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민과 유목민은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자 상징이다.
정착민은 땅, 즉 물질성에 기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키는 일을 한다.
땅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 질서와 애착심에 순응하며 산다
반면 유목민은 땅보다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매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형상을 가진 무거운 물질성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은 하늘이라는 영성을 향해 눈에 보이지 않은 정신성을 쫓는 이들이다. 땅을 소유하고 정착하기보다는 바람처럼 흘러 다니는 사람들인 것이다.
떠돈다는 것은 언제나 새롭고 위험한 일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험심으로 마음은 보다 확장되고 열려나간다.
이 현상계에서는 탄생 즉 창조가 일어나고, 열심히 살아가고(유지) 나중에는 죽음(소멸)이라는 삶의 춤을 추며 에너지가 무한하게 순환하는 것이다.
그 에너지 즉 샥티는 영성,(하늘, 사트바)를 향해(지각력) 정착민(정체력, 타마)과 유목민(변화력, 역동성, 라자)의 갈등과 마찰을 통해 계속 진화한다.
창조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개혁)이고 유지는 지키는 일(보수)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정체되고 굳어져서 반드시 소멸(타마)된다.
기독교 역사에서도 정착민과 유목민의 투쟁은 아주 오래되었다.
이스라엘민족은 끝없이 살아온 땅을 떠난다.
구약 성경에서는 아브라함, 야곱, 이삭 등 모세에 이르기까지 정착한 곳을 떠나야 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노예생활하는 유대인을 끌어내어 40년 광야에서 헤매게 하다가 가나안(정착민) 땅을 정복하게 한다.
하지만 결국 유대인은 자신의 땅을 잃게 되고 3,000년 동안 떠돌다가 이제 겨우 자신들이 살던 땅을 어렵사리 회복했다.
유랑의 고통으로 인해 보다 진화하게 되고 아마 그래서 유대인들이 더 진보적이고 똑똑해서 프로이드, 카프카 등 세계를 주름잡는 이들이 많은 듯 하다.
또한 미국이라는 신세계도 고향을 떠난 이민자들의 나라인 것이다.
요새 세계인의 각광을 받고 있는 영화, 파친코, 미나리 등의 내용도 이민자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이민자도 크게 말하면 떠돌이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경우, 중앙아시아 쪽의 유목민의 후손이라는 설은 이미 확인이 되었고 나아가서는 하늘을 믿는 유대계쪽의 12지파의 한 지파인 단지파의 후손이라는 설도 제법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요새 한민족이 뜨고 있는지 모른다.
나 개인적으로도 내면에 정착민 성향 아버지, 유교적 질서와 양반이었던 아버지와 유목민 성향의 어머니, 떠돌이 상공인적 요소가 강한 신여성 어머니 사이에서 몹시 갈등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도 아버지적 성향이 나오면 내 안에 있는 어머니가 비난하고 내 안에 어머니 성향이 나오면 아버지가 비난한다.
나는 평생 자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남편도 내면에 시골 정착민이었던 아버지와 유목민이었던 상공인 읍내 여성인 어머니가 같이 있어 가랑이가 찢어졌던 것 같다.
아, 이렇게 나이 먹은 후에, 그렇게나 험한 싸움을 거친 후에야 이제 간신히 평화를 찾게 되었을까?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 현상계에서는 이런 평화마저도 잠시 봄이 오둣이 잠깐 나타나는 불안한 평화라는 것이다.
진정한 평화는 창조, 유지, 소멸의 드라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