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란 무엇일까?
꿈에는 자면서 꾸는 꿈과 깨어서 꾸는 꿈이 있다.
자면서 꾸는 밤꿈은 설명 안해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깨어서 꾸는 낮꿈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꿈을 이루자.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흔히 한다.
깨어서 꾸는 낮꿈이라는 용어는 단지 상징에 불과할까?
그러나 낮꿈과 밤꿈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두 꿈이 모두 욕구와 스토리가 있다는 것
즉 음악으로 말하면 오르락 내리락 멜로디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성의 세상은 온갖 욕구와 좌절의 스토리의 의한 세상이다.
스토리가 있으려면 나와 대상이 존재하고 모양과 색, 에너지가 모두 달라야 한다. 그래야만 원인과 결과라는 세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욕구가 있어야만 한다.
희미한 기억으로밖에는 존재하지 않은 아프고 즐거운 과거, 현재 단맛을 쫓는 욕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 모두 사실은 존재하지 않은 스토리이다
다만 낮꿈에는 원인과 결과, 즉 멜로디 가락이 연결되지만 밤꿈은 인과나 논리가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밤꿈에는 절대로 숫자나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욕구라는 에너지를 통해 작용하는 역할은 낮꿈과 동일하다.
프로이드가 말한 것처럼 밤꿈은 낮꿈으로 미쳐 채우지 못한 욕구를 상징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다만 프로이드는 개체적 욕구에 한정하고 있고 칼융은 개체의 욕구를 넘어선 집단적 욕구, 즉 동식물, 민족, 인류의 공통적인 욕구들에 이르기까지 아우른깊은 무의식층까지 말하고 있다.
또한 명상이라는 도구는 더 깊고 광대한 무의식층인 직관과 지혜의 층, 황금의 빛의 층까지 들어갈 수있다고 한다.
아무튼 몸과 마음이라는 현상계에서는 진동(운동성, 라자구나)과 입자(결과, 타마구나)가 있어야 하고 진동이 존재하게 위해서는 반드시 욕구가 일어나야 한다. 아난다 수트람에서는 최초의 욕구의 씨를 ’까마비자‘라고 말하고 있다.
생체심리학적,biopscicology으로 말하면 잠재된 욕구(삼스카라, 업식)가 정자와 난자의 결합(섹스)으로 개체를 재생산하고자 하는 욕구를 소위 물질이라하는 현실에서 실현한다.
사실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현은 ”욕구가 이루어진다“는 표현과 다를 바가 없다. 흔히 청소년들에서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하는 것도 그와 같은 표현일 것이다. 나같은 노인에게 절대 ’꿈을 가져라‘고 하지 않는다.
노년으로서 돌아보건대 삶이란 꿈을 성취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삶을 마치는 일은 누구에게나 ’공수래 공수거‘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는 것‘이다.
어떤 욕망을 성취했거나 말거나 꿈일뿐인 삶이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솔로몬도 ’헛되고 헛되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나니...‘라고 했으니 나같은 인생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왜 ’나‘라고 하는, 이상하고 괴이하게 생긴 형상이 나와서 이렇게 울고 불고 웃고 한단 말인가?
대체 이 성가신 ”나“가 어디서 발생했단 말인가?
눈만 감으면 사라져 버리는,
나와 세상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다만 내게는 인도 철학에서 말하듯이 ’아무것도 없는 무한의식‘이 자기 자신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개체라는 부분으로 분리되어 꿈일 뿐인 마야(환영, 꿈)의 무대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 가장 그럴 듯 하다.
혹 ’자기 자신을 경험해본다‘는 의미는 ’모두가 하나에서 왔으니 모두가 하나다(바바나무 께발나무)‘라는 사랑을 경험해보는 재미(?)가 삶이라는 꿈의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