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마음먹고 연꽃이 한창인 덕진 공원에 갔다.
약간 흐린 아침 빛에 따라 연분홍 연꽃이 한참이다.
덕진 공원은 오래된 곳이라 베롱나무도 상당히 무성하다.
요새는 연꽃과 베롱나무꽃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므로 그곳에서는 같이 즐길 수가 있다.
연꽃 중에서 드물게 백련이 눈에 띄였다.
난 별로 눈이 가지 않은 백련은 무시하고 연분홍 꽃색깔에 취해 사진찍기에 분주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어떤 노인이 “하얀 연꽃은 상가의 꽃같지요?”하며 말을 건다.
그렇다.
상가에서는 절대로 알록달록한 색깔의 꽃 화환을 놓지 않는다.
나는 나의 백발과 더불어 하얀 꽃, 백련을 보며
문득 백련의 상징과도 같은 사구나 브라마(색, 성향의 주님, Qualified Entity))를 생각해본다.
이 세상은 온갖 색깔(성향)의 세상이다.
예술가들은 색깔들의 마술사이다.
그들은 입맛이 다양해서 온갖 색깔들을 혼합해보고 섬세하게 분리해보고 조합해본다.
보다 단순한 사람들은 빨강, 노랑, 파랑 등 단일한 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무슨 색깔이거나 하얀색이 있어야 나타날 수가 있다.
즉 사구나 브라마라는 바탕(주님)에 개체심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색은 합해질수록 검정색이 되고
색이 다 사라지면 흰빛의 바탕이 된다.
죽음이란 색이 벗겨지는 정화의 과정이므로 색이 옅어지는 것이 아닐른지?
그래서 나는 장례식때 하얀옷을 입는 한민족이 보다 타당해보인다.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 엄마의 장례식때 알룩달록한 꽃상여(색깔의 개체)가 가고 나를 포함한 흰옷입은 상주들이 그 뒤를 뒤따라갔던 일을 기억한다.
명상을 하고 난 후에 색깔을 바치는 구루푸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머리가 이렇게 백발이 되어 죽음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은 나는
아직 색의 세상에 연연하고 있다.
생노병사라는 드라마에서 만들어지는 희노애락의 감정,
’너와 나‘는 게임의 역동적인 애착과 두려움
에고로서 남아있는 욕구(삼스카라)의 성취와 좌절
아, 어쩔 것인가
다만 에너지도 역시 지고의식의 한 부분임을 잊지나 말자
바바, 당신의 프상에서 이렇게 말하셨지요
“하늘도 땅도 당신 것
우주도 당신 것, 나도 당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