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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의 방

명옥이 / 최경순

작성자최경순|작성시간19.12.29|조회수25 목록 댓글 0

명옥이  

                               최경순

몇 해 전 가을 “언니 혹 시간 되시면 주말에 저랑 북서울숲 나들이 가실까요”?
오랜만에 명옥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들어도 차분하고 신뢰가 가득한 목소리다.
이어서 “그 곳에서 시화전 한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부평역에서 만나 북서울꿈의 숲을 찾아갔다. 벌써 많은 문인들이 와 있었고 시화도 호숫가오솔길 따라 전시해 놓았다. 그날은 참 기분 좋은, 맑은 가을 날씨였다. 행사는 정오 부터시작 했다. 그곳문학회도 손님을 초대한 본인이 미리 식권을 예약해서 대접하였다. 북서울숲 호수 중앙에 낭송대회 (단상)을 만들어 호명하면 다리를 건너 단상까지 걸어가는데 마치 미스코리아 출전을 관람 하는 듯 보고 듣는 이 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였다. 시월의 맑은 호수, 파란 하늘, 향기로운 바람은 계절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고 있었다. 북서울숲은, 단풍도 아름답지만 곳곳의 목조 다리 와 갈대숲들, 그리고 가족단위로 한가로이 산책하는 모습들도 북서울숲의 매력이었다. 나는 굽 있는 신발을 신었는데도 소근소근 한 명옥의 목소리에 피로함을 느끼지 못한 채 산책을 하며 종일 행복 했었다. 물론 그녀의 낭송도 최고였다. 어찌 그리도 잔잔하고 담대한지, 청중들의 귀와 시선을 한데 모으기에 충분했다. 박수갈채를 받은 명옥을 축하 하며 인근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명옥을 처음 만난 곳은 2016년 부평 문학 강의실에서 동료언니가 모시고 온 신입 문우였다. 뒤이어 안나 까레나 닮은 아름다운 덕이도 왔다. 모두 최고학부를 졸업한 우수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이어서 나는 문학회 회장으로 자부심도 있었다. 명옥은 출석률도, 공부하는 자세도, 모범적이지만 의상도 늘 눈에 띄지 않게 우아하였다. 서늘한 청회색 하늘빛처럼, 천연의 색감만을 입은 듯 그야말로 자연이었다. 흐르는 계곡물, 나무, 하늘빛, 꽃이고, 색이고, 빛 이었다. 수개월 함께 문학을 공부 하던 어느 날 명옥은 동료인 언니와 함께 김소월백일장 낭송대회 나갈 계획이라고, 점심시간 후 강의실에서, 나는 관객이며, 심사위원장으로 두 사람의 낭송 연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언니는 연륜에 맞게 음성이 전문 낭송가처럼 매끄럽게 음률을 잘 탔다. 명옥은 신인의 수줍음과 흐름 속에서 도도히 흐르는 당참이 느껴졌으며, 음성과 몸의 遊戱(유희)가 없고 약간 건조함이 매력 있었다. 시제가 낯설었지만 아버지의 대한 강렬한 그리움의 언어들이 절절 하여, 사무친 울림이 있었다. 그 후 한국문인 주최로 현충원 백일장 낭송대회 참가하여 소월문학 낭송 상을 수상했다, 매주 월요일, 우리는 문학수업 후 카페에서 자리를 잡았다. 주로 오전수업내용, 작품들에 관한 수다였다. 칠월 한 여름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 명옥과 함께 걷다가 문득 “언니 저기가면 등나무 아래 시원한곳 있어요”. “카페 옆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잠시 쉬어가요” 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람이 참 좋아요” 하며,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사들고 나왔다. 좋은 바람결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은 듯 가끔씩 말하고 들으며 해를 저물게 하였다. 얼마 후, 명옥은 문학수업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직장에서 쉬는 요일이 바뀌어 다른 요일에 연필스케치 공부를 할 거라고, “언니도 같이해요”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어느날 명옥은 자신이 그린 드로잉작품을 가져와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는데 정말 훌륭했다.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열도 잘한다, 라는 말이 맞다. 명옥은 사람들에게 참 좋은 영향을 주며, 언제나 사람들을 존중하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허했다. 나는 그녀를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간절히 닮고 싶었다. 아주 가끔 만났는데, 그녀가 왜 아직도 내안에 머물고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랬다, 그녀는 항상 누구에게나 겸손한 사람이며, 단정하고 다정하며, 예의가 바르고 인정이 많으며, 좋은 것 을 나누며, 단체 활동에서는 궂은일에 먼저 옷소매를 걷었으며, 다른 사람의 허물을 입에 담는 이가 아니었다. 아름답거나, 우아하거나, 지성인이거나, 학벌이 좋아서, 가 아닌 한결같이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녀가 내 마음 안에 있는 이유를 알겠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의 마음안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또 봄, 여름 두 계절이 지났을까. 최근 시집을 출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옛 문우들과 함께 모였다. 제목 (청회색 비낀 해질녁) 과연 그녀 다운 제목이었다. 한권 한권 싸인 하여 봉투에 넣어 조심스런 모습으로 주기에 받았다. 그날 쭈꾸미요리,고시인님께서 쏘셨다. 그리고 우리는 카페에서 차를 곁들였다. 그녀는 오후 근무라 인사를 남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박또박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왜 나는 덕수궁 돌담길이 보였을까? 몇 해 전 북서울숲에서 처럼 이 가을 함께 걸어보고 싶어서인가보다. 그녀는, “언니 주말엔 시간 있어요” 했으니, 무심히 하늘을 올려보니 청회색 하늘이다. 명옥이가 아니었으면 평생 청회색 하늘빛을 모르고 살 뻔 하였다. 청회색 하늘빛, 아 서늘도 하다.

2018.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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