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59년에 입문했다. 몇 달 후, 나는 바바와 저녁 산책에 동행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바바가 Lord Shiva의 화신이라고 들었다. 나는 그를 시험하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속에는 말로 드러내지 않은 의문이 있었는데, "바바, 당신께서 정말 사드구루라면 내가 신을 살짝만이라도 볼 수 있도록 친절을 베푸소서!."
우리가 호랑이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바바는 헌신자들 중 한 명에게 가서 당시 아난다 마가의 총서기였던 P. K. 차타르지에게 메시지를 전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idea & ideology"의 한 챕터를 받아적게 하기 위해 촛불과 성냥갑, 그리고 종이를 가져오도록 다른 사람을 보냈다. 둘 다 떠났고 나는 바바와 단둘이 있었다.
그것은 꽤 멋진 장소였고
적절한 순간이었다. 호랑이의 무덤에 앉은 후, 바바는 눈을 감았다. 그는 "까말라칸타, 한 달에 100루피밖에 벌 수 없는 사람이 갑자기 1크로레(1000만 루피)를 받는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바, 저같으면 죽거나 미쳐버릴 것입니다."
바바가 말하였다. "그러면, 네 목숨이 헛되이 될 것이다. 그대는 겨우 이제 수행하기 시작했다. 영적 수행을 계속하거라. 그러면 언젠가는 전능하신 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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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참석한 DMC(대법회)는 내게 엄청난 기쁨을 주었다. 내 부임지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다모다 교수에게 DMC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음 두 차례의 DMC에 참석할 수 없었다. 또 다른 DMC가 열렸을 때, 다시 참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난 적어도 자말푸르 기차역에 가서 사랑하는 바바를 뵙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맘먹었다.
바바는 기차의 일등칸에 앉아 있었고 나는 두 손을 합장한채 기차 플랫폼에서 바바 앞에 서 있었다. 바바께서 내게 기차에 함께 타라고 신호를 해서 나는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다모다에게 오는 모든 DMC에 꼭 참석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자 바바가 말하였다. "자만심을 가지고서 어떠한 말도 하지 마라. 그대는 다가올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분 앞에 순종하고, 그대의 소망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라. 그래야 소망을 이룰 수 있다."
계속해서 바바는 "DMC에 참석하고 싶은 강한 열망은 있으나, 가는 길에는 항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법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여기 있을 땐 아무도 그대를 해칠 수 없다. 자, 나와 함께 가자." 어려움이 해결되었고, 나는 DMC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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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에 한번은 바바가 자말푸르에서 란치까지 차로 여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아내와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제 딸 수자타가 이 말을 듣고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바바에게 불만이었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바바는 모든 사람에게 가지만, 우리에게는 오지 않습니다. 왜죠? 나는 바바가 보고 싶는데, 왜 그분은 우리에게 오지 않나요?" 몇 가지 설명 후에, 나는 간신히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란치에서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 바바는 차를 타고 돌아갔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바바가 지나가는 길에 위치해 있었다. 그의 차가 우리 집 가까이 왔을 때, 바바는 마실 물을 요구했다. 차 안의 물이 다 떨어져, 바바와 동행하던 이는 차를 세우고 물을 구하기 위해 보온병을 들고 우리 집으로 달려와야 했다. 바바가 오셨다는 소식을 알고, 우리 가족 모두는 도로로 달려가 사랑하는 바바의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었고 그의 도착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내 딸에게 거룩한 모습을 한번 보게 해주셨다. 바바는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고 고귀한 존재이다.
패밀리 아차리야 까말라칸타: 슈리 슈리 아난다무르티의 고향, <자말푸르> 2001년 출판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