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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의 말씀

포기해야 할 나쁜 습관들

작성자가야트리|작성시간23.01.20|조회수119 목록 댓글 0

나마스카, 

오늘부터의 스와디야여는 '포기해야 할 나쁜 습관들'이라는 바바의 담화입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나누려고 합니다. 매 분량이 좀 길더라도 읽기 쉬운 내용이니 양해하시고, 나날의 영적 독서 지속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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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결점들과 좋은 자질들은 둘다 속박이라고 불릴 수 있다. 즉, 한 사람을 옭아매는 어떤 생각이나 어떤 존재가 곧 속박이다. 하나의 결점은 부정적인 자질이라 불릴 수 있다. 실제 삶에서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자질들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자질들을 피해야만 한다. 지혜로운 이들은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그런 자질들을 개발해서, 존재의 투쟁에서 특별한 잇점들을 얻어야 한다. 

뿌리깊은 특정 결점들을 멀리함으로써, 혹은 특정한 나쁜 습관들을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삶의 주요한 문제들을 많이 피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피하려고 해야 할 나쁜 습관들 몇이 있다. 이런 말이 있다; 

Nidrá-tandrá-bhayaḿ-krodhah-álasyam-diirghasútratá
Ete hátavyáh śaŕ adośáh bhútimicchata. 
(삶에서 발전하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 안의 이 6가지 결함들을 부수어야만 한다: 이는 잠, 정신적 둔함, 무기력, 두려움, 화, 그리고 미루는 버릇이다.)

위 경구는 우리에게 6가지 위험한 나쁜 습관들을 조심하라고 한다. 개인 삶에서나 집단적 삶에서나, 사회적 혹은 정치적 삶에서나, 복지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런 6가지 나쁜 습관들을 피해야 한다(경구에서의 bhúti는 복지라는 뜻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큰 문제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2.
"첫번째 나쁜 습관은 니드라 혹은 잠이다. 잠이 끝나고 나면 멍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상태가 잠이다. 즉, 잠에서 깨어난 직후,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잠들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은 시간 감각을 잃어버린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지금이 몇 시예요?"라고 묻는다. 만약 며칠을 너무 많이 자게 되면, 정신적 감각 상실이 긴 시간 지속된다. "지금이 낮인가요, 밤인가요? 지금이 몇시죠?"라고 물으며 혼란스러워 한다. 이 상태가 계속될 경우, 그들의 정보의 수용력과 보유력이 줄어들게 되어 거의 정신력의 완전한 상실에 이른다. 그들은 둔하게 되며, 삶의 문제들을 직면할 용기를 결여하게 된다. 육체적으로는 강인할지라도, 용기가 없다. 과거 사람들은 과도한 수면이 건강을 위해 좋다고 믿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 많은 잠은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마음에 해로운 효과를 가져온다. 

잠이란 무엇인가? 잠은 군대가 큰 공격 후 일시적으로 하는 후퇴와 같다. 또는 육상선수가 앞으로 전력질주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 출발선 뒤로 자신의 다리를 미는 것과 같다. 고된 업무에 착수하기 전에는 짧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잠이다. 
나같은 경우는, 수개월간 연속,  4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도 없다. 신경 세포들과 신경섬유들을 제어하는 특별한 기법을 아는 이들은 잠을 완전히 이길 수도 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사람들이 낮에 일터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을 그대는 종종 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사회에 많은 문제들을 가져왔다. 한 사람의 수명이 80년이고, 그가 만약 그 중 40년을 잠자는데 쓴다면, 그 사람은 가치있는 뭔가를 할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고로, 잠의 주문에 빠져있는 것은 매우 끔찍한 버릇이다. 잠을 너무 많이 자는 이들은 현실 가능한 선에서 자신의 수면 시간을 줄이도록 애써야 한다."

 

 

3.
두 번째 나쁜 습관은 tandra(정신적 둔함)이다. 이것은 인생에서 어떤 일을 하려는 동력이나 영감의 결핍이자 수축감이다. 이는 내분비샘의 결함이나 질병, 혹은 타고난 업 때문에 일어날 수 있다. 후자로 고통받는 이들은 보통 십대 초반에 죽는다. 

습관적으로 게으른 이들은 독창적인 사고의 결핍과 행동 영역에서의 추진력 결여로 고통받는다. "내가 이것을 할수나 있을까? 내가 어떻게 이것을 해낼 수 있겠어?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나는 문맹이잖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들의 신경 세포들은 신경 섬유들에 대한 적절한 통제를 상실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일하는 것에 무관심하게 된다. 이 정신적 멍함은 위험한 것이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난 직후 느끼는 졸림도 tandra이고 일종의 정신적 둔함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특정한 정신적 훈련과 정신적 규율을 따라야 한다. 

