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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의 말씀

어떻게 브라마에 기반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작성자가야트리|작성시간22.11.30|조회수21 목록 댓글 0

 

" 어떤 것이 그대에게 즐거운 것이든 , 고통스런 것이든 그것은 그 유한성 때문에, 그대의 영원한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대와 그 대상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 마음은 우리 자신의 자기 보존을 위해 필요하며, 자신의 보존을 위해서는 마음을 영원토록 지킬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가 필요하다. 인간은 항상 안전한 피난처를 갈망한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대는 단단한 흙의 견고한 토대 위에 집을 지으려 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적 잠재력들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그리고 일시적인 요인들과의 투쟁에서 활력을 얻기 위해, 항상 견고한 기반을 찾는다. 이 세상에 견고한 기반이 있는가? 유한한 것은 그대 삶의 기반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한한 것은 결국 소진되고, 그대 마음이 안식하지 못한 채로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것은 그대를 어둠의 심연으로 몰아넣은 채, 끝나지 않은 길에서 자기의 유한한 과정을 따를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무한한 브라마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대 마음의 대상이나 삶의 기반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많은 유한한 대상으로 가득찬 이 표현된 우주에서 어떻게 브라마에 기반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건 그대가 Madhuvidyá(마두비댜, 달콤한 지식)를 채택하는 것이다. 유한하고 피상적인 대상을 유한한 것으로 여기는 대신 그것들을 무한 또는 영속적인 것의 유한한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면 유한한 존재, 즉 쁘레야(Preya)에의 끌림과 지고의 무한자, 즉 슈레야(Shreya)에 대한 사랑이 모두 하나로 융합될 것이다.  

그대의 아들을 사랑하는가? 그건 완전히 옳고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아들이 죽게 되면 그대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아들은 유한한 존재, 즉 쁘레야이다. 그는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는 떠날 수도 있고 그래서 그대를 울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가 아들을 아들의 형태를 한 브라마의 현현으로 대한다면, 그대는 아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브라마는 어느 순간에도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브라마는 모든 10개의 방향에서 그대 주위에 현존하고 있다. 

오 인간들이여, 그 상태에서는 그 어떤 유한한 대상도 그대들의 마음을 채색할 수 없다. 그대는 모든 색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즉, Varnátiita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접촉하게 될 모든 유한한 존재들에게 가장 적절한 대우를 해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대의 아버지를 섬기고 그의 평안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아버지의 모습을 한 브라마의 현현을 적절하게 대하라. 땅을 경작하고 비옥함을 증가시킴으로써, 땅의 형태로 표현된 브라마를 적절하게 다루라. 그대가 다른 모든 대상들을 이처럼 적절하게 취급한다면, 그 어떤 대상도 그대의 마음을 거칠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진정한 무집착(Vaerágya, 바이라갸)라고 부른다.

 

바이라갸(Vaerágya, 무집착)는 배우자, 자녀 및 가족을 떠난 후 히말라야로의 탈출이나 유기 또는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난다 마르가는 그러한 도피주의적 사고방식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아난다 마르가에 따르면 바이라갸를 통한 다르마 수행은 가정 생활의 일부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패배주의적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경찰을 두려워하는 도둑, 채권자를 두려워하는 채무자, 고난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 등등은 모두 잘못된 바이라갸에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잘못된 바이라갸를 따르는 이들은 이 세상의 실패와 좌절에 맞설 용기가 없다. 그들은 장황한 이야기로 자신의 비겁함을 숨기려고 한다. 그들이 소위 그 잘못된 바이라갸를 따르고자 할 때조차 사실 그들 마음에서 세속적인 것에 대한 끌림이 줄어들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바이라갸라는 개념의 잘못된 해석을 추구하면서, 고집스럽게 Tyága(거부나 부인)를  따르려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결국엔 그 길에서 나가 떨어지게 된다.

바이라갸(무집착) 라는 말은 virága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Rága"라는 단어는 애착을 나타낸다. 우리가 유한한 대상에서 초연함을 발전시키는 수행, 즉 마음이 세속적 대상의 매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훈련이 바이라갸 사다나이다. 진정한 우주적 실체는 이 바이라갸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드러낸다. 이 우주적 실체만이 인간의 근본적 피난처이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코 그들을 외롭게 두거나, 저버리지 않을 견고한 기반이다. 바로 이 우주적 피난처 안에서 그대는 앞으로 올 모든 시간 동안 두려움 없이 그대 자신을 확립할 수 있다.”


-출처: Shrii Shrii Ánandamúrti, ‘The Base of Life’, <Ananda Marga Ideology and Way of Life in a Nutshell Part 2>  

 

*2022년 11월 17,18,19일 아난다바르띠까디디지께서 WWD단톡방에 올리신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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