소리는 하루해를 재우고 있는데
서산에 걸린 붉은 석양은 말없이 산등성이를 물들이며 떠나는 하루를 품에 안는다
저 석양은 알까
기쁨도 잠시요 슬픔도 잠시였음을
손에 움켜쥐려 했던 것들은 세월 따라 흩어지고 마음속에 남은 것은
함께 웃었던 사람들 따뜻했던 정 한 자락 그리운 얼굴 몇뿐임을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아래
늙은 감나무 한 그루처럼 바람 불면 흔들리고 비 오면 젖어도
그저 그 자리를 지키며
오늘도 조용히 저무는 하루를 바라본다
혹여 저 붉은 석양이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한평생 수고 많았노라고
들려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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