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과 마음은 성향과 업으로 된 일종의 악기와 같다.
악기는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런데 모든 악기는 내면이 텅 비어 있다.
악기마다의 차이라면 바이얼린처럼 활과 줄이 만나 텅 빈 바이얼린 통을 연주하거나 기타처럼 줄을 손으로 뜯거나 때리거나
피리 종류처럼 텅 빈 통을 불거나
북처럼 텅빈 통을 두드리거나 한다.
‘텅비어 있음’이 마찰을 통해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악기이다.
바로 삶도 이와 같다.
주님이자 본성이라는 텅빔이 개체 성향이라는 악기를 통해 마찰할 때 expression(표현)되는 것이 삶이고,
삶이라는 드라마의 무대는 바로 이 세상이다.
개체라는 악기는 삶이라는 수행을 통해야만 점차 좋은 연주를 할 수가 있다.
그 수행은 열심히 살고자 하는 에고의 노력(끝없는 연습)을 통해 많은 연습을 하게 한다.
그러면서 점차 진보해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개체 악기가 다함께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이다.
개체가 아직 미숙할 때는 삑삑거리고 불협화음의 소리가 나지만
완전한 하모니가 되어 개체적인 악기의 고유성마져 사라지고
오직 본질이 본성, 텅빔만이 서로 공명할 때
그 공명을 우리는 ‘사랑’이라 한다.
시향에 나가는 딸 덕으로 나도 가끔 오케스트라연주회장을 갈 때가 있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 ‘무아지경’을 경험할 때가 있다.
‘나’라는 개체가 사라지는 것은 얼마나 환희로운지!
우리가 삶에서 괴로운 것은 바로 이 ‘개체로서의 나’, 나라는 스토리에 집착할 때이다. 기억이라는 유령에 의해 애착과 회피라는 감정의 게임을 즐기며 그 스토리는 지속한다.
몸과 마음이라는 악기가 있는 것은
바로 본성인 ‘텅빔’이 자신을 알고자, 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최초의 욕망의 씨 때문이다.
사랑 자신이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것!
모두가 다른 자신의 성향을 마음껏 누리면서
본질은 모두가 하나인 ‘텅빔’이라는 것만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