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넘기면서 예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사실 하나가 점점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건강도 예전 같지 않으면서 마음만은 오십 대, 육십 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계단 몇 층만 올라가도 숨이 차고, 밤잠도 예전 같지 않으며, 여기저기 고장 난 몸을 안고 살면서도 모두가 백세까지는 당연히 살 것처럼 느긋하다.
통계로 보면 평범한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많아야 십여 년 남짓이다.
그렇게 따지면 하루하루를 아껴 쓰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아야 하건만 사람은 이상하게도 자신만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늘 남의 일처럼 여기고, 시간은 아직 창고에 가득 남아 있는 양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내일이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오늘을 견디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먼 길 떠나는 나그네가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정확히 안다면 걸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하늘은 일부러 남은 날의 숫자를 감추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젊은 날에는 시간이 강물처럼 끝없이 흐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칠십을 넘어서니 세월은 강물이 아니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움켜쥐려 할수록 더 빨리 흩어지고, 붙잡으려 할수록 더욱 멀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백 년을 살 것처럼 건강을 돌보지 않고, 천 년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린다.
다투지 않아도 될 일로 얼굴을 붉히고, 미워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마음속 감옥에 가두며, 언젠가 할 수 있을 것처럼 하고 싶은 일들을 내일로 미룬다.
하지만 인생은 봄날 장터와 같다. 왁자지껄 북적이다가도 해가 기울면 하나둘 짐을 싸고 떠난다.
먼저 가는 사람도 있고, 뒤따라가는 사람도 있을 뿐 오래 머무는 사람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서둘러야 할 것은 돈 버는 일이 아니라 마음 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덜 미워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하기보다 오늘의 햇살을 느끼며, 내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웃음 한 자락 나누는 일이 더 귀한 법이다.
인생은 길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만큼 사는 것인지 모른다.
백세를 꿈꾸는 것보다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일이 보장되어 있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오늘 웃을 수 있기에 내일이 오는 것이다.
칠십을 넘어서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은 오래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살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세월이라는 열차는 누구에게도 종착역을 알려주지 않은 채 조용히 달린다.
그래서 오늘이 귀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귀하며,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두 다리와 아직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이 무엇보다 큰 축복임을 늦게야 알게 된다.
인생은 백 년짜리 약속어음이 아니다.
오늘이라는 한 장의 지폐를 손에 쥐고 살아가는 여정일 뿐이다.
내일을 믿되 내일에 기대지 말고, 먼 훗날을 준비하되 오늘을 잃지 말며, 떠날 날이 언제 오더라도 "그래도 잘 살았다." 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긴 인생보다 더 값진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