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란 무엇인가?
아난다 수트람에서 에고는 아함(Aham, 행위하는 나)을 일컫는다.
’행위하는 나‘는 반드시 목적을 향하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
욕구는 안의비설신(오감)으로부터 발생하는 대상물을 필요로 하고.
대상물은 또한 주체(마하트, 나라는 존재감)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대상물과 주체는 분리가 되어있어야 하고
대상이 없으면 주체가 생기지 않으므로
주체와 대상은 동시에 발생한다.
그러면서 대상물이 필요하지 않은 주체감(I AM feeling,마하트)이
욕구하는 I, doing I, 즉 행위하는 나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발생이다.
물질화된 세상에서 에고는 물체라는 대상물이 확실해보이므로
나라고 하는 몸이 오감을 통해 대상물, 물체를 인식한다.
그러나 오감이라는 육체적 감각은 오직 오온(색수상행식) 이라는 정신 활동에 의해서만 지각될 수가 있다.
물체가 아무리 견고해도
우리는 정신작용에 의하지 않고는 인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인지할 수 없는 주체 나(존재감)를 눈에 보이는 육체와 오온이라는 마음활동과 동일시하게 된다.
그런 연유로 바버는 ‘우리는 오직 정신작용에 의해서만 대상을 인식한다.’라 하고 불교에서도 이 세상 전체가 ‘한 마음’일 뿐이라고 한다.
’행위하는 나‘는 반드시 주체적 존재감이 있어야만 되고
존재감(의식) 자체는 결코 알 수 없는 근원이므로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육체와 정신(느낌, 생각, 감정)작용을 나라고하는 가짜 나, 에고라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즉 한 몸이었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은(분별) 벌로 에덴(ONENESS)이라는 낙원에서 추방당하고 생존이라는 고통이 주어진다.
고통을 안게 된 가짜 에고는
고통과 쾌락이라는 이원성의 에고의 놀이에 취해
참나(진짜 주체감)를 까맣게 잊은 채
수겁을 되풀이해서 살면서 고통과 쾌락을 무의식에 저장하고
그 업식(삼스카라)으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막연하게 ’자신이 본래 누구인가? 이 고통은 어디서 온 것인가‘를 묻게 했고
다시 본래의 참 주체감을 회복하려는 깊은 열망을 갖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진짜 본성, 참 주체감을 회복해야만 하는 때이다.
점점 심해져가는 고통과 파괴는
우리의 자각을 깨우고 있다.
밤은 지나고 새벽이 온 것이다.
이미 깨어난 스승들은 “어서 본래의 자신의 집(본향)으로 돌아오라”고 외치며 우리를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