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BHU`MA`VYA`PTE MAHATI AHAM`CITTAYORPRAN`ASHE SAGUN`A`STHITIH SAVIKALPASAMA`DHIH VA`
아함과 치타가 마하트로 전환되면 그 합일을 속성화 상태로 흡수되는 것, “제한적 흡수상태” 즉 “사비칼파 사마디”라 한다.
Bhumavyapte = 대우주 마음, 우주 마하트
vyapte = 스며 있는
mahati = 마하트로
ahmcittayor = 치타와 아함중에서
pranashe = 원인으로 결과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용해
saguna = 구나들로, 속성화된 (의식)
sthitih = 상태
savikalpa = 정신적 생각이나 느낌으로, 한정된, 비칼파로determinate
samadhi = 흡수, 목표와 하나됨: sama(동일한) = adhi(목표)= 삼매
보통 치타 부분의 마음은 외부 세상의 사건이나 사물, 혹은 꿈이나 기억의 형상으로 있는 자신의 과거 기억( 3-1 참조)을 대상으로 취한다. 치타는 관념이나 대상물의 형상을 취하므로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자극으로부터 오는 형상이 된다. 그러면 아함은 치타를 대상으로 취해서 치타를 “바라본다,see”. 이런 식으로해서 아함은 외부 세상을 인지하고 내부의 상을 지각한다. 아함 즉 에고는 치타나 감각기관을 통해 외부 세상을 즐긴다.
그러나 명상에서는 마음이 외부를 취하기보다는 내면을 향하므로 외부에서 오는 생각을 거두고, 치타는 외부 세상을 대상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함을 대상으로 생각한다. 치타는 이념화 대상의 형상이 되므로 아함으로 흡수가 된다. 그러나 아함은 행동하거나 지각할 대상물이 없거나 치타 없이는 오래 존재하지 못하므로, 아함 역시 내면화되어 육체를 망각한다. 아함은 마하트를 대상물로 취하고 마하트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치타와 아함이 없는 곳에서는 마하트도 개체로서 존엄성을 유지할 수가 없으므로 대우주적 마하트,Cosmic Mahat로 용해된다. 이 과정을 “pran`asha”즉 “용해”라 한다.
“프라나샤,pranasha”와 “비나샤,vinasha”는 양쪽 다 “파괴” 혹은 “용해”를 뜻하나 뚜렷한 차이가 있다. 비나샤는 원인이 결과로 바뀌는 때에 생긴다. 예를 들어 초가 탈 때는 초라는 원인이 연기와 열이라는 결과로 바뀐다. 그러나 프라나샤에서의 파괴라는 말은 물이 원인이 되어 얼었던 얼음이 원래의 물로 돌아가는 결과를 내는 것처럼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치타는 아함의 결과이다. 즉 상차라에서 아함이 조야해져 치타가 생겼으므로 프라티상차라에서는 개체 치타가 다시 개체 아함으로 돌아갈 때, 프라나샤, 파괴가 일어난다. 아함이 왔던 마하트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도 역시 프라나샤이다.
마음은 두 가지의 기능이 있다. 삼칼파,samkalpa와 비칼파,vikalpa이다. “칼프,kalp”는 생각하는 것, 상상하는 것이다. 삼칼파에서 마음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을 하고 그 행동을 정신적으로 상상해본다. 다음 단계인 비칼파는 정신적인 생각을 실제의 행동으로, 외부의 물질로 물질화한다. 보통 대부분 사람은 마음의 비팔카 기능을 사용한다. 그들은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재빨리 행동한다. 보다 진보한 마음은 삼칼파의 단계를 더 많이 활용한다. 꿈속에서도 항상 양쪽 다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삼칼파 사마디에는 오직 한 비칼파( 문자 그대로는“단 하나의 선택,alternative” 또는 “생각과 함께, 이미지와 함께) 밖에는 없다. 생각하는 단 하나의 대상물은 오직 그분만 있을 뿐이다.
치타를 지닌 마음은 “이것이 나의 집이다.(This is my house)”라고 생각한다. 아함을 지닌 마음은 “이것이 나의(This is my)”라고 생각하고 마하트를 가진 마음은 오직 "I am"이라고 느끼며, 확대되어 Cosmic Mahat로 용해될 때는 오직“I am He"라고만 느낀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는 그것이 단지 “나는 우주이다... 나는 신이다”라는 확장된 느낌일지라도, 약간의 정신적인 느낌, 정신적인 진동이 여전히 있다. 여기에서 우주적 마하트,Cosmic Mahat는 속박이 아주 느슨하고 약하고 정묘하기는 하나 프라크르티의 지각원리에 매어있다.
