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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의 말씀

탄트라의 특성 중 몇 가지

작성자가야트리|작성시간22.11.11|조회수47 목록 댓글 1

나마스까! 

오늘부터 ‘탄트라의 특성 중 몇 가지’라는 바바의 비교적 짧은 담화 전체를 며칠에 이어 나누려 합니다. 바바의 사랑과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담화입니다. 맥락상 조금 긴 분량이 될 때도 부디 양해바랍니다. 오늘도 바바의 은총으로 힘찬 하루 되시어요! 
--   
1.
“ 지난 며칠 동안, 나는 탄트라가 그 자체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아난다 마르가는 기본적으로 탄트라를 근간에 두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우리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전에도 말한 바 있듯이, 우리 아난다 마르가 철학은 그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견지해왔다. 만약 누군가가 두려워 떨게 된다면 그 사람은 우리의 철학에 반대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대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줄 그 어떠한 상황도 이 세상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대는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은 빠라마 뿌루샤가 두려움의 두려움이라고 말해왔다. 빠라마 뿌루샤는 두려움의 두려움이다. 이 말은 인간들이 무서운 대상들을 무서워하듯, 두려움 또한 빠라마 뿌루샤를 그만큼 무서워한다는 뜻이다. Bhiiśańaḿ bhiiśańánám – “그분은 모든 무서운 것들의 무서움이다.” 다른 이들이 겁나는 대상을 무서워하는 만큼 그 겁나는 대상 또한 빠라마 뿌루샤를 무서워한다. 그렇다면 빠라마 뿌루샤의 자녀들인 너희에게 그 누가 두려움을 주는 게 가능하겠는가?

 

2.

또한 나는, 죄나 잘못이라는 것이 그저 옷에 앉아있는 먼지와 같을 뿐이라고 늘 말해왔다. 옷을 흔듦으로써 먼지는 사라져 버린다. 이 간단한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난다 마르가는 인간이 빠라마 뿌루샤의 자녀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기에 인간이 그분의 사랑과 애정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혀왔다. 인간들이 저지른 죄나 잘못의 성질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결코 그 분의 애정을 박탈당하지 않을 것이다. 

빠라마 뿌루샤는 그들을 꾸짖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을 미워할 수 없다.  그 분은 그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고 그들을 그 분 자신의 무릎에 앉힐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완전한 항복, 완전한 내어맡김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빠라마 뿌루샤의 자녀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3. 
이런 점에서 한가지 명확히 하고 싶다. 이것이 다른 사상과 아난다마르가의 사상을 구별 짓는다. 아난다 마르가는 ‘~주의’나 이론과 매우 다르다. 우리는 다양한 계급이나 신분 등에 묶여 과거 사회에서 흔하게 행해졌던 것처럼 사람들을 매우 작고 사소한 것들로 비난하는 걸 원치 않는다. 우리 철학에 의하면, 오직 다른 이들을 해하는 불의한 것들만이 빠뻐(죄, 잘못)라고 간주된다.

옛날에는 사회 범죄의 사소한 혐의로 사람들은 추방되었다. 우리는 그런 신념에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에 따르면, 죄로 간주될 수 있는 유일한 잘못은 사회를 해치는 것일 뿐 그 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과거에는 정신적으로 한 모든 잘못도 죄로 여겨졌으며 탄트라 전통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모든 죄가 처음에 마음에서 비롯되어 실제 외부적 죄로 이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난다 마르가에 따르면, 정신적 죄가 외부적 형태로 이어지지 않고 그래서 사회를 해하지 않는 한, 그 잘못들에 대해 단죄해야 한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사다카(영적 수행자)들은 자신들이 정신적으로 행한 잘못도 항상 수정해야 한다. 왜냐면 그것들이 언젠가는 외부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죄가 외부적인 형태로 이어질 때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런 잘못을 교정하는 효과적인 하나의 방법이 키르탄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다.


4. 
그대는 왜 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는지에 대해 굳이 계속 생각하고 연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쓸모 없는 짓이다. 그대는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책임들에 대해 분명히 의식하면서, 주어진 의무들을 계속 다해야 할 뿐이다. 

전진하는 운동의 길을 가다 그대가 저지른 조그만 일탈들을 돌아보며 너무 끄달리느라 그대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더 이상 고대의 논리학자나 입법자들과 같지 않다. 우리의 의무는 전체 인류의 힘과 능력을 최대한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모든 고리타분한 것들을 분석하는 것이나, 인간의 힘과 능력을 억압하는 것, 또는 인간 활동들을 제한하는 것 등은 결코 인간적이라 간주될 수 없다. 

또한,  “글쎄, 저 사람이 지금은 도덕적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가 과거에는 지독하게 나쁜 사람이었다는 걸 너도 알지 않니?”라고 말하면서, 사람들 뒤에서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잊어버려야만 한다. 

앞서 나는 죄, 혹은 나쁜 짓이라는 것이 그저 옷에 앉은 길거리 먼지와도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먼지들을 흔들어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사회적 범죄자들로 간주된 이들은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잘못한 이들을 설사 사회가 처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쁘라끄리띠(우주 운행의 원리)에 의해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빠라마 뿌루샤(지고 의식)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5.
그 누구도 “오, 이런! 오, 이런! 오, 이런! 나는 대단한 죄인이야. 오, 어찌 내가 감히 빠라마 뿌루샤에게 다가갈 수 있겠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므로 가능하면 더 빨리 빠라마 뿌루샤에게로 내달려 가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 옷에 너무 많은 먼지가 쌓였어요. 아직까지 당신께서 저를 당신의 무릎에 데려가 이 모든 먼지를 털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참 이상하네요!’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왜 내가 이런 수많은 먼지로 그렇게 오랫동안 덮여있게 놔두었는지 오히려 따져 물어봐야 한다. 
자신의 과거 잘못들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은 키르탄을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라는 것을 그대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이는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빠라마 뿌루샤의 눈에는 그대가 얼마나 많은 잘못들을 저질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대가 결코 그 분께는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대는 또한 기억해야 한다. 그 분은 그대를 꾸짖을 수는 있으나 결코 미워하지 않는다. 

빠라마 뿌루샤가 두 가지를 할 수 없다고 내가 여러 차례 말해왔다. 그 분과 아주 깊고 친밀한 관계를 이룬 사람, 자신의 정체성을 늘 그 분께 두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분과 하나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빠라마 뿌루샤는 자신과 똑같은 제 2의 빠라마 뿌루샤를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모든 존재들이 그 분의 마음 안에 있으므로,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본들 그 분은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 분이 누군가를 증오하기를 원하다 할지라도, 그 미워함은 간접적으로 그 분 자신을 증오하는 것이 되어버릴 뿐이다. 그렇기에 빠라마 뿌루샤는 자신이 그러길 원한다 할지라도, 사실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 그대는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 출처: Shrii Shrii Ánandamúrti, ‘A Few of Tantraʼs Special Characteristics’, <Discourses on Tantra 2>

 

*2022년 11월 2일~7일까지 아난다바르띠까디디지께서 WWD단톡방에 올리신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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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Didi Ananda Vartika | 작성시간 22.1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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