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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성 - 조문호사진전 인사동갤러리 인덱스

작성자쬐콩이|작성시간26.06.15|조회수3 목록 댓글 0

'국악신문'에서 1987' 전시 인터뷰에 이어 이애주선생 사진 소개와 사진집 소개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나 소개해 주었네요. 고맙습니다.

[내 책을 말한다] : 『1987 - 조문호 사진전』

조문호 사진집 1987 출판기념전
2026. 6. 3. ~ 6. 15., 인사동 갤러리 인덱


조문호:
세상에! 이렇게 앙증맞은 시집은 처음 본다. 며칠 전 김홍성 시인이 ‘술 마시던 날들의 노래’와 ‘꽃이 되어 마중 나온 모든 슬픔’이란 손 바닥만한 시선집 두 권을 보내주었다. '디앤씨북스'에서 펴낸 '한 칸 시선'이란 시집인데, 부담 없이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보고 또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나도 이런 사진집을 만들고 싶은 욕심까지 생긴다.
김홍성 시인의 ‘술 마시던 날들의 노래‘ 한 번 들어보시라.

1
바보나 울보를 앉혀 놓고
심한 소리 해대서 울리면
서러운 울음 끝에 비가 온다.
하루 이틀 오는 게 아니라
사흘 나흘 오고 닷새 엿새 오기도 한다.
아, 어느 동네 바보를 울렸기에
비가 이토록 오는가.

2
여러 날 광풍이 쓸고 간 하늘이 맑듯이
사나흘 계속 폭음한 뒷날에야
착한 마음이 돌아온다.

3
백 년은 영원에 기까운 세월인 줄 알았는데
반백 년 넘게 살고 보니 백 년도 하루 같겠다.
어느 고단한 나들이 끝.
또한 부산한 잔치 끝.

4
일기 예보는 곳에 따라 소나기였지만 부슬비가 내린다.
곳에 따라 벌어진 낮술 모임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중.
벗들이여, 기어이 불러내겠거든,
잔질 하는 속도를 늦추라.
내가 가서 석 잔 내리 마실 때까지.

5
기세등등한 소나기가 쏟아진다.
마침내 기로에 섰다.
술상을 차버릴까.
밥상을 차버릴까.
소나기는 밥상을 걷어차라고 아우성친다.

6
장마가 물러가니 바로 가을이다.
밤이면 찬 바람 부는 가을, 풀벌레 울고
술꾼들에게 술이 더 많이 필요한 계절.
바보들의 얼굴에도 비애가 서리는.

7
가을 하늘 잠자리 날개 날렵하더니
해 기울자 눅이 차서 몸보다 무겁구나.
앞산 그림자 밀물 들 듯이 몰려와 밤이 되리니
싸리 울타리 끝에 그대 잠들면
못 보던 별이 돋고 이슬이 비처럼 쏟아지리라.

8
소주만 마신다는 게 자랑이었을까.
젊어서 한때는 맑고 독한 것
명백한 것에 끌렸다.
맑고 독한 정신을 버린답시고
칼을 갈 듯 이를 갈며 소주를 마셨다.
신들린 무당 작두 타듯 술잔을 물어뜯으며
아슬아슬한 술상들을 징검다리 삼아
비틀거리며 건너온 이곳은 어디인가.
언제나 그 자리,
아우성치는 격랑에 에워싸여 눈을 못 뜨는 자리.
누구는 세상을 버리고
누구는 술을 버린 자리
꿇어앉아 두 손 모은 자도 있었느니,

9
맑은 소주는 이제 겁이 나서 못 마시느니라.
대신 마시는 탁주.
젖처럼 쌀뜨물처럼 고운 것을 어찌하여 탁주라 일렀는가.
막걸리라 부르기도 죄송한 이 귀한 술.
뜨뜻하게 데워서 마시는 것으로 새참이 되는 농부들의 양식.
스님들은 곡차라고 부르는 거룩한 양식.
오, 하루의 피로를 삭여 주는 누룩의 조화여!
빚고 마시는 일은 다만 수고일 뿐
누룩이 부리는 조화는 하늘에 속한 것이니.

10
추위는 매서워도 햇살이 따스하다.
아무 생각 없다가 깜박 졸았는데
옛날 집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이
튓마루 앞에 떨어져 깨졌다.
여기는 어딘가
잠시 낯설었던 세상
여전히 따스운 햇살.

11
엊그제 그리 곱던 복사꽃
오늘은 안쓰러워 못 보겠네.
흐린 골목 어귀 담벼락 따라
먼지바람에 휩싸여 굴러가네.
낯선 골목 서성이던 날들이
오늘따라 목이 메는데,
외상 주던 술집 문은 잠겨있구나.

12
봄눈 녹을 때
생목처럼 올라오던 춘정은
다 어디로 샜는가?
눈 녹는 텃밭 가녘에
구부정하게 서서
낯설게 내려다보는
오래된 물건이여!

13
어제 부음을 들었더니
오늘 동트자마자 뻐꾸기가 운다.
앞산 뒷산에 아직 자는 새들을 하나하나 깨운다.
차곡차곡 죽었지만, 뒤죽박죽된 과거에서
화창했던 날들을 불러낸다.
푸른 하늘 푸른 숲 흰 구름
그리고 이슬처럼 서글펐던 날들을.

14
좋은 술이 있어도 몸이 받지 않으니, 흠향만 한다.
술도 몸도 서로 아껴서
늙어 죽도록 흐뭇하게 지낼 수도 있었으련만
어쩌다 몸은 몸대로, 술은 술대로, 서로를 가벼이 여겼던가.
이팔청춘부터 거칠었던 술버릇에 몸을 버린 벗이여.
세상 버린 벗이여.

김홍성
1983년 ‘反詩’ 8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나팔꽃 피는 창가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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