사비칼파 사마디의 단계
만트라를 계속 반복하면 쿤달리니(4-7,8 참조)가 깨어난다. 외부 세상으로의 문은 닫히고 치타가 아함에 녹듯, 마음이 점점 더욱 내면으로 집중되고 쿤달리니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음의 층이 차차 정묘한 상위층으로 흡수되면, 쿤달리니는 차크라를 깨부수고 각각 단계마다 여러 정신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1. Sa`lokya (동일한 영역)
통상 쿤달리니는 가장 하위 차크라인 물라다라 차크라에 있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과 지고존재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느끼고 자신이 신과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쿤달리니가 두 번째 차크라인 스와디스타나로 건너가면 자신이 홀로 있지 않고 지고 아버지가 같이 있어 자신과 파라마 푸류샤가 동일한 영역 안에 있다고 느낀다. “그분은 하늘에 계시지 않으며 어디에나 함께 있습니다. 당신은 여기에 있고 그분이 하늘에 계신다면 당신은 여기에 홀로 있고 그분은 거기에서 홀로 계십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닙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의 감정은 ‘내가 있는 곳에 그분 또한 나와 함께 있다’라는 것입니다.”(바바, 바바의 은총[Los Altos Hills, Calif.: 아난다 마르가 출판사, 1973]. p. 162). 이 기쁨을 “사로카 사마디”라 한다. 수행자는 내적인 귀로 귀뚜라미의 소리, 즉 우주의 맨 첫 번째 소리인 옴카라를 듣는다.
2. Sa`miipya (근접함)
쿤달리니가 일어나 세 번째의 차크라인 마니푸라 차크라를 건너면, 수행자는 지고 아버지에게 좀 더 다가감을 느낀다. “나는 지고의 아버지 곁에 아주 가깝게 왔다. . . 사다나에 의해 아버지와 나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그는 발목의 종소리 같은 “줌 줌” 소리를 듣는다.
3. Sa`yujja (밀접한 접촉)
쿤달리니가 아나타 차크라를 넘어가면, 파라마 푸류샤와 실제로 밀접하게 접촉하는 경험을 한다. 감미로운 피리 소리를 듣는다.
4. Sa`rupya (동일한 형상)
쿤달리니가 비슈다 차크라를 넘어가면 훨씬 정묘한 상태, “나는 그분과 함께 있는 존재다”라는 느낌을 경험한다. 여기서는 더는 밀접하게 접촉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수행자는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5. Sa`rs`t`hi (동일한 경험)
쿤달리니가 아갸 차크라를 넘어가면, 그 느낌은 여전히 “am."으로 연결되는 간격은 있지마는 “I am He.(나는 그분이다)”이다. 여기서 수행자는 계속 조가비처럼 울리는 소리를 듣는데, 뇌성이나 대양의 소리가 되었다가 마침내 옴 소리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사비칼파 사마디의 단계인데, 사다카는 “나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고, 모든 것이 내 안에서 확립되고,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용해된다. 나는 대우주적 실체이다.”라고 느낀다. 그는 사구나 브라마, 속성화된 의식(Qualified Consciousness), 우주의 창조자이며, 유지자이며, 파괴자 안에 녹아든다.
묵티
이 상태가 영원하면 묵티, 해방이다. 수행자가 사구나 브라마에 녹아, 모든 삼스카라가 태워지면, 마음은 사구나 브라마에 흡수된 채 있다. 이 상태에서는 개체 마하트가 대우주적 마하트,Cosmic Mahat에 녹아버렸으므로 행동이나 카르마가 더는 있을 수가 없다. 더는 그분의 개체 존재가 없다. 그분은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확고하게 대우주적인 “나”,Cosmic “I” 속에 있다. 그러나 그분이 속성없는 의식,Unqualified Consciousness에 녹아든 것이 아니다. 그는 우주가 탄생한 사구나 브라마에 녹아든 것이다. 그는 여전히 대양에 녹은 한 방울의 물처럼 우주 순환의 한 부분이다. 비구름은 순환을 되풀이하기 위하여 대양에서 응축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의 해방은 종착지도 아니며 전부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