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여행자
바바는 프상에서 주님을 ‘아자나 뽀띡, 알수 없는 나그네, 미지의 여행자?(unknown traveler)’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 용어를 번역할 때마다 아주 난감하다.
아무리 궁리해도 적절한 말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새는 포기하고 그때그때 대강 쓰면서 그 의미나 확실하게 정리해두자고 마음먹었다.
바바께서 영성(spirituality)을 ‘앎(known)에서 모름(unknown)’으로 가는 것이라고 해서 주님은 ‘모름님(Unknown)’이라고 내나름대로 결론내렸지만 ‘여행자(Traveler)’라는 용어는 못내 아리송했다.
오늘 아침, 오래 앓은 뒤끝이라 오랜만에 동산 산책길을 맨발로 걸었다. 아직 봄의 보슬보슬함이 남아있는 흙을 밟고 울툭불특한 나무둥치도 어루만져 본다.
오월의 바람, 푸드득 날아가는 새 소리, 아직 남아있는 노란 민들레가 눈부셨다.
프상에서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드러남(expression)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나는 그분의 드러남을 만끽했다.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음미하는 나까지 모든 것이 주님의 숨결로 느껴졌다.
이 모두가 주님의 나타남이었다.
모름님인 주님이 온갖 형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꽃을 피우고 소멸시키고, 새를 태어나서 지저귀게 하고 소멸시킨다.
주님은 끊임없이 창조, 유지, 소멸의 드라마를 하시는 여행자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도 그분의 놀이일 뿐이었다.
집에 들어오자 문득 송 창식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생각나서 얼른 인터넷으로 가사를 살펴보았다.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걱정 하나 없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갖고 다니~지
모진 비바람을 맞아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입에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니지
갈 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녀야
나의 피리소리 들으려무나
삘릴리 삘릴~리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산이 높아 우는 철부지 소년아
나의 피리소리 들으려 무나
삘릴리 삘 릴~리
아, 모름님, 주님은 길이 멀다고, 산이 높다고 우는 철부지인 우리를 보면서 피리를 불며 웃는 신크리슈나이다.
신크리슈나는 늘 피리를 불며 목동들을 꼬시고 때로는 초월로 넘나든다.
그분은 매양 유쾌하다.
모든 것이 다 그분의 놀이(릴라)이니까.
이 노래를 만든 송 창식은 도인(?)이다.
아니 주님의 아이들인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다만 직관적 예술가인 송 창식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드러낼 수 있었을 뿐일 것이다.
노래와 춤으로 즐기는 영성 민족, 한민족은 노래와 춤에 모든 법문이 다 들어있다.
아마도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라고 묻는 노래법문은 우리 민족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로 몹시 아프고 난 지금, 아직 노약자 후유증으로 힘든 나를 보며 울고 웃는다.
-프상 3654
미지의 여행자여
무얼 말하는지 몰라요. 이해할 수 없어요
우주의 놀이를 알 수가 없어요
무지개에서도, 광란하는 폭우에도 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