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바께서 프라밧 상기따를 주신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바바의 말씀 중에서 예술가와 영성의 관계
에 관한 글을 나눠봅니다.
"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정묘한 심미적 감각이 인간에게서 개발됨에 따라, 그들의 예술 창작에 대한 욕구 또한 깨어나게 되었다. 예술가의 이상은 감각적 세계의 경계 너머의 초월성에 자리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들, 좀더 정확히 말해 예술 예찬가들은 자신들이 바른 길로 가길 원한다면 영적인 수행자가 되어야만 한다. 영적인 감성을 계발하지 않거나 영적인 이상을 삶의 목표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의 길에선 예술의 함양이 그저 흉내에 불과한 엉터리가 될 뿐이다.
오직 세상의 모든 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는 이들만이 모든 것에서 지복에 찬 초월적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그 초월적 존재에 대한 깨달음이 클수록, 자기 자신과 그 분이 하나임에 대한 이해가 커질 것이며, 그리하여 예술 창작에 있어서의 성공 또한 비례하여 커질 것이다. 그 정묘한 존재를 찾지 않는 이들에겐 그들이 지닌 어느 정도의 창작적 기술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예술 창작이 실제로 불가능하다.
그런 예술가들의 개인적 삶에서 심각한 재난이 일어난다. 그들의 일시적인 심미적 감각과 물질적 행복에 대한 욕망 사이의 전투에서 그들의 의지력은 정묘함과 거칠음간의 갈등으로 찢겨지고 말 것이다...많은 가수들과 배우들의 재능이 그리고 다른 여러 예술가들이 완전한 발전을 이루기 전에 영원히 시들어 사라져버린 것은 이 강인함의 부족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초월성과의 접촉이 깊을수록, 예술가로서의 성공 또한 커진다. 이는 알게 모르게 우리 인간의 마음이 초월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지의 것을 갈구한다: 그들은 알려진 것으로 만족한 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순전히 그냥 일상의 사건들에서 예술을 창조하려고 하는 애씀은 우리 인간의 직관에 매력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다.
천재성이 없는 예술가가 있을 수 있는가? 예술이 오직 진정어린 노력과 혹은 힘든 노동의 결과일 뿐인가?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나는 그 답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영적인 갈급함에 놓여있다고 여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천재는 자신이 알던 모르던 간에 강력한 영적인 갈구함을 내재한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 이런 영적인 갈구함이 없는 이들이 고된 노력만으로 예술가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 완전히 쓸모없는 일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창의적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자신의 영적인 갈망과 무한에 대한 욕구를 불태우는데 성공할 수 있다면, 이런 이들에겐 특별한 재능을 계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
출처: “The Practice of Art and Literature”, <A few problems solved Part 1>
“심미적 과학 또는 예술 과학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난단비갼은 기쁨을 기반으로 한 과학인데, 무슨 기쁨을 말하는 것일까? 이는 때에 따라 마음이 다양하게 표현됨으로써 생기는 즐거움, 마음의 다양한 표현들에 몰두하게 하는 여러 방식들에서 기인된 기쁨을 말한다.
심미적 과학의 특별함은 무엇이며 언제 이것이 달콤하고 매력적이 되는가? 이는 내면의 정신적 표현들이 감각 세계 너머를 지향할 때 그렇게 된다. 초감각적 지향이 없는 예술은 조야하게 되고 만다. 반면 초감각적인 것이 압도적인 예술은 인간을 관상(ideation)에 자리하게 한다. 이 직관적 관상을 산스크리트어로 prajina’bha’va라고 한다. 우리는 음악이나 심미적 과학의 한 특정 분야를 닦고 함양하려고 할 때, 심미적 과학이 신비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신비주의란 무엇인가? 신비주의는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영원한 분투이다. 인류는 심미적 과학(예술)에 대한 자신들의 총력적인 탐색 중에 영성에 도달할 것이다. 일단 당신들은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것이 심미적 과학의 우수성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난단비갼에 대한 나의 전심적이고 확실한 지지를 보내왔다.
예술적 추구를 북돋우지 않는 종교들이 있다는 것을 너희들도 알 것이다. 그런 종교들에 무력감과 열등감 그리고 폭력적인 감각들이 팽배해있음 또한 너희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출처: Two Folk Songs – Bhát́iyáli and Bháoyáiyá – Excerpt A, <Saḿgiita: Song, Dance and Instrumental Music>
*2022년 9월 14일,15일 아난다바르띠까디디지께서 WWD단톡방에 올리신 글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