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일 2026. 6. 14. 설교
마태 9:35-10:8. 창세 18:1-15. 로마 5:1-8
환대하는 믿음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봅니다. 한창 더운 한 낮에 손님이 찾아옵니다. 하느님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가 고된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여 환대합니다. 자신도 떠돌이 생활의 경험이 있고, 지금도 힘겹게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죠! 측은한 마음이 들어 환대합니다. 사실 하느님은 천막 어귀에 앉아 시름에 젖어 있는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러 찾아온 것인데요.
하느님 마음 즉 측은지심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이 서로를 측은하게 여깁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아브라함을 움직여 나그네를 극진히 환대하게 한 것입니다.
천사를 맞아준 아브라함의 환대함으로 결국 축복을 얻었다는 식의 설교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김진혁 교수의 ‘환대의 신학’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는 아브라함의 환대 장면에 겹쳐 다음 장에 나오는 롯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소돔의 폭력 즉 낯선 이를 집단적으로 해치려 했던 적대감을 함께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낯선 이에 대해, 이방인에 대한 무자비한 적대감이 오래된 이야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얼굴에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환대는 나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환대는 내 영역에 균열과 틈을 내어 다른 이들을 들이는 자기 비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환대는 언제나 십자가의 모양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말씀도 묵상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이 요약되어 나옵니다. 그것은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것, 그리고 아픈 이들을 치유하시고 굶주린 이들을 먹이신 일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교회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분명한 소명입니다. 그리고 같은 비중으로 아프고 힘든 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눔입니다. 복음 선포와 나눔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교회가 또 할 일은 성도 간의 깊은 친교와 상통으로 서로 영적인 신뢰를 쌓은 일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하여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함께 성숙해지는 양육 또한 필수 요소입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우리도 그런 마음을 가지기를 소망하는 자세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믿음으로 환대하는 일’입니다.
오늘 로마서에서 바울로는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 그리고 우리 서로의 관계가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이끄는 동력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믿음, 우리 서로가 함께 걸어 나가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다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고통, 인내,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 그리고 희망을 품도록 힘을 줍니다. 예수님 마음을 닮고자 하는 사람의 품성과 덕목은 예수님의 눈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것인데, 그 관점은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는 자세입니다. 조금 불편함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삶이 ‘환대하는 믿음’입니다.
환대는 우리가 배우고 실천할 윤리의 덕목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창조하심으로 모두가 공존하며 살 수 있는 장이 생겼습니다. 그분은 성육신하시어 스스로 낯선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는 원수 되었던 우리를 당신 품으로 안으셨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환대는 ‘내가 넉넉해서 베푸는 친절’이 아니라, ‘먼저 환대받은 자의 응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환대해서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환대받았기에 우리도 응당 환대하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이제 측은지심으로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의 환대는 더 나아가 열정을 갖게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9:37)는 말은 신세 한탄이 아닙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이유로 핑계를 대는 것도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우리는 너무도 자주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손을 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가진 열정을 쏟아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입니다. 제가 즐겨 쓰는 표현대로, 추수할 일꾼이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내가 일꾼이 되게 해 달라고, 일꾼을 보내달라고 하기 전에 저를 일꾼으로 부르시라고 결단하자는 말입니다.
환대의 원어적 의미는 ‘올바른 관계로 서는 것’이라고 합니다. 환대의 믿음이 제거된 복음 선포는 일방적인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환대의 믿음이 없는 나눔은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 즉 복음 선포와 치유를 위해 사람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모든 일을 나 혼자 할 수 없고, 동역자와 함께 나누어 할 때 해결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진심으로 마음이 통해서 올바른 관계에 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얻어 신뢰를 주셨고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제자들 역시 다른 이들을 만나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때 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고, 그럼으로써 사람을 얻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열정과 겸손으로 생명의 명부에 올려져 제자들처럼 하느님께 이름이 불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느님께 호명된 사람, 이에 더하여 겸손함을 입고 예수님처럼 깊은 공감으로 우리도 사람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이 모두 환대하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때로는 나와 우리 처지가 목자 없는 길 잃은 양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항상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늘 닮고 간직할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19세가 성공회 수도원 개혁가였던 밴슨은 “나를 향해서는 차가운 마음을, 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따뜻한 마음을, 주님을 향해서는 타오르는 마음”을 이라 했습니다.
관객이 아니라 각자 맡은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불안과 연약함이 있으나 더디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꾸준히 나아가고 있고 또 나아갈 것입니다.
좌절이 있을지라도 견뎌 나가는 마음을 배우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공감하는 환대의 믿음이 우리를 더욱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이끌 것입니다. 어차피 원래부터 우리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거저 받았으니, 우리도 거저 주는(마태 10:8) 마음가짐으로 살겠다고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