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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다 수트람 1-23

작성자샨티|작성시간22.01.08|조회수46 목록 댓글 0

 

1-23 TASYA STHHITIH AMA`NASIKES`U.

 

니르비발카 사마디의 상태는 나를 초월해 있다.

 

tasha = 그것의(니르비칼파 사마디의, 니르구나 브라마)

 

sthhitih = 상태

 

amanasikesu = 마음 너머

 

지고의식은 마음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개체는 지고의식을 이해하거나 묘사할 수가 없다. 마음은 지고의식의 대상이다. 그러나 지고의식은 객체가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개체는 절대로 에고를 통해 그 의식을 감지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개체가 그 의식을 생각하면, 구나의 속박이 차차 느슨하여져서 마침내 속박에서 벗어나고 분리되어있는 마음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마음은 속성이 없는 상태로 들어가고, 아는 자와 알려진 자의 차이가 사라진다. 소금 인형이 바다의 깊이를 잰다고 들어가면, 물이 얼마큼 깊은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순수의식으로 녹아버리면, 누가 그것을 묘사하겠는가?

 

오랫동안 영적 스승들이 이 상태를 묘사해보려 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였다.

 

. . . 마음 자체가 작동을 멈춘다. 그런 상태를 “니르비칼파 사마디”라 한다. 그러한 때 파라마 푸류샤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 그건 정말 어렵다. 스승은 말을 할 수가 없게 되고 제자는 귀머거리가 된다. 구루는 오직 벙어리처럼 침묵할 수밖에 없다. 언어란 한계가 있어서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다. 어떻게 파라마 푸류샤를 말로 나타낼 수가 있을 것인가?(바바, 지고 표현 1[`S-Hertogenbosch, The Netherlands: Nirvikalpa Printion, 1978], pp. 29-30).

 

어떤 헌신자가 브라마의 지혜를 배우라고 한 구루에게 두 아들을 보냈다. 몇 년 후에 그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배운 것을 물어보았다. 먼저 큰아들에게 “얘야, 너는 모든 경전을 다 배웠다. 말해보아라. 브라마의 본성이 무엇인지?”하며 물었다. 큰 아들은 경전에서 배운 여러 슬로카와 수트라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내리깔았다. 아들의 입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 아들이 브라마를 조금이나마 이해하였구나. 브라마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을.”(라마크리슈나의 이야기에서).

 

라마크리슈나가 니르비칼파 사마디의 상태를 설명하려고 할 때면 말을 더듬거리다가 마침내 그 상태 안에 녹아 의식을 잃어버리곤했다. 그가 의식을 다시 회복하면 “나는 전혀 설명 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는 이내 다시 마음이 사라지곤 했다.

 

언젠가 붓다의 가까운 제자 아난다가 붓다에게 “신은 존재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침묵하였다. 다시 아난다가 “그러면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다시 붓다가 침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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