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2주일 2026. 6. 21. 설교
마태 10:24-39.
햇빛같이 드러날 것
마태 10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을 모아 놓았습니다.
이른바 ‘파견 설교’라고 합니다. 세상에 나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할 때, 환대의 마음 즉 너와 내가 다름이 아님을 진심으로 깨닫고 실천하라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비장하다 못해 극단적입니다.
늘 이 본문에 머무르면 묵직한 눌림을 경험하곤 합니다,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말씀이지요.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오늘 26, 28, 31절에 나온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셔야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앞으로 엄청난 박해와 육체적, 정서적 폭력을 당할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들은 나중에 예수님과 같은 죄목으로 고초를 겪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가장 먼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올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은 비밀로 감추어둔 모든 것이 결국 알려지고, 드러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6-27)
이 말씀이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걸까요?
오히려 나의 은밀한 생각과 의도가 곧 드러나는 것이 더 큰 두려움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날에 햇빛처럼 드러날 것’은 제자들 그리고 우리의 ‘진심과 믿음’입니다.
온갖 고초와 고통 가운데도 결국 제자들의 인내와 확신이 빛처럼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고집스럽고 어쩌면 나약하며 심지어 허무맹랑하게까지 보이던 믿음의 행동이 결국은 충직한 일꾼의 삶이었음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교회 당시 숨죽여 몰래 말하고 배웠던 것을 지붕 위에서 당당하고 크게 외칠 날이 올 것이기에 지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미리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늘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쉬운 메시지 대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힘겨운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시며 에둘러 위로와 용기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대상이 누구인지, 무엇인지를 또 묻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헤로데와 로마 제국의 일당입니다. 그들은 분명 육신을 죽일 힘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박해와 탄압으로 주님과 제자들은 고난과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힘의 논리는 사라지고, 탄압을 이겨 나가는 굳은 믿음과 의지로 인해 복음의 본질은 결국 햇빛처럼 드러날 것이기에 다가올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십니다.
오히려 더 깊은 어둠의 적, 영혼까지도 죽일 힘을 가진 존재는 따로 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하느님 백성의 영혼을 위협합니다. 적대적이지 않고 간교하게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당장의 어둠과 고통을 이기기 위해 더 큰 어둠의 힘을 빌리라고 유혹합니다. 지금의 어려움과 오래된 고통을 이길 선택의 순간, 우리 안에 깊이 숨겨져 있던 비밀 즉 욕망을 일으켜 세우는 존재가 사탄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내 안의 숨겨진 비밀이고 욕망의 어둠입니다.
이 두려움을 이길 힘은 진정 세심하신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가장 작은 것까지 돌보신다는 약속으로 우리 욕망은 다시 스러지고, 하느님 나라의 희망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목숨과 영혼을 걸고 신뢰할 수 있는 자비로운 분입니다. 그 자비가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서 햇빛처럼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희망의 삶 자체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가장 결정적일 때,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날 바로 그때, 어리석게도 우리의 영혼을 빼앗으려 하는 어둠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힘들고 지쳐있을 때 오히려 우리는 감추어둔 비밀, 즉 희망으로 함께 만드는 하느님 나라를 힘껏 선포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큰 선물인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명 안에 계신 하느님을 느끼는 것, 그것이 선교의 시작입니다. 자신에 대한 신뢰, 타인에 대한 존중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선교를 이루는 영성’이라는 책의 저자인 수전 호프는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신뢰는 ‘교리적 확신이 아니라 신뢰하는 방법을 배우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중심인 세상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과정,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진정한 신앙의 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하는 일 그 이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아픔과 상처까지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이토록 극단적으로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이 주신 그 칼로 과감하게 잘라낼 것은 잘라내는 결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무엇을 잘라내야 할지도 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 안의 그늘, 너무 많은 ‘생각’입니다. 내 안의 본래 성품을 잘라내는 게 아니라,
그 본성에 사로잡혀 나와 너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잘라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식과 부모가 맞서는 상황으로 이를 극명하게 설명하십니다. 패륜이 아닙니다.
자식, 부모는 생각(핑계)입니다. 나의 무기력과 무책임, 도피처의 상징입니다.
희망의 칼로 나태함과 핑계, 원망과 신세 한탄의 그늘을 잘라 버립시다.
그러기 위해 겪어야 할 수고로움과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이 주신 칼로 두려움과 냉소적인 마음도 잘라냅시다.
똑같은 그 칼로 반드시 가야 할 길 앞에서 주저하는 두려움과 불안함도 잘라 버립시다.
이를 ‘성령을 향한 열린 마음’이라고 합니다. 열정과 결기, 존중과 신뢰의 자존감 높은 삶을 살려고 힘쓰는 우리에게 지금은 흐릿해도 언젠가는 햇빛같이 그 진리가 드러날 것임을 믿습니다.