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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3 (일)
잡글 3
글 : 이경자
제목: 탁구대 위에서 무슨 일이
나에겐 개인적으로 탁구대와 관련된 에피소오드가 있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던가?
그날 공부할 책만 몇권 챙겨들고 학교에 갔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2층 빈 강당에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너무 졸려 '5분 만 눈 붙이고 일어나야지' 하고 탁구대위에 큰대자로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때가 오후 4시반쯤이었을가? 잠을 자려는데 어디서 난데없이 똥파리 한 마리가 나타나 자꾸 성가시게 했다. 그래서 신문지 두장을 커다랗게 펴서 얼굴과 몸을 완벽하게 잘 덮고 다 시 잠을 청했다.
그당시 우리학교 체육복은 무늬 없이 하얀 긴바지에 하얀 상의 였는데 그 날 따라 나는 체육복을 아래위 한 벌로 입고 있었다. 신문지를 가로로 펴서 한 장은 얼굴과 가슴부분을 덮고 다른 한 장은 배에서 무릎 위까지를 덮고 나머지 발끝까지는 노출된 채로였다.
얼마나 잤을까?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나는 잠결에 어렴풋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반쯤 정신이든 상태로 가만히 귀를 기우려보니, 벼락치듯 고함소리와 함께 발을 쾅쾅 구르는 소리가 났다.
"누구요?!"
"어 - 이, 나와 봐요!"
나는 덮고 자던 신문지를 얼굴에 쓴채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바로 그 순간 복도 쪽에서는 몇몇 아저씨들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우당 탕탕 앞다투어 도망가는 발자국 소리가 요란했다.
돌아보니 넓은 강당이 칠흑같은 어둠으로 가득차있었다.
"저예요! 이경자, 지금 몇시나 됐지요?"
세상에 단 5분만 자고 일어난다는게 글세 야간 당직 순찰시간인 밤 11시 까지 장장 6시간 반을 탁구대 위에서 잔 것이다. 겁에 질려 혼비백산 도망쳤던 야간 당직자들이 한명 한명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1착으로 남주사 아저씨(문경여중고와 한 평생 운명을 함께한 최고로 부지런하고 상냥한 학교 경비 겸 총무 아저씨)가 제일 선두였고
2착으로, 연세가 드신 욕쟁이 서무주임
할아버지(우리에게 툭하면 이년 저년을 밥먹듯 하고 재채기를 할라치면 천지가 진동을 했던),
그리고
3착, 마지막으로 이주사 아저씨(주로 목수일을 하시던)가 들어오셨다.
그러니까 따져볼 것도 없이 이주사 아저씨가 제일 멀리 도망쳤고 그다음이 서무주임 할아버지, 그리고 깡마른 몸집에 작은 체구이지만 가장 용감하고 담력 있었던 당직자는 학교의 궂은 일 진 일 마다않으시던 우리의 남주사 아저씨였던 것이다.
"걱정하지마, 집까지 같이 가줄께"
남주사 아저씨는 칠흑같이 깜깜한 밤길을 플랫쉬 라이트로 환히 밝혀주시며 중앙시장에 있는 우리집까지 바래다 주셨다.
"남주사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밤길 조심하셔요!"
남주사 아저씨는 학교 교사가 아니라 관리인 직분이었지만 학생들을 잘 보살펴주시고 어느 교육자 못지않게 학생들을 사랑하신 한국의 페스탈로치셨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입학 시험에 합격하였다는 전보를 보내고 학교에 도착했을 때 전교학생들이 우루루 현관으로 몰려 내려왔는데 많은 학생들 가운데 딱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대대장, 용감해!" 바로 우리의 천사, 남주사 아저씨였다.
어느날 학교 방과후 내가 남주사 아저씨의 짐싣는 헌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끌고 나와 운동장 구령대에 기대어 놓고 나는 구령대위로 올라가서 자전거 안장을 내려다 보며 겨우 올라앉아
패달을 난생처음 밟아본다. 처음 몇번은 가다서다를 하다가 빠른 속도로 밟으면 균형이 잡히면서 안넘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번의 시행착오끝에 진짜로 자전거를 몰고 타며 운동장을 돌고 있을 때
남주사 아저씨가 다가와서 하시는 말씀, "대대장, 용감해!" 였다. 학교 기물을 학생이 사용하면 교감선생님이나 지도부 선생님께 야단 맞는 법이지만 우리의 천사, 남주사 아저씨만은 학생을 야단치는 법이 없었다. 남주사 아저씨는 자신의 전용 자가용격인 헌 짐차를 학생이 끌고 나와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고 결국 성공해내는 과정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
어느 여름 방학 때 빈교실에서 내가 입시 공부를 하면서 지고이넬 바이젤을 처음 듣고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아서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을 때 빨간 칸나 꽃닢 하나가 내 눈 앞에 가만히 다가왔다. 뒤 돌아보니 남주사 아저씨였다. 아마 아저씨가 순찰을 돌다가 학생이 울고 있으니까 슬퍼서 우는 줄 알고 화단에서 칸나 꽃 닢 하나를 따다 주신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남주사 아저씨가 돌아가시기 전 그 댁에 방문 하였을 때 중풍과 치매로 사람을
잘 못 알아 보시는데 그래도 대대장 이경자는 알아보신다고 그의 가족들이 말했다
내가 남주사님 앞에 큰 절을 하고 금 일 봉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에 쥐어 드리고 온 후 1년이 지난 해에 방문했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뒤 였다. 그 동네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엉엉엉 통곡을 하였다.
그리운 남주사 아저씨 편히 잠드소서.
그리고 그날밤 순찰 돌던 때 2등으로
도망치신 서무주임 할아버지 그리고
1등으로 도망치신 이주사 아저씨 모두모두 편히 잠드
소서.
끝.
천하장군
2020.04.30메뉴
첫댓글쬐콩이님의 어린시절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
아름다운 수필같은 글이었습니다.
어쩜 그리 편하고 재미있게 쓰시는지?
답댓글
쬐콩이작성자
2020.05.08메뉴
역시 우리 천하장군 카페에 와야 기를 펴고 살 맛이 납니다. 다음 주에 또 오겠습니다!
애나
2020.04.30메뉴
다시 들어도 눈물나게 아름답고 잼난 추억여행입니다.
쬐콩이님만의 독특한 문장에 빠져듭니다.
문경여고의 전설!!!
대대장 이경자 만세~~~
답댓글
쬐콩이작성자
2020.05.08메뉴
흐흑 애나님 왜 그래요 눈물나게... 다음 주에 또 올께요 이만 바빠서...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