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enka Razin
“글쎄요,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주위분들 말씀으론 1931년 생인 베이스 이반 레브로프는 아직도 현역이다. 남성 저역 가수가 수명이 긴 것은 사실이지만 71세가 되어서도 레브로프처럼 4옥타브 반을 오르내린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데뷔한 지 40여 년이 지났지만 각각의 콘서트가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닌 독특한 경험이었고, 성당과 교회에서, 콘서트홀과 오페라 무대에서 레브로프가 보여준 예술은 그에게나 청중에게나 모두 다른 것으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개인적인 감동을 선사했다. 러시아 정교, 기독교 전례 성가, 19세기 미국의 가스펠과 흑인 영가에 이르기까지 지난 5세기에 걸친 세계 각국의 교회 음악과,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헨델,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슈베르트, 구노의 아리아와 가곡들은 그가 얼마나 ‘세계적인’ 성악가인가를 알게 한다. “내가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 합창단 중 하나인 할레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 재단 합창단의 소프라노 솔리스트로 노래하면서부터입니다. 나중에는 함부르크 음악원에서 성악과 함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지요. 지휘도 공부했지만 노래 못지 않게 열중했던 것이 연기였습니다.” 러시안 벨칸토의 탄생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1958년 독일 연방 콩쿠르와 1960년 독일 국영 방송 ARD 국제 콩쿠르에서 각각 1등을 차지하며 화려한 경력의 막을 올리는데, 그 시작부터 특이하다. 그는 보통 가수들처럼 오페라 무대에서 기본기를 닦는 대신 막 서방에 선보여 선풍을 일으켰던 돈 코사크 합창단의 솔리스트가 되었다. 지휘자 세르게이 야로프는 그에게 아버지 나라 음악의 가장 강력한 본질은 무엇보다 러시아 민요와 정교 성가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사실 아직도 레브로프를 〈검은 눈동자〉, 〈스텐카 라진〉, 〈칼린카〉 등의 민요로 기억하는 팬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돈 코사크 합창단의 경험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야로프는 눈부신 지휘만큼이나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흑해 코사크 합창단은 러시아 정교회의 음악만을 집중적으로 공연했습니다. 두 합창단 모두 뛰어난 솔리스트들로 이루어졌고, 모두들 의욕과 도전 정신으로 가득차 있었죠.” ![]() 하지만 그가 오페라 무대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1960~70년대 그는 유럽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서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일례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음반에서 오를로프스키 공을 부르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원래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도록 되어 있는 이 역을 팔세토로 소화하는 그를 두고 이 음반의 ‘옥의 티’라고 말한다. 하지만 완벽주의자 클라이버도 실제 무대에서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며 청중의 배꼽을 앗아갔던 레브로프를 음반에서 제외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무대 위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뮌헨에서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를 공연할 때였습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공연 중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고, 이 부분이 LP 속에서 그만 휴지(休止)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프랑스 라디오의 ‘유럽 1’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열 두 도적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그 음반을 방송한 적이 있는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 가수가 누구냐는 전화가 쇄도해 방송국 전화 시스템이 불통이 되었다더군요.” 그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무소르크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남작〉과 〈빈 기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서 주역을 맡아 전 유럽을 누볐다. 무대에 눈을 뜨다 이반 자신이 언급한 ‘연기’에 주목한 사람은 그가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파리 공연에 총 1,476회 동안 출연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공연물이 파리에서 성공을 거둔 첫 케이스였는데 그 비결이 레브로프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프랑스어를 익힐 목적으로 그 작품에 출현했던 그는 공연의 성공 덕에 뒤이은 파리 생활 2년을 꼬박 러시아 혁명 직전의 유대인 농부 테브예로 보내게 되었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화가 그의 카리스마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레브로프는 BBC 방송에 출연한 지 며칠 지나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마가렛 허치슨이란 부인은 20년 전 자신이 해산을 앞두고 로열 앨버트 홀에서 그의 공연을 보았을 때를 회상했다. 공녀 직후 그녀는 쌍둥이를 낳았는데, 그중 한 아이의 체중이 1.2㎏밖에 되질 않았다. 간호사로부터 아기에게 빨리 이름을 지어주어야 오래 산다는 민간 신앙을 들은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영국에선 흔치 않는 ‘이반’이란 이름을 골랐다. 아이에게 레브로프가 지닌 카리스마의 일부라도 전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그 바램이 이루어졌는지 작은 이반은 소생했고 건강히 살고 있다라는 것이 그 편지의 내용이었다. 전 세계가 무대인 이반 레브로프는 몇 개 국어를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나라 러시아어와 태어나 자란 독일어는 말할 것도 없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프랑스어에 도통하다. 작가 조앤 크로퍼드와 대담을 나눌 만큼 영어에 능숙하며, 마지막으로 현재 살고 있는 그리스의 말이 그의 생활어이다. 마임이스트 마르셀 마르소와도 공연을 가졌고 각국의 수많은 TV 쇼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재담을 선보였지만 그가 연예인과 가졌던 특별한 인연이 있다. “뉴욕에서 공연을 막 마친 다음이었는데 의상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전에 만나본 적이라곤 없던 찰턴 헤스턴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존경해 마지않던 벤 허가 눈앞에 서서 나를 열렬히 칭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한 번은 호주의 애들레이드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의 일입니다. 한 열성적인 소년이 공연마다 와서는 나에게 배우기를 간청하더군요. 자기는 농부의 아들인데 주소를 가르쳐 주며 가능성이 보이거든 즉시 연락을 해달라는 것이었죠. 그는 가능성이 있었죠! 그가 지금의 멜 깁슨입니다.” 러시아 민요 최고의 대사
![]() 레브로프는 1985년 동서독 국민간의 우호를 증진시킨 공으로 서독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았다. 또한 그는 옛 소련에서 공연을 가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서방 예술가였다. 누구 못지않게 그의 음악과 예술성을 이해하고 있던 고르바초프가 그를 초청해 역사적인 소련 방문이 이루어지게 되어, 20회의 공연을 가졌고 전국에 방송되었으며, 80명의 오시포프 발랄라이카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모스크바 디나모 체육관의 공연은 음반으로 녹음되었다. 〈프라우다〉는 그를 가리켜 ‘러시아 민요 최고의 대사(大使)’라고 칭했는데, 신문으로 그것을 읽은 레브로프가 얼마나 감격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약 성경을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는다는 레브로프에게 종교 음악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교회 음악이야말로 내 모든 관심사입니다. 언제나 나를 자극하죠. 꾸밈없이 엄숙한 러시아 찬송가나, 화려한 서방 교회 음악, 기쁨에 찬 가스펠 모두 내 목소리에 활기를 줍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만큼 음악적 요소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울리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러시아의 은폐가 서방의 눈을 가리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 음악은 내게 침묵의 한 모습이고, 나는 청중에게 기독교의 다른 일면을 보여주어야겠다는 겸손한 의무감에 싸이게 됩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노래로 기도하고 기도로 노래하는 교회입니다.” 현재 그리스에 살고 있는 레브로프는 보잉 747을 제집 삼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연간 200여 회의 공연을 소화한다. “내가 다음 번 갈 곳이 내가 가고 싶은 곳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파리와 베를린만을 위해 노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랜드의 스티키숄무르란 마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주민이 1000명인 이 마을에서 800명이 마을 음악홀에 모여듭니다. 마을 신문은 아직도 그 공연을 오늘 있었던 일처럼 보도합니다. 스티키숄무르 사람들이 내게 보내준 그 아이슬랜드식 박수 갈채란■.” “위대한 러시아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은 아름다운 음성을 멋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교했습니다. 스트라디를 소유한 사람이 장식장에 보관만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고, 이 아름다움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해 비르투오소가 연주하듯이 ‘노래하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점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에도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는 노래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평생을 노력했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아직도 익히고 있습니다. 나는 신께 사랑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만큼 그의 예술을 잘 드러내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 레브로프의 노래는 무엇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그가 불렀기에 가치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할 밖에■. 여기 그 현상의 일부를 모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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