어떤 학생들은 짧은 시간 밖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이내 곧 주의가 놀이터로 돌아간다. 그들의 눈은 교과서에 고정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아마 15분에서 20분간이나 놀이터에 가있다. 그들의 부모님이나 교사들은 겉보기에 공부에 열심인 그들을 보며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눈은 책을 읽고 있을지 몰라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마음이 놀이터에 고정되어 있기에 이 역시 일종의 정체성이다. 

시험 기간 동안 학생들은  친구들과 부모님,그리고 이웃들의 높은 기대 때문에 강제적으로 공부해야만 할 수도 있다. 이 경우도 역시, 이 학생이 외부적 압력에 의해 공부하고 있는 것이므로, 눈은 책을 보고 있으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시험이 끝나고 처음으로 쉬는 동안 그가 영화관이나 놀이터에 갈 때, 그의 마음은 원래의 정체적인 위치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는 이삼일 내에 자신이 전에 배우고 고생해서 기억했던 것들을 아주 빠르게 잊어버리게 된다. 시험기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빨리 많은 것들을 암기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자 마자, 이삼일 안에 모든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이런 모든 경우들에 이같은 심리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정신적 둔함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우리는 이 멍함이나 둔함을 경계해야 한다. 

이 정신적 둔함이 부엌에서 요리하는 여성을 사로잡는다면, 그녀는 채소요리에 소금이나 양념을 넣는 것을 깜빡할 것이다. 그녀의 육신은 그곳에 있으나, 정신적으로 그녀는 다른 어딘가에 가있다. 자신이 맡은 직무들에 태만한 남자나 음식에 소금이나 양념을 깜빡해버리는 여성을 보게 된다면, 그들의 마음이 나른함의 주문 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들은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 소년 소녀들,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경우에, 이 정신적 멍함을 떨쳐버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학교 교사들은 자신의 학생들이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이 심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      

 

 

4. 
"세 번째 나쁜 습관은 bhaya(두려움)이다. 두려움이라는 본능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깊이 배어들어 있다. 우리는 두려움이 두드러진 사람들을 소심하거나 겁이 많다고 말한다. 두려움에 관한 법칙은 우리가 두려움에 항복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더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사하게, 잠을 자면 잘수록, 더 잠을 자고 싶어질 것이고, 하루에 24시간을 자는 버릇으로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또한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욕망이 증가한다. 아귀처럼 음식을 마구 집어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 섭취를 줄인다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는 음식 없이 사실상 5년을 지냈다...

우리는 이 모든 습관들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아마 누군가는 열흘 동안 아무 음식을 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식습관에 대한 어떤 통제력도 없는 이는 이런 상황에서 분명히 죽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음식 섭취에 대해 잘 통제하는 이는 심지어 4-5년도 생존해내게 될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두려움에 항복하게 되면, 두려움의 본능은 증가할 것이다. 겁 많은 사람은 심지어 밝은 대낮에 귀신을 볼 수도 있다. 반대로, 용감한 사람은 심지어 한밤중에 묘지에서조차 귀신을 보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두려움증으로 인해 자신 내면의 것이 외부에 정신적으로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유일한 방법은 가장 강력한 존재, 즉 빠라마 뿌루셔에 대해 묵상하고, 그 분만을 피난처로 삼는 것이다. "

 

 

5. 
"빠라마 뿌루셔를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겁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실제로, 이것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두려움병에 물든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자신의 역량에 대해 의심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면, 그들은 자신이 하려고 하던 것을 쉽게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대는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혹시 그대가 생각하기도 전에 그 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누군가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귀신을 보게 된다면, 그는 즉시 자신의 이스타 만트라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가, 그 귀신의 싸대기를 후려쳐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진짜 귀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즉시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 슬쩍 보면 사람의 실루엣처럼 착각하기 쉬운 하나의 의자나 다른 사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용기를 가지고 전진하라. 그러면 온갖 귀신과 잡귀들과 도깨비들이 그대에게 나마스카를 하면서 물러서 사라지는 것을 그대는 보게 될 것이다.

누군가로 인해 극심한 괴로움을 겪고있는데도, 두려워서 모든 것을 참게 되는 일이 아마 그대 개인 삶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대가 어느 날 용기를 끌어모아 그 사람에 맞선다면, 그 폭군같은 상대가 치욕스럽게 후퇴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들을 다른 집단이 착취하도록 허락해버리는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착취당하는 그 공동체가 착취자에 대항한다면 그 폭군 또한 날 살려라 달아날 것이다. 용기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대들은 개인적 삶에서나 집단적 삶에서나 결코 두려움에 항복하지 말라."             

 

 

6. 
나쁜 습관 네번째는 krodha(화)이다. 화의 특성이 무엇인가? 아마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혹은 들었거나 해서, 신경 세포와 신경 섬유에 과도한 동요가 있을 때, 우리는 화에 의해 영향받게 된다. 누군가가 그대를 너무 거슬리게 하거나 모욕을 주면, 그대의 신경 세포는 동요할 것이다.  
한편, 아무도 그대를 욕보인다거나 방해하지 않고, 아무것도 그대를 자극하지 않을 때에도, 예를 들어 15년 전에 나를 모욕하는 말들을 한 어떤 특정인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그대의 신경 세포들은 흥분하게 된다. 그대에게 그 말들이 갑자기 떠오르게 되면 지금도 그대의 신경 세포들은 동요하게 되고 신경 섬유들이 불안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점점 화가 나게 될 것이다. 
화가 나면 그 결과로서 그대의 온 몸이 떨리고, 피부색의 변화가 일어난다. 하얀 피부는 빨갛게, 까만 피부는 자주색으로 된다. 이것이 인체에 미치는 화의 영향이다. 화는 어디서나 같다. 신경 세포가 신경섬유를 제어하는 데 실패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화를 낼 때, 우리는 쉽게 패배하게 된다. 그래서 붓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Akkodhena jine kodhaḿ asádhuḿ sádhuná jine
Jine kadariiyaḿ dánena sattyena aliikavádinam.
[인내심으로 화를 이기고, 정직함으로써 부정직함을 이기라.  아낌없는 관대함으로 탐욕을 이기고, 진실로써 거짓을 이기라]

 정직하지 않은 사람과 싸우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그대 자신이 좀 더 정직해져야 할 것이다. 인색한 사람과 싸우기 위해서는 그대 자신이 좀더 자선을 베푸는 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정신적 성향들, 다시 말해  화, 부정직함, 인색함 등등은 정신 질환의 표현들이다. 그대가 그런 질환의 표현들과 싸우길 원한다면, 그대 자신이 이런 정신 질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그대가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전투시만이라도 그것들을 멀리하라.   

내가 일전에 인색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쏘마라는 한 구두쇠가 있었다. 그의 아내 또한 똑같이 인색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쏘마가 집에 돌아왔는데 그의 안색이 창백하고 몸도 아팠다. 남편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서, 그의 아내 쏘미가 물었다. "쏘마,  자기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요? 자기 왜 이렇게 초췌해 보여요? 혹시 돈을 잃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어쩌다보니 실수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말았나요? 틀림없이 당신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음이 분명해요. 그런 일 아니라면, 당신이 왜 이렇게 창백하겠어요?" 남편 쏘마가 대답하였다. "아니오, 전혀 그런 일이 아니오. 돈을 잃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지도 않았소. 다만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기부를 하는 모습을 어쩌다 보게 되었고, 그 때문에 나는 평소의 침착함을 잃어버리고야 만 것이오."

그렇다. 이런 모든 것들이 정신 질환이다. 그대가 정신 질환에 맞서 싸우려고 준비할 때, 그대는 그대 자신부터 먼저 그런 병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최소한 전투의 기간 동안만이라도 말이다.  

 

 

7. 
다음 나쁜 습관은 alasya(나태함)이다. 
인체에서는 동작 기능들이 여러 신경 세포들의 도움으로 행동을 취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업으로 인해 그 신경 세포들을 활성화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바란다고 해도 일을 할 수 없다. 한편, 다른 이들은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평생 동안 나태한 버릇을 들인다. 
나태함은 영적 영역에서 가장 해롭고, 정신적 영역에서 조금 덜 해롭고, 물리적 세계에서는 훨씬 덜 해롭다. 

모든 인간은 14세나 15세부터 빠라마 뿌루셔(지고의식)에 대해 묵상하고자 하는 내재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주적 관상에 의해 마음의 광대한 확장을 이루게 되고, 모든 측면에서 위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의 전면적인 성장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만 이를 무시하고, 그래서 자신들의 시간을 낭비하며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늙어간다. 즉, 그들은 비-영적인 것들의 추구에 자신의 시간을 낭비한다. 이것을 "영적 나태함"이라고 한다. 

이 영적 나태함은 인간 삶에 가장 큰 해를 끼친다. 왜냐면 이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 가진 잠재력의 아주 적은 부분, 아마 1%나 2%만을 겨우 활용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의 10% 도 사용하지 못한다. 

영적인 나태함 때문에 사람들은 성장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 매우 평범함에 머무르게 된다. 그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고, 쇠퇴하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죽는다.        

 

 

  8. 
다음은 정신적 나태함이다. 이런 종류의 나태함의 특성은 무엇인가? 
정신적 나태함은 독립적으로 생각하려는 정신적 용기의 결핍이다. 또한 자신의 내재된 생각에 따라 육체적 잠재력들을 활용하려는 용기가 결여된 것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인간이 빠라마 뿌루셔의 자녀들이므로, 어떤 계급적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카스트 제도를 수용하는 이들은 빠라마 뿌루셔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반대로 빠라마 뿌루셔를 믿는 이들은 절대 카스트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모든 인간은 이것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개인 생활에서 그들은 오랜된 관습들과 신념들에 항복한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지,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나태함인지 생각해보라. 도덕적 용기의 부족이 그 원인 뿌리이다.     

다음은 육체적 나태함인데, 그대들은 모두 개인적 경험들을 통해 이것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다. 
극도의 육체적 게으름은 많은 공동체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세상의 많은 사회 집단들이 육체적 노동을 너무도 꺼려해서 그들을 위해 대신 그들의 일을 해 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고용한다. 그들은 아마 자신들이 먹을 음식이 당장 없다고 하더라도, 일하는 걸 아마 꺼릴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오직 며칠 먹을 음식 밖에 없음에도, 침대에 행복하게 드러 누워만 있기도 한다. 또한 알코올에 취해 자신의 상태를 전혀 알지도 못하는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이들도 있다. 
오늘날 세상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 나태한 성향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 우리는 육체적 나태함에 맞서 싸워야할 것이다.        
      

9.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결점은 미루기이다. 
미루기의 심리적 전술은 '오늘 말고 내일, 항상 내일'이다. 오든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경전들에 의하면 미루는 버릇이 매우 심각한 결함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관점을 완전히 수용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는, 고귀한 행위를 미루는 능력은 악이지만, 악한 행위를 미루는 능력은 선이다. 만약 내가 시간을 낭비하면서 좋은 행위를 내일로 미룬다면 그건 아주 매우 나쁘다. 그러나 내가 나쁜 행위를 내일까지 지체한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뭔가 나쁜 일을 지연시키는 동안 마음이 변해서 결국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행위의 경우 미루기는 선이다. 

라마야나에 좋은 이야기가 있다. 라반 왕이 죽어가고 있을 때, 라마가 그의 곁에 다가와 말했다. "당신은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왕입니다. 당신이나 당신의 경험에 비교하자면, 저는 한낱 소년일 뿐입니다. 제게 값진 충고를 부디 주십시오." 

이에 라반왕이 대답하였다. "람, 인생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우리가 고귀한 행위를 하고 싶은 바람이 생기면 언제든 이것을 즉시 해야 한다는 것이오. 내일 하려던 좋은 것은 무엇이든 오늘 하시오. '내일 하기로 한 일을 바로 오늘 하라. 왜 내일로 지연해야 하겠는가? 그대 삶에 내일의 햇살이 비추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거늘. 오늘 하라. 그리고 오늘 하기로 정한 일은 바로 즉시,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하라.'(까비르)
그러나 당신이 뭔가 나쁜 일을 하려는 생각이 마음 속에 떠오를 때면 그때마다 미루십시오. '오늘 않고 내일 할거야' 라고, '계속 이것을 연기해 볼거야.'라고 생각하십시오. 아아, 통탄스럽게도 나는 이 조언을 따르지 않았소. 충동적으로 나는 시타를 납치하기로 결정했었소. 이것이 좋지 않은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어야만 했는데 나는 기다리지 않고, 지체없이 그녀를 납치해버렸던 거요. 그 결과로 나는 지금 이렇게 죽게 되었소. 그러니, 람, 나는 당신에게 이 두 가지 원칙을 따르라고 조언하오."

그러므로 반복하여 말하건대, 그대가 선한 행위를 미루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반면, 악한 행위를 미뤄보는 건 매우 좋다. 그러므로 그대는 나쁜 무언가를 하고 싶은 바람이 생길 때, 그 실행을 지체하라. 그것을 당장 하지 말라. 그런 후 다른 사람들에게 이 행동이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보라. 아마 그 미룸이 그대의 마음에 변화를 불러와, 결국 그 좋지 못한 행위를 그대가 단념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이 여섯 가지 나쁜 습관들을 극복하고 앞으로 전진하려고 애쓸 때, 그들의 운동을 멈추거나, 그들의 진보를 가로막을 그 어떤 힘도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개인 생활에서 이 여섯 가지 부정적인 습관들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그런다면, 승리는 그대의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    

-출처: Shrii Shrii Anandamurti, 'Bad Habits Which Should Be Given Up', <Ánanda Vacanámrtam Part 8>      

 

*2023년 1월 9일 ~18일 아난다바르띠까디디지께서 WWD단톡방에 올리신 글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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