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이 사라진 사회
존경(尊敬)이란 무엇일까요? 우러러 받듦이며 우러러 받들 다는 뜻이지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어언 한 달 여가 지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존경이 사라진 사회라고 난리들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명동성당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뵈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꼭 시골 우리 할아버지 같으셨지요. 원불교의 제 3대 종법사이셨던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종사님께서는 대회상(大會上) 최고 지도자이시면서도 익산 원불교 공원묘지 한편의 비닐하우스에서 기거하셨습니다. 그래도 만인이 달려가 무릎 꿇고 경배(敬拜)를 올렸지요.
왜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어른들이 안 계시며 어찌 존경이 사라진 사회가 되었을까요? 동부매일 박완규 대표님이 <존경이 사라진 사회>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읽어보니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 널리 전합니다.
「오래 전에 재단법인 ‘행복세상’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 리서치에 의뢰해서 ‘우리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의 제목으로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조사결과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 1위는 정치인이 차지했습니다. 그것도 응답자의 67.5%라는 압도적인 1위였습니다.
주위에 보면 수준 이하의 정치인들이 참 많습니다. “어찌 저모양일까?”하며 국민들의 혀를 차게 하는 정치인들, 상황 파악도 못하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꽉 막힌 정치인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지금 이지경이 되어있는 와중에 며칠 전 국회 법사위 소위원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법안 하나를 심의하면서 서로 고성이 오고가면서 의사봉 받침대가 부러질 정도로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 2위는 공무원이나 관료가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고위 공직자를 의미할 것입니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온갖 권위는 다 누리려고 하는 우리네 높으신 양반들 말입니다. 진리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잡아가지 왜 애꿎은 우리 아이들을 데려갔는지 모르겠습니다.
3위는 성직자나 종교인이 차지했습니다. 이 대답은 조금 예상 밖의 대답입니다.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존경받아야 할 성직자와 종교인들이 우리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으로 추락하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모두의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직자뿐만 아니라 종교를 가진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종교를 믿는 사람들 하고만 사랑을 나눌 것이 아니라 종교를 떠나서 주변에 불행한 사람들이나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도 나눔과 사랑을 베풀어 주기를 희망해 봅니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존경’이 사라졌습니다. 대통령, 종교인, 학자, 판사, 검사, 기자,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아무도 누구를 향해 존경의 말을 쓰지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절규하는 사람도 줄었습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은 무능하고 무언가 할 수 없는 사람은 절망합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무능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월호만 침몰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도 함께 침몰하고 있는데 침몰하는 대한민국 호에는 눈을 씻고 봐도 선장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처럼 상식이 무너지고,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약한 자의 설 땅이 사라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에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 되지 못하고 고통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슬픈 오늘입니다.
국가지도자의 권한과 의무는 약자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배부르고 편안하게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는 국민과의 약속이고 계약입니다. 이를 어겼을 때 국민은 저항권을 행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온 사회가 요동치듯 소란스럽습니다. 과거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지도자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는 철저하게 차단하면서 들으려는 귀와 들으려는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한숨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처진 어깨와 무거운 발걸음을 걸으면서 누군가는 고함을 지르고 누군가는 욕을 해댑니다. 제발 우리 소리 좀 들으라고, 귀를 막고만 있지 말고 국민이 하는 얘기 좀 들으라고, 사고가 난지 한 달이 넘어가지만 사고대책본부는 아직도 우왕좌왕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을 믿고 우리가 잠이나 편히 잘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울되 결코 잊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낮은 곳에 제일 먼저 고입니다. 그리고 가장 나중까지 남아있어 주위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역할과 소임을 다합니다. 이 사회의 존경받는 사람은 이 물과 같이 누구나 스스로 낮추고, 낮은 곳을 찾으며, 낮은 자세를 갖는 사람이 아닐까요?
첫째는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하는 사람입니다.
세상만물을 모두 부처로 보고 하는 일 일마다 불공드리는 심정으로 경배하는 것입니다. 경배는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 백성과 나라를 위해 경배할 때 진리께서 감응하는 것이지요.
둘째는 기도(祈禱)를 올리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진리에 이르는 지름길입니다. 언제나 진리를 향하여 이 나라 이 사회 우리 국민, 그리고 이 세계를 ‘평화안락하게 살아가게 하여 지이다’ 하고 진리 전에 비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섬기기위해서는 마음에서 우러나 무릎을 굽힐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무릎을, 자만과 자존의 무릎을, 가진 자의 오만의 무릎을 굽히고, 그 대상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 때, 참다운 섬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이웃과 세상을 위해 섬기는 사람이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이 아닐까요?
남을 섬긴다는 것은 진리로 부터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섬김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비밀인 것입니다. 군림하면 안 됩니다. 백성을 섬기는 분들이 많을수록 이 나라 이 사회는 존경받고 우러러 보는 일등 나라가 될 것이 아닐 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