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새해 첫날, 아이들이 오지 않은,
예쁜 초등학교 텅 빈 교정을 갔다.
텅텅 비어 있는 넓은 운동장에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언제나 이런 데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왜 그럴까?
우리는 사실 무언가 채우기에 바쁘다.
이 몸은 의식주가 필요하고
마음은 지식이 필요하다.
이 땅에 사는 한 그런 것들이 있어야 ‘개체로서의 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하여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법칙에서 투쟁하고 진화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더 많은 것, 더 강한 힘에 대한 갈망, 또 개체로서 소멸한다는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아마 이렇게 물질을 집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욕망과 그에 따르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꼭 필요하지 않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나만해도 나 혼자 살면서 왜 이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지?
늙어갈수록 몸을 지탱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옷은 더 두껍게 입어야 하고
몸을 보완하고 보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더구나 내 성격이 소심하기도 하거니와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비록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도 언젠가는 필요한 경우가 생겨서 물건을 잘 내버리지도 못한다.
또 지식만 해도 몸과 마음에 대한 것, 계속 쏟아지는 정보, 관계, 사회, 정치, 문화 등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무엇이든 알고 있어야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지식을 섭취하고자 하고 그러다 보니 다들 바쁘고 허둥거리고 쫓긴다.
늙어가면서 좋은 것은
생존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욕구에 자유로워져서이다.
더구나 게으른 나에 대한 자책감도 예전처럼 크지 않다.
아직 지적 욕구와 감정적 욕구가 조금 남아있어 이런 글도 쓰고 재미로 ‘우주란 무엇인가? 나란 무엇인가?’에 기웃거리고 간혹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그냥 가벼운 놀이일 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침묵이자 텅빔은 나의 가장 최고의 안식처이다.
텅빔, 무한의